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三國).고려

몽고 시조 ‘알랑 고아’는 고구려 주몽의 딸

마도러스 2009. 6. 2. 11:33

 

몽고 시조 ‘알랑 고아’는 고구려 주몽의 딸



“어머니의 나라, 한국에 왔습니다.” 몽골인 사학자 한촐라 교수(대만 거주)가 1990년 한국에 도착해 한 말이다.


한촐라 교수의 제자인 박원길 박사는 이를 몽골 최고(最古)의 역사서인 『몽골 비사』에 전해지는 성녀이자 몽골의 시조로 추앙받는 알랑 고아의 아버지가 고구려 건국 시조인 고주몽과 일치하기 때문이라고 풀이했다.


알랑 고아의 아버지는 사냥을 잘하는 사람이다. 그런데, 그를 시기하는 사람이 많아 코리(Kohri)족을 떠나기로 하고 지지자를 모아 씨족을 만들어 멀리 이동했다. 거기서 몽골의 시조로 추앙받는 알랑 고아의 일대기가 시작된다.


김운회 동양대 교수는 “몽골. 만주. 반도 등에 걸친 민족은 동일한 민족 갈래에 속하며, 고려. 몽골 양국 지배층 간 혼인으로 관계가 깊어져 서로를 ‘신부. 신랑 나라’ 또는 ‘어머니 나라’로 부르게 됐다”고 말했다.


게렐 주한 몽골 대사도 최근 “몽골과 한국은 모두 북방에서 기원한 기마 유목 민족의 후예이고, 하늘의 상징인 푸른 몽골 반점을 지니고 있다”며 ‘사돈의 나라’라고 강조했다.


몽골 언어는 우리말과 어순은 물론 자음. 모음 구조까지 비슷하다. 그래서 몽골인과 한국인은 상대 언어를 빠르게 배운다. 재한 몽골 학교 관계자는 “몽골인은 모음 발음 하나를 빼고는 한국어 발음을 거의 완벽하게 구사한다”고 말했다.


최기호 교수는 몽골어. 만주어. 한국어 등이 같은 계통의 언어(동북 아시아어족)라고 주장했다. 비슷한 단어도 있다. 김운회 교수에 따르면 ‘눈’이 같고 ‘귀’가 비슷하며, ‘바른쪽으로’를 ‘바른쭉으루’. ‘왼쪽으로’를 ‘준쭉으루’로 발음한다.


또한 세 민족은 체질 인류학적으로 얼굴과 몸매. 골격이 아주 비슷하다. 한국에 거주하는 몽골인이 유학생 3000명을 포함해 3만-4만 명에 달하지만, 외모에서는 한국인과 거의 구별되지 않는다. 몽골 반점이 공통적으로 90% 이상 나타나고, 유전자 염색체 지도에서 가장 가까운 사이라고 한다.


우리나라의 나무꾼과 선녀 설화나 ‘까치가 울면 정다운 손님이 온다’는 속담들이 몽골에도 있다. 몽골인도 음식을 먹을 때 고수레를 한다. 제기차기. 공기놀이. 씨름 등의 민속놀이 역시 유사하다.


역사적으로 이들 세 민족의 활동 무대는 만주. 몽골 대평원이었다. 우리가 잘 아는 고조선. 부여. 고구려. 발해, 그리고 요(거란족). 금(여진족). 원(몽골족). 청(만주족)은 치열한 민족 경쟁 속에 세워진 제국이다. 이들은 중국에 대등하게 맞서거나 중국을 장기간 지배했다. 이 중 지금까지 독립 국가를 유지하는 민족은 한민족과 몽골족뿐이다.


북방 민족이 세운 마지막 제국인 청(淸)은 만주에서 일어나 중국 본토와 대만. 티베트. 위구르를 장악했다. 몽골 전역도 1717년 청(淸) 수중에 들어간다. 몽골인은 이를 대평원에서 경쟁하던 만주족에게 지배당한 것이지 중국의 지배를 받은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청(淸)나라 때 멸시 당하던 한족(漢族)은 19세기 들어 만주족을 멸하고 한족을 다시 흥하게 하자는 ‘멸만흥한(滅滿興漢)’의 기치를 내건다. 1911년 신해 혁명으로 청(淸)이 붕괴되자 청(淸)에 복속됐던 몽골. 티베트. 위구르 등은 독립을 선언했다. 하지만 독립의 뜻을 이룬 곳은 소련의 지원을 받은 몽골(외몽골)뿐이었다.


