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 (내과)

수소수(水) 효과, 과학적 근거 취약

마도러스 2018. 2. 4. 17:52


■ 수소수(水) 효과, 과학적 근거 취약


● 기적의 물인가? 과학적 근거가 부족한 과장인가?


물에 '수소'를 첨가한 '수소수' 효능을 놓고 거센 논란이 일고 있다. 일부 수소수 생산 업체는 수소수가 질병을 유발하는 활성 산소를 제거해 건강에 도움을 주고 더 나아가 아토피성 피부염, 당뇨는 물론 치매 등 질병에도 효과가 있다고 홍보하고 있다. 수소수가 숙취 해소에 도움을 줄 뿐 아니라 천식과 호흡기 질환을 넘어 혈액 정화 효과까지 있다는 주장을 펼치고 있다. 최근에는 수소수 화장품까지 등장했다. 유명인이 TV에 나와 "수소수가 건조한 피부에 수분감을 유지해 줄 수 있다"며 광고한다. 


수소수 열풍이 불면서 수소수를 집에서 만들 수 있는 제조기가 수만 원대부터 300만원대 고가에 팔리고 있다. 수소수가 인기를 끄는 가장 큰 이유는 우리 몸속에 있는 활성 산소를 제거한다는 생각 때문이다. 호흡으로 발생하는 활성 산소는 당뇨를 비롯해 노화 등 여러 질병을 일으키는 원인으로 꼽힌다. 수소수 효능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산소(O)와 수소(H)가 결합하면 물이 되듯이 우리 몸에 있는 활성 산소가 수소수에 녹아 있는 수소를 만나면 물로 중화된다고 주장한다.


연세대 원주 의대 이규재 교수는 "수소의 항산화 효과는 이미 검증된 것이며, 안전한 만큼 꾸준히 마시면 효과를 볼 수 있다"고 말했다. 실제 수소수로 세포 실험을 한 경험이 있는 경희대 의대 하주헌 교수는 "세포에 수소를 넣고 관찰하면 효과가 있는 것이 보인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대다수 과학자는 수소수 효능에 의문을 제기한다. 수소수에 포함돼 있는 수소 양이 극미량이기 때문이다. 대기압에서 물에 녹을 수 있는 수소 양은 아무리 많아도 1.6㎎(1000㎎=1g)을 넘을 수 없다. 수소수 업체들은 수소수 한 병에 1000ppb에 해당하는 수소가 포함돼 있다고 설명한다. '1000'이라는 숫자가 많아 보이지만, 이는 1ℓ 물에 1㎎, 즉 0.001g의 수소가 녹아 있음을 의미한다. 하루 10ℓ 수소수를 마시더라도 수소량은 0.01g에 그치는 셈이다. 독성이 매우 강한 신경 작용제인 VX도 양이 적으면 독성을 띠지 않는다. 체온이 36.5도인 우리 신체를 감안하면, 우리 몸이 흡수할 수 있는 수소량은 '나노 그램(ng. 1ng=10억분의 1g)'에 불과해 특별한 효능을 바랄 수 없다. 


 수소수 생산 방법에 상관없이 수소수가 담긴 물의 뚜껑을 열어두거나 온도가 올라가면 녹아 있던 수소는 공기 중으로 빠져나간다. 정밀 분석 기기로도 확인하기 어려운 미량의 수소를 섭취했다고 기적의 효능을 바랄 수 없다. 수소수로 밥을 해먹거나 목욕. 마사지 등을 하는 것 또한 효과를 기대할 수 없다.


 체내 활성 산소를 연구하는 의사들도 세포를 이용한 제한된 조건의 실험에서는 수소수가 효과가 있을지 모르지만, 인간이 마신 미량의 수소가 활성 산소를 제거한다는 것은 과학적 근거가 부족하고 잘라 말한다. 음용한 수소수의 수소가 우리 몸에 있는 60조개 세포 주변에 항시 대기하고 있다가 좋지 않은 활성 산소가 누출되는 순간 결합해 중화시킨다는 주장도 허구에 가깝다는 지적이다.


 서울대 의대 이승훈 교수는 "음용한 수소수는 산성을 띠고 있는 위를 거친 뒤, 십이지장으로 전달되는데, 이 과정을 거치면 수소가 체내에 남아 있을 수 없다"고 말했다. 위는 이미 강한 산성을 띠는 수소 이온으로 가득 차 있다. 위를 지나 도달하는 십이지장에서는 염기성 물질이 분비되면서 중화 반응이 일어난다. 수소수에 들어 있는 수소가 이 과정을 거치면 남아 있을 리 없다는 설명이다.


