뺏긴 역사찾자

■ 고조선과 관련된 사서(史書)가 일본 왕실 도서관에 가득

마도러스 2006. 6. 17. 14:34

■ 고조선과 관련된 사서(史書)가 일본 왕실 도서관에 가득

    

고조선(古朝鮮)과 단군(檀君)에 관련된 사서(史書)가 일본 왕실 도서관에 가득하다고 한다.1933년-1945년까지 12년간 일본 궁내청 황실도서관에서 한국 상고사 관련 사서를 분류하는 일을 담당했고, 한국 상고사에 해박한 지식을 갖고 있던 박창화(朴昌和, 1962년 사망)씨가 이 사실을 서울대 명예교수 최기철(崔基哲)씨에게 털어놨으며, 최교수는 최근에서야 이 사실을 언론에 공개했다고 한다.

 

조선 총독부 초대총독 데라우치 마사다케의 명령에 의해, 1910년 11월부터 1년 2개월 동안 고사서(古史書) 51종 20여 만 권을 약탈당했으며, 단군 조선 역사와 그 이전의 상고사(上古史)가 이 때 소실됐다고 한다. 문정창씨의 "군국일본 조선강점 36년사" 책에서도 똑같은 사실을 밝혀주고 있다. 일제(日帝)는 불온(不穩)서적 수거 등의 명분을 내걸고 20여만 권의 상고사서(上古史書)를 빼았아 갔으며, 지금 일본 왕실 도서관에는 그 때 강탈된 수많은 상고사서가 숨겨져 있다는 것이다.


2000년 12월 16일 KBS 역사스페셜에서는 일제(日帝)에 의한 우리민족 역사 조작 사실에 대해서 자세히 방영한 바 있다. 일제(日帝)는 36년간 조선(朝鮮)을 식민지(植民地) 통치하면서 수많은 우리의 역사책을 불살라 태워 버렸으며, 귀중한 사서(史書)는 모두 강탈하여 가져갔고, 일본 왕실 도서관에 잘 보관해 놓았다. 그리고, 그들은 우리의 역사적 사료(史料)들을 그들이 조선을 쉽게 식민지 통치할 수 있도록 조작시켜 놓았다. 식민지 사관(史觀)을 만들어 놓은 것이다. 일제(日帝)에 의한 삼국유사의 기록 조작과 광개토대왕비의 기록 변조는 널리 알려져 있는 사실들이다.

 

환국(桓國, BC 7,199-3,898), 배달국(倍達國, BC 3,898-2,333), 고조선(古朝鮮, BC 2,333-238)으로 이어지는 한민족의 뿌리를 거세하고자 일제(日帝)는 삼국유사(三國遺事)의 기록 중에서 "석유환국(昔有桓國), 즉 옛날에 환국(桓國, BC 7,199-3,898)이라는 나라가 있었다." 라는 대목을 "석유환인(昔有桓因), 즉 옛날에 환인이라는 왕이 있었다." 라고 변조시켜 놓았다. 환국(桓國, BC 7,199-3,898)이라는 역사적 존재가 없어지고, 환인(桓因)이라는 일개 왕(王)이 존재했었다라고 하여 우리의 유구한 역사를 완전히 거세(去勢)시켜 놓았다.

 

또한, 일제(日帝)는 광개토대왕비(廣開土大王碑)의 기록도 변조시켜 놓았다. 광개토대왕비(廣開土大王碑)는 중국 지린성(吉林省) 지안현(集安縣) 퉁거우(通溝)에 있는 고구려 제19대 광개토대왕의 능비(陵碑)이다. A.D 414년 고구려 광개토대왕의 아들 장수왕이 세운 것으로, 한국에서 가장 큰 비석이다. 능비(陵碑)의 내용은 고구려의 건국과 역사 그리고 광개토대왕의 업적 및 대외 정복사업 사실들이 담겨져 있다.

 

그런데, 일제(日帝)는 이들의 내용을 완전히 조작해 놓았다.

첫째,『왜구대궤(倭寇大潰), 즉 고구려군에게 왜구가 궤멸되었다.』라는 기록을 완전히 조작하여, 『왜만왜궤(倭滿倭潰), 즉 왜가 신라성에 가득하고 왜가 신라를 궤멸했다.』라고 고쳐 놓았다.

