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의 굴레

감각의 진짜 진실과 색즉시공(色卽是空)

마도러스 2014. 2. 21. 14:03


감각의 진짜 진실과 색즉시공(色卽是空)


스크랩: http://blog.daum.net/dosu92

 

■ 모든 원자의 99.9% 이상은 텅 빈 공간이다.

 

물리학자 스티븐 호킹(Stephen Hawking) 박사의 저서 ‘위대한 설계(the grand design)'에 재미있는 설명이 있다. 끈 이론에 의하면 우리가 살고 있는 시공간은 거시적인 4차원 및 미시적인 6차원을 합쳐 10차원이라고 한다. m 이론은 11차원을 이야기 한다. 그런데 4차원을 넘는 차원들은 아주 작은 공간 속에 돌돌 감겨있어 우리가 감지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사람 몸의 약 70% 가량은 물로 되어 있다. 물은 수소 원자와 산소 원자로 구성되어 있다. 수소는 원자 핵을 중심으로 1개의 전자가, 산소는 8개의 전자가 돌고 있다. 지금까지 인류가 볼 수 있었던 가장 작은 물질은 1988년 최첨단 전자 현미경을 통해 본 원자(原子)였다. 그리고 원자 속에는 전자. 양자. 중성자 같은 소립자(素粒子)가 있다. 원자핵이 주먹 크기만하다고 할 때, 원자핵으로부터 약 20km나 떨어진 곳에 먼지 보다 작은 크기의 전자가 돌고 있다. 원자(原子) 하나를 지구만하다고 가정했을 때, 전자 크기는 테니스 공만하다.

 

또한 전자(電子) 크기를 지구만하다고 가정하면, 끈(string)의 크기는 좁쌀만하다. 이렇게 한없이 작은 끈이 우주를 구성하는 최소 단위의 물질이다. 우주 전체는 미시적으로 끊임없이 진동하는 작은 끈들에 의해 유지된다. 이렇게 작은 끈(string)의 세계에서는 시간 개념이 다르다. 즉 시간이 흐르지 않을 뿐 아니라 과거. 미래. 현재가 공존한다. 이러한 끈은 현재도 나와 함께 같이 있으나 엷은 막으로 가려져있어 느끼질 못 한다. 이해하기 힘들겠지만 끈의 세계를 영혼(靈魂)의 세계에 대입해보면 꼭 들어맞는다. 왜냐하면 나 속에 영혼(靈魂)이 있지만 느낄 수 없고, 영혼(靈魂)의 세계에서는 과거. 현재. 미래의 시간이 흐르지 않기 때문이다. 


양자 물리학의 불확실성 원리(uncertainty principle)는 막연하게 불확실하다는 얘기가 아니다. 원자 속에는 강력(强力)이라는 우주에서 가장 힘이 센 에너지가 숨어 있는데, 원자 속에 있는 소립자(素粒子)들의 운동은 종잡을 수 없다. 바로 그것을 불확실성 원리(uncertainty principle)라고 한다. 소립자들의 운동을 아직 예측할 수 없다는 것인데, 그것을 가지고 세상 모든 것이 불확실하다고 확대 해석하면 안 된다. 지금까지 밝혀진 원자속의 소립자(素粒子) 종류는 약 300개 정도 되는데, 아직 그 운동의 근원을 밝혀내지 못했을 뿐이다. 다시 말해 원자 밖의 세상은 중력에 의해 모든 운동이 진행되지만, 원자 내의 운동 중심점은 무엇인지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끈(String) 이론은 우주를 이루는 4가지 힘(중력. 전자기력. 강력. 약력)을 완벽하게 잘 연결시켜 주고 있다.

 

■ 만물(萬物)은 실제로는 색즉시공(色卽是空)이다.

 

모든 원자의 99.9% 이상은 텅 빈 공간이며, 1,000분의 일(1/1,000) 이하 정도만 입자(粒子) 물질로 채워져 있다. 양자 물리학은 모든 원자 속은 텅 빈 공간이며, 이 텅빈 공간 가운데 진동하는 에너지인 소립자(素粒子)가 빛의 속도로 활동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몸을 구성하고 있는 모든 원자들은 허공과 같아서 우리 몸은 사실 빈 것들의 집합체라고 할 수 있다. 양자 물리학은 불교(佛敎)에서 말하는 색즉시공(色卽是空)을 증명하고 있다. 만물(萬物)은 실제로는 색즉시공(色卽是空)으로 존재하는 것이다.

