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세계 최초의 문명을 한국이 건설했었다.
★ 한국은 어째서 실제의 역사도 없애려 하느냐?
러시아(Rusia)에서 1994년 고대사(古代史) 세미나가 열렸다. 그 자리에서 사학자 U.M 푸틴(Putin)은 이렇게 말했다. "동북아 고대사에서 고조선(古朝鮮)을 제외하면, 아시아 역사는 도저히 이해 할 수가 없다. 그 만큼 단군(檀君) 조선은 아시아 고대사에서 매우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그런데, 한국은 어째서 그처럼 중요한 고조선(古朝鮮)의 고대사(古代史)를 부인하는지 이해 할 수가 없다. 일본이나 중국은 없는 역사도 만들어 내는데, 한국인은 왜 어째서 실제로 있는 역사마저도 없다고 그러는지 모르겠다. 한국은 어째서 실제의 역사도 없애느냐? 도대체 알 수 없는 나라이다." 1994년 08월 제3차 해외 한민족 사적지 답사(러시아, 중국, 몽골) 일정으로 참석한 한국의 ‘한국 북방 학회’ 교수들은 얼굴을 들 수가 없었다. 포스코(POSCO)의 후원으로 답사와 세미나를 다녀오는 일정이었다.
러시아 이크추크 대학에서 세미나를 했었고, U.M 푸틴(Putin)은 한국말로 유창하게 발표를 했었다. 첫날은 설명을 하고, 둘째 날은 질의응답을 했는데, "제 나라 역사도 모르고, 단군(檀君)의 존재도 신화라고 하고, 어떻게 그럴 수가 있냐?"라고 한국어로 열변을 토했다. 러시아(Rusia) 역사 학자가 일제(日帝) 식민지 사관에 의해 철저하게 왜곡된 한국의 역사 교과서를 강하게 질책했던 대목이다. U.M 푸틴(Putin)은 러시아(Rusia)에서 1982년에 이미 '고조선(古朝鮮) 역사' 라는 책을 출간했던 인물이다.
★ 한민족이 세계 최초의 문명을 건설했었다.
우리 민족의 역사가 환국(桓國 BC 7,199-3,897), 배달국(倍達 BC 3,897-2,333), 고조선(古朝鮮 BC 2,333-238). 부여.옥저.동예.낙랑국. 마한.변한.진한. 고구려.백제.신라로 이어져서 무려 9,200년이나 된다. 한민족(韓民族)의 배달국(BC 3,898-2,333)의 문명이 BC 3,500년경의 메소포타미아(수메르) 문명을 낳았고, 수메르 문명은 다시 이집트 문명에게 영향을 주었으며, 또한 고대 희랍 문화에 영향을 주었고, 로마 제국을 거쳐 오늘날 서양 문명이 나온 것이다. 중국의 황하 문명은 B.C 3,000-2,500년경에 황하강 유역에서 발생했는데, 이것은 북만주와 산동 반도 유역의 배달국(倍達 B C3,898-2,333) 문명의 영향을 받아 생겨난 것이다. 최근 120여 년 동안의 고고학 발굴 결과, 중동의 메소포타미아 지역에서는 B.C 3,500년경에 오늘의 서양 문명의 뿌리인 '수메르(Sumer) 문명'이 있었고, 이 문명을 건설한 수메르 민족은 동방에서 왔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수메르(Sumer) 문명의 진면목을 밝혀 주는 무수한 점토판들은 영국 대영 박물관과 프랑스 루불 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이 수메르인들은 검은 머리의 용모에 한국어(한글)와 같은 교착어인 수메르어를 사용했었다.
