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역사.문화

소년등과(少年登科) 패가망신(敗家亡身)

마도러스 2017. 1. 26. 09:55


■ 소년등과(少年登科) 패가망신(敗家亡身)

 

● 민영환(閔泳煥선생은 1878년 규장각 대교에 임명되자마자 자신은 그 직책을 맡을 역량이 아직 안 되니그 직책을 취소해 달라는 상소를 올렸다. “직책이 화려해질수록 졸렬함이 더 드러나고저를 돌아보심이 두터워질수록 송구함만 더 늘어갑니다. 저는 주제넘게 그 직책을 차지할 수가 없습니다진심으로 우러러 성상께 아룁니다바라옵건데 굽어 살펴 속히 신에게 제수하신 그 직책을 거두어 주소서!” 라고 하였다직책이 화려해지는 것을 경계하는 선인(先人)들의 마음이 이러했다.

 

● 1441년 조선(朝鮮)에 태어난 남이(南怡장군은 할아버지는 개국공신(開國功臣)이었고어머니는 태종의 넷째 딸 정선 공주였다집안만 놓고 봤을 때태종 이방원의 외손주이자 세종대왕의 조카가 되는 그야말로 당시 날아다니는 새도 떨어트릴 수 있는 명문가 집안의 자제였다또한남이 장군은 이미 어릴 때부터 그 총명함과 기개가 당당하여 1457(세조 3그의 나이 17세 때 이미 무과에 급제하여 여러 관직을 거치며 세조의 총애를 받았다. 1467년 이시애(李施愛)의 난이 일어나자이를 진압하여 공신 반열에 오르고북쪽 여진과의 전쟁에서도 앞장서 적군을 무찌르며 그 능력을 인정받았다.

 

곧이어그는 26세의 나이로 지금의 국방부 장관에 해당하는 병조판서의 자리에 오르니한국사 전체를 봤을 때에 이토록 젊은 나이에 병조판서 자리에 오른 사람은 남이 장군 밖에 없었다하지만, 1468년 남이 장군을 아끼던 세조가 죽고그 아들 예종이 왕위에 오르자마자 훈구대신들은 남이 장군의 사람됨이 군사를 장악하기에는 부족하다고 공격했다이에 예종은 남이를 병조판서에서 해직시키고 겸사복장으로 좌천시킨다.

 

남이(南怡장군의 불행은 이때부터 시작되었다남이 장군이 궐 안에서 숙직을 하고 있었다밤하늘에 갑작스러운 혜성이 나타나자 그는 무심결에 이렇게 말했다. “혜성이 나타난 것을 보니이제 묵은 것을 모두 없애버리고새 것을 나타나게 하는 징조이다!” 그런데하필 병조참지 유자광(柳子光)이 이를 엿듣고남이 장군을 역모로 모함했다남이 장군은 모진 국문 끝에 27살에 참형을 당했다.

 

● 우리 선조들은 사람의 3가지 불행을 1) 빠른 출세, 2) 좋은 배경, 3) 타고난 재주를 꼽았다첫째지나치게 이른 나이에 과거에 합격하고조기에 등청(登廳)하여 입신출세(立身出世)하는 소년등과(少年登科)이다이른 나이에 성공(成功)함으로써 지나치게 거만하고 안하무인(眼下無人)의 성격으로 변하는 것을 경계했다둘째자신의 노력없이 부모나 친족의 권세에 기대어 좋은 벼슬에 오름이다애쓰지 않고 호화를 누리다 보니 그 위치가 얼마나 어려운 자리인지 모르고 함부로 굴다가 제풀에 무너진다셋째타고난 재주가 뛰어나고 문장마저 능한 것이다거칠 것이 없으며 실패를 모르고 득의양양(得意揚揚)하다가 한순간에 나락에 굴러 떨어진다.

 

그래서, “소년등과(少年登科패가망신(敗家亡身)”이라는 말이 생겨났다빠른 출세좋은 배경타고난 재주 3가지는 누구나 선망하는 것이지만우리 선조들은 오히려 이를 경계했다분수에 넘치지 않고높아도 위태롭지 않으려면자신을 낮추고 숙이는 겸손이 필요하다.

 

● 등용문(登龍門)은 용문(龍門)에 오른다는 뜻으로 성공(成功)하여 세상(世上)에 이름이 드날리는 입신출세(立身出世)의 관문을 일컫는 말이다여기에 나오는 등용문(登龍門)은 황하(黃河상류에 용문(龍門)이라는 계곡이 있는데 그 근처에 흐름이 매우 빠른 폭포가 있어 그 아래로 잉어들이 수없이 모여들었으나 오르지 못하였으며만일 오르기만 하면용이 되어 승천(昇天)한다고 하였다그 후등용문(登龍門)은 과거에 급제(及第)하는 것을 가리키게 되었고오늘날 어려운 관문을 통과하여 성공(成功)하여 세상(世上)에 이름이 드날리는 입신출세(立身出世)를 의미하게 되었다하지만조기에 등용문(登龍門)에 올라 입신출세(立身出世)하는 것은 사람을 경솔하게 만들고경거망동(輕擧妄動)하게 만들기 쉽다그래서우리 선조들은 젊은 나이에 출세(出世)하여 기고만장(氣高萬丈)하는 것을 철저히 경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