뺏긴 역사찾자

■ 환단고기(桓檀古記)에 의한 한국 상고사(上古史)

마도러스 2006. 6. 17. 14:32

■ 환단고기(桓檀古記)에 의한 한국 상고사(上古史) 

 

한국(韓國)은 인류문화의 시원(始原)국가이다. 우리나라 문화가 인류문화의 모태(母胎)이다. 우리민족의 역사가 환국(桓國, B.C7,199-3,898), 배달국(倍達國, B.C3,898-2,333), 고조선(古朝鮮, B.C2,333-238)에 이르기 까지 무려 9,200년이나 된다.

 

다음은 우리나라의 뿌리가 되는 환국(桓國), 배달국(倍達國), 고조선(古朝鮮)의 역사를 개괄적으로 살펴본 것이다.

 

첫째, 환국(桓國, BC7,199-3,898)에 대해 살펴보면, 환국(桓國)은 약 9,200년전, 신석기 시대에 세워진 인류 최초의 국가이며, 위치는 중국 서북부의 텐산산맥, 바이칼호(Baikal lake), 극동시베리아 일대였다. 통치자의 관직명은 환인(桓仁)이며, 환단고기(桓檀古記)의 자료에 의하면 환인(桓仁)은 7대(代)에 걸쳐 이어졌다고 한다. 7명의 환인(桓仁)은 안파견(1세). 혁서(2세). 고시리(3세). 주우양(4세). 석제임(5세). 구을리(6세). 지위리(7세) 등이다. 환국(桓國)은 12개의 분국(分國)으로 구성되어 있었는데, 수밀이국. 구막한국. 객현한국. 선비국. 비리국. 양운국. 구다천국. 일군국. 우루국. 사납아국. 매구여국. 구모액국 등이었다고 한다. 수밀이국은 나중에 수메르 문명(메소포타미아 문명)을 일으키는 토대가 된다. 환(桓)의 뜻은 ‘환하다’는 뜻의 광명정신을 담고 있다.

 

둘째, 배달국(倍達國,B.C3,898-2,333)에 대해 살펴보면, 배달국(倍達國)은 약 6,000년전 신석기 문화가 발달하면서 환국(桓國)의 말기에 각 분국(分國)들이 분열하기 시작하자, 환웅(桓雄) 천황(天皇)이 지위리 환인(7세 환인)으로부터 “홍익인간(弘益人間)하고, 개천입교 (開天立敎)하라.”라는 명을 받고, 제세핵랑군(濟世核郞軍)이라는 문명개척단을 이끌고 백두산 신시(神市)에 환족(桓族)과 웅족(곰족, 온화한 부족)을 중심으로 배달국(倍達國)을 개창했으며, 나중에 호족(호랑이족, 탐욕스런 부족)을 흡수하게 되었다고 한다. 이것은 나중에 단군신화의 바탕이 되었다. 통치자의 관직명은 환웅(桓雄)이며, 환웅(桓雄)은 18대(代)에 걸쳐 계속 이어졌다고 한다. 18대의 환웅(桓雄)은 배달(1세), 거불리(2세)....자오지(치우)(14세)....혁다세(17세), 거불단(18세) 등이며, 배달국(倍達國) 이후 우리민족을 배달민족(倍達民族)이라고 불리우는 계기가 되었다. 배달국(倍達國)은 신시배달(神市,1~13대 환웅)과 청구배달(靑丘,14대~18대 환웅)로 나누는데, 신시(神市)배달은 제1대 배달(倍達) 환웅(桓雄)께서 B.C 3,898년 백두산 신시(神市)에 개국한 것을 말하고, 청구(靑丘)배달은 제14대 치우(蚩尤) 천황께서 B.C.2,707년에 재위에 오른 후, 청구(靑丘) 즉 지금의 만주산동반도 태산(泰山)아래로 도읍을 옮긴 것을 말한다. 신시(神市)는 서불로도 불리다가 서라벌(서불의 사투리)로 바뀌었고, 결국 오늘날의 서울이란 말로 바뀌었다고 한다. 또한, 중국이 우리나라를 예로부터 청구(靑丘)라고 불렀는데, 배달국의 청구(靑丘) 시대의 영향 때문이다. 

