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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동과 여운 '록의 전설' 신중현

마도러스 2009. 3. 3. 14:32

 

감동과 여운 '록의 전설' 신중현

 

“죽을 때까지 음악을 떠나진 않을 겁니다.” 거장의 뒷모습에는 늘 감동과 여운이 있다. 2006년 한국, 뒷모습에서 진한 향기를 내뿜을 또 한 명의 영웅이 퇴장한다. ’한국 록의 대부’ 신중현(66). 그는 7월1일 인천 문학경기장을 시작으로 9월 대도시를 순회(일정과 장소 미정)한 후, 10월 서울에서 은퇴 공연 ’신중현 라스트 콘서트’의 대미를 장식했다. 공연 앙코르 무대에서 관객과 석별의 정을 나눌 그의 뒷모습.

 

◇ 은퇴 무대는 영광스럽고 고마운 자리이다.

 

왜, 지금 그는 무대에서 내려 오려는 걸까. "음악을 떠나는 게 아니라 공연을 안 하는 것뿐입니다. 죽을 때까지 음악을 떠날 순 없죠. 이젠 음악 속에서 혼자 있고 싶네요. 하기야 제가 언제 본격적인 활동을 하긴 했나요. 허허. 이번 무대는 영광스럽고 고마운 자리지요.”

 

17세에 서울 용산의 미8군 무대에서 기타리스트로 활동을 시작한 그는 1962년 한국 최초의 로큰롤 밴드인 ’애드 훠(Add 4)’를 결성했고 강산이 네 번 변하는 동안 국내에 록음악의 씨를 뿌리고 길렀다. ’봄비’ ’미인’ ’아름다운 강산’ ’빗속의 여인’ ’커피 한잔’ 등을 작곡했고, 펄시스터즈, 김추자, 박인수 등 거물급 가수도 키워냈다. 아들 삼형제도 아버지의 뒤를 이었다. 신대철은 시나위 리더, 신석철과 신윤철은 서울 전자음악단을 이끌고 있다.

 

“이번 공연에서 제 음악을 정리하고 싶고. 제 모든 걸 보여드리고 싶네요. 지금껏 라이브를 제대로 보여주지 못했어요. 아쉬웠죠. 미련도 남고. 새로운 기타 주법을 개발했는데,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보여줄 겁니다. 전국을 다니며 저의 음악성, 라이브 자체의 소리를 들려주고 싶습니다.”

 

총 3부로 진행되는 공연은 후반으로 갈수록 흥분의 강도가 세진다. 1부는 피아노(여리게), 2부는 메조 포르테(조금 세게), 3부는 포르티시모(매우 세게)로 분위기를 이끌 계획. 신중현은 게스트인 YB(윤도현밴드)와 김종서의 무대를 공연 중간 넣자는 공연팀의 제의에 “공연 중간에 맥이 끊기면 안 되니 오프닝에 게스트를 세운 후 난 150분간 달리겠다”고 했다. 노장의 꿋꿋한 의지다.

 

신중현은 요즘 공연 준비 외에 무척 신경 쓰고 있는 일이 또 하나 있다. 경기도 용인에 집을 지었다. 시멘트를 바르고 나무를 심는 것도 손수 했다. “늙은이가 들어가 음악하며 살 집인데. 집 짓는 일이 만만치 않네요. 허허.”

 

◇ 요즘 음악다운 음악 없어 아쉽다. 

 

팬들과의 마지막 잔치를 준비한 신중현과 인터뷰 전 문득 든 생각이 있다. ’우리는 그에게 전설, 대부라는 타이틀만 줬을 뿐 실험적ㆍ도전적이던 그의 음악에는 거리감을 둔 게 아닌가’ 하는. 이 마음을 꿰뚫기나 한 듯 신중현은 “전 늘 대중성보다 음악성을 추구했어요. 그래서 제 곁엔 마니아만 있었죠. 진정한 음악인은 초라합니다. 욕심이 없거든요. 그래서 사회적으로 소외당한 것도 사실이에요”라며 너털웃음을 짓는다.

 

그는 지금 대중음악계에 대한 쓴소리를 푸념처럼, 시처럼 읊조렸다. 그가 말한 음악에는 ’대중적이고 상업적인 음악’과 ’음악다운 음악’이 있다. 음악과 그것이 미치는 영역, 세상의 파장까지 걱정하는 노장의 한마디는 부드러웠지만 힘이 있었다. 이제 그는 홀연히 무대에서 내려온다. 작은 체구, 백발인 그의 뒷모습은 분명 그리울 것이다.

 

“사회가 정리되지 않은 상태에서 음악이 천편일률적으로 가버렸어요. 정작 외국 음악에 열광하고 우리 음악은 소외됐죠. 진정한 음악이 살아 있지 않으면 음악은 존재감을 잃어요. 그래서 진정한 음악을 하는 음악인이 좀 더 소중히 여겨져야 해요. 아름다운 음악이 탄생하면 사회가 아름다워지고, 장삿속 음악이 난무하면 사회가 문란해지니까요.” 

 

서울=연합뉴스  입력 : 2006.06.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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