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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허운 대사 (1840-1960)의 중국. 러시아. 한국 미래 예언

마도러스 2023. 9. 5. 07:26

 

■ 허운 대사 (1840-1960)의 중국. 러시아. 한국 미래 예언

● 2025년 을사년(乙巳年), 중국(中國)은 통일을 이루려고 할 것이다. 하지만, 대규모 전쟁은 피할 수가 없을 것이다. 그래서, 중국 남쪽 섬 대만(臺灣)은 초토화된다. 중국 본토 또한 바다 건너 큰 군대 미군(美軍) 공격으로 인해 중국 여러 곳에 불기둥이 솟고, 중국은 멸망한다. 불구덩이 속에 빠져서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사람들이 죽게 되며, 오로지 큰 덕을 쌓은 사람만 겨우 재앙을 모면한다. ★ 2025년 을사년(乙巳年), 러시아(Rusia) 기운은 크게 쇠락할 것이다. ★ 2046년 병인년(丙寅年) 한국(韓國)완전한 통일을 이루고, 세계에서 가장 강성한 나라가 된다. 한국에 세계 각국 인민들이 모두 몰려온다.

허운 대사(1840-1959)는 중국 서태후를 만나서 한여름에 눈을 내리게 하고, 허운 대사 자신의 1959년 10월 13일 임종 입적 날짜와 서태후(1835-1908) 및 마지막 황제 푸이(1906-1967)의 죽는 날짜를 모두 정확하게 예언했다. 1959년 마지막 열반을 앞두고, 2권의 예언서를 제자들에게 남겼다. 그러나, 1권은 문화 대혁명 시기에 불타 없어지고, 남은 1권은 복건성(福建省) 백마사(白馬寺) 깊은 곳에 감춰져 있다가 2016년 마침내 세상에 드러났다. 그 예언서에 따른 가장 큰 관심사는 중국 통일과 한국 통일 및 러시아 미래에 관한 언급이다. 허운 대사는 중국 문화 혁명의 미래를 내다보았고, 중국 멸망 시기를 예언하였다. 그리고, 제자들에게 모두 중국을 떠나도록 명령했다. 그래서, 허운 대사의 제자들은 홍콩. 대만. 싱가포르. 미국 등으로 모두 망명하였다.

허운 대사(1840-1959)는 1840년 중국 호남성(湖南省)에서 태어나서 19세에 출가했다. 중국 불교사에서 매우 위대한 고승 가운데 한 분이다. 그는 순례 고행에서 큰 깨달음을 얻었다. 120세 나이로 1959년 10월 13일 입적했다. 허운 대사는 수행을 통해 앞날을 정확하게 내다보고 예언하셨다. 선사(禪師) 일생은 중국 100년 재난과 함께 하였다. 출생할 때 어머니가 돌아가셔서 서모 슬하에서 자랐다. 현대 불교 100년 동안 고행을 하고, 15개 도량을 행각하며, 6대 조정(祖庭)을 중창하였다. 선종(禪宗) 오종을 계승하였으니, 제자와 신도들이 수백만 명에 달하는 고승이며, ‘선종(禪宗)의 태두’라고 칭송된다. 허운 선사는 어렸을 때, 스승에게 유가(儒家)의 글을 배우고, 불법을 신봉하는 할머니 영향을 받아서 한마음으로 부처님을 섬겼다. 17세 때 남악에 출가하러 갔는데, 길이 익숙하지 않아서 도중에 가족들에 의해 집으로 돌아왔다. 19세에 복건성(福建省) 고산 용천사에서 출가하여 상개 선사를 스승으로 모시고, 다음해 계를 받았다. 가족들이 찾아오는 것을 피하기 위하여 사원 뒤에 있는 동굴에 살면서 3년 동안 고행을 하다, 부친이 나이가 들어서 고향으로 이사한다는 소리를 듣고서야 동굴에서 나왔다. 나중에 다시 산에 가서 3년 동안 고행하였으니, 모두 합하면, 6년이나 동굴 수행을 한 것이다.

27세에 고산을 떠나 절강의 명산과 큰 사찰에 가서 명망 높은 선사들을 참방하여 경전의 가르침을 배우고, 선종을 탐구하였다. 이후, 부모님 은혜에 보은하기 위하여 일찍이 23개월 동안 보타산에서 오대산까지 3보 1배를 하는 도중에 생사를 경험하였다. 서장에서 인도, 스리랑카, 미얀마로 부처님 자취를 따라 순례하였다. 미얀마에서 본국으로 돌아오면서 운남 계족산을 참배하고, 귀주, 호남, 호북 등지를 경유하여 안휘성(安徽省) 구화산을 참배하였다. 다시 양주 고민사에 가서 깨달음을 얻었다.

1900년 8국 연합군이 중국 북경을 침공해 들어오자, 허운 선사 신도들은 선사의 안위를 걱정하여 서안(西安)으로 피신할 것을 권하였다. 허운 선사는 서안 와룡 선사에 머물며, 법을 널리 펼치고, 큰 가뭄과 전염병의 재난을 해결하고, 와룡 선사를 조용히 떠났다. 허운 선사가 비록 머문 시간은 길지 않았지만, 와룡선사의 중흥을 이룰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하여 최근의 복구도 가능하게 되었다. 1901년 허운 선사는 종남산에 초가집을 짓고 2년 동안 깊이 수행하였다. 그 뒤, 계족산에 가서 발우암(鉢盂庵) 주지를 하며, 남양 등지에 사찰을 세우기 위해 보시(普施)를 구하였다.

1912년 청나라가 멸망하고, 중화민국 중국(中國)이 건립되었다. 그리고, 승려를 환속시키고, 절을 훼손하는 풍조가 나타났다. 운남성(雲南省) 군대 사단장이 친히 허운 선사를 붙잡으러 왔는데, 설법으로 설복시켜 허운 선사에게 귀의하였다. 1918년 허운 선사는 남양에서 옥불(玉佛)을 청하여 축성사로 돌아와 사원을 중건하였다. 이후, 고산에서 주지를 하며, 조계 육조의 도량 남화사를 중창하였다. 1959년 10월 13일, 허운 선사는 중국 강서성(江西省) 운거산 진여사에서 세수 120세로 입적하였다. 허운 선사는 머무는 곳마다 쇠락한 사찰을 복원하였지만, 스스로는 항상 하나의 삿갓, 하나의 불자(拂子), 한 벌의 납의, 걸망 하나만 몸에 지녔을 뿐, 입적할 때까지 낡은 초가집에 머물렀다.

허운 선사는 100년 생애 가운데 항상 선(禪) 수행에 몰두하면서 한편으로 10여 종의 불교 서적을 저술하였다. 평생 대중과 제자들에게 강경하고 설법한 것을 셀 수가 없다. 허운선사는 한 시대 선학의 대가로 평범하면서 자연스러운 선풍을 주장하며, 수행의 방법을 구체적으로 제시한 능엄경(楞嚴經)을 중시하여 여러 차례 강설하였다. 참선의 목적과 임무는 바로 식심견성(識心見性)하여 스스로 불도를 이루어, 우리들 마음 속에 있는 분별과 망령된 욕구를 없애는 것이며, 우리들 마음의 본원을 체득해 깨닫는 것이며, 안에서 찾아 구하는 것이며, 자성의 빛을 드러내어 본래 면목을 철저히 아는 것이라고 강조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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