뺏긴 역사찾자

■ 한민족(韓民族)이 세운 나라, 국호(國號) 뜻풀이

마도러스 2013. 2. 13. 11:33

■ 한민족(韓民族)이 세운 나라, 국호(國號) 뜻풀이

           

환국(桓國, B.C7,199-3,897) : 하늘의 광명 나라. 밝을 환桓. 환하다.

배달(倍達, B.C3,897-2,333) : 밝은 땅 나라 (밝땅→밝달→배달)

古조선(古朝鮮, B.C2,333-238) : 태양이 떠오르는 나라.

              조일선명(朝日鮮明), 아침의 해처럼 선명하게 밝아온다.

 

부여(扶餘) : 아침에 먼동이 뿌옇게 밝아오는 나라. 뿌옇다.

고구려(高句麗) : 높게 굽이쳐서 밝은 나라. 句 굽이치다.

                고대광려(高大光麗). 높고 크게 빛이 화려하다.

백제(百濟) : 하얗게 어둠을 구제하여 밝은 나라. 濟 어둠을 구제하다.

신라(新羅) : 새롭게 빛나는 나라.  羅 새롭게 벌리다.

 

대진국(大震國)=발해 : 동방 진(震). 동방 광명의 나라.

               발해는 중국인들이 부르던 명칭이고,

               발해인들은 스스로 대진(大震)이라고 불렀다.

               발해(渤海) : 안개가 하얗게 자욱한 광명의 바다라는 뜻이다.

고려(高麗) : 높고 밝은 나라. 고대광려(高大光麗), 높고 크게 빛나는

조선(朝鮮) : 태양이 떠오르는 나라.

            조일선명(朝日鮮明), 아침의 해처럼 선명하게 밝아온다.

 

대한제국(大韓帝國) : 크게 밝아져서 상제(上帝)님의 뜻이 펼쳐지는 나라. 韓 밝다.

                                 韓 밝다. ‘井’자 모양의 우물 귀틀. 수원(水源). 생명의 젖줄.

                  1897년 9월 상제님께 천제를 올리는 원구단(圜丘壇)을 세우고,

                  1897년 10월 12일 고종 황제즉위식 올리고 대한제국 선포.

                  조선 국왕의 지위를 중국의 황제와 대등한 지위로 올리고,

                  전하를 폐하(陛下)로 높여 불렀으며, 연호를 광무(光武)로 고침.

대한민국(大韓民國) : 크게 밝아져서 백성(民)의 뜻이 펼쳐지는 나라. 韓 밝다.

                                 韓 밝다. ‘井’자 모양의 우물 귀틀. 수원(水源). 생명의 젖줄.

                    광명의 지상낙원(樂園)을 건설하고자 하는 뜻이 담겨있다.

                    1919년 4월 상하이 임시정부 당시 신석우 선생의 제안으로

                    국호를 대한민국(大韓民國)으로 정하였다.

                    

 

■ 개천절(開天節)은 실존 인물이셨던 배달 환웅(桓雄)께서 백두산 신시(神市)에 배달국(倍達國, B.C3,897-2,333)을 개국(開國)하신 날이다. 다시 말해서 우리 민족이 배달 민족(倍達民族)이 된 날이다. ‘배달(倍達) 민족’이라는 말은 배달국(倍達國)을 개국(開國)하고 나서 우리가 배달국의 자손이 된 것을 가리키는 말이다.

 

그런데, 중국 사람들이 우리나라 역사를 말살 왜곡해 버렸다. 우리나라 배달국(倍達國, B.C3,897-2,333), 고조선(古朝鮮, B.C2,333-238) 관련 역사책들이 모조리 불태워져 버렸다. 그래서, 고조선(古朝鮮) 역사에 배달국(倍達國)의 역사가 섞여져 버렸다. 개천절(開天節)은 배달 환웅(桓雄)께서 배달국(倍達國, B.C3,897-2,333)을 개국(開國)하신 날인데, 역사가 왜곡되어 결국 고조선(古朝鮮, B.C2,333-238)을 단군(檀君)께서 개국하신 10월(上月) 3일로 바꾸어 놓았다. 중국과 일본에 의한 상고(上古) 역사 왜곡으로 민족사의 뿌리가 단절되어 버린 것이다. 중국에 의한 사대주의(事大主義) 때문이다.