우리 선조들이 세계 최초의 문명을 주도했었고, 세계 최초의 강대국을 건설했었다. 세계 최초 문자인 녹도문자(鹿圖文字)를 발명했고, 역법창제(曆法創製) 등을 개발해냈다. 세계사에서 가장 빛나는 역사를 우리가 갖고 있다. 그러기에 우리의 과거 역사는 어느 것 하나 세계 열강의 과거와 비교해서도 뒤지지 않는다. 배달국(BC 3,898-2,333) 문명은 메소포타미아 문명(BC 3,500-2,600년). 황하 문명(BC 3,000-2,500년). 인더스 문명(BC 2,500년경). 이집트 문명(BC 3,100년경) 보다 앞선 것이며, 배달국(倍達 BC 3,898-2,333) 문명이 세계 4대 문명을 낳았다는 증거와 유적들이 요즘 많이 발굴되고 있다.
2001년 07월 09일, 중국 신화 통신은 만주에서 5,000여 년 전의 피라미드를 발견했다고 보도했다. 이들 배달국의 피라미드 꼭대기에는 7개의 묘장과 천제를 올리는 제단이 있다. 바로 배달국(BC 3,898-2,333)의 것이다. 이집트의 가장 오래된 피라미드는 BC 2,690년 기자 지역의 키오프스(Cheops)의 피라미드로 알려져 있는데, 이집트의 가장 오래된 피라미드 보다 300년이나 앞서서 만들어진 것들이다. 배달국의 피라미드 문화가 메소포타미아 문명을 거쳐 이집트 문명으로 전파된 것이다. 중국의 고고학자 왕시핑(Wang ShiPing) 교수는 중국 서안 일대의 피라미드를 조사했었는데, 배달국(BC 3,898-2,333) 연대의 것이라고 했다. 중국의 북부와 서안 지역에 가면, 이런 피라미드가 100 개도 넘게 있는데, 그 중에는 이집트에서 가장 높은 쿠푸왕 피라미드(146.5m)보다 두 배 이상 높은 300m 이상의 것도 있다.
★ 한민족이 세계 최초의 문자를 발명했었다.
배달국(倍達 BC 3,897-2,333)의 녹도문자(鹿圖文字)는 신지(神誌) 혁덕(赫德)이 세계 최초로 창제했으며, 동아시아 문명의 기초가 되었다. 배달국(倍達國)의 녹도문자를 개량한 것이 고조선(古朝鮮 BC 2,333-238) 초기의 신전(神篆)이라는 문자이다. 신전(神篆)은 요녕성 여대시 윤가촌에서 출토되는 고조선의 토기에서 많이 발견된다. 그 후, 고조선의 가림토(加臨土) 문자가 개발되었는데, 3세 가륵 단군 때(BC 2181년) 삼랑(三郞) 을보륵(乙普勒)이 창제했다. 자음과 모음을 합하여 38자(字)이고, 지금도 만주에 가면, 가림토(加臨土) 문자로 새겨진 비석이 많이 있다. 그 후, 은(殷 BC 1,600-1,046)의 갑골문자가 개발되었다. 한자(漢字)는 은(殷 BC 1,600-1,046)의 갑골문자가 주(周)나라의 대전(大篆), 진(秦)나라의 소전(小篆)을 거쳐, 한조(漢朝) 때에 한문으로 발전하게 된 것이다. 훈민정음(訓民正音)은 고조선의 가림토(加臨土) 문자가 세종대왕에 의해 재현되고 발전된 것이며, 오늘날의 한글로 발전되었다.