 

셋째, 고조선(古朝鮮,BC 2,333-238)에 대해 살펴보면, 약 4,500년전, 청동기 시대에 환국(桓國)과 배달국(倍達國)의 정신을 이어받아 초대 단군(檀君)왕검께서 송화강에 도읍을 정하였다고 한다. 송화강 유역은 지금의 평양이 아닌 옛날의 평양지역, 즉 지금의 하얼빈(哈爾濱) 유역이다. 고조선(古朝鮮)은 삼한(三韓) 관경제(官境制)에 의해 나라를 다스렸는데, 고조선의 영토를 진한(만주), 번한(요서.북경일대), 마한(한반도)로 나누어 다스렸다. 고조선(古朝鮮)은 고대의 왕성한 문명국가였는데, 화폐제도, 조세제도, 토지제도, 책력법, 법률제도, 역(易)철학, 음양오행 사상, 문자(가림토 문자, 고대신지문) 등의 체계적인 문명국가의 면모를 갖추고 있었다. 단군(檀君)은 47대(代)에 걸쳐 이어졌다고 한다. 47대의 단군(檀君)은 초대 단군 왕검(단군1세), 부루(단군2세), 가륵(3세)....여루(45세), 보을(46세), 고열가(47세) 등이다. 환단고기(桓檀古記)라는 책은 매우 최근에 발견된 책인데, 환단고기(桓檀古記)의 기록 중에서 단군 제13세 즉 흘달 단군 50년, BC 1733년에 있었다는 5성취루(五星聚婁) 현상들이 서울대학교 박창범(朴昌範) 교수 등의 연구와 부합됨에 따라 환단고기(桓檀古記)에 의한 고대(古代)의 기록들은 점점 설득력을 얻어 가고 있다.  

 

구한말(舊韓末)의 민족사학자 이기(李沂,1848-1909)선생이 있었는데, 그는 1909년 3월 16일 단(檀)학회를 창단하고, 상고사(上古史)의 역사 자료를 모으기 시작했다. 1910년, 조선(朝鮮)이 망하자, 1911년 이기(李沂,1848-1909)선생의 제자 계연수(?-1920) 선생이 묘향산에 들어가 그동안의 자료들을 모아서 펴낸 책이 "환단고기(桓檀古記)"라는 책이다.『환단고기(桓檀古記)』는 삼성기(三聖記). 단군세기(檀君世紀). 북부여기(北夫餘記). 태백일사(太白逸史) 등의 4권의 책으로 되어있다. 환단고기(桓檀古記)는 이기(李沂) 선생의 혼이 서린 역사서이며, 민족적 비극이 담긴 책이기도 하다. 계연수(?-1920) 선생은 1919년 3.1운동 이후 만주로 망명하여 독립운동을 하다가 그 곳에서 죽은 애국지사였다.

 

"환단고기(桓檀古記)"는 단(檀)학회를 통해 가끔씩 소개되었으며, 1960년대 초에 이유립의『커발한 』지에도 소개 됐었다. 그러나. 1960년대까지 우리사회는 근대화 내지 서구화에만 관심이 쏠려 우리역사에는 관심이 약했다. 그러다가 1980년대 후반, 일본의 재야 역사학자인 노보루(鹿島昇)란 사람에 의해『환단고기(桓檀古記)』가 일본어로 번역되어 출판이 되자, 드디어, 세상에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환단고기(桓檀古記)』를 읽어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흥분을 감추지 못하고 우리에게 이렇게 훌륭한 역사가 있었는데, 왜 지금까지 우리가 모르고 있었단 말인가 하고 분노(憤怒)해 한다. 삼국유사와 삼국사기 밖에 몰랐던 사람들에게 『환단고기(桓檀古記)』의 출현은 충격적인 사건이 아닐 수 없다.

