뺏긴 역사찾자

■ 환국(桓國) 시대와 천산(天山) 및 바이칼호(Baikal 湖)

마도러스 2006. 6. 17. 14:34

■ 환국(桓國) 시대와 천산(天山) 및 바이칼호(Baikal 湖)

 

BC 10,000년 경에 구석기 시대가 끝나고 점차 신석기 시대가 전개 되었다. 신석기 시대에는 농경과 목축을 하기 시작했으며, 토기를 사용하고 정착 생활과 촌락을 형성하여 공동체 생활을 하였다. 그리하여, 원시 형태의 국가가 생겨났는데, 그것이 바로 환국(桓國, BC 7,199-3,898)이다. 환국(桓國)과 관련하여 바이칼호 주변의 유적지 발굴이 1960년대 이후에야 본격화되었는데, 극히 최근에야 구체적으로 알려졌다.

 

환단고기(桓檀古記)에 나오는 환국(桓國)의 기록은 유적지 발굴 이전에 기록된 것이다. 그리고, 환단고기(桓檀古記) 문헌의 기록과 고고학적 발굴의 결과가 서로 일치하고 있다고 한다. 고고학적 발굴의 결과와 환단고기(桓檀古記) 기록의 정황이 서로 유사하다는 것이다. 남부 시베리아 바이칼호 주변의 유적지에서 고대(古代)의 유물과 유적지 및 반지하식 주거지가 발굴되고 있다. 이 지역의 유골을 조사해 본 결과, 이 유골이 황인종에 속하는 몽골리안의 것이라고 한다. 환인(桓仁)에 대한 기록과 관련해서, 남부 시베리아 바이칼호 주변의 유적들 중에서 한민족의 선조들이 생활했던 것으로 보이는 흔적들이 발견되고 있다.

 

환단고기(桓檀古記)의 기록에 의하면, 천산(天山.파나류산)에 거(居)하며 득도(得道)하여 장생(長生)하신 인물이 환국(桓國)의 지도자로 추대되었는데, “만인의 아버지”라는 뜻으로 안파견(安巴堅) 환인(桓仁)이라 하였다. 인(仁)은 임(任)의 뜻으로 이것은 자신이 맡은 소임(所任)을 다한다는 뜻이다.

 

환국(桓國) 사람들은 집단적인 신앙생활을 하였는데, 종교의식이 행해졌으며, 제단(祭壇)을 쌓고 제천의식도 행해졌다. 몇 천년이 지난 후 환국의 말기에, 이들은 바이칼호(Baikal )에서 따뜻한 기후와 풍요한 생활 환경을 찾아 자연스럽게 동남쪽으로 이주해 왔다. 그리고, 이들은 동남쪽으로 이동해 오면서 북만주와 백두산 연안에 자리를 잡았고, 환웅(桓雄)이 거느린 문명 개척단 3,000명에 의해 배달국(倍達國)이 건설되었다. 또한, 북만주와 백두산 연안의 발달된 문명은 다시 고조선(古朝鮮)을 세웠으며, 부여(夫餘)고구려(高句麗) 및 대진국(大震國, 일명 발해)로 이어졌다.

 

"인류 문명의 기원과 한(韓)"이란 책에 의하면, 환국(桓國, BC 7,199-3,898)의 환족(桓族)이 광명의 근원지를 따라 따뜻한 기후와 풍요한 생활 환경을 찾아 동남쪽으로 이주해 오면서, 환(桓)이 한(韓)이란 언어로 바뀌고 환(桓)의 정신이 한(韓)의 정신으로 드러났다고 한다.(韓)”이란 말은 7,000년 이상된 언어로서 인류 문명의 시원(始原)과 함께해 온 언어로서 원시문명이 남아있는 곳에서는 어느 곳이나 예외없이 발견되고 있다. “(韓)”이란 말은 신의 이름, 군장(君長), 거룩한 지명 등에 나타나며, 그 퍼져있는 지역도 매우 넓다. 아메리카 인디언의 칸(Kan), 인도 산탈어의 한스한신, 수메르어의 안(An), 몽골어의 칸, 버마 친족의 한, 필리핀 이고로트어의 한 등, 문명이 오래된 민족은 모두 놀라울 정도로 “(韓)”을 자기들 신(神)의 이름으로 사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환단고기(桓檀古記)의 기록에 의하면, 환국(桓國)을 다스리는 최고 지도자를 환인(桓仁)이라 하였는데, 환국(桓國)의 역사는 모두 7대의 환인(桓仁)에 의해 다스려졌다고한다. 환국(桓國)의 7대 환인(桓仁)은 다음과 같다. 제1세 안파견(安巴堅) 환인(桓仁), 제2세 혁서(赫胥) 환인(桓仁), 제3세 고시리(古是利) 환인(桓仁), 제4세 주우양(朱于襄) 환인(桓仁), 제5세 석제임(釋提壬) 환인(桓仁), 제6세 구을리(邱乙利) 환인(桓仁), 제7세 지위리(智爲利) 환인(桓仁). 또한, 환국(桓國)은 모두 12개의 나라로 구성되어 있었다고 하는데 다음과 같다. 1) 수밀이국(須密爾國), 2) 객현한국(客賢汗國), 3) 우루국(虞婁國), 4) 구막한국(寇莫汗國), 5) 구다천국(勾茶川國), 6) 구모액국(勾牟額國), 7) 선비국(鮮裨國), 8) 비리국(卑離國), 9) 양운국(養雲國), 10) 일군국(一群國), 11) 매구여국(賣勾餘國), 12) 사납아국(斯納阿國).