한글과 한자(漢字)는 한국 최고 문화 유산이다. 한자(漢字)의 시조로 불리는 창힐(B.C.28세기-B.C.27세기)은 동이족(東夷族, 조선족) 사람으로 배달국(倍達國, B.C 3,898-2,333) 14대 치우천황(B.C 2,707년 즉위)과 같은 시대의 인물이다. 한민족은 가장 과학적인 한글도 만들었고, 세계에서 가장 발달한 한자(漢字)도 만들었다. 세계에서 유일무이(唯一無二)한 이 유산은 한민족의 큰 자랑이다. 창힐(倉힐)은 배달국(倍達國, B.C 3,898-2,333)의 자부 선생으로부터 녹도문자(鹿圖文字)를 배웠고, 녹도문자(鹿圖文字)를 계승 발전시켜 창힐 문자를 창안했다. 그리고 창힐은 창힐 문자를 중국에 널리 보급시켰다. 이로써 중국에 최초 문자가 생기게 된 것이다. 창힐(倉힐)은 배달국(倍達國, B.C 3,898-2,333)의 치우천황(B.C 2,707년 즉위)의 제후로서 배달국의 녹도문자(鹿圖文字)를 중국에 전한 사람이다. 창힐 문자는 다시 은(殷 B.C 1,600-1,046)나라 시대에 이르러 갑골문자(甲骨文字)로 발전했다. 은(殷)나라 왕실의 기자(箕子)가 고조선(古朝鮮 B.C 2,333-238)으로 망명하면서 갑골문자를 고조선으로 들여왔다. 그래서, 고조선(古朝鮮 B.C 2,333-238) 말엽에 녹도문자, 가림토 문자, 갑골문자를 함께 사용되었다. 시간이 흐를수록 갑골문자(甲骨文字)의 사용이 증가하게 되었고, 반면 녹도문자(鹿圖文字)와 가림토(加臨土) 문자는 점차 소멸되어 갔다. 그리고, 갑골문자(甲骨文字)는 다시 한자(漢字)로 발전하였다.
★ 배달(倍達). 고조선(古朝鮮)은 신화가 아니다.
중국(中國)의 서안 및 만주 일대에는 수많은 피라미드(Pyramid)가 존재한다. 이 사실을 중국 정부는 지금까지 숨기고 있다. 오히려 자랑스러워해야 할 사실을 숨기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유는 그 피라미드들은 한민족(韓民族)의 것이기 때문이다. 피라미드의 연대를 측정해 보았더니 배달국(BC 3,898-2,333) 연대의 것이라고 한다.
배달국(倍達 BC 3,897-2,333)의 마지막 왕인 환웅(桓雄)이 호족(虎.호랑이)과 웅족(熊.곰)을 흡수 통합하여 새로운 나라를 건설했다. 그것이 바로 고조선(古朝鮮 BC 2,333-238)이다. 고조선의 '단군(檀君) 신화' 중에는 호랑이와 곰이 나오는데, 실제는 호족(虎.호랑이)과 웅족(熊.곰)을 배달(倍達) 동이족(東夷族)이 교화해서 건국한 것을 신화 형태로 기록한 것이다. 고대 사회의 사람들은 '신화의 형태'로 이야기해야 알아듣는 그런 시대였다.
고조선(古朝鮮)의 단군(檀君)은 법률 8조를 만들어 나라를 통치하였다. 단군(檀君)은 고대 지도자의 명칭으로 왕과 같은 뜻이다. 요즘 말로 하면, 대통령의 명칭이다. 그러므로, 단군(檀君)의 역사는 그리스 로마 신화 같은 것이 아니다. 우리 민족은 사람을 신(神)으로 인정하는 세계에 유일한 민족이다. 그래서, 인내천(人乃天) 사상이 보편화되는 것이다. 우리 주위에는 언제부터인가 단군이란 말을 입에 올리기를 꺼리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마치 단군은 미신과 같은 용어라도 되는 것처럼 기피하려는 경향이 늘어나고 있다. 이런 경향은 단군(檀君)을 우상 숭배의 원흉으로 지목하면서부터 더욱 심화되었다. 단군(檀君) 신화는 단군이라는 왕이 어떻게 나라를 세웠고, 그에 대한 이야기가 입으로 전해 오다가 고려 시대에 중 일연 스님이 기록한 것이다. 그 건국 신화가 불교적 색채가 가미되어 곰과 호랑이라는 토템과 혼재되어 있는 것이다.