 

구한말(舊韓末)의 민족사학자 신채호(申采浩,1980-1936) 선생은 “사대주의(事大主義)라는 쥐구멍으로 우리 역사를 보고 있다.”라고 지적한 바 있다. 우리민족으로서 중국을 통일하고 통치한 왕조가 중국사로 편입된 것은 청나라 건륭제 때였으니, 그 후로 우리는 우리 역사를 잃어버린 것이다. 환단고기(桓檀古記)와 더불어 우리 민족의 고대사(고대사)를 밝혀주는 또 하나의 책이 있는데, 그 책이 바로 “단기고사(檀奇古史)”라는 책이다. 단기고사(檀奇古史)에는 삼국사기의 저자 김부식을 사대주의(事大主義)자로 규탄하고, 우리나라의 상고사(上古史)를 역사기록에서 삭제시킨 역사의 적(賊)이라고 비난하고 있다.

 

단기고사(檀奇古史)는 발해 건국자 대조영(大祚榮)의 동생 대야발(大野勃)이 고구려, 백제가 당나라에게 망할 무렵, 국서(國書)가 모두 소실되자 수많은 사료를 탐사하여 상고사(上古史)를 발해문자로 기술(719년)한 책이다. 이 책은 다시 11세기 초에 한문으로 번역되었으며, 구한말(舊韓末)인 1907년에 우연히 발견되어 대한제국(大韓帝國) 학부 편집국장 이경식(李景植)에게 입수되었다. 신채호(申采浩) 선생이 망국(亡國)의 한(恨)을 품고 압록강 건너 안동이란 곳에서 우연히 이 책을 읽어보게 되었는데, 그는 이 책을 읽고 나서 “단기(檀奇)의 실사(實史)”라고 높이 평가했다고 한다. 그러나, 1910년 나라를 일제에게 빼앗기고, 다시 1945년에 해방이 되었지만, 지금의 사학자들은 이 책을 믿을 수 없다고 하여 읽기를 꺼려하고 있다고 한다.

     

        

■ 우리 배달(倍達) 민족의 역사는 9,200년이다.

    

 우리 배달 민족의 환국(桓國, BC 7,199-3,897), 배달국(倍達國, BC 3,897-2,333). 고조선(古朝鮮, BC 2,333-238) 문화는 중국의 (. 재위BC 2,357-2,258), (. 재위BC 2,255-2,208), (, BC 2,205-1,766), (, BC 1,600-1,046), (, BC 1,046-771) 문화의 뿌리이다. 우리 배달(倍達민족 문화가 중국 문화의 뿌리이다우리 민족의 역사가 환국(桓國, BC 7,199-3,897), 배달국(倍達, BC 3,897-2,333), 고조선(古朝鮮, BC 2,333-238). 부여.옥저.동예.낙랑국. 마한.변한.진한고구려.백제.신라로 이어져서 무려 9,200이나 된다환국(桓國, BC 7,199-3,897)의 장자국(長子國) 배달국(倍達國)이었고배달국(倍達國, BC 3,897-2,333)의 장자국(長子國) 고조선(古朝鮮, BC 2,333-238)이었음을 비추어 볼 때, 우리 배달(倍達)민족과 한국이 세계 4대 문명의 정통성을 이어 받은 민족이며 나라임을 알 수 있다.

 

 '신시(神市) 개천경(開天經)' 기록에 의하면환국(桓國)의 말엽에 환웅(桓雄)이 있었다그는 홍익인간(弘益人間), 재세이화(在世理化), 광명이세(光明理世)의 뜻을 간직하고 있었다환웅(桓雄)은 동방 땅 백두산(白頭山)에 문명 개척단 3,000명과 함께 배달국(倍達, BC 3,897-2,333)을 건설하였다배달국(倍達, BC 3,897-2,333) 신시 배달[神市 백두산, 1-13대 환웅] 청구 배달[靑丘 산동성.태산(泰山), 14-18대 환웅] 시대로 나누어진다. 배달국(倍達)의 환웅(桓雄)이 북만주와 대진국(발해) 연안의 땅에 뛰어난 석공예와 질공예를 남겼는데, 이것을 배달(倍達, BC 3,897-2,333) 환웅(桓雄) '홍산(紅山) 문화'라고 한다.

