뺏긴 역사찾자

■ 고조선(古朝鮮)은 동북 아시아의 광활한 국가

마도러스 2013. 2. 14. 11:40

■ 고조선(古朝鮮)은 동북 아시아의 광활한 국가

 

사기(史記), 관자(管子), 산해경(山海經) 등의 중국 고대 사서에서는 고조선(古朝鮮, BC 2,333-238)의 머리와 몸체는 완전히 거세(去勢)해 버리고, 꼬리 되는 말기의 역사 즉 “위만(衛滿) 조선(朝鮮, BC 194-108) 부터가 한국역사의 시작이다.” 라고 말한다. 부분적이고 단편적으로 왜곡 날조하여 기록하고 있을 뿐이다.

 

그러나, 최근의 고고학 발굴과 연구 결과에 의하면, 고조선의 영역인 만주 지역의 청동기 문화 개시 연대가 서기전 2400년경으로 밝혀져, 고조선(古朝鮮)은 초기부터 이미 국가 사회에 진입해 있었음이 실증적으로 입증되었고, 이제는 상식화되어 버린 역사의 진실이다. 고조선(古朝鮮)은 초기 때부터 이미 청동기 시대에 진입해 있었고, 법률  제도(팔조법)가 있었으며, 문자(원시 한글인 가림토 문자, 고대 신지문, 도서圖畵 문자, 문자 토기)를 사용했다.

 

또한, 화폐 제도(명화전, 일화전, 팔조법 중 50만 전 배상 내용), 조세 제도(1/20세), 토지 제도(均田制), 역(易) 철학과 음양 오행 상수(象數) 철학, 책력법(曆法) 등 고도의 선진 문화를 창조하고 발전시킨 고대 문명 국가였다.

 

고조선은 신교(神敎) 삼신(三神)사상에 입각하여 전국의 영토를 진한(辰韓), 마한(馬韓), 번한(弁韓)의 삼한(三韓)으로 나누어 분할 통치하였고, 모두 47대의 단군이 2,096년 동안(BC 2,333-238) 다스린 고대의 한민족사에서 최대로 번성한 국가였다.


동한(東漢)의 채옹(蔡邕)이 지은 독단(獨斷)의 상권을 보면, “천자(天子)는 동이족(東夷族)을 부르던 호칭이다. 하늘을 아버지로 땅을 어머니로 하는 까닭에 천자(天子)라고 부른다.“라고 적혀있다. 중국사전사화 (中國史前史話) 246쪽에 보면, “중국의 책력법(冊曆法)은 동이족(東夷族)이 창시한 것이다.” 라고 하여, 동이(東夷) 조선족이 책력법을 창시했음을 말하고 있다.

 

단군세기(檀君世紀), 규원사화(揆園史話) 등을 보면, 고조선 시대는 동북 아시아를 광활하게 다스렸고, 광역 통치에 의해 진한(辰韓), 마한(馬韓), 번한(弁韓)을 다스린 제국이었으며, 삼신(三神)사상의 신교(神敎) 문화를 바탕으로 위풍당당하게 통치하던 한민족의 전성기였다. 이 책의 기록에 의하면, 중국의 요(堯,당唐나라), 순(舜,우虞나라), 하(夏)나라, 은(殷)나라, 주(周)나라 등에서 사절을 보내고, 정기적으로 조공(朝貢)을 바쳐온 사실이 자세히 기록되어 있다.


서경(書經)의 번한세가(番韓世家) 상권을 보면, 순(舜)임금이 동쪽으로 순행하여 산천(山川)에 제사(祭祀)지내고, 동방의 임금님을 뵈었다.” 라는 구절이 나온다. 서전(書傳)의 순전(舜典)을 보면, 요(堯)임금으로부터 섭정을 물려받은 그 해(B.C 2,285년) 2월에 순(舜)임금은 동방(東方)으로 순행하며, 신교(神敎) 문화의 풍속에 따라 차례로 천신(天神)과 산천(山川)에 제사(祭祀)를 지내고, 동방의 군장(君長) 즉 단군(檀君) 성조를 찾아 뵈었다.” 라고 한다.

 

사마천의 사기(史記)의 오제본기(五帝本紀)를 보면, “순(舜)임금이 고조선(古朝鮮) 중앙 정부의 승인을 받아, 요(堯)임금으로부터 통치권의 법통을 계승한 첫 해(B.C 2,285년) 02월에 동방의 군장(君長)께 인사드리러 갔다.” 라고 기록하고 있다.

 

 

■ 우리 배달(倍達) 민족의 역사는 9,200년이다.

