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병? 해결책?

■ 상대방에게 패욕을 당해서 분통이 터질 때? 해결책?

마도러스 2023. 6. 2. 08:29

 

■ 상대방에게 패욕을 당해서 분통이 터질 때? 해결책?

화(火)가 날 때, 화를 내면, 삼류(三流)이다. 화(火)가 날 때, 참으면, 이류(二流)이다. 화(火)가 날 때, 웃으면, 일류(一流)이다. 인생은 사랑(熱愛)과 열정(熱情) 그리고, 인내(忍耐)의 깊이 만큼 열매 맺는다. 딱 그만큼이다.

석가모니(釋迦)가 제자와 길을 가다 어느 마을에 이르렀을 때, 건달이 길을 막고, 험악한 욕설(辱說)을 했다. 그런데, 석가모니는 그저 미소를 지을 뿐, 분노(憤怒)하는 기색이 없었다. 그러자, 제자가 묻었다. "스승님, 그런 욕(辱)을 듣고도 웃음이 나오십니까?" "이보게, 자네가 나에게 금덩어리를 준다고 해 보세. 그것을 내가 받으면, 내 차지가 되겠지만, 내가 받지 않으면 누구 것이 되겠나?" "원래 임자 차지가 되겠지요" "바로 그것일세. 상대방이 내게 욕설(辱說)을 했으나, 내가 받지 않았으니, 그 삿된 욕설(辱說)은 원래 말한 자에게 돌아간 것일세. 그러니, 웃음이 나올 수밖에 없네!"

무척 화(火)가 많이 날 때청수(淸水)를 작은 그릇에 가득 채운다. 그런 후, 두손 모아서 기도(祈禱)한다. 이 때, 절대로 상대방을 원망하지 마라! 그냥, 천지신명(天地神明). 조상(祖上)님께 기도(祈禱)하면 된다. 만약, 나에게 허물과 잘못이 없다면, 그 독기(毒氣)가 나를 괴롭혔던 상대방에게로 간다. 그 독기(毒氣)가 본처(本處)로 돌아간다. ★ 하루는 김형렬이 밖에 나갔다가, 술 취한 예수교 교인 강중구에게 큰 패욕(狽辱)을 당하고 돌아와서, 상제님께 그 일을 아뢰니, 말씀하시기를 “청수(淸水)를 떠놓고, 스스로 허물을 살펴 뉘우치라!” 하시니라. 형렬이 명하신 대로 하매, 그 뒤에 ‘강중구가 병들어서 사경(死境)에 이르렀다가 겨우 간신히 어렵게 살아났다.’ 하거늘, 형렬이 듣고 아뢰니, 상제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이 뒤로는 그런 패욕(狽辱)을 당하거든, 조금도 그를 원망치 말고, 스스로 몸을 살피라! 만약, 허물이 네게 있을 때에는 그 허물이 다 풀릴 것이요, 허물이 네게 없을 때에는 그 독기(毒氣)가 본처(本處)로 돌아가느니라.” 하시니라. (道典 3:249). ★ 상제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우리 일은 부자(父子) 형제(兄弟) 간이라도 운수(運數)가 각각이니라. 운수(運數)를 열어 주어도 이기어 받지 못하면, 그 운수(運數)가 본처(本處)로 돌아가기도 하고, 또한 남에게 그 운수를 빼앗기기도 하느니라.” 하시니라. 하루는 성도들이 앉아 다가오는 대개벽기(大開闢期)를 걱정하여 말하기를 “그 때를 당하여 일꾼들이 없으면 어찌합니까?” 하니, 말씀하시기를 “원평 장꾼도 없다더냐.” 하시니라. (道典 8:107).

남을 쉽게 용서(容恕)한다는 것은 무척 어려운 일이다. 그러나, 상대방을 확실히 완벽하게 보복(報復)하는 방법은 그를 용서(forgiveness)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내가 그를 용서(forgiveness)하면, 하늘이 나에게 그것의 몇배 이상으로 보상(報償)을 해 주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상대방으로부터 상처를 받았을 때, 어떻게 그를 보복할 것인가를 먼저 생각한다. 하지만, 그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보복(報復)은 또다른 보복(報復)을 낳는 법이다. 나를 해롭게 하는 사람을 용서하는 것 보다 더 큰 이득은 없다. 왜냐하면, 하늘이 언젠가 반드시 나에게 큰 보상(報償)을 내려 줄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세상에서 가장 훌륭한 일은 그를 용서하는 것이다. 용서(forgiveness)는 사랑(love)의 완성이다. 한 사람을 완전히 이해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그 사람을 완전히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의 처지가 되어 살아 보아야 한다. 우리는 늘 누군가에게 상처를 주고, 누군가로부터 상처를 받으며 살아간다. 하지만, 그 모든 것을 참고, 양보하고, 이해하고 살아야 한다. 매일 매일 9번 참고, 9번 양보(讓步)하며 살아가는 것이 우리들 인생살이 운명(運命)이다.