 

 배달국(倍達國, BC 3,897-2,333) 홍산(紅山) 문화는 1920년대 프랑스 에밀 리쌍(Emile Licent)이 요서 지방 츠펑 (적봉赤峰) 지역에서 처음 발굴 시작하여 1922년부터 1924년 사이에 신석기 유적지 22곳을 발견하였고, 요서 지방 홍산(紅山) 문화의 소하서 지역 유적에서 발견된 가장 오래된 신석기 문화는 최고 8,500년 전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이들 유적은 '인류 최고(最古) 신석기 문화'로 규정되고 있다. 1930년대 중국 철학자 양계초의 아들 양사영이 홍산(紅山) 유적지를 조사한 이래, 많은 학자들이 연구에 뛰어 들었다. 그 후, 중국 정부에서 대대적으로 발굴하였는데, 1980년대에 홍산(紅山) 문화의 대표적인 유적지인 우하량 유적이 발굴되어 전세계가 깜짝 놀랐다. 이 곳에서 나오는 유물들은 중국의 황하 문명(BC 3,000-2,500) 보다 2-3천년 앞 서 있었고, 유적과 유물들을 자세히 살펴보면, 그 지역의 문명은 이미 국가 단계의 구비 조건을 모두 갖춘 5의 문명이었기 때문이다.

 

 배달국(倍達國, BC 3,897-2,333) 홍산(紅山) 문화의 유적과 유물들은 세계 문명의 발상지라고 꼽히는 이집트. 메소포타미아. 인더스. 황하 문명 보다 훨씬 앞 선 문명 형태였기 때문이다. 예를들면, 홍산 문화의 소하서 지역 유적들은 무려 8,500년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결론적으로 배달국(倍達國, BC 3,897-2,333) 홍산(紅山) 유적지 발굴은 세계 문명사를 다시 쓰게 하는 엄청난 사건이다. 최근에도 중국은 동북(東北공정의 일환으로 이 곳을 계속 발굴하고 있다. 지중해 문명 (이집트 문명, 에게 문명, 그리스 로마 문명)이 서양 문명에 자양분을 공급했듯이, 동이족(東夷族)이 발해 연안에서 창조한 배달국(倍達國, BC 3,897-2,333) 홍산(紅山) 문화는 중국은 물론 만주. 한반도. 일본의 고대 문명을 일궈주었다.

 

 현재, 중국은 배달국(倍達國, BC 3,897-2,333) 홍산(紅山) 문화 요하(遼河문명이라고 하여 자기네 역사 유적이라고 우기고 있지만, 그 유적지의 위치와 문명 양식 등을 보면동이족(東夷族배달(倍達)의 문화 양식임에는 어쩔 수가 없다. 중국이 만주의 홍산(紅山) 유적지 문화를 자기네 것이라고 우기는 것은 마치 송곳을 주머니 속에 넣고 감추는 것과 같다. 결국 밖으로 드러나게 마련이다. 배달국(倍達國, BC 3,897-2,333) 신시 배달(神市 백두산, 1-13대 환웅) 청구 배달(靑丘 산동성.태산(泰山), 14-18대 환웅)로 나누어진다. 배달국(倍達國)의 환웅(桓雄)이 북만주와 대진국(발해) 연안의 땅에 뛰어난 석공예와 질공예를 남겼는데, 이것을 배달(倍達) 환웅(桓雄) '홍산(紅山문화'라고 하는 것이다.