    

 우리 배달 민족의 환국(桓國, BC 7,199-3,897), 배달국(倍達國, BC 3,897-2,333). 고조선(古朝鮮, BC 2,333-238) 문화는 중국의 (. 재위BC 2,357-2,258), (. 재위BC 2,255-2,208), (, BC 2,205-1,766), (, BC 1,600-1,046), (, BC 1,046-771) 문화의 뿌리이다. 우리 배달(倍達민족 문화가 중국 문화의 뿌리이다우리 민족의 역사가 환국(桓國, BC 7,199-3,897), 배달국(倍達, BC 3,897-2,333), 고조선(古朝鮮, BC 2,333-238). 부여.옥저.동예.낙랑국. 마한.변한.진한고구려.백제.신라로 이어져서 무려 9,200이나 된다환국(桓國, BC 7,199-3,897)의 장자국(長子國) 배달국(倍達國)이었고배달국(倍達國, BC 3,897-2,333)의 장자국(長子國) 고조선(古朝鮮, BC 2,333-238)이었음을 비추어 볼 때, 우리 배달(倍達)민족과 한국이 세계 4대 문명의 정통성을 이어 받은 민족이며 나라임을 알 수 있다.

 

 '신시(神市) 개천경(開天經)' 기록에 의하면환국(桓國)의 말엽에 환웅(桓雄)이 있었다그는 홍익인간(弘益人間), 재세이화(在世理化), 광명이세(光明理世)의 뜻을 간직하고 있었다환웅(桓雄)은 동방 땅 백두산(白頭山)에 문명 개척단 3,000명과 함께 배달국(倍達, BC 3,897-2,333)을 건설하였다배달국(倍達, BC 3,897-2,333) 신시 배달[神市 백두산, 1-13대 환웅] 청구 배달[靑丘 산동성.태산(泰山), 14-18대 환웅] 시대로 나누어진다. 배달국(倍達)의 환웅(桓雄)이 북만주와 대진국(발해) 연안의 땅에 뛰어난 석공예와 질공예를 남겼는데, 이것을 배달(倍達, BC 3,897-2,333) 환웅(桓雄) '홍산(紅山) 문화'라고 한다.

 

 배달국(倍達國, BC 3,897-2,333) 홍산(紅山) 문화는 1920년대 프랑스 에밀 리쌍(Emile Licent)이 요서 지방 츠펑 (적봉赤峰) 지역에서 처음 발굴 시작하여 1922년부터 1924년 사이에 신석기 유적지 22곳을 발견하였고, 요서 지방 홍산(紅山) 문화의 소하서 지역 유적에서 발견된 가장 오래된 신석기 문화는 최고 8,500년 전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이들 유적은 '인류 최고(最古) 신석기 문화'로 규정되고 있다. 1930년대 중국 철학자 양계초의 아들 양사영이 홍산(紅山) 유적지를 조사한 이래, 많은 학자들이 연구에 뛰어 들었다. 그 후, 중국 정부에서 대대적으로 발굴하였는데, 1980년대에 홍산(紅山) 문화의 대표적인 유적지인 우하량 유적이 발굴되어 전세계가 깜짝 놀랐다. 이 곳에서 나오는 유물들은 중국의 황하 문명(BC 3,000-2,500) 보다 2-3천년 앞 서 있었고, 유적과 유물들을 자세히 살펴보면, 그 지역의 문명은 이미 국가 단계의 구비 조건을 모두 갖춘 5의 문명이었기 때문이다.

 

 배달국(倍達國, BC 3,897-2,333) 홍산(紅山) 문화의 유적과 유물들은 세계 문명의 발상지라고 꼽히는 이집트. 메소포타미아. 인더스. 황하 문명 보다 훨씬 앞 선 문명 형태였기 때문이다. 예를들면, 홍산 문화의 소하서 지역 유적들은 무려 8,500년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결론적으로 배달국(倍達國, BC 3,897-2,333) 홍산(紅山) 유적지 발굴은 세계 문명사를 다시 쓰게 하는 엄청난 사건이다. 최근에도 중국은 동북(東北공정의 일환으로 이 곳을 계속 발굴하고 있다. 지중해 문명 (이집트 문명, 에게 문명, 그리스 로마 문명)이 서양 문명에 자양분을 공급했듯이, 동이족(東夷族)이 발해 연안에서 창조한 배달국(倍達國, BC 3,897-2,333) 홍산(紅山) 문화는 중국은 물론 만주. 한반도. 일본의 고대 문명을 일궈주었다.

