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 (일반)

너무 날씬하면, 빨리 늙는다.

마도러스 2011. 5. 16. 15:47

 

너무 날씬하면, 빨리 늙는다.


키는 163cm인데, 몸무게가 각각 46kg, 54kg, 65kg, 70kg, 75kg인 5명의 사람이 있다. 이중 가장 오래 사는 사람은 누구일까? 또한, 사망할 확률이 가장 높은 사람은 누구일까? 대부분이 54kg이나 46kg인 사람이 가장 오래 살고, 75kg의 사망 위험도가 가장 높다고 대답할 것이다. 약간 마른 몸이 더 건강하고 장수한다는 생각 때문이다.


이때 마른 몸이라고 판단하는 기준은 체질량 지수(BMI. Body Mass Index)이다. BMI 지수는 몸무게(kg)를 키(m)의 제곱으로 나눠서 얻은 값이다. 이는 지금까지 질병 관리 본부와 대한 비만 학회에서 비만을 판단하는 기준이 되어 왔다.


BMI 지수가 23 이상이면 과체중, 25 이상이면 경도 비만, 30 이상은 고도 비만으로 분류된다. 이에 따라 전문가들은 BMI지수가 23만 돼도 주의해야 하고, 25를 넘으면 각종 질환 및 사망 위험이 1.5-2배 높다고 경고했다.


하지만, 한국인을 비롯한 동아시아인의 BMI 지수를 조사한 결과는 조금 달랐다. BMI 지수가 22.6-27.5일 때 사망할 확률이 가장 낮았던 것이다. 이는 과체중으로 분류되는 사람부터 비만에 속하는 사람에 해당하는 범위이다. 기존의 BMI 지수 기준으로 봤을 때 약간 뚱뚱한 사람이 더 오래 사는 셈이다.


비만으로 분류된 사람의 사망 확률이 높다는 그동안의 통계적 자료주로 유럽인과 미국인을 연구한 결과에 불과한 것이다. 실제적으로 한국인을 비롯한 아시아인은 서양인과 체질이 다르다. 따라서 서양에서 개발한 BMI 지수 기준을 한국에 무조건 적용하는 것은 곤란하다. 아시아인에게 맞는 BMI지수 판단 기준이 바뀌어야 한다는 지적은 꾸준히 있어 왔다.


서울 의대 예방 의학 교실 유근영, 강대희, 박수경 교수는 아시아 코호트 컨소시엄(Asia Cohort Consortium)을 꾸렸다. 이 연구팀은 한국과 일본, 중국 등 7개국을 대상으로 대규모 조사를 실시했다. 연구 대상은 한국인 2만 명을 포함해 114만 명에 이르렀다. 2005년부터 평균 9.2년 동안 추적 관찰한 결과, 동아시아인의 BMI 지수와 사망 위험도의 관계를 파악할 수 있었다.


연구 결과 동아시아인의 사망 위험도가장 낮은 구간BMI 지수가 25.1-27.5일 때였다. BMI 지수 기준치로 본다면 경도 비만 구간이다. 심지어 정상 체중에서 사망 위험도는 경도 비만 보다 높았다. 비만에 해당하는 BMI 지수를 가졌다고 해도 사망 위험은 크지 않았다고 볼 수 있는 대목이다.


또 BMI 지수가 35 이상인 초고도 비만일 경우의 사망 확률은 그렇지 않은 사람에 비해 1.5배 정도 높았다. 초고도 비만일 경우 사망 위험이 2배가 넘을 수 있다는 경고와는 다르다. 이는 그동안 비만과 사망 위험을 분석할 때 인종 차이가 고려되지 않았기 때문으로 보인다. 실제로 인도인이나 방글라데시인들은 비만한데도 사망 확률이 높아지지 않았다.


이번 연구에서 특히 주목할 점은 ‘극심한 저체중’이다. BMI 지수가 15 이하로 매우 낮은 사람에 경우는 BMI 지수 22.6-25.0인 사람 보다 사망 위험이 2.8배나 높았다. 건강을 지키려고 하는 다이어트가 오히려 사망 위험도를 증가시킬 수도 있다.


키가 163cm이고, 몸무게가 70kg인 사람은 약간 뚱뚱해 보일 가능성이 높다. 또 BMI 지수도 25를 넘어 비만 판정을 받게 된다. 하지만, 실제로 사망 위험도는 다른 몸무게 보다 낮았다. 우리가 너무 과도한 살빼기를 하고 있는 건 아닌지 돌아보게 되는 대목이다.


물론 비만이 당뇨병이나 심장병, 대장암, 전립선암 같은 서구형 암(癌) 위험을 높이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비만에 대한 논의가 상업적 측면과 연결되면서 인종별 특성을 고려한 연구 없이 비만기준이 정리된 측면이 있다.


이번 연구 결과는 의학 분야 최고 권위지로 꼽히는 ‘뉴잉글랜드 저널 오브 메디슨(New England Journal of Medicine)’지에 소개됐다. 아시아인의 BMI 지수 연구에 큰 도움을 줬다는 평가이다. 이번 결과를 활용하면 BMI 지수로 한국인의 비만 판단 기준새로 마련할 수 있을 것이다.

 

더 많은 연구와 논의를 거쳐 ‘한국형 BMI 지수 기준’을 마련하길 바란다. 그 날이 오면 우리에게 꼭 맞는 지침을 갖고 똑똑하게 건강을 챙길 수 있을 것이다. (글: 박태진 과학 칼럼니스트)(도움: 유근영 서울 대학교 의과대학 의학과 예방의학 교실 교수)(한겨레 신문, 입력: 2011.04.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