 

둘째, "後以辛卯年, '不貢因破, 百倭羅, 以以爲臣, 즉 백제와 신라는 예로부터 고구려의 속국으로 조공을 바쳐 왔는데, 그뒤 신묘년(331)부터 조공을 바치지 않으므로, 고구려가 백제.왜구.신라를 파(破)해 신민(臣民)으로 삼았다." 라는 내용을

"倭以辛卯年, 來渡海破, 百殘羅, 以以爲臣, 즉 신묘년(331) 왜(倭)가 바다를 건너 와서, 백제와 신라를 파해 신민(臣民)으로 삼았다." 라는 내용으로 조작해 놓았다. 이를 근거로 일제(日帝)의 학자들은 임나일본부(任那日本府), 즉 임나(가락국)의 자리에 일본 정부를 세워 200년간(4세기 말엽-6세기 중엽) 가야와 백제 및 신라를 다스렸다는 논리를 전개하였다.

 

1972년 재일(在日) 사학자 이진희(李進熙)는, 광개토대왕비(廣開土大王碑) 비문이 일제에 의해 파괴되고 3차의 석회도부(石灰塗付) 작업이 있었다는 사실 등을 들어, 문제의 비문 중 왜(倭) 이하 도(渡).해(海).파(破) 등 4자를 믿을 수 없다고 하였다. 또한 1972년 사에키 유세이(佐伯有淸)도 일제(日帝)의 참모본부가 비밀리에 이 문제에 개입한 전말을 폭로하기도 하였다. 1981년 이 비문을 연구해 온 이형구(李亨求)는 비문 자형(字型)의 짜임새[結構], 좌우행과의 비교에서 나오는 자체(字體)의 불균형 등을 들어, ‘倭'는 ‘後'를, ‘來渡海破'는 ‘不貢因破'를 일본인이 위작(僞作)한 것이라고 지적하였다.


한국을 흔히 ‘조용한 아침의 나라' 혹은 '은둔의 나라'라고 서양 사람들이 얘기하고 있다. 이렇게 알려진 한국의 이미지는 18세기 일본에 온 서양선교사들에 의해 잘못 만들어진 것이다. 인도의 시성(詩聖) 타고르(Tagore)는 한국을 일컬어 ‘아시아의 황금시대에 동방을 밝혔던 등불'이라고 했고, 루마니아의 소설가이며 25시의 작가인 게오르규(Gheorghiu, 1916-1992)는 그의 책에서 ‘한국은 이 세상 모든 사람들에게 훌륭한 본보기가 되어 줄 것이다.'라고 했으며, 한국은 단순한 반도가 아니라 이 세상을 아름답게 만들기 위한 ‘아시아 대륙의 귀걸이?라고 높이 평가한 바 있다.

 

타고르(Tagore)는 아시아인으로는 최초로 1922년 노벨 문학상을 수상했으며, 인도와 비슷한 시기에 식민 치하에서 신음하던 한국인에 대한 애정과 관심이 남다른 사람이었다. 다음은 타고르가 1929년 일본에 들렀을 때, 동아일보 기자가 타고르의 한국 방문을 요청하자 이에 응하지 못함을 미안하게 여기면서 그 대신 동아일보에 기고한 『동방의 등불』이란 시(詩)이다.

 

"일찍이 아시아의 빛나는 황금시대에, 코리아는 그 등불을 밝힌 한 주인공이었다. 그 등불이 다시 켜지는 날, 동방은 찬란히 세계를 비치리라. 마음엔 두려움이 없고 머리는 높이 쳐들린 곳, 지식은 자유스럽고 좁다란 담벽으로, 세계가 조각조각 갈라지지 않은 곳, 진실의 깊은 속에서 말씀이 솟아나는 곳, 끊임없는 노력이 완성을 향해 팔을 벌리는 곳, 지성의 맑은 흐름이 굳어진 습관의 모래 벌판 위에 길을 잃지 않는 곳, 무한히 퍼져 나가는 생각과 행동으로, 우리들의 마음이 인도되는 곳, 그런 자유의 조국으로, 그런 자유의 천국으로, 내 마음의 조국 코리아여, 깨어나소서!".

 

타고르(Tagore)가 말한 것처럼 한국은 아시아의 빛나는 황금시대를 다시 개척하고, 개벽(開闢)의 세상을 찬란하게 개척해 낼 것이다. 게오르규(Gheorghiu)가 말한 것처럼 한국은 아시아 대륙의 귀걸이로서 세상을 아름답게 만들 것이다. 2002년 월드컵의 함성이 세상 사람들을 이미 깜짝 놀라게 했고, 다가오는 개벽의 파도는 세상 위의 모든 것을 흔들어 깨울 것이며, 환하게 비추어 오는 광명의 새로운 문명은 세상 위의 모든 것들을 춤추게 할 것이다.

   

   

■ 우리 배달(倍達) 민족의 역사는 9,200년이다.