● 활성 산소가 무조건 좋지 않다는 얘기도 잘못됐다. 활성 산소는 염증이나 외부에서 침입한 세균. 바이러스를 제거하는 역할을 한다. 활성 산소가 문제 되는 것은 과도하게 많아질 때이다. 활성 산소가 과도하게 많아지면 이를 제거해야 하지만, 뇌졸중, 패혈증 등 큰병이 이미 진행되고 있을 때는 질병이 확산되는 것을 막는다. 불이 났을 때 불에 탈 물질을 미리 제거하는 것과 같다. 우리 몸에서 항상 나쁜 활성 산소가 만들어지는 것도 아니다. 수소수를 꾸준히 마신다고 몸에 나쁜 활성 산소가 사라진다는 주장은 과학적 근거가 부족하다.


● 이처럼 과학적 근거가 빈약하다는 지적에도 업계는 2007년 국제 학술지 '네이처 메디신'에 일본 의과대학 오타 시게오 교수의 '독성 산소를 선택적으로 제거하는 항산화 물질 수소'라는 논문을 근거로 제시하고 있다. 논문의 골자는 쥐에게 수소를 주입해 뇌신경 질환을 예방할 수도 있다는 내용이다. 수소가 나쁜 활성 산소만을 제거한다는 근거 역시 이 논문에서 나왔다. 하지만, 과학자들은 이 논문이 수소수가 아닌 '수소 가스'로 실험한 내용이라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고 지적한다. 2017년 10월 일본 게이오 대학은 '심정지 후 증후군' 환자 360여 명을 수소에 노출시켰을 때, 뇌 손상이 적어진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이 논문 결과도 역시 수소를 물에 녹인 수소수가 아니라 수소 가스가 포함된 공기를 환자가 흡입하는 방식으로 실험이 진행됐다.


식품 의약품 안전처는 2014년 의료 기기 거짓. 과대 광고 행위를 단속하며, 수소수를 언급한 바 있다. 식약처는 '아토피 치료 및 소화 촉진 효과'나 '활성산소 제거' 등 수소수 업체가 표기한 수소수 효능을 두고 '위반'이라고 적시했다. 과학적 근거가 부족하기 때문이다. 식약처 관계자는 "수소수는 의료 기기가 아닌 만큼 인체 활성 산소를 제거한다고 광고하면 허위. 과대 광고에 해당한다."고 밝혔다.


일본과 중국을 중심으로 수소수 효능을 주장하는 논문이 자주 발표된다. 일부 수소수 업체들은 이 같은 논문 목록을 열거하며, 수소수가 질병 치료에 효과가 있다고 주장한다. 최근에는 수소수를 수십 명에게 섭취하게 하는 실험을 한 뒤, 피부 주름이 개선됐다거나 치매, 당뇨 등 질병에 효과가 있다는 논문도 발표되고 있다. 하지만, 과학자들은 몇 편의 논문으로 수소수가 특정 질병에 효능이 있는 것처럼 주장하는 것은 과학자의 태도가 아니라고 지적한다. 과학 기술계에서 제기된 새로운 논문은 연구 검증 과정을 거쳐야 한다. 학회와 논문 등을 거치며 다른 과학자들에게 평가를 받고, 수많은 재현 실험과 함께 뒷받침하는 논문이 추가로 쌓여야 인정받는다. 단 몇 편의 논문이 나왔다고 해서 연구 가설이 기정 사실화되는 것은 아니다. 


사람을 대상으로 한 임상 연구는 대규모 임상이 필수적이다. 어떤 물질이 몇명에게 효과를 보였다고 해서 곧바로 신약으로 출시될 수 없다. 몇 편의 논문을 토대로 수소수 효과를 주장하는 행위에 대해 과학자들은 비판한다. 소규모 임상이 효과가 있다고 수소수를 만병 통치약처럼 홍보하는 것은 해당 질병으로 고통 받는 환자와 가족을 이용하는 상술에 불과하다. 발표된 수백 편의 논문을 비교 분석하는 것을 '메타 연구'라고 한다. 과학자들은 메타 연구를 통해 "특정 영양소나 음식이 질병에 좋다"고 이야기한다. 수소수가 나온 지 10년 정도 됐는데, 아직 논문 숫자가 미비하다. 인체에 효과가 있는지 확답하기에는 데이터 양이 적다. 그래서, 특정 질환을 앓고 있는 환자에게 수소수를 섭취하게 해서 질병을 고치려는 생각을 갖고 있다면, 잘못된 생각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