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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권력자 성추행 스캔들과 진(陳)나라 하희(夏姬)

마도러스 2021. 3. 23. 08:53

■ 권력자 성추행 스캔들과 진(陳)나라 하희(夏姬)

 

 권력을 이용한 성추행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오래전 '여성의 권리'라는 개념이 아예 없던 시대에는 권력자의 성 착취를 당연한 것으로 여겼다. 그러나, 도를 넘어선 추행은 비난의 대상이 됐다. 이런 행동을 저지른 권력자의 말로(末路)도 좋지 않았다.

 

 춘추시대를 대표하는 절세미인 중 한 명인 하희(夏姬)의 주변을 맴돌던 이들도 그랬다. 하희(夏姬)는 매우 음탕한 여인으로 묘사됐지만, 그의 미색을 탐한 권력자들이 그렇게 만든 것으로 볼 수 있다. 하희(夏姬)의 미모가 얼마나 뛰어났는지는 다음 묘사를 읽어보면, 상상할 수 있을 것이다. "초승달 같은 눈썹에 봉황의 눈과 살구 같은 얼굴, 복사꽃 같은 뺨을 지니고 있었다."

 

 하희(夏姬)는 정나라 군주의 딸로 ()나라 대부 하어숙과 결혼하며 하희로 불렸다. 하어숙은 그의 아들 하징서가 12살이 되던 해에 죽었다. 하어숙이 일찍 세상을 떠나서 하희(夏姬) 젊은 나이에 과부가 됐다. 그는 혼자 살 수 없는 여인이었다. 남자가 항상 옆에 있어야 했다. 혼인 전에도 사귀던 사람이 있을 정도였다. 절색의 과부를 남성들이 그대로 둘 리가 없었다. 남편과 사별 후, 많은 남자들이 꼬였다. ()나라 고위 관료로 난봉꾼이었던 공영과 의행보도 여기에 속했다. 두 사람은 진나라 군주인 영공의 최측근으로 큰 권력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공적 업무에는 관심이 없고, 오직 쾌락만 추구했다. 진영공도 두 사람과 죽이 맞아 국정을 내팽개치고 재미있게 놀 궁리만 했다. 이들 중에 하희(夏姬)와 처음 관계한 사람은 공영이었다.

 

 공영은 하룻밤을 보낸 뒤, 하희의 잠방이를 몰래 훔쳤다. 그리고, 의행보에게 그것을 보여주며 자랑했다. 이에 의행보도 하희에게 은밀한 만남을 청했다. 사실, 하희는 예전부터 잘생기고 건장한 의행보를 평소에 마음에 두고 있었다. '불감청(不敢請) 고소원(固所願)'. 감히 나서서 청할 수는 없지만. 마음으로는 굳게 소원하고 있다는 뜻이다. 하희는 즉각 만남을 수락했다. 한바탕 사랑을 나눈 뒤, 의행보가 하희에게 부탁했다. "공영에게 잠방이를 주셨던데, 내게도 정표를 보여주시오." 이에 하희는 입고 있던 저고리를 주었다. 이로써 하희를 두고 공영과 의행보가 경쟁을 벌이는 형국이 됐다. 다만 하희의 마음은 잘생긴 의행보에게 쏠려 있었다. 이를 눈치챈 공영은 불리한 국면을 전환하기 위해 진영공을 끌어들였다.

 

 공영의 소개로 하희를 처음 본 진영공은 미모에 정신을 잃을 지경이었다. 하희와 첫날밤을 보내며, 진영공은 이런 감탄까지 늘어놓았다. "천상의 선녀를 만난다면, 당신과 같을 것이오. 그대와 사랑을 나누고 보니, 궁궐에 있는 여인들은 거름 더미와 같소." 이후 진영공과 공영, 의행보의 관계는 더욱 친밀해졌다. 은밀한 비밀을 나누고 있었으니, 그럴 만도 했다. 악당들이 공모를 꾸미면서 더 끈끈해지는 것과 같았다. 세 사람 모두 하희와 사랑을 나누었다는 사실을 알고 난 뒤, 그들의 언행은 더욱 노골적인 사람이 됐다.