47대에 걸쳐 47명의 단군(檀君)이 통치했던 고조선(古朝鮮)의 역사는 중국의 산동성. 요하. 만주. 연해주 일대의 유적을 발굴해야만 입증할 수가 있다. 중국은 2002년부터 중국의 동북(東北) 변경 지역의 국경 변방에서 전개된 모든 고대(古代) 역사를 중국 역사로 만들기 위한 공정(工程)을 감행했다. 동북공정(東北工程)의 일환으로 고조선(古朝鮮 BC 2,333-238), 북부여(北夫餘 (BC 239-58), 고구려(高句麗 BC 37-668년) 역사를 중국의 역사로 편입시키는 일을 진행하다가 깜짝 놀라고 말았다. 동북 공정에 따라 수많은 우리 유물 유적이 발굴되었는데, 그 모든 것들이 중국의 한족(漢族) 문화와는 전혀 다른 바로 한민족(韓民族)의 전형적인 유물 유적들이었기 때문이다. 최근에 진행된 고대사(古代史) 발굴 작업에 의해 배달국(倍達 BC 3,897-2,333), 고조선(古朝鮮 BC 2,333-238)의 진면목이 하나 둘씩 밝혀지고 있다. 그 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홍산(紅山) 문명이다. 요하 일대 적봉 지역에서 지금으로부터 9,200년 전의 유물이 발굴되고 있으며, 중국의 역사 왜곡의 현실에 대해 큰 경종을 울려주고 있다. 그 지역은 중국의 한족(漢族)과는 무관한 지역이기 때문이다. 홍산(紅山) 문화는 BC 3,500년경까지 존속한 것으로 추정되는 청동기 시대에 이르러 출현한 분업적 사회 구조였으며, 한반도 일대에서 발견되는 적석묘 형태의 분묘라든지 곰의 형상을 띤 가면과 옥 장식 유물 등이 다수 발견되고 있다. 홍산(紅山) 문명은 세계 4대 문명의 하나인 황하 문명(BC 3,000-2,500년) 보다 앞선 배달국(倍達 BC 3,897-2,333)의 것이며, 한민족의 것이다.
★ 일제(日帝)는 고대사(古代史)를 완전 왜곡했다.
일제(日帝) 시대에 우리의 민족 정신을 말살시키려고 가장 먼저 착수한 작업이 한국의 상고사(上古史). 고대사(古代史)를 왜곡하는 작업이었다. 일제(日帝)는 1925년 사이토 총독의 칙령에 따라 전국의 50여종 20만권의 사서(史書)를 압수하거나 불태웠고, 중요 사료는 일본이 가져가 황실 도서관 및 동경 대학 지하 비밀 서고에 보관하였다. 그리고, 조선인들에게는 고조선(古朝鮮) 단군(檀君)의 곰. 호랑이 신화(神話) 이야기를 충실히 대변해 주는 삼국유사(三國遺事). 삼국사기(三國史記) 단 2권만 남겨놓았고, 고조선(古朝鮮). 배달(倍達, BC3,897-2,333) 이전의 역사책은 모두 불태워버렸다. 일제(日帝)는 1925년 설치된 ‘조선사(朝鮮史) 편수회(編修會)’에 의해 왜곡 조작된 역사를 조선인들에게 가르쳤다. 1945년 해방 후, 친일파(親日派)가 완전히 청산되지 못했고, 1948년 일제(日帝) 식민지 사관(史觀)이 그대로 반영된 '한국사(韓國史) 대관(大觀)'을 편찬되었다. 그것은 이병도(李丙燾)가 펴낸 역사책인데, 그는 일본 와세다 대학을 졸업하고, 조선사(朝鮮史) 편수회(編修會)에서 일본의 꼭두각시 노릇을 하며, 한국사를 날조 왜곡했던 인물이다. 그리고, 그는 나중에 서울대 교수가 되어 한국 역사학계의 강단에서 일제 식민지 사관을 주도면밀하게 주도했다. 그가 펴낸 한국사(韓國史) 대관(大觀)은 1983년까지 무려 44판 이상을 중판(重版)되었고, 그것이 우리의 역사 교과서의 근간이 되어 교육되어졌다.