 

한편, 높고 푸른 하늘(蒼空)은 텅빈 공간처럼 보인다. 하지만, 인간의 눈에 보이지 않는 수많은 전파들이 오고가고 있다. 텅 비어 있지만, 실체가 가득한 공간이다. 불교(佛敎)에서 말하는 공즉시색(空卽是色)의 공간이다. 하늘(蒼空)은 텅 비어 있지만, 기체(산소. 질소. 이산화탄소)를 포함해서 보이지 않는 미생물(바이러스. 곰팡이. 박테리아) 등이 가득한 공간이다.

 

그런데, 왜 인간의 육체가 텅 빈 허공으로 지각되지 않고, 물질로 꽉 차 보일까요? 우리 눈은 빛의 파장을 통해서 사물을 지각한다. 눈이 지각하고 있는 빛의 파장의 진동폭이 원자핵과 전자 사이의 거리 보다 커서 눈의 빛이 몸의 원자들 속을 뚫고 지나가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테니스공의 크기가 테니스 네트의 구멍 보다 크기 때문에 네트에 걸려 통과하지 못하는 이치와 같다.

 

■ 인간이 X선과 같은 능력으로 보게 되면, 몇몇 뼈대만 보인다.


만일, 우리 눈이 X선과 같은 능력으로 지각한다면, X선은 물렁물렁한 조직은 통과하고, 딱딱한 뼈는 통과하지 못하므로 모든 사람들은 머리 해골과 뼈만 보일 것이다. 인간이 X선과 같은 능력으로 세상의 물체를 보게 되면, 사람 얼굴. 옷. 책상. 의자. 침대 등등은 모두 투과되어 드러나 보이지 않고, 사람 뼈, 콘크리트 철근 골조 등등의 몇몇 뼈대만 드러나 보일 것이다. 만일, 우리 눈이 더 짧은 파장인 감마선(γ-선)과 같은 능력으로 지각하게 된다면, 사람 몸을 모두 투과하여 인체는 흔적조차 보이지 않을 것이다. 마치 바람이 그물에 걸리지 않고 다 통과하듯이 말이다. 

 

하지만, 우리 눈의 지각 능력은 상대적으로 가시광선(빨주노초파남보)에 한정되어 보게 됨으로써 물체의 색체(빨주노초파남보)를 볼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 눈으로 감지할 수 없는 가시 광선 주파수 이외의 영역에는 우리 눈으로 볼 수 있는 가시 광선 영역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넓게 펄쳐져 있다. 그래서, 우리 눈 앞에 엄연히 존재하는 많은 대상들을 우리는 지금도 못보고 있다.

 

■ 인간은 감지(感知) 안 되는 것들은 없다고 생각한다.

 

빛 뿐만이 아니라 소리, 냄새, 맛, 촉감들도 인간의 감각 기관은 극히 한정된 범위의 것만 지각할 수가 있고, 그 범위 너머의 무한히 넓은 영역의 것들은 다 놓치고 있는 것이다. 인간은 인체의 감각 기관에서 보내오는 반응의 정보가 한정되어 있기 때문에 우리 의식은 감각 기관의 지각에만 반응하는 꼴이다. 내 감각 기관으로 감지가 안 되는 그 넓은 영역의 것들은 없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오로지 인간이 감지되고 있는 좁은 범위의 정보만 사실이라고 고집한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그렇게 되면 마치 대롱을 통해서 하늘을 내다보고 대롱 속에 비치는 하늘만 하늘이고 대롱 밖의 것은 하늘이 아니라고 주장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일 것이다.

 

인체의 감각 기관은 세상의 진실을 1,000분의 일(1/1,000) 정보만 감지하고 있는 꼴이다. 감각 기관에만 의존하게 되면, 환상을 실상으로 가짜를 진짜로 잘못 보게 되는 착오에 빠지게 된다. 태양은 동쪽에서 떠서 서쪽으로 진다. 우리 감각 기관은 날마다 태양이 동쪽에서 떠서 서쪽으로 진다는 것을 의심할 바 없는 사실로 받아들이고 있다. 그러나, 이것은 지구의 자전 현상에 대한 우리 감각 기관의 착각에 불과하다.