● 화병(火病)의 배후에는 반드시 악마(惡魔)의 속삭임이 있다. 바로 그 마귀(魔鬼)와 대적하여 싸워서 이겨야 한다. 원수까지도 용서할 수 있는 담대한 포용심이 생길 때까지 감사와 은혜의 기도를 올려야 한다. 신(神)의 보상에 대한 뚜렷한 확신이 반드시 생길 것이다. 나중에 지나고 보면, 모든 것은 우연이 아니었다. 세상에서 내가 더 크게 쓰임 받게 하기 위한 하늘의 따뜻한 목적이 있었음을 깨닫게 된다. 화병을 경험했던 자만이 나중에 화병을 겪고 있는 사람을 위로할 수 있다. 낙담(落膽)해 본 사람은 어려움에 처해서 낙담하고 있는 자의 심정을 이해할 수 있다. 과부 사정은 과부가 잘 알고, 홀아비 사정은 홀아비가 잘 안다. 화병을 겪고 있는 사람은 그의 험난한 과거 경험 때문에 여기 저기 멍들고 상처 투성이 상태이다. 화병의 치유를 위해서는 한가함 보다 바쁨이 유익할 수 있다. 규칙적으로 걷기 운동을 하면, 마음이 잘 환기(換氣) 된다. 가급적이면, 불신(不信) 불평(不評) 원망(怨望) 험담(險談)을 삼가 하는 것이 좋다. 그런 말을 하면, 그런 에너지가 싹트기 때문이다. 때때로 종이 노트에 가족과 친구들에게 감사(感謝)의 문구를 적어 놓고, 발성(發聲) 기도를 하는 것이 더 효과적일 수도 있다. 감사(感謝)와 은혜(恩惠)의 바다에 푹 빠지면, 크게 도움이 된다.

● 우리는 가끔 누구 때문에 내가 손해(損害)를 보았다고 그 누구를 많이 원망하기도 한다. 그 사람 때문에 내가 이렇게 피해를 입었다는 생각 때문에 분노(憤怒)가 치밀어 오른다. 그 사람이 나를 이렇게 망쳐 놓았다는 생각이 내 머리 속을 지배하기도 한다. 그 때의 모멸감과 억울함만 아니었다면, 나는 이렇게 되지 않았을 것이라고 울분을 토로하기도 한다. 상처 받고, 버림 받고, 모함 당하고, 거절 당하고, 심지어 누명을 쓰게 된 그 때의 쓰라린 기억이 나를 힘들게 한다. 그런 문제를 그때 그때 해소하지 못하고 켜켜이 쌓아 놓고 참기만 하면, 화병(火病) 울화병(鬱火病)이 생긴다. 또한, 아주 사소한 일에도 매우 예민하게 반응하는 히스테리(hysteria) 현상이 동반되기도 한다. 화병은 내 삶에 치명적인 걸림돌이 될 수 있기 때문에 그 원인을 적극적으로 치료해야 한다. 그러나, 그 대상을 용서하는 것은 쉽지 않다. 그 누군가를 조건 없이 용서하고 관용을 베푸는 것은 쉽지 않다. 다른 모든 것은 용서할 수 있어도 그 사람은 도저히 죽어도 용서할 수 없다. 다른 일은 모두 다 이해도 되어도 그 일은 이해할 수 없고 동의할 수 없다. 그 일만 떠오르면, 화가 나고 열 받는다. 그 사람만 생각하면, 증오와 분통이 터진다. 화병과 분통보다 더 중요하고 화끈한 신(神)의 보상과 응답이 보일 때까지 하늘과 땅 그리고 조상님께 기도(祈禱)하고 또 기도해야 한다.

남에게 매우 억울(抑鬱)한 일을 당해서 분노(憤怒)가 치밀 때가 있다. 손해가 많이 발생해서 원통(寃痛)할 때가 있다. 그 누구에게 하소연도 못 해서 울화통이 터질 때가 있다. 상대방하고 말이 안 통해서 너무나 침통할 때가 있다. 상대방에게 패욕(狽辱)을 당했는데, 아무리 생각해도 지금은 해결책이 없어서 분통(憤痛)할 때가 있다. “화나서 미치겠다. 속 터져 죽겠다. 답답해서 못 살겠다!” 이런 말이 나올 때가 있다. 하지만, 마음을 비워라! 내려 놓으라! 헛된 마음을 버려라! ★ 우리는 세상을 살면서 아주 사소한 일에 연연(戀戀)해서, 상대방과 시비(是非)꺼리가 생긴다. 하지만, 그 시비(是非)꺼리미소(微笑)로 화답하고 넘어가면, 그만큼 마음이 느긋해진다.