 

 그들이 나눈 다음 대화를 들어보면 이런 인간 말종들이 있나 싶을 정도였다. 진영공이 먼저 말했다. "이런 즐거운 일을 일찌감치 알려주시지 않았으니, 대체 무슨 경우요?" 이에 공영이 대답했다. "주상께 맛있는 음식을 올리는 경우처럼 신이 먼저 맛을 본 것입니다." 진영공이 웃으며 반박했다. "그렇지 않소. 곰 발바닥 맛을 본 것처럼 과인이 먼저 맛을 봐도 상관없는 일이오." 이 말에 세 사람은 배꼽을 잡고 웃었다. 그러면서 하희가 준 물건을 자랑하며 음담패설을 이어갔다. 급기야 진영공은 이런 망언까지 했다. "우리 세 사람이 모두 각자의 몸에 증거를 갖고 있으니, 하희의 침상에서 나란히 누워 국정을 논해도 되겠소." 그 후에도 이들의 문란한 행위는 계속되었다.

 

 하희(夏姬)에게는 하어숙 사이에서 난 아들 하징서가 있었다. 당시 10대 후반의 건장한 청년이었다. 하희는 진영공에게 은근히 아들을 부탁했다. 이에 진영공은 하징서를 병권을 담당하는 사마로 임명했다. 부친인 하어숙이 맡았던 일을 계승하도록 한 것이다. 하징서는 벼슬을 내린 진영공을 초청해 감사 연회를 베풀었다. 공영과 의행보도 이 자리에 참석했다. 세 사람은 술에 취하자, 또 막말을 쏟아냈다. 하징서는 그 모습이 싫어 병풍 뒤로 물러나 그들의 말을 엿들었다. "징서의 건장한 몸집이 경을 닮은 것 같소." "형형한 두 눈이 주상을 닮았습니다." "주상과 대부는 그때 나이가 어려서 징서를 낳을 수 없었을 것이오. 징서는 아비가 많고 많은 잡종일 겁니다."

 

 이 대화들 들은 하징서는 극심한 모욕감을 느꼈다. 그는 하희를 내실에 가두고, 휘하의 병사를 모두 모아 집을 포위했다. 세 사람을 죽이려 했던 것이다. 연회장 밖에 병사들이 모이는 것을 목격한 세 사람은 재빨리 도망갔다. 공영과 의행보는 간신히 목숨을 구했지만, 진영공은 하징서가 쏜 화살에 맞아 절명했다.

 

 이듬해 () 장왕 ()나라로 쳐들어와 하징서를 죽였다. 그리고, 하희는 초나라로 끌려갔다. 장왕은 하희를 탐내 첩으로 삼으려 했으나, 대부 무신(巫臣)이 반대하여 뜻을 꺾었다. 이에 아내를 잃은 다른 신하에게 시집보냈는데, 그 신하도 죽자, 하희를 ()나라로 다시 돌려 보냈다. 그런데, 나중에 제()나라 사신으로 가던 무신(巫臣)이 진나라를 지나는 길에 하희를 만나 함께 ()나라로 도망가 버렸다. 그러자, () 장왕은 노하여 초나라에 있던 무신의 일족을 모두 죽였다.

 

 하희(夏姬) 무신(巫臣)과 결혼해 딸 하나를 낳았다. 이 딸도 어머니처럼 색기가 대단하여, 진나라 대부 숙향과 결혼하여 양이아를 낳았다. 숙향과 하희의 딸이 결혼하려 했을 때, 숙향의 어머니인 숙희(叔姬)가 반대하면서 말하길, “하희는 남편 세 명과 아들 한 명을 죽이고, 나라 하나를 망하게 했으며, 군주 둘을 망치게 했다 라고 하였다. 유향의 열녀전에서 하희(夏姬)를 일러 세 번이나 왕후가 되었고, 일곱 번이나 대부의 아내가 되었다. 여러 공작과 후작들이 미혹되어 정신을 잃지 않을 수가 없었다 라고 하였다. 다만, 하희는 왕후가 된 적은 없다.

 

 고서(古書)에 전해지는 이야기는 하희(夏姬)의 음탕한 모습을 강조하고 있지만, 좀 더 깊게 보면 군주와 고위 관료들이 권력을 이용해 젊은 과부를 농락한 일로 해석할 수 있다. 요즘 말로 하면, 위력에 의한 성추행이었던 것이다역사를 돌아보면, 이와 비슷한 사건을 수없이 발견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