그래서, 결국 아직도 초등. 중등. 고등학교에서 학생들이 일제(日帝) 식민지 사관(史觀)을 그대로 교육받게 된 것이다. 그로인해 외국의 세계인들은 다 알고 모두 인정하는 고조선(古朝鮮)의 단군(檀君)의 역사를 정작 한국인만 인정하지 않는 서글픈 현실을 만들고 말았다. 자신의 조상을 스스로 인정하지 않는 패륜아가 되어 버렸다. 1945년 해방과 동시에 빼앗긴 나라는 되찾아왔지만, 빼앗긴 역사의 민족혼은 되찾지 못한 현실이 되어버렸다. 역사는 그 민족의 삶의 족적이며, 그 민족의 정수이다. 이제, 강단의 사학계와 정치 지도자들은 일제에 의해 왜곡된 우리 역사를 바로잡는데, 부단히 정진 노력해야 할 것이다.
★ 고조되고 있는 환단고기(桓檀古記) 독서 열풍
KBS1 TV는 1999년 10월 02일 ‘역사 스페셜’에서 환국(桓國 BC 7,199-3,897), 배달국(倍達 BC 3,897-2,333), 고조선(古朝鮮 BC 2,333-238), 고구려. 백제. 신라, 고려(高麗)의 우리 역사를 기록한 역사책 ‘환단고기’(桓檀古記)를 소개했다. 환단고기(桓檀古記)에서는 우리 역사를 한민족(韓民族)에 의한 대통일 국가로 기록하고 있다. 우리 민족이 활동했던 무대를 중국. 러시아. 몽고. 서아시아에 이르는 광활한 지역이라고 서술하고 있다.
한민족(韓民族)은 문자를 세계 최초로 발명했고, 중국과 아시아 각국에 문명을 전파한 하늘의 민족이라는 것이다. 눈부시게 찬란한 우리 민족의 상고사(上古史)를 기록하고 있다. 이러한 내용 때문에 환단고기는 일부 재야 학자들에게는 경전으로 평가받고 있다. 최근, 잃어버린 상고사를 회복하자는 운동과 맞물려 일부 지식인들에 의해 추진되고 있는 환단고기(桓檀古記) 독서 열풍이 점점 고조되고 있다. 환단고기(桓檀古記)에 대한 관심은 서점가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환단고기(桓檀古記)를 번역한 책은 이미 수십종 이상 출판되었고, 지금까지 수백만권 이상 팔려 스테디셀러로 자리잡고 있다.
★ 개천절은 배달(倍達)국을 개국(開國)한 날
개천절(開天節)은 실존 인물이셨던 배달 환웅(桓雄)께서 신시(神市)에 배달국(倍達國, B.C3,897-2,333)을 개국(開國)하신 날이다. 다시 말해서 우리 민족이 배달 민족(倍達民族)이 된 날이다. ‘배달(倍達) 민족’이라는 말은 배달국(倍達國)을 개국(開國)하고 나서 우리가 배달국의 자손이 된 것을 가리키는 말이다. 그런데, 중국 사람들이 우리나라 역사를 말살 왜곡해 버렸다. 우리나라 배달국(倍達國, B.C3,897-2,333) 이전의 역사책들이 모조리 불태워져 버렸다. 그래서, 고조선(古朝鮮) 역사에 배달국(倍達國)의 역사를 섞여졌다. 개천절(開天節)은 배달 환웅(桓雄)께서 배달국(倍達國, B.C3,897-2,333)을 개국(開國)하신 날인데, 역사가 왜곡되어 결국 고조선(古朝鮮, B.C2,333-238)을 단군(檀君)께서 개국하신 10월(上月) 03일로 바꾸어 놓았다. 중국과 일본에 의한 상고(上古) 역사의 왜곡으로 민족사의 뿌리가 단절되어 버린 것이다. 중국에 의한 사대주의(事大主義) 때문이다.
