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학. 소재

물의 과학과 미래, 과학 속의 물

마도러스 2006. 7. 17. 20:43

 

물의 과학과 미래, 과학 속의 물


우주탐사선은 화성을 비롯한 행성에서 물이나 그 흔적을 찾는 것을 중요한 임무 중 하나로 삼는다. 물이 있으면 생명체가 존재할 확률이 높기 때문이다. 인류를 포함한 모든 생명체와 물은 뗄래야 뗄 수 없는 관계를 맺고 있다. 사람 몸의 70%가 물로 이루어져 있으며, 그 탄생도 바다에서 시작했을 것이란 학설도 있다. 2003년은 유엔이 정한 물의 해다. 현대 과학 속에 녹아있는 물을 찾아본다.

 

지구과학자들은 빙하로 뒤덮인 그린랜드에 3㎞가 넘는 깊이의 구멍을 뚫어가며 얼음을 파냈다. 얼음 속에 공룡시대를 비롯한 먼 옛날의 지구 기후의 비밀이 숨어 있기 때문이다. 그 속에는 10만년 동안 내린 눈의 기록이 차곡차곡 쌓여 있기도 하다. 그 얼음 중 1천7백86m 깊이의 것을 분석한 결과 약 1만1천5백년 전인 빙하시대 중 1백년 만에 지구의 온도가 섭씨 15도나 급속하게 높아진 것도 알아냈다.

 

요즘 그처럼 온도가 급상승한다면 기상 이변으로 인류는 심각한 위기에 직면하는 등 지구 전체가 발칵 뒤집힐 일이다. 과학자들은 1만년이 훨씬 넘는 고대 온도를 어떻게 알아 낼 수 있었을까. 물을 연구한 덕분이다. 자연에 존재하는 순수한 물(H2O)의 종류는 산소만을 기준으로 놓고 볼 때 세 종류가 있다.

 

즉 H216O.H217O.H218O로, 산소의 번호(질량수)가 높은 것은 산소 원자핵 속에 중성자가 하나씩 더 있다. 자연의 물에는 이 세 가지가 섞여 있다. 그 중 가장 많은 것이 H216O로 99.76%,H217O가 0.04%,H218O가 0.2% 등의 비율이다. 이 중 H218O가 가장 무겁다.

 

모두 물의 특성은 똑같지만 무게가 달라 증발하는 속도에서 큰 차이를 보인다. 즉, 가벼운 물의 경우 무거운 물에 비해 10배나 빨리 증발된다. 과학자들은 여기에 착안해 얼음층에 무거운 물 성분이 많이 포함된 시기는 온도가 높았고, 그렇지 않은 것은 온도가 평년 또는 보통이라는 식으로 산출하는 것이다. 또 각 물 성분의 비에 따라 얼마만큼의 온도가 내려가거나 올랐는지도 알아낸다.

 

물은 최첨단 기술과 어우러져 인류에게 새로운 세계를 열어 주고 있다. 암의 영상진단에 결정적 역할을 하는 양전자단층촬영장치(PET)에도 물은 필수이다. H218O를 진단용 약 원료를 만드는 데 쓴다. 즉, 여기에 사이클로트론에서 발생하는 양성자를 쪼이면 PET에 이용되는 불소(18F)가 생성된다.

 

가격은 1g에 25만원선. 금값의 다섯배가 넘는다. 일반 물에서 이 물만 골라 내기가 보통 어려운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물의 분자 중 수소에 중성자가 하나 더 있는 물은 무거운 물이라는 뜻의 중수라고 부르며, 원자로에서 핵분열이 잘 일어나게 하는 용도로 쓴다. 이 물은 핵분열이 일어나게 하는 중성자의 속도를 초속 2만㎞에서 2.2㎞로 감속시킨다. 이 역시 그렇게 비싸다. 중수 등 특별한 물 추출에는 증류나 여과 방법 등을 사용한다.

 

한국원자력연구소 정도영 박사는 "물은 아직 현대 과학으로도 풀지 못한 부분도 있지만 그 영역을 빠르게 넓혀가고 있다"며 "사람의 하루 소요 열량 측정, 공업용 물칼 등은 새로 개척되고 있는 응용분야"라고 말했다. ㈜ 보람 아이티티에서 개발한 물칼은 나무.종이.플라스틱.돌 등 물질의 종류를 가리지 않으며,15㎝두께의 쇠,45㎝ 두께의 구리판도 무 자르듯 한다. 구멍도 뚫을 수 있다. 물칼은 지름 1~2㎜의 가는 구멍으로 뿜어져 나오는 물의 힘으로 금속을 자른다.이 때 나오는 물의 세기는 1㎠의 면적에 4천㎏의 무게를 올려 놓는 것과 같다. 이는 물 속 4만m 깊이의 수압에 해당한다.

 

물칼은 물건을 자를 때 열이 나지 않아 잘리는 물건의 변형이 없는 장점이 있다. 이는 다이아몬드 칼이나 레이저로는 흉내내기 어렵다.그래서 자동차 대시 보드 제작, 원자력발전소 해체, 항공기 제작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용하고 있다. 미국 펜실베이니아주립대 등에서는 최근 중수와 H218O 등을 시골 노인들에게 매일 일정량을 마시게 한 뒤 그 배설량과 흡수량을 계산해 일일 소모 열량을 정확하게 산출하기도 했다.

 

한국원자력연구소 박경배 박사는 "신약을 개발할 때 병의 원인이 되는 단백질 어느 부위에 물이 많이 있는 지를 아는 것이 중요하다"며 "물이 없는 곳에 물과 섞여야 하는 약물을 넣어봐야 약이 들어가기 어렵기 때문에 좋은 약효를 기대하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최근에야 단백질 내부의 정밀한 물 분포가 연구용 원자로인 '하나로'나 양성자 가속기로 밝혀지기도 했다. 현대 과학은 기름과 물도 어렵지 않게 섞으며, 그 원리도 알아냈다. 두 물질이 서로 섞이지 않는 것은 기름 분자의 크기가 물 분자보다 10배가 커서 물 분자 틈새를 비집고 들어가지 못하는 데다, 물이 서로 뭉쳐 있으려는 성질이 워낙 강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물과 기름을 한데 넣고 섭씨 9백50도 이상으로 끓이면 서로 구분이 안되게 섞인다. 서강대 화학과 이덕환 교수는 "그렇게 높은 온도가 되면 기름이나 물이 같은 것끼리 서로 뭉쳐 있으려는 성질이 파괴되기 때문에 뒤섞인다"라고 설명했다. 현대 과학으로도 아직 밝혀내지 못한 물의 신비가 있다. 물이 얼음이나 눈이 될 때 어떻게 해서 수없이 다양한 형태로 변하는지가 그 것이다. 2천4백여가지의 물 분자의 모양은 1936년에 카메라에 담겨졌다. 그 신비가 풀리려면 앞으로도 꽤 많은 시일이 걸릴 것 같다. (중앙일보 박방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