 

 현재, 중국은 배달국(倍達國, BC 3,897-2,333) 홍산(紅山) 문화 요하(遼河문명이라고 하여 자기네 역사 유적이라고 우기고 있지만, 그 유적지의 위치와 문명 양식 등을 보면동이족(東夷族배달(倍達)의 문화 양식임에는 어쩔 수가 없다. 중국이 만주의 홍산(紅山) 유적지 문화를 자기네 것이라고 우기는 것은 마치 송곳을 주머니 속에 넣고 감추는 것과 같다. 결국 밖으로 드러나게 마련이다. 배달국(倍達國, BC 3,897-2,333) 신시 배달(神市 백두산, 1-13대 환웅) 청구 배달(靑丘 산동성.태산(泰山), 14-18대 환웅)로 나누어진다. 배달국(倍達國)의 환웅(桓雄)이 북만주와 대진국(발해) 연안의 땅에 뛰어난 석공예와 질공예를 남겼는데, 이것을 배달(倍達) 환웅(桓雄) '홍산(紅山문화'라고 하는 것이다.

 

 환국(桓國, BC 7,199-3,897)의 신교(神敎) 문화는 고대 문화의 원형이고그 후, 배달국(倍達國)으로 이어졌으며, 환국과 배달국의 문화는 세계 4대 문명의 뿌리가 되었다환국(桓國) 12개 나라 가운데수밀이국 우루국은 그동안 서양에서 최초의 문명족으로 알려져 있던 나라 이름이고, BC 3,500년 전의 고대 메소포타미아(수메르) 문명을 일으킨 나라이다. 최근, 120여 년 동안의 고고학 발굴 결과, 중동의 메소포타미아 지역에서는 BC 3,500년 경에 오늘의 서양 문명의 뿌리인 수메르(Sumer) 문명이 있었고, 이 문명을 건설한 수메르 민족은 동방에서 왔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수메르 문명은 다시 이집트 문명에게 영향을 주었고, 또한 고대 희랍 문화에 영향을 미쳤으며로마 제국을 거쳐 오늘날 서양 문명이 나온 것이다인더스 문명 또한 북방 문명에서 기원했다고 하며배달국(倍達國)의 문화가 유입되어 인더스강 유역에 자리를 잡은 것이다.

 

 근래에 만주에서 동북 공정의 일환으로 요하(遼河) 문명 유적을 발굴하고 있는데요하(遼河문명은 배달(倍達) 문명의 일부이다. '황하 문명' 보다 앞선 유적들이 무수히 쏟아져 나왔다. 중국 당국이 발칵 뒤집혔다. 중국의 황하 문명(BC 3,000-2,500)은 황하강 유역에서 발생했는데, 이것은 북만주와 산동 반도 유역의 배달국(倍達國, BC 3,898-2,333) 문명의 영향을 받아 생겨난 것이다. 배달(倍達 BC 3,898-2,333)의 홍산 문화는 메소포타미아 문명(BC 3,500-2,600). 황하 문명(BC 3,000-2,500). 인더스 문명(BC 2,500년경). 이집트 문명(BC 3,100년경) 보다 앞선 것이며세계 4대 문명에게 영향을 준 것이라는 증거와 유적들이 최근 속속 발굴되고 있다. 한민족의 배달(倍達문명이 중국 민족의 황하 문명 보다 빨랐고, 중국의 황하 문명은 한민족 배달(倍達) 문명을 받아서 생긴 것이라는 역사적 사실들이 속속 드러나고 있다.

 

 우리나라 배달(倍達) 민족이 천제(天祭)  제사(祭祀) 풍습을 중국 한족(漢族)에게 전해줬다배달국(倍達國) 말엽 및 고조선(古朝鮮) 초기에 중국에서 나라를 창업한 사람들 중에서() 임금(나라의 시조). () 임금(나라의 시조). 문왕(나라의 시조). 무왕(왕조 개창). 강태공(병법의 시조, 나라)도 역시 우리 동이족(東夷族)이었다또한, 중국의 건국(建國) 시조(始祖) 삼황오제(三皇五帝)는 전부 우리 동이족(東夷族)이었다삼황(三皇) 태호 복희(太昊伏羲). 염제 신농(炎帝神農). 황제 헌원(黃帝軒轅)을 말하고오제(五帝) 소호 금천전욱 고양제곡 고신. () 임금() 임금을 말한다그들 모두 배달(倍達)민족이었다. 중국의 건국 시조의 8명 중에 우리 민족이 8명으로 전부를 차지한다.

 

 중국은 예로부터 우리나라를 청구(靑丘)라고 했는데, 배달국(倍達國, BC 3,898-2,333) 청구 배달(靑丘, 14-18대 환웅)을 일컫는 말이며, 청구 배달의 문화가 '홍산(紅山) 문화'이다. 그 다음 나라에 이르러고조선(古朝鮮, BC 2,333-238) '단군(檀君) 신화중에는 호랑이와 곰이 나오는데, 실제는 호족(.호랑이) 웅족(.)을 배달(倍達) 동이족(東夷族)이 교화해서 건국한 것을 신화 형태로 기록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