  

  

■ 우리 배달(倍達) 민족의 역사는 9,200년이다.

    

 우리 배달 민족의 환국(桓國, BC 7,199-3,897), 배달국(倍達國, BC 3,897-2,333). 고조선(古朝鮮, BC 2,333-238) 문화는 중국의 (. 재위BC 2,357-2,258), (. 재위BC 2,255-2,208), (, BC 2,205-1,766), (, BC 1,600-1,046), (, BC 1,046-771) 문화의 뿌리이다. 우리 배달(倍達민족 문화가 중국 문화의 뿌리이다우리 민족의 역사가 환국(桓國, BC 7,199-3,897), 배달국(倍達, BC 3,897-2,333), 고조선(古朝鮮, BC 2,333-238). 부여.옥저.동예.낙랑국. 마한.변한.진한고구려.백제.신라로 이어져서 무려 9,200이나 된다환국(桓國, BC 7,199-3,897)의 장자국(長子國) 배달국(倍達國)이었고배달국(倍達國, BC 3,897-2,333)의 장자국(長子國) 고조선(古朝鮮, BC 2,333-238)이었음을 비추어 볼 때, 우리 배달(倍達)민족과 한국이 세계 4대 문명의 정통성을 이어 받은 민족이며 나라임을 알 수 있다.

 

 '신시(神市) 개천경(開天經)' 기록에 의하면환국(桓國)의 말엽에 환웅(桓雄)이 있었다그는 홍익인간(弘益人間), 재세이화(在世理化), 광명이세(光明理世)의 뜻을 간직하고 있었다환웅(桓雄)은 동방 땅 백두산(白頭山)에 문명 개척단 3,000명과 함께 배달국(倍達, BC 3,897-2,333)을 건설하였다배달국(倍達, BC 3,897-2,333) 신시 배달[神市 백두산, 1-13대 환웅] 청구 배달[靑丘 산동성.태산(泰山), 14-18대 환웅] 시대로 나누어진다. 배달국(倍達)의 환웅(桓雄)이 북만주와 대진국(발해) 연안의 땅에 뛰어난 석공예와 질공예를 남겼는데, 이것을 배달(倍達, BC 3,897-2,333) 환웅(桓雄) '홍산(紅山) 문화'라고 한다.

 

 배달국(倍達國, BC 3,897-2,333) 홍산(紅山) 문화는 1920년대 프랑스 에밀 리쌍(Emile Licent)이 요서 지방 츠펑 (적봉赤峰) 지역에서 처음 발굴 시작하여 1922년부터 1924년 사이에 신석기 유적지 22곳을 발견하였고, 요서 지방 홍산(紅山) 문화의 소하서 지역 유적에서 발견된 가장 오래된 신석기 문화는 최고 8,500년 전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이들 유적은 '인류 최고(最古) 신석기 문화'로 규정되고 있다. 1930년대 중국 철학자 양계초의 아들 양사영이 홍산(紅山) 유적지를 조사한 이래, 많은 학자들이 연구에 뛰어 들었다. 그 후, 중국 정부에서 대대적으로 발굴하였는데, 1980년대에 홍산(紅山) 문화의 대표적인 유적지인 우하량 유적이 발굴되어 전세계가 깜짝 놀랐다. 이 곳에서 나오는 유물들은 중국의 황하 문명(BC 3,000-2,500) 보다 2-3천년 앞 서 있었고, 유적과 유물들을 자세히 살펴보면, 그 지역의 문명은 이미 국가 단계의 구비 조건을 모두 갖춘 5의 문명이었기 때문이다.

 

 배달국(倍達國, BC 3,897-2,333) 홍산(紅山) 문화의 유적과 유물들은 세계 문명의 발상지라고 꼽히는 이집트. 메소포타미아. 인더스. 황하 문명 보다 훨씬 앞 선 문명 형태였기 때문이다. 예를들면, 홍산 문화의 소하서 지역 유적들은 무려 8,500년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결론적으로 배달국(倍達國, BC 3,897-2,333) 홍산(紅山) 유적지 발굴은 세계 문명사를 다시 쓰게 하는 엄청난 사건이다. 최근에도 중국은 동북(東北공정의 일환으로 이 곳을 계속 발굴하고 있다. 지중해 문명 (이집트 문명, 에게 문명, 그리스 로마 문명)이 서양 문명에 자양분을 공급했듯이, 동이족(東夷族)이 발해 연안에서 창조한 배달국(倍達國, BC 3,897-2,333) 홍산(紅山) 문화는 중국은 물론 만주. 한반도. 일본의 고대 문명을 일궈주었다.