 

■ 개천절(開天節)은 배달국 환웅 천황께서 인류 문명을 개벽(開闢)하신(開天立敎) 날이며, 개벽 정신으로 배달국 나라를 창건하신 날이다. 배달국(倍達國, B.C3,897-2,333)의 건국이념이

 홍익인간(弘益人間), 재세이화(在世理化), 광명이세(光明理世)

이다. 이들 건국 이념은 고조선(古朝鮮, B.C2,333-238)의 건국 이념이 아니라, 배달국(倍達國)의 건국 이념인 것이다.

 

■ 우리 민족은 배달(倍達) 민족이다. 그래서, 환국(桓國,BC 7,199-3,897), 배달국(倍達國, B.C3,897-2,333), 고조선(古朝鮮,BC 2,333-238)의 신교(神敎) 문화를 알아야 한다. 동시에, 배달(倍達) 민족의 역사 정신을 청명하게 알아야 한다. 우리 배달 민족의 문화는 상제(上帝)님을 모시고 조상님께 제사(祭祀)를 지내는 신교(神敎) 문화이다. 배달국(倍達國), 고조선(古朝鮮) 이후, 우리나라는 점점 중국의 속방(屬邦)으로 전락해 버렸다. 

 

결국, 원(元)나라의 지배를 받던 고려(高麗) 충렬왕 때 황제(皇帝)의 지위에서 (王)의 지위로 호칭이 격하되었다. 천자국(天子國)의 천자(天子)로서 상제(上帝)님께 천제(天祭)를 올리는 의식도 중국의 억압에 의해 올리지 못 하였다. 하지만, 천자국(天子國)의 위상을 되찾고 황제(皇帝) 지위를 회복하려는 비장한 시도를 조선(朝鮮) 고종 황제께서 하셨다.

 

■ 고종 황제께서는 1897년 상제(上帝)님께 천제(天祭)를 올리는 원구단(圜丘壇)을 짓고, 왕(王)의 호칭을 황제(皇帝) 폐하로 바꾸고 나라이름을 대한제국(大韓帝國)으로 바꾸었다. 중국식이 아닌 자주적인 광무(光武) 연호(年號)를 사용하였다. 태극기(太極旗)를 제작하여 대외적인 상징으로 삼았고, 애국가(愛國歌)를 만들어 국가의 공식 행사에 사용토록 하였다. 우리 배달(倍達) 민족은 인류 최초의 나라와 문명을 건설했었다. 하지만, 중국과 일본에 의한 상고(上古) 역사 왜곡으로 민족사의 뿌리가 단절되어 버렸다.

     

       

■ 우리 배달(倍達) 민족의 역사는 9,200년이다.

    

 우리 배달 민족의 환국(桓國, BC 7,199-3,897), 배달국(倍達國, BC 3,897-2,333). 고조선(古朝鮮, BC 2,333-238) 문화는 중국의 (. 재위BC 2,357-2,258), (. 재위BC 2,255-2,208), (, BC 2,205-1,766), (, BC 1,600-1,046), (, BC 1,046-771) 문화의 뿌리이다. 우리 배달(倍達민족 문화가 중국 문화의 뿌리이다우리 민족의 역사가 환국(桓國, BC 7,199-3,897), 배달국(倍達, BC 3,897-2,333), 고조선(古朝鮮, BC 2,333-238). 부여.옥저.동예.낙랑국. 마한.변한.진한고구려.백제.신라로 이어져서 무려 9,200이나 된다환국(桓國, BC 7,199-3,897)의 장자국(長子國) 배달국(倍達國)이었고배달국(倍達國, BC 3,897-2,333)의 장자국(長子國) 고조선(古朝鮮, BC 2,333-238)이었음을 비추어 볼 때, 우리 배달(倍達)민족과 한국이 세계 4대 문명의 정통성을 이어 받은 민족이며 나라임을 알 수 있다.