티베트와 위구르가 세운 독립국은 중국 공산당의 침공으로 와해됐다. 만주와 네이멍구(內蒙古) 지역은 일본의 지원 아래 만주국과 몽골 신장 자치국이 들어섰으나 일본 패망과 함께 중국에 점령당했다. 중국은 몽골의 독립을 승인했으나 여전히 ‘몽골은 중국이고 칭기즈칸은 중국인’이라는 주장을 강화하고 있다.


구해우 상임 이사는 “중국의 역사 왜곡을 자기 땅을 삼키려는 음모로 보는 몽골이나, 중국이 동북 공정으로 북한 점령을 합리화하지 않을까 걱정하는 한국은 비슷한 처지”라고 말했다. (중앙일보 허귀식 기자, 입력: 2009.05.31)

 

 

★ 우리 배달(倍達) 민족의 과거 역사와 미래 문명의 비젼

 

우리 배달 민족의 환국(桓國,BC 7,199-3,897), 배달국(倍達國,BC 3,897-2,333). 고조선(古朝鮮,BC 2,333-238) 문화는 중국의 (堯.재위BC 2,357-2,258), (舜.재위BC 2,255-2,208), (夏,BC 2,205-1,766), (殷,BC 1,600-1,046), (周,BC 1,046-771) 문화의 뿌리이다. 우리 배달 민족 문화가 중국 문화의 뿌리이다. 우리 민족의 역사가 환국(桓國,BC 7,199-3,897), 배달국(倍達國,BC 3,897-2,333), 고조선(古朝鮮,BC 2,333-238). 부여.옥저.동예.낙랑국.마한.변한.진한.고구려.백제.신라로 이어져서 무려 9,200년이나 된다. 


'신시(神市)개천경(開天經)'기록에 의하면, 환국(桓國)의 말엽에 환웅(桓雄)이 있었다. 그는 홍익인간(弘益人間), 재세이화(在世理化), 광명이세(光明理世)의 뜻을 간직하고 있었다. 환웅(桓雄)은 동방 땅 백두산(白頭山)에 문명 개척단 3,000명과 함께 배달국(倍達國,BC 3,897-2,333)을 건설하였다. 배달국(倍達國,BC 3,897-2,333년)은 신시배달(神市백두산,1-13대 환웅)과 청구배달(靑丘산동성.태산(泰山),14대-18대 환웅)로 나누어진다. 배달국(倍達國)의 환웅(桓雄)이 북만주와 대진국(발해) 연안의 땅에 뛰어난 석공예와 질공예를 남겼는데, 이것을 배달(倍達) 환웅(桓雄)의 '홍산(紅山)문화'라고 한다.

  

우리 배달(倍達)민족이 천제(天祭) 및 제사(祭祀) 풍습을 중국 한(漢) 민족에게 전해줬다. 배달국(倍達國) 말엽 및 고조선(古朝鮮) 초기에 중국에서 나라를 창업한 사람들 중에서, 임금(하夏나라의 시조). 임금(은殷나라의 시조). 문왕(주周나라의 시조). 무왕(주周왕조 개창). 강태공(병법의 시조, 제齊나라)도 역시 우리 동이족(東夷族)이었다. 또한, 중국의 건국(建國) 시조(始祖)인 삼황오제(三皇五帝)는 전부 우리 동이족(東夷族)이었다. 삼황(三皇)태호복희(太昊伏羲). 염제신농(炎帝神農). 황제헌원(黃帝軒轅)을 말하고, 오제(五帝)소호금천. 전욱고양. 제곡고신. (堯)임금. (舜)임금을 말한다. 그들 모두 배달(倍達)민족이었다. 중국의 건국 시조의 8명 중에 우리 민족이 8명으로 전부를 차지한다.


중국은 예로부터 우리나라를 청구(靑丘)라고 했는데, 청구 배달(靑丘,14대-18대 환웅)을 일컫는 말이며, 청구 배달의 문화가 '홍산 문화 (紅山文化)'이다. 그 다음 나라에 이르러, 고조선의 '단군(檀君) 신화' 중에는 호랑이와 곰이 나오는데, 실제는 호족(虎.호랑이)과 웅족(熊.곰)을 배달(倍達) 동이족(東夷族)이 교화해서 건국한 것을 신화 형태로 기록한 것이다. 고대 사회의 사람들은 '신화의 형태'로 이야기해야 알아듣는 그런 시대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