    

 우리 배달 민족의 환국(桓國, BC 7,199-3,897), 배달국(倍達國, BC 3,897-2,333). 고조선(古朝鮮, BC 2,333-238) 문화는 중국의 (. 재위BC 2,357-2,258), (. 재위BC 2,255-2,208), (, BC 2,205-1,766), (, BC 1,600-1,046), (, BC 1,046-771) 문화의 뿌리이다. 우리 배달(倍達민족 문화가 중국 문화의 뿌리이다우리 민족의 역사가 환국(桓國, BC 7,199-3,897), 배달국(倍達, BC 3,897-2,333), 고조선(古朝鮮, BC 2,333-238). 부여.옥저.동예.낙랑국. 마한.변한.진한고구려.백제.신라로 이어져서 무려 9,200이나 된다환국(桓國, BC 7,199-3,897)의 장자국(長子國) 배달국(倍達國)이었고배달국(倍達國, BC 3,897-2,333)의 장자국(長子國) 고조선(古朝鮮, BC 2,333-238)이었음을 비추어 볼 때, 우리 배달(倍達)민족과 한국이 세계 4대 문명의 정통성을 이어 받은 민족이며 나라임을 알 수 있다.

 

 '신시(神市) 개천경(開天經)' 기록에 의하면환국(桓國)의 말엽에 환웅(桓雄)이 있었다그는 홍익인간(弘益人間), 재세이화(在世理化), 광명이세(光明理世)의 뜻을 간직하고 있었다환웅(桓雄)은 동방 땅 백두산(白頭山)에 문명 개척단 3,000명과 함께 배달국(倍達, BC 3,897-2,333)을 건설하였다배달국(倍達, BC 3,897-2,333) 신시 배달[神市 백두산, 1-13대 환웅] 청구 배달[靑丘 산동성.태산(泰山), 14-18대 환웅] 시대로 나누어진다. 배달국(倍達)의 환웅(桓雄)이 북만주와 대진국(발해) 연안의 땅에 뛰어난 석공예와 질공예를 남겼는데, 이것을 배달(倍達, BC 3,897-2,333) 환웅(桓雄) '홍산(紅山) 문화'라고 한다.

 

 배달국(倍達國, BC 3,897-2,333) 홍산(紅山) 문화는 1920년대 프랑스 에밀 리쌍(Emile Licent)이 요서 지방 츠펑 (적봉赤峰) 지역에서 처음 발굴 시작하여 1922년부터 1924년 사이에 신석기 유적지 22곳을 발견하였고, 요서 지방 홍산(紅山) 문화의 소하서 지역 유적에서 발견된 가장 오래된 신석기 문화는 최고 8,500년 전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이들 유적은 '인류 최고(最古) 신석기 문화'로 규정되고 있다. 1930년대 중국 철학자 양계초의 아들 양사영이 홍산(紅山) 유적지를 조사한 이래, 많은 학자들이 연구에 뛰어 들었다. 그 후, 중국 정부에서 대대적으로 발굴하였는데, 1980년대에 홍산(紅山) 문화의 대표적인 유적지인 우하량 유적이 발굴되어 전세계가 깜짝 놀랐다. 이 곳에서 나오는 유물들은 중국의 황하 문명(BC 3,000-2,500) 보다 2-3천년 앞 서 있었고, 유적과 유물들을 자세히 살펴보면, 그 지역의 문명은 이미 국가 단계의 구비 조건을 모두 갖춘 5의 문명이었기 때문이다.

 

 배달국(倍達國, BC 3,897-2,333) 홍산(紅山) 문화의 유적과 유물들은 세계 문명의 발상지라고 꼽히는 이집트. 메소포타미아. 인더스. 황하 문명 보다 훨씬 앞 선 문명 형태였기 때문이다. 예를들면, 홍산 문화의 소하서 지역 유적들은 무려 8,500년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결론적으로 배달국(倍達國, BC 3,897-2,333) 홍산(紅山) 유적지 발굴은 세계 문명사를 다시 쓰게 하는 엄청난 사건이다. 최근에도 중국은 동북(東北공정의 일환으로 이 곳을 계속 발굴하고 있다. 지중해 문명 (이집트 문명, 에게 문명, 그리스 로마 문명)이 서양 문명에 자양분을 공급했듯이, 동이족(東夷族)이 발해 연안에서 창조한 배달국(倍達國, BC 3,897-2,333) 홍산(紅山) 문화는 중국은 물론 만주. 한반도. 일본의 고대 문명을 일궈주었다.