배달국(倍達國, B.C3,897-2,333)의 건국 이념이 홍익인간(弘益人間), 재세이화(在世理化), 광명이세(光明理世)이다. 이들 건국 이념은 고조선(古朝鮮, B.C2,333-238)의 건국 이념이 아니라, 배달국(倍達國)의 건국 이념인 것이다. 고대(古代)의 어떤 민족도 이같은 인류 보편 정신을 나라의 건국이념으로 내걸은 적이 없었다. 우리의 개천절(開天節)은 성(聖)스러운 날이다. 모든 국경일 가운데 으뜸이 되어야 할 날이다. 우리 겨레의 뿌리를 마음 속에 되새기는 날이기 때문이다.
■ 우리 배달(倍達) 민족의 역사는 9,200년이다.
★ 우리 배달 민족의 환국(桓國, BC 7,199-3,897), 배달국(倍達國, BC 3,897-2,333). 고조선(古朝鮮, BC 2,333-238) 문화는 중국의 요(堯. 재위BC 2,357-2,258), 순(舜. 재위BC 2,255-2,208), 하(夏, BC 2,205-1,766), 은(殷, BC 1,600-1,046), 주(周, BC 1,046-771) 문화의 뿌리이다. 우리 배달(倍達) 민족 문화가 중국 문화의 뿌리이다. 우리 민족의 역사가 환국(桓國, BC 7,199-3,897), 배달국(倍達, BC 3,897-2,333), 고조선(古朝鮮, BC 2,333-238). 부여.옥저.동예.낙랑국. 마한.변한.진한. 고구려.백제.신라로 이어져서 무려 9,200년이나 된다. 환국(桓國, BC 7,199-3,897)의 장자국(長子國)이 배달국(倍達國)이었고, 배달국(倍達國, BC 3,897-2,333)의 장자국(長子國)이 고조선(古朝鮮, BC 2,333-238)이었음을 비추어 볼 때, 우리 배달(倍達)민족과 한국이 세계 4대 문명의 정통성을 이어 받은 민족이며 나라임을 알 수 있다.
★ '신시(神市) 개천경(開天經)' 기록에 의하면, 환국(桓國)의 말엽에 환웅(桓雄)이 있었다. 그는 홍익인간(弘益人間), 재세이화(在世理化), 광명이세(光明理世)의 뜻을 간직하고 있었다. 환웅(桓雄)은 동방 땅 백두산(白頭山)에 문명 개척단 3,000명과 함께 배달국(倍達, BC 3,897-2,333)을 건설하였다. 배달국(倍達, BC 3,897-2,333년)은 신시 배달[神市 백두산, 1-13대 환웅]과 청구 배달[靑丘 산동성.태산(泰山), 14대-18대 환웅] 시대로 나누어진다. 배달국(倍達)의 환웅(桓雄)이 북만주와 대진국(발해) 연안의 땅에 뛰어난 석공예와 질공예를 남겼는데, 이것을 배달(倍達, BC 3,897-2,333) 환웅(桓雄)의 '홍산(紅山) 문화'라고 한다.