 

 '신시(神市) 개천경(開天經)' 기록에 의하면환국(桓國)의 말엽에 환웅(桓雄)이 있었다그는 홍익인간(弘益人間), 재세이화(在世理化), 광명이세(光明理世)의 뜻을 간직하고 있었다환웅(桓雄)은 동방 땅 백두산(白頭山)에 문명 개척단 3,000명과 함께 배달국(倍達, BC 3,897-2,333)을 건설하였다배달국(倍達, BC 3,897-2,333) 신시 배달[神市 백두산, 1-13대 환웅] 청구 배달[靑丘 산동성.태산(泰山), 14-18대 환웅] 시대로 나누어진다. 배달국(倍達)의 환웅(桓雄)이 북만주와 대진국(발해) 연안의 땅에 뛰어난 석공예와 질공예를 남겼는데, 이것을 배달(倍達, BC 3,897-2,333) 환웅(桓雄) '홍산(紅山) 문화'라고 한다.

 

 배달국(倍達國, BC 3,897-2,333) 홍산(紅山) 문화는 1920년대 프랑스 에밀 리쌍(Emile Licent)이 요서 지방 츠펑 (적봉赤峰) 지역에서 처음 발굴 시작하여 1922년부터 1924년 사이에 신석기 유적지 22곳을 발견하였고, 요서 지방 홍산(紅山) 문화의 소하서 지역 유적에서 발견된 가장 오래된 신석기 문화는 최고 8,500년 전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이들 유적은 '인류 최고(最古) 신석기 문화'로 규정되고 있다. 1930년대 중국 철학자 양계초의 아들 양사영이 홍산(紅山) 유적지를 조사한 이래, 많은 학자들이 연구에 뛰어 들었다. 그 후, 중국 정부에서 대대적으로 발굴하였는데, 1980년대에 홍산(紅山) 문화의 대표적인 유적지인 우하량 유적이 발굴되어 전세계가 깜짝 놀랐다. 이 곳에서 나오는 유물들은 중국의 황하 문명(BC 3,000-2,500) 보다 2-3천년 앞 서 있었고, 유적과 유물들을 자세히 살펴보면, 그 지역의 문명은 이미 국가 단계의 구비 조건을 모두 갖춘 5의 문명이었기 때문이다.

 

 배달국(倍達國, BC 3,897-2,333) 홍산(紅山) 문화의 유적과 유물들은 세계 문명의 발상지라고 꼽히는 이집트. 메소포타미아. 인더스. 황하 문명 보다 훨씬 앞 선 문명 형태였기 때문이다. 예를들면, 홍산 문화의 소하서 지역 유적들은 무려 8,500년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결론적으로 배달국(倍達國, BC 3,897-2,333) 홍산(紅山) 유적지 발굴은 세계 문명사를 다시 쓰게 하는 엄청난 사건이다. 최근에도 중국은 동북(東北공정의 일환으로 이 곳을 계속 발굴하고 있다. 지중해 문명 (이집트 문명, 에게 문명, 그리스 로마 문명)이 서양 문명에 자양분을 공급했듯이, 동이족(東夷族)이 발해 연안에서 창조한 배달국(倍達國, BC 3,897-2,333) 홍산(紅山) 문화는 중국은 물론 만주. 한반도. 일본의 고대 문명을 일궈주었다.

 

 현재, 중국은 배달국(倍達國, BC 3,897-2,333) 홍산(紅山) 문화 요하(遼河문명이라고 하여 자기네 역사 유적이라고 우기고 있지만, 그 유적지의 위치와 문명 양식 등을 보면동이족(東夷族배달(倍達)의 문화 양식임에는 어쩔 수가 없다. 중국이 만주의 홍산(紅山) 유적지 문화를 자기네 것이라고 우기는 것은 마치 송곳을 주머니 속에 넣고 감추는 것과 같다. 결국 밖으로 드러나게 마련이다. 배달국(倍達國, BC 3,897-2,333) 신시 배달(神市 백두산, 1-13대 환웅) 청구 배달(靑丘 산동성.태산(泰山), 14-18대 환웅)로 나누어진다. 배달국(倍達國)의 환웅(桓雄)이 북만주와 대진국(발해) 연안의 땅에 뛰어난 석공예와 질공예를 남겼는데, 이것을 배달(倍達) 환웅(桓雄) '홍산(紅山문화'라고 하는 것이다.