 

 환국(桓國, BC 7,199-3,897)의 신교(神敎) 문화는 고대 문화의 원형이고그 후, 배달국(倍達國)으로 이어졌으며, 환국과 배달국의 문화는 세계 4대 문명의 뿌리가 되었다환국(桓國) 12개 나라 가운데수밀이국 우루국은 그동안 서양에서 최초의 문명족으로 알려져 있던 나라 이름이고, BC 3,500년 전의 고대 메소포타미아(수메르) 문명을 일으킨 나라이다. 최근, 120여 년 동안의 고고학 발굴 결과, 중동의 메소포타미아 지역에서는 BC 3,500년 경에 오늘의 서양 문명의 뿌리인 수메르(Sumer) 문명이 있었고, 이 문명을 건설한 수메르 민족은 동방에서 왔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수메르 문명은 다시 이집트 문명에게 영향을 주었고, 또한 고대 희랍 문화에 영향을 미쳤으며로마 제국을 거쳐 오늘날 서양 문명이 나온 것이다인더스 문명 또한 북방 문명에서 기원했다고 하며배달국(倍達國)의 문화가 유입되어 인더스강 유역에 자리를 잡은 것이다.

 

 근래에 만주에서 동북 공정의 일환으로 요하(遼河) 문명 유적을 발굴하고 있는데요하(遼河문명은 배달(倍達) 문명의 일부이다. '황하 문명' 보다 앞선 유적들이 무수히 쏟아져 나왔다. 중국 당국이 발칵 뒤집혔다. 중국의 황하 문명(BC 3,000-2,500)은 황하강 유역에서 발생했는데, 이것은 북만주와 산동 반도 유역의 배달국(倍達國, BC 3,898-2,333) 문명의 영향을 받아 생겨난 것이다. 배달(倍達 BC 3,898-2,333)의 홍산 문화는 메소포타미아 문명(BC 3,500-2,600). 황하 문명(BC 3,000-2,500). 인더스 문명(BC 2,500년경). 이집트 문명(BC 3,100년경) 보다 앞선 것이며세계 4대 문명에게 영향을 준 것이라는 증거와 유적들이 최근 속속 발굴되고 있다. 한민족의 배달(倍達문명이 중국 민족의 황하 문명 보다 빨랐고, 중국의 황하 문명은 한민족 배달(倍達) 문명을 받아서 생긴 것이라는 역사적 사실들이 속속 드러나고 있다.

 

 우리나라 배달(倍達) 민족이 천제(天祭)  제사(祭祀) 풍습을 중국 한족(漢族)에게 전해줬다배달국(倍達國) 말엽 및 고조선(古朝鮮) 초기에 중국에서 나라를 창업한 사람들 중에서() 임금(나라의 시조). () 임금(나라의 시조). 문왕(나라의 시조). 무왕(왕조 개창). 강태공(병법의 시조, 나라)도 역시 우리 동이족(東夷族)이었다또한, 중국의 건국(建國) 시조(始祖) 삼황오제(三皇五帝)는 전부 우리 동이족(東夷族)이었다삼황(三皇) 태호 복희(太昊伏羲). 염제 신농(炎帝神農). 황제 헌원(黃帝軒轅)을 말하고오제(五帝) 소호 금천전욱 고양제곡 고신. () 임금() 임금을 말한다그들 모두 배달(倍達)민족이었다. 중국의 건국 시조의 8명 중에 우리 민족이 8명으로 전부를 차지한다.

 

 중국은 예로부터 우리나라를 청구(靑丘)라고 했는데, 배달국(倍達國, BC 3,898-2,333) 청구 배달(靑丘, 14-18대 환웅)을 일컫는 말이며, 청구 배달의 문화가 '홍산(紅山) 문화'이다. 그 다음 나라에 이르러고조선(古朝鮮, BC 2,333-238) '단군(檀君) 신화중에는 호랑이와 곰이 나오는데, 실제는 호족(.호랑이) 웅족(.)을 배달(倍達) 동이족(東夷族)이 교화해서 건국한 것을 신화 형태로 기록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