★ 배달국(倍達國, BC 3,897-2,333)의 홍산(紅山) 문화는 1920년대 프랑스 에밀 리쌍(Emile Licent)이 요서 지방 츠펑 (적봉赤峰) 지역에서 처음 발굴 시작하여 1922년부터 1924년 사이에 신석기 유적지 22곳을 발견하였고, 요서 지방 홍산(紅山) 문화의 소하서 지역 유적에서 발견된 가장 오래된 신석기 문화는 최고 8,500년 전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이들 유적은 '인류 최고(最古) 신석기 문화'로 규정되고 있다. 1930년대 중국 철학자 양계초의 아들 양사영이 홍산(紅山) 유적지를 조사한 이래, 많은 학자들이 연구에 뛰어 들었다. 그 후, 중국 정부에서 대대적으로 발굴하였는데, 1980년대에 홍산(紅山) 문화의 대표적인 유적지인 우하량 유적이 발굴되어 전세계가 깜짝 놀랐다. 이 곳에서 나오는 유물들은 중국의 황하 문명(BC 3,000-2,500년) 보다 2-3천년 앞 서 있었고, 유적과 유물들을 자세히 살펴보면, 그 지역의 문명은 이미 국가 단계의 구비 조건을 모두 갖춘 제5의 문명이었기 때문이다.
★ 배달국(倍達國, BC 3,897-2,333)의 홍산(紅山) 문화의 유적과 유물들은 세계 문명의 발상지라고 꼽히는 이집트. 메소포타미아. 인더스. 황하 문명 보다 훨씬 앞 선 문명 형태였기 때문이다. 예를들면, 홍산 문화의 소하서 지역 유적들은 무려 8,500년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결론적으로 배달국(倍達國, BC 3,897-2,333) 홍산(紅山) 유적지 발굴은 세계 문명사를 다시 쓰게 하는 엄청난 사건이다. 최근에도 중국은 동북(東北) 공정의 일환으로 이 곳을 계속 발굴하고 있다. 지중해 문명 (이집트 문명, 에게 문명, 그리스 로마 문명)이 서양 문명에 자양분을 공급했듯이, 동이족(東夷族)이 발해 연안에서 창조한 배달국(倍達國, BC 3,897-2,333) 홍산(紅山) 문화는 중국은 물론 만주. 한반도. 일본의 고대 문명을 일궈주었다.
★ 현재, 중국은 배달국(倍達國, BC 3,897-2,333년) 홍산(紅山) 문화를 ‘요하(遼河) 문명’이라고 하여 자기네 역사 유적이라고 우기고 있지만, 그 유적지의 위치와 문명 양식 등을 보면, 동이족(東夷族) 배달(倍達)의 문화 양식임에는 어쩔 수가 없다. 중국이 만주의 홍산(紅山) 유적지 문화를 자기네 것이라고 우기는 것은 마치 송곳을 주머니 속에 넣고 감추는 것과 같다. 결국 밖으로 드러나게 마련이다. 배달국(倍達國, BC 3,897-2,333년)은 신시 배달(神市 백두산, 1-13대 환웅)과 청구 배달(靑丘 산동성.태산(泰山), 14대-18대 환웅)로 나누어진다. 배달국(倍達國)의 환웅(桓雄)이 북만주와 대진국(발해) 연안의 땅에 뛰어난 석공예와 질공예를 남겼는데, 이것을 배달(倍達) 환웅(桓雄)의 '홍산(紅山) 문화'라고 하는 것이다.
★ 환국(桓國, BC 7,199-3,897)의 신교(神敎) 문화는 고대 문화의 원형이고, 그 후, 배달국(倍達國)으로 이어졌으며, 환국과 배달국의 문화는 세계 4대 문명의 뿌리가 되었다. 환국(桓國)의 12개 나라 가운데, 수밀이국과 우루국은 그동안 서양에서 최초의 문명족으로 알려져 있던 나라 이름이고, BC 3,500년 전의 고대 메소포타미아(수메르) 문명을 일으킨 나라이다. 최근, 120여 년 동안의 고고학 발굴 결과, 중동의 메소포타미아 지역에서는 BC 3,500년 경에 오늘의 서양 문명의 뿌리인 수메르(Sumer) 문명이 있었고, 이 문명을 건설한 수메르 민족은 동방에서 왔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수메르 문명은 다시 이집트 문명에게 영향을 주었고, 또한 고대 희랍 문화에 영향을 미쳤으며, 로마 제국을 거쳐 오늘날 서양 문명이 나온 것이다. 인더스 문명 또한 북방 문명에서 기원했다고 하며, 배달국(倍達國)의 문화가 유입되어 인더스강 유역에 자리를 잡은 것이다.