 

 환국(桓國, BC 7,199-3,897)의 신교(神敎) 문화는 고대 문화의 원형이고그 후, 배달국(倍達國)으로 이어졌으며, 환국과 배달국의 문화는 세계 4대 문명의 뿌리가 되었다환국(桓國) 12개 나라 가운데수밀이국 우루국은 그동안 서양에서 최초의 문명족으로 알려져 있던 나라 이름이고, BC 3,500년 전의 고대 메소포타미아(수메르) 문명을 일으킨 나라이다. 최근, 120여 년 동안의 고고학 발굴 결과, 중동의 메소포타미아 지역에서는 BC 3,500년 경에 오늘의 서양 문명의 뿌리인 수메르(Sumer) 문명이 있었고, 이 문명을 건설한 수메르 민족은 동방에서 왔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수메르 문명은 다시 이집트 문명에게 영향을 주었고, 또한 고대 희랍 문화에 영향을 미쳤으며로마 제국을 거쳐 오늘날 서양 문명이 나온 것이다인더스 문명 또한 북방 문명에서 기원했다고 하며배달국(倍達國)의 문화가 유입되어 인더스강 유역에 자리를 잡은 것이다.

 

 근래에 만주에서 동북 공정의 일환으로 요하(遼河) 문명 유적을 발굴하고 있는데요하(遼河문명은 배달(倍達) 문명의 일부이다. '황하 문명' 보다 앞선 유적들이 무수히 쏟아져 나왔다. 중국 당국이 발칵 뒤집혔다. 중국의 황하 문명(BC 3,000-2,500)은 황하강 유역에서 발생했는데, 이것은 북만주와 산동 반도 유역의 배달국(倍達國, BC 3,898-2,333) 문명의 영향을 받아 생겨난 것이다. 배달(倍達 BC 3,898-2,333)의 홍산 문화는 메소포타미아 문명(BC 3,500-2,600). 황하 문명(BC 3,000-2,500). 인더스 문명(BC 2,500년경). 이집트 문명(BC 3,100년경) 보다 앞선 것이며세계 4대 문명에게 영향을 준 것이라는 증거와 유적들이 최근 속속 발굴되고 있다. 한민족의 배달(倍達문명이 중국 민족의 황하 문명 보다 빨랐고, 중국의 황하 문명은 한민족 배달(倍達) 문명을 받아서 생긴 것이라는 역사적 사실들이 속속 드러나고 있다.

 

 우리나라 배달(倍達) 민족이 천제(天祭)  제사(祭祀) 풍습을 중국 한족(漢族)에게 전해줬다배달국(倍達國) 말엽 및 고조선(古朝鮮) 초기에 중국에서 나라를 창업한 사람들 중에서() 임금(나라의 시조). () 임금(나라의 시조). 문왕(나라의 시조). 무왕(왕조 개창). 강태공(병법의 시조, 나라)도 역시 우리 동이족(東夷族)이었다또한, 중국의 건국(建國) 시조(始祖) 삼황오제(三皇五帝)는 전부 우리 동이족(東夷族)이었다삼황(三皇) 태호 복희(太昊伏羲). 염제 신농(炎帝神農). 황제 헌원(黃帝軒轅)을 말하고오제(五帝) 소호 금천전욱 고양제곡 고신. () 임금() 임금을 말한다그들 모두 배달(倍達)민족이었다. 중국의 건국 시조의 8명 중에 우리 민족이 8명으로 전부를 차지한다.

 

 중국은 예로부터 우리나라를 청구(靑丘)라고 했는데, 배달국(倍達國, BC 3,898-2,333) 청구 배달(靑丘, 14-18대 환웅)을 일컫는 말이며, 청구 배달의 문화가 '홍산(紅山) 문화'이다. 그 다음 나라에 이르러고조선(古朝鮮, BC 2,333-238) '단군(檀君) 신화중에는 호랑이와 곰이 나오는데, 실제는 호족(.호랑이) 웅족(.)을 배달(倍達) 동이족(東夷族)이 교화해서 건국한 것을 신화 형태로 기록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