 

 현재, 중국은 배달국(倍達國, BC 3,897-2,333) 홍산(紅山) 문화 요하(遼河문명이라고 하여 자기네 역사 유적이라고 우기고 있지만, 그 유적지의 위치와 문명 양식 등을 보면동이족(東夷族배달(倍達)의 문화 양식임에는 어쩔 수가 없다. 중국이 만주의 홍산(紅山) 유적지 문화를 자기네 것이라고 우기는 것은 마치 송곳을 주머니 속에 넣고 감추는 것과 같다. 결국 밖으로 드러나게 마련이다. 배달국(倍達國, BC 3,897-2,333) 신시 배달(神市 백두산, 1-13대 환웅) 청구 배달(靑丘 산동성.태산(泰山), 14-18대 환웅)로 나누어진다. 배달국(倍達國)의 환웅(桓雄)이 북만주와 대진국(발해) 연안의 땅에 뛰어난 석공예와 질공예를 남겼는데, 이것을 배달(倍達) 환웅(桓雄) '홍산(紅山문화'라고 하는 것이다.

 

 환국(桓國, BC 7,199-3,897)의 신교(神敎) 문화는 고대 문화의 원형이고그 후, 배달국(倍達國)으로 이어졌으며, 환국과 배달국의 문화는 세계 4대 문명의 뿌리가 되었다환국(桓國) 12개 나라 가운데수밀이국 우루국은 그동안 서양에서 최초의 문명족으로 알려져 있던 나라 이름이고, BC 3,500년 전의 고대 메소포타미아(수메르) 문명을 일으킨 나라이다. 최근, 120여 년 동안의 고고학 발굴 결과, 중동의 메소포타미아 지역에서는 BC 3,500년 경에 오늘의 서양 문명의 뿌리인 수메르(Sumer) 문명이 있었고, 이 문명을 건설한 수메르 민족은 동방에서 왔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수메르 문명은 다시 이집트 문명에게 영향을 주었고, 또한 고대 희랍 문화에 영향을 미쳤으며로마 제국을 거쳐 오늘날 서양 문명이 나온 것이다인더스 문명 또한 북방 문명에서 기원했다고 하며배달국(倍達國)의 문화가 유입되어 인더스강 유역에 자리를 잡은 것이다.

 

 근래에 만주에서 동북 공정의 일환으로 요하(遼河) 문명 유적을 발굴하고 있는데요하(遼河문명은 배달(倍達) 문명의 일부이다. '황하 문명' 보다 앞선 유적들이 무수히 쏟아져 나왔다. 중국 당국이 발칵 뒤집혔다. 중국의 황하 문명(BC 3,000-2,500)은 황하강 유역에서 발생했는데, 이것은 북만주와 산동 반도 유역의 배달국(倍達國, BC 3,898-2,333) 문명의 영향을 받아 생겨난 것이다. 배달(倍達 BC 3,898-2,333)의 홍산 문화는 메소포타미아 문명(BC 3,500-2,600). 황하 문명(BC 3,000-2,500). 인더스 문명(BC 2,500년경). 이집트 문명(BC 3,100년경) 보다 앞선 것이며세계 4대 문명에게 영향을 준 것이라는 증거와 유적들이 최근 속속 발굴되고 있다. 한민족의 배달(倍達문명이 중국 민족의 황하 문명 보다 빨랐고, 중국의 황하 문명은 한민족 배달(倍達) 문명을 받아서 생긴 것이라는 역사적 사실들이 속속 드러나고 있다.

 

 우리나라 배달(倍達) 민족이 천제(天祭)  제사(祭祀) 풍습을 중국 한족(漢族)에게 전해줬다배달국(倍達國) 말엽 및 고조선(古朝鮮) 초기에 중국에서 나라를 창업한 사람들 중에서() 임금(나라의 시조). () 임금(나라의 시조). 문왕(나라의 시조). 무왕(왕조 개창). 강태공(병법의 시조, 나라)도 역시 우리 동이족(東夷族)이었다또한, 중국의 건국(建國) 시조(始祖) 삼황오제(三皇五帝)는 전부 우리 동이족(東夷族)이었다삼황(三皇) 태호 복희(太昊伏羲). 염제 신농(炎帝神農). 황제 헌원(黃帝軒轅)을 말하고오제(五帝) 소호 금천전욱 고양제곡 고신. () 임금() 임금을 말한다그들 모두 배달(倍達)민족이었다. 중국의 건국 시조의 8명 중에 우리 민족이 8명으로 전부를 차지한다.

 

 중국은 예로부터 우리나라를 청구(靑丘)라고 했는데, 배달국(倍達國, BC 3,898-2,333) 청구 배달(靑丘, 14-18대 환웅)을 일컫는 말이며, 청구 배달의 문화가 '홍산(紅山) 문화'이다. 그 다음 나라에 이르러고조선(古朝鮮, BC 2,333-238) '단군(檀君) 신화중에는 호랑이와 곰이 나오는데, 실제는 호족(.호랑이) 웅족(.)을 배달(倍達) 동이족(東夷族)이 교화해서 건국한 것을 신화 형태로 기록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