★ 근래에 만주에서 동북 공정의 일환으로 ‘요하(遼河) 문명’ 유적을 발굴하고 있는데, 요하(遼河) 문명은 배달(倍達) 문명의 일부이다. '황하 문명' 보다 앞선 유적들이 무수히 쏟아져 나왔다. 중국 당국이 발칵 뒤집혔다. 중국의 황하 문명(BC 3,000-2,500년)은 황하강 유역에서 발생했는데, 이것은 북만주와 산동 반도 유역의 배달국(倍達國, BC 3,898-2,333) 문명의 영향을 받아 생겨난 것이다. 배달(倍達 BC 3,898-2,333)의 홍산 문화는 메소포타미아 문명(BC 3,500-2,600년). 황하 문명(BC 3,000-2,500년). 인더스 문명(BC 2,500년경). 이집트 문명(BC 3,100년경) 보다 앞선 것이며, 세계 4대 문명에게 영향을 준 것이라는 증거와 유적들이 최근 속속 발굴되고 있다. 한민족의 배달(倍達) 문명이 중국 민족의 황하 문명 보다 빨랐고, 중국의 황하 문명은 한민족 배달(倍達) 문명을 받아서 생긴 것이라는 역사적 사실들이 속속 드러나고 있다.
★ 우리나라 배달(倍達) 민족이 천제(天祭) 및 제사(祭祀) 풍습을 중국 한족(漢族)에게 전해줬다. 배달국(倍達國) 말엽 및 고조선(古朝鮮) 초기에 중국에서 나라를 창업한 사람들 중에서, 우(禹) 임금(하夏나라의 시조). 탕(湯) 임금(은殷나라의 시조). 문왕(주周나라의 시조). 무왕(주周왕조 개창). 강태공(병법의 시조, 제齊나라)도 역시 우리 동이족(東夷族)이었다. 또한, 중국의 건국(建國) 시조(始祖)인 삼황오제(三皇五帝)는 전부 우리 동이족(東夷族)이었다. 삼황(三皇)은 태호 복희(太昊伏羲). 염제 신농(炎帝神農). 황제 헌원(黃帝軒轅)을 말하고, 오제(五帝)는 소호 금천. 전욱 고양. 제곡 고신. 요(堯) 임금. 순(舜) 임금을 말한다. 그들 모두 배달(倍達)민족이었다. 중국의 건국 시조의 8명 중에 우리 민족이 8명으로 전부를 차지한다.
★ 중국은 예로부터 우리나라를 청구(靑丘)라고 했는데, 배달국(倍達國, BC 3,898-2,333)의 청구 배달(靑丘, 14대-18대 환웅)을 일컫는 말이며, 청구 배달의 문화가 '홍산(紅山) 문화'이다. 그 다음 나라에 이르러, 고조선(古朝鮮, BC 2,333-238)의 '단군(檀君) 신화' 중에는 호랑이와 곰이 나오는데, 실제는 호족(虎.호랑이)과 웅족(熊.곰)을 배달(倍達) 동이족(東夷族)이 교화해서 건국한 것을 신화 형태로 기록한 것이다.
'뺏긴 역사찾자' 카테고리의 다른 글
■ 아리랑(我理朗) 노래, 깨어나라 그대여! (0) | 2020.03.16 |
---|---|
■ 고조선(古朝鮮) 문명은 인류 5대 문명이다! (0) | 2019.05.16 |
■ 개천절은 배달(倍達)국을 개국한 날이다. (0) | 2015.10.13 |
■ 제사(祭祀) 전통 풍습의 역사 및 유래 (0) | 2014.11.11 |
■ 애국가(愛國歌)의 최초 역사와 변천 (0) | 2014.02.1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