 

■ 인체의 감각 기관만을 오로지 전적으로 믿어서는 안 된다.


우리가 살고있는 이 지구는 초속 약 470m의 속력(시속 1,690km)으로 자전하고 있고, 초속 30km 되는 빠른 속력(시속 108,000km)으로 태양 주위를 돌고 있다. 겨우 1초에 몇 십 m의 속도로 달리는 놀이 기구를 타도 어지러운데 우리는 지구에서 아무 불편 없이 생활하고 있다.

 

인체의 감각 기관만을 오로지 전적으로 믿어서는 안 된다. 이들은 모두 착각을 가져다 주는 틀린 잣대일 수 있다. 아무리 뛰어난 과학 기술과 도구가 개발되어 놀라운 정보를 알아낸다 하더라도 그것 또한 우리 감각 기관과 한정된 의식의 필터를 통해서 다시 번역하여 인식해야 하므로 결국은 한정된 정보만을 받아들일 수 밖에 없고 한정된 이해와 체험을 할 수 밖에 없다.

 

우리가 어떤 것을 사실로 받아들이는 것은 우리 몸의 감각 기관이 사물을 보고 듣고 맛보고 냄새 맡고 만질 수 있는데 근거하고 있다. 예를 들면, 우리가 우리 몸을 엄연한 물체 덩어리로 받아들이는 것은 그것을 보고 만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몸이라는 것이 우리가 지각하는 것이 전부일까요? 감각 기관에 의한 지각은 나와 대상을 이분화(二分化)시킴으로서 필연적으로 감각 기관의 한계 만큼만 경험하게 해 준다.


■ 신(神)은 광명(光明)의 에너지로 작용하고 존재한다.


우주 생명과 우주 만물의 본질을 사실대로 알고자 한다면 우리의 오관(五官)과 한정된 의식의 울타리 밖으로 나아가서 탐색해야만 한다. 바로 직관(直觀)의 통찰력이 그것을 가능하게 해 준다. 그런데, 직관(直觀)의 통찰력을 개발하고 새로운 차원의 감각을 개발하는 방법 중에 태을주(太乙呪) 수행이 있다고 한다. 삼라만상(森羅萬象)에는 온갖 법음(法音, Dharma sound)들로 가득 차 있다. 즉 법상(法象)에서 발산되는 소리 그 자체가 곧 생명의 소리요, 존재의 소리이다. 마치 제우스(Zeus)가 판도라(Pandora) 상자를 만들어 그 속에 모든 신(神)들의 권능을 집어넣듯 인간은 언어와 문자 속에 모든 대자연의 에너지와 신들의 에너지를 응축시켜 놓았다고 한다.


(神)은  광명(光明)의 에너지로 작용하고 존재한다. 운동과 변화가 있는 곳에는 항상 (神)의 작용에 의해 이뤄지고, 존재와 방위가 있는 곳에는 반드시 (神)이 존재한다. 운동(運動)과 변화(變化)의 상징인 양(陽)은 숫자는 1.3.5.7.9이다. 1 (太極神), 3 (三神), 5 (皇極神), 7 (七星神), 9 (九天 神明)에 의해 대변된다. 반면, 존재(存在)와 방위(方位)의 상징인 음(陰)은 숫자는 2.4.6.8.10이다. 2(음양), 4(4방위), 6(육조). 8(팔도). 10(십진법)에 의해 대변된다. 

 

그렇다면, (神)은 어떤 존재인가? 신(神)은 원자(原子) 속의 전자(電子)가 움직이게 하는 원동력이고, 인간의 심장(心臟)이 뛰게 하는 원동력이며, 우주의 별들이 공전(空轉). 자전(自轉)하게 하는 원동력이다. 만약, 인간의 심장(心臟)이 멈춘다면 그 순간 그 사람의 생명은 끝장나고 신(神)은 떠난다. 만물(萬物)과 모든 생명(生命) 속에는 그에 맞는 신(神)이 존재한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