록펠러와 불치병 그리고 자선 이야기
석유 재벌 록펠러(Rockefeller)는 34세가 되었을 때, 석유 회사의 사장이 되어 최초로 100만불의 순수한 이익을 챙긴 부자가 되었다. 43세에는 미국에서 가장 커다란 회사를 소유했고, 53세에는 억만 장자가 되어 세계 최대의 부호가 되었다. 그리고, 그러던 그가 55세 되던 해에 불치병에 걸렸다. 그에게는 알로피셔(alopecia)라는 탈모증 비슷한 병이 있었는데, 이 병은 머리카락과 눈썹이 빠지고, 몸이 초췌하게 말라가는 병이었다. 매일 우유 한 잔으로 연명하며 죽을 날을 기다리는 신세가 되었다.
록펠러(1839-1937)는 의사로부터 결정적인 소식을 듣게 되었다. "이런 상태로 1년을 넘기기 힘들 것 같습니다." 1년 이상 살지 못한다는 사형 선고였다. 마지막 검진을 받기 위해 휠체어를 타고 가는 그의 눈에 병원 로비의 액자에 실린 글이 눈에 들어왔다. ‘주는 자가 받는 자보다 복이 있다.’ 록펠러는 그 글을 보는 순간, 마음속에 전율이 일어났다. 그리고, 눈물이 났다.
뭔가 깨달음을 주는 신선한 기운이 온 몸을 감싸는 가운데, 그는 눈을 지그시 감고 생각에 잠겼다. 바로 그 때, 병원 접수 창구에서 시끄러운 소리가 들려 왔다. 어린 소녀의 어머니가 울면서 딸을 입원시켜 달라고 애원하자, 병원 측은 돈이 없으면 입원이 안 된다며 다투는 소리였다. 록펠러는 바로 비서에게 모녀가 눈치채지 못하게 입원비를 주고 문제를 해결하도록 시켰다. 뒷날, 소녀가 기적적으로 회복되자, 그 모습을 멀리서 조용히 지켜보던 록펠러는 그 순간을 이렇게 표현했다. “나는 여태까지 살면서 이렇게 행복한 삶이 있는지 몰랐다.”
록펠러는 그 때부터 나눔의 삶을 결심하고 실행에 옮겼다. 록펠러는 침대 곁에 무릎을 꿇으며 기도하기 시작했다. 기도와 함께 새벽을 맞이한 그의 인생은 그 다음부터 달라졌다. 신기하게도 병까지 호전되었다. 그 후, 98세까지 살며 자선 사업에 힘썼다. 1890년 이후 시카고 대학 설립을 위해 4억1천만 달러를 기부했다. 록펠러 재단과 의학 연구소도 설립했다.
이러한 자선 활동을 하면서 이상하게도 그는 잘 먹기 시작했고, 잠도 잘 자게 되었다. 그는 나중에 “인생 전반기 55년은 쫓기며 살았지만, 후반기 43년은 행복하게 살았다”고 회고했다. 있는 자가 돈을 쓰는 일이 뭐가 어렵느냐고 묻는 이도 있을 것이다. ‘쌀독에서 인심이 난다’는 옛말이 있다. 하지만, 우리 주변은 그렇지 않은 듯하다. 베푸는 삶, 선한 삶 속에서 진정한 행복이 우러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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