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대사 (조선)

[스크랩] 임오군란시 명성황후 피난일기 발견

마도러스 2006. 7. 1. 22:54
임오군란시 명성황후 피난일기 발견


거처 수차례 옮기며 피신생활


1882년 임오군란 때 궁궐을 탈출해 피신했던 명성황후(明成皇后.1851-1895)의 51일간의 피난일기가 발견됐다. 2006.06.30일 대전시 향토사료관은 지난 5월초 대전의 한 집안에서 기증한 유물을 정리하는 과정에서 임오군란때 충북 충주 등지로 피신한 명성황후의 행적이 담긴 ’임오유월일기(壬午六月日記.이하 임오일기)’를 발견했다고 밝혔다.


임오일기는 임오군란이 일어나 명성황후가 궁궐을 빠져나온 직후인 1882년 6월 13일부터 환궁을 하던 8월 1일까지의 피신생활 중 명성황후가 만난 인물, 식사내용, 몸상태, 이동 경로 등이 상세히 적혀있다.


일기에는 명성황후가 피난생활로 인한 피로감 탓인지 목구멍 병과 다리 부스럼 병을 앓았다는 기록과 약재를 처방한 내용, 궁으로 서신을 보냈다는 내용 등이 명성황후의 일거수일투족이 간략하지만 자세하게 남겨져 있다. 또 한 곳에 머물렀을 것으로 추정했던 이전 학설과는 달리 7-8군데로 거처를 옮기며 고된 피난생활을 했던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일기 내용 중 청나라 군대가 조선에 들어왔을 때 붙인 방문을 시종에게 적어오라고 명했다는 부분도 있어 흥선대원군과 대립각을 이룬 명성황후가 피난 중 청나라에 군사적 요청을 했다는 일부 학설에 제동을 걸기도 한다. 다음은 임오일기 내용의 일부이다.


’6월13일. 맑음. 2경(更)쯤 중궁 전하께서 벽동 익찬 민응식 집에 가셨다. 옥후가 인후증세로 편찮으셨다. 박하유를 올렸다.’


’6월17일. 맑고 더웠다. 소나기가 왔다. 그대로 머무르셨다. 감길탕 한 첩, 박하탕에 용뇌를 타서 올리니 드셨다. 다리 부스럼 난 곳에 고름이 생겨 고약을 붙여 드렸다.’


’7월16일. 청나라 군사들이 내건 방문을 경성에서 어떤 사람이 베껴왔다.’


’8월1일. 아침 평진탕을 한첩 올렸다. 묘시에 움직이셔서 신원에 이르셨다. 어군막에 머무르시다 신시에 환궁하셨다.’


임오일기를 쓴 인물이 누구인지는 밝혀지지 않았으나 명성황후가 궁궐을 빠져나온 직후부터 환궁하기까지 기록됐고 피난 중 명성황후의 일거수일투족을 상세히 적혀있는 점으로 미뤄 명성황후를 직접 모신 민씨 일가 중 한 사람이었을 것으로 보인다.


그동안 명성황후의 임오군란시 피난행적은 승정원일기(承政院日記) 등에서 명성황후와 친척관계인 충주의 민응식(閔應植)의 집 등으로 몸을 피했다는 짧은 내용이 전부였다. 임오일기는 8페이지 분량으로 크기는 가로 14.7㎝, 세로 20㎝로 일부는 훼손된 상태로 충주에서 대전으로 건너온 민응식의 딸의 후손들이 대전시 향토사료관에 기탁한 191건 279점의 유물에 포함된 것이다.


양승률 학예연구사는 “임오군란시 명성황후에 대한 가장 상세한 기록으로 당시 상황을 이해하는데 매우 중요한 사료”라며 “100여년 전이지만 단절된 근대사를 재조명할 중요한 자료가 될 것”이라고 평가했다.

 

대전=연합뉴스 입력 : 2006.0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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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세상을 여는 인간 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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