● 법륜 스님 말씀 : 한 생각 일으켜서 세상을 바라보면, 세상 일이라는 것이 너무나 복잡하다. 그러나, 한 생각 쉬고, 본래 자리로 돌아가 보면, 이 세상에는 아무런 큰 일도 없다. 아무리 사랑하는 애인이나 부부 관계라 하더라도, 또 사랑하는 부모 자식 관계라 하더라도, 아무리 절친한 친구 관계라 하더라도, 내가 옳으니 니가 옳으니 하면서 싸우고 시기 질투하기도 한다. 그렇게 자기 생각에 빠져서 계속 시기 질투하다 보면, 많은 차이가 있는 것 같고, 도저히 함께 못할 많은 이유들이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그래서, 아무리 해결하려고 해도 해결할 수 없는 그런 복잡한 관계가 된다. 그런데, 한 생각 쉬어버리고, 그 생각을 내려 놓으면, 철천지(徹天地) 원수인 사람도 사실은 아무 문제가 없다. 그리고, 사람과 저 산천초목까지도 별 차이가 없다. 그래서, 우리가 눈을 감고, 귀를 막고, 조용한 곳에서 마음을 쉬면, 다만 들숨과 날숨만 있다. 천지 우주 간에 아무 것도 없는 텅 빈 자리로 돌아가게 된다. 사실은 이 텅 빈 자리가 본래의 모습이다. 우리는 언제나 그곳을 고향으로 삼아야 한다. 그것이 자기 본래 자리이다. 그런 곳에서는 나도 없고, 너도 없다. 내 것도 없고, 네 것도 없고, 내가 옳다 너가 옳다 할 것도 없다. 그곳에는 중생도 없고, 고민도 없고, 그 자리에서는 사람과 사람 아닌 것도 차이가 없다. 그러기 때문에 옛 스승들은 그런 자리를 부처(Buddha)라 불렀다. 그런 자리에 설 때, 우리가 진정한 마음의 평화를 얻을 수 있다. 한 생각 일으키면, 온갖 갈등이 생긴다. 하지만, 한 생각 쉬어버리면, 진정한 마음의 평화를 얻을 수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바쁘게 살다가도 제 자리에 앉아서 들숨과 날숨을 지켜보며, 나와 너가 없는 본래 자리로 돌아와야 한다는 말씀이다. 텅 빈 자리가 ‘공’(空)의 세계라면, 이렇게 시비가 분명한 현실 세계를 ‘색’(色)이라 하는데, 이 두 세계가 본래 다른 세계가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진정한 수행자는 언제나 항상 본래 자리로 돌아갈 줄 알고, 또 언제나 현실 속에서 곧바로 몸을 낮추는 지혜를 알아야 한다. 세상의 필요에 의한 일 때문에 본분(本分)이라는 이름을 내세워서 근본적인 지혜를 회피하거나 망설이는 것은 좋지 않다. 또한 세상에 나가서 필요에 따른 일을 하다가 오히려 거기에 안주하거나 때가 묻는다면, 이는 더더욱 아니다. 어떤 일이든 일이 끝나면 본래 자리로 돌아와서 청정함을 유지해야 한다. 물이 조용한 호수에 갇혀 있게 되면, 매우 고요해진다. 하지만, 또 다시 흘러서, 낙차를 만나게 되면, 폭포가 되어 요란하게 흐르는 것이다. 본인이 지은 인연(因緣)의 공덕(功德)은 절대로 없어지지 않는다. 우리가 원하는 때에 원하는 모양으로 나타나지 않는다 하더라도 내가 지은 인연(因緣)의 과보(過報)는 피할 수가 없다. 깊은 산속 깊은 바다 속에 숨는다 하더라도 피할 수가 없다. 열심히 노력한 일들이 뜻대로 되지 않았다고 좌절하지 말라는 것이다. 내가 지은 인연(因緣)의 공덕(功德)은 원하는 때에 원하는 모양으로 나타나지 않지만, 반드시 어떤 형태로든 나타나게 된다는 것을 믿어야 한다는 말씀이다. 불교에서는 이를 ‘인과법’(因果法)이라고 부른다. 인과법(因果法)을 믿으면, 천하에 두려울 일도 좌절할 필요도 없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공덕(功德)을 쌓아 놓으면, 언젠가는 반드시 업보(業報)로 돌아올 것이기 때문이다. 당장 결과가 드러나느냐 그렇지 않느냐에 일희일비(一喜一悲) 하지 않게 된다는 것이다. 반대로 나쁜 인연(因緣)을 지었다면, 반드시 나쁜 과보를 받게 된다는 사실을 미리 알 것이니, 기꺼이 그 과보(過報)를 감내할 수가 있다는 것이다. 내가 지은 인연의 공덕은 절대로 없어지지 않는다. 그것이 내가 원하는 때에 원하는 모양으로 나타나지 않는다 하더라도 저축이 되어 있다가 나타난다. 우리가 나쁜 인연을 짓게 되면, 그 과보는 피할 수가 없다. 지금 안 나타난다 하더라도. 도망가려고 해도 도망갈 수가 없다. 그래서, 나쁜 인연을 지었으면, 나쁜 과보를 기꺼이 받아들어야 하고, 좋은 인연을 지었으면, 그 공덕이 지금 안 나타난다고 실망해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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