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三國).고려

[스크랩] 김유신 장군 태실

마도러스 2006. 7. 1. 16:59
김유신 장군 태실

김유신 장군의 태실(胎室)이 왜 충북 진천에 있는지 의아해하는 사람이 많다. 김유신의 부친 김서현(金舒玄)은 신라 왕족 숙흘종(肅訖宗)의 딸 만명(萬明)과 서로 사랑했으나 만명 집안에서 가야계(系)란 이유로 반대했다.
 
서현의 조부는 금관가야의 마지막 임금 구해왕(九亥王·구형왕[仇衡王]이라고도 한다)으로, 신라 법흥왕에게 투항해 진골로 편입되었으나 서라벌 출신들은 망국(亡國)의 왕손을 내심 진골로 인정하지 않았다. ‘삼국사기’ 김유신열전은 서현과 만명의 결합을 ‘야합(野合)’이라고 표현하고 있는데, 처부모의 허락을 받지 못한 서현이 임신한 만명과 도주한 곳이 충청도 진천이었다.
 

서현에게 화성(火星)과 토성(土星)이 내려오고, 만명에게 금갑(金甲) 입은 동자가 구름을 타고 들어오는 태몽과 함께 김유신이 태어났지만, 가야계란 굴레를 벗을 수는 없었다. 게다가 가야계는 늘 전쟁에 나서야 했다. 김유신의 조부 김무력(金武力)과 부친이 전쟁터를 전전해야 했던 것이 이를 말해 준다.

 

하지만 김유신은 이런 운명에 도전했다. 김유신은 가야계로 무적군대를 만들었고, 끝내 신라 사회의 주류가 되어 자신의 인생뿐만 아니라 역사 자체를 바꾸었다. ‘삼국유사’왕력(王歷)조는 태종무열왕부터 ‘진골이자 하고(下古)’라고 적고 있는데, 김유신의 피가 섞인 하고(下古) 왕계(王系)는 가장 강한 왕권을 구가했다. 인신(人臣)으로서 유례없이 흥무대왕(興武大王)으로 추증된 김유신의 일생은 한 인간이 운명과 싸워 어디까지 이를 수 있는가를 보여준 것으로 입지전(立志傳)이란 말로도 설명이 부족하다.

 

최근 김유신 장군의 태실에 태반과 탯줄을 먹는 황동 호랑이가 묻힌 사건이 발생했다. 모든 동양사상의 핵심은 공자의 말대로 “순천자(順天者)는 존(存)하고 역천자(逆天者)는 망(亡)한다”는 것이다. 선행(善行)을 하면 하늘의 감응을 받아 복(福)을 받고 악행(惡行)을 하면 벌을 받는 것이다. 생전의 불효자가 명당에 묘를 썼다고 복 받는 사례가 존재하지 않는 것은 이 때문이다. 하물며 남의 태실을 훼손하고서 어찌 원하는 복을 얻겠는가? 이덕일 역사평론가 , 조선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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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세상을 여는 인간 꽃
글쓴이 : 난초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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