 

 현재, 중국은 배달국(倍達國, BC 3,897-2,333) 홍산(紅山) 문화 요하(遼河문명이라고 하여 자기네 역사 유적이라고 우기고 있지만, 그 유적지의 위치와 문명 양식 등을 보면동이족(東夷族배달(倍達)의 문화 양식임에는 어쩔 수가 없다. 중국이 만주의 홍산(紅山) 유적지 문화를 자기네 것이라고 우기는 것은 마치 송곳을 주머니 속에 넣고 감추는 것과 같다. 결국 밖으로 드러나게 마련이다. 배달국(倍達國, BC 3,897-2,333) 신시 배달(神市 백두산, 1-13대 환웅) 청구 배달(靑丘 산동성.태산(泰山), 14-18대 환웅)로 나누어진다. 배달국(倍達國)의 환웅(桓雄)이 북만주와 대진국(발해) 연안의 땅에 뛰어난 석공예와 질공예를 남겼는데, 이것을 배달(倍達) 환웅(桓雄) '홍산(紅山문화'라고 하는 것이다.

 

 환국(桓國, BC 7,199-3,897)의 신교(神敎) 문화는 고대 문화의 원형이고그 후, 배달국(倍達國)으로 이어졌으며, 환국과 배달국의 문화는 세계 4대 문명의 뿌리가 되었다환국(桓國) 12개 나라 가운데수밀이국 우루국은 그동안 서양에서 최초의 문명족으로 알려져 있던 나라 이름이고, BC 3,500년 전의 고대 메소포타미아(수메르) 문명을 일으킨 나라이다. 최근, 120여 년 동안의 고고학 발굴 결과, 중동의 메소포타미아 지역에서는 BC 3,500년 경에 오늘의 서양 문명의 뿌리인 수메르(Sumer) 문명이 있었고, 이 문명을 건설한 수메르 민족은 동방에서 왔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수메르 문명은 다시 이집트 문명에게 영향을 주었고, 또한 고대 희랍 문화에 영향을 미쳤으며로마 제국을 거쳐 오늘날 서양 문명이 나온 것이다인더스 문명 또한 북방 문명에서 기원했다고 하며배달국(倍達國)의 문화가 유입되어 인더스강 유역에 자리를 잡은 것이다.

 

 근래에 만주에서 동북 공정의 일환으로 요하(遼河) 문명 유적을 발굴하고 있는데요하(遼河문명은 배달(倍達) 문명의 일부이다. '황하 문명' 보다 앞선 유적들이 무수히 쏟아져 나왔다. 중국 당국이 발칵 뒤집혔다. 중국의 황하 문명(BC 3,000-2,500)은 황하강 유역에서 발생했는데, 이것은 북만주와 산동 반도 유역의 배달국(倍達國, BC 3,898-2,333) 문명의 영향을 받아 생겨난 것이다. 배달(倍達 BC 3,898-2,333)의 홍산 문화는 메소포타미아 문명(BC 3,500-2,600). 황하 문명(BC 3,000-2,500). 인더스 문명(BC 2,500년경). 이집트 문명(BC 3,100년경) 보다 앞선 것이며세계 4대 문명에게 영향을 준 것이라는 증거와 유적들이 최근 속속 발굴되고 있다. 한민족의 배달(倍達문명이 중국 민족의 황하 문명 보다 빨랐고, 중국의 황하 문명은 한민족 배달(倍達) 문명을 받아서 생긴 것이라는 역사적 사실들이 속속 드러나고 있다.

 

 우리나라 배달(倍達) 민족이 천제(天祭)  제사(祭祀) 풍습을 중국 한족(漢族)에게 전해줬다배달국(倍達國) 말엽 및 고조선(古朝鮮) 초기에 중국에서 나라를 창업한 사람들 중에서() 임금(나라의 시조). () 임금(나라의 시조). 문왕(나라의 시조). 무왕(왕조 개창). 강태공(병법의 시조, 나라)도 역시 우리 동이족(東夷族)이었다또한, 중국의 건국(建國) 시조(始祖) 삼황오제(三皇五帝)는 전부 우리 동이족(東夷族)이었다삼황(三皇) 태호 복희(太昊伏羲). 염제 신농(炎帝神農). 황제 헌원(黃帝軒轅)을 말하고오제(五帝) 소호 금천전욱 고양제곡 고신. () 임금() 임금을 말한다그들 모두 배달(倍達)민족이었다. 중국의 건국 시조의 8명 중에 우리 민족이 8명으로 전부를 차지한다.

 

 중국은 예로부터 우리나라를 청구(靑丘)라고 했는데, 배달국(倍達國, BC 3,898-2,333) 청구 배달(靑丘, 14-18대 환웅)을 일컫는 말이며, 청구 배달의 문화가 '홍산(紅山) 문화'이다. 그 다음 나라에 이르러고조선(古朝鮮, BC 2,333-238) '단군(檀君) 신화중에는 호랑이와 곰이 나오는데, 실제는 호족(.호랑이) 웅족(.)을 배달(倍達) 동이족(東夷族)이 교화해서 건국한 것을 신화 형태로 기록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