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사 (한국)

박정희, 한일 협정 때에 거액 뇌물 받음

마도러스 2018. 12. 18. 00:35


■ 박정희, 한일 협정 때에 거액 뇌물 받음

 

● 박정희한일 협정 때에 6,600만불 뇌물 받음 (CIA 기밀 보고서)

 

1965년 한.일 협정에 임해서 한국 집권자(박정희 대통령)가 일본 쪽으로부터 660,0만 달러의 뇌물을 받고 한국에 불리한 한.일 협정을 체결해 준 것이 밝혀졌다당시 6,600만 달러는 오늘날의 몇 백억 달러에 이르는 천문학적인 거액이다.

 

한국은 일제(日帝) 36년간 강점당해서 온갖 살육투옥착취를 당하고무상 3억 달러를 그것도 배상이란 이름도 못 붙이고 경제 협력 자금이라는 명목으로 받았으니 웬일인가.일 협정을 자세히 보면평화선(어족 자원 보호선철폐독도 문제 회피(독도 폭파 희망 피력), 징용징병정신대원폭 피해자 보상 회피징용징병자의 강제 저축금 반환 불청구문화재 반환 포기재일 동포 법적 지위 보장 포기 등등 상식적으로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국익 손실을 내면서 대부분 일본 쪽의 주장대로 협정에 서명해 준 이유를 당시 순진한 우리는 알 수 없었다.

 

그런데알고 보니한국 집권자(박정희 대통령)가 6,600만 달러의 일본 쪽의 뇌물을 받고국익을 팔아먹어 그렇게 된 것이었다당시 순진한 우리 국민과 학생들은 1961년 5.16 군사 쿠테타 주동자들이 아무리 양심이 썩었어도 일제 식민지 통치를 배상받는 회담에서 일본 뇌물을 받고 국익을 팔아먹는 매국적 외교를 하리라고는 상상치 못했다단지국력 부족으로 굴욕 외교를 한 것으로 짐작했다.

 

그래서, 1965년 6.3 학생 운동 세대가 선두에 서고학계언론계문화계 등등 온 국민이 총궐기해서 굴욕 외교’ 파기를 외쳤다그런데알고 보니일본 뇌물 6,600만 달러를 받고국익을 팔아 매국 외교를 한 무리들이 굴욕 외교 파기를 주장했다고 애국적 학생들과 국민들을 탄압하고 체포 투옥하여 징역을 먹이고 불구자를 만든 것이었다.

 

당시 한.일 협정은 미국이 동아시아에서 소련중공에 대항한 반공의 띠를 만들려고 추진한 프로그램이었다이 때미국 중앙 정보국(CIA)은 한.일 회담의 일정까지 짜주면서 깊이 개입했기 때문에 1965년 한.일 협정에 관해서 미국 중앙 정보국의 보고서는 세계에서 가장 정확한 자료이다.

 

미국 중앙 정보국 보고서에서 당시 한국 민주 공화당이 1961-1965년의 약4년간 일본의 6개 재벌로부터 6,600만 달러의 정치 자금을 제공 받았는데이것이 4년간의 민주 공화당 총예산의 3분의 2에 해당했다고 보고하였다이것은 당시 공화당의 정치 활동과 한.일 협정이 일본의 배후 조종 아래 매국적으로 되었음을 알려주는 충격적인 것이다일본한테 받은 무상 3억이 한국 경제 개발의 종자돈이 되었다는 일본 주장은 전혀 사실이 아니며 어불성설(語不成說)이다.

 

1960년 4.19 혁명이 성공하여 4.19 주체 세력들이 강력히 경제 개발 계획 수립 요구에 직면하자당시 민주당 정권은 부흥부가 중심이 되어 1차 경제 개발 5년 계획을 수립했다. 1961년 5.16 군사 정권으로 헌정을 중단시키고정권을 찬탈한 5.16 군사 정변 주동자들은 반공(反共)만 강조했을 뿐경제 개발은 상상에도 없었으므로 처음에는 대기업 경제인들을 모조리 부정 축재자로 몰아 투옥하기 시작했었다.

 

1961년 5.16 군사 정변 주동자들이 부흥부 접수 중에 1차 경제 개발 5년 계획안을 발견하고이를 찬탈하였다그리고헌정 중단의 중죄를 만회해 보려고이듬해 1962년부터 자기들이 1차 경제 개발 5년 계획안을 발표하였다이 때경제 개발의 종자돈은 민주당 정권 부흥부 계획대로 시행하였다국내 자금 유치 및 세계 각국 차관으로 시작되었다.

 

1965년 한.일 협정 이후무상 3억 달러와 차관 2억 달러 등의 5억 달러는 경제 개발 시작 4년 후인 1966년부터 현금으로 들어온 것이 아니라 10년 분할로 10년에 걸쳐 물자로 들어왔다이 때일본 플랜트도 몇개 들어왔는데부속품을 일제 사용 조건으로 했기 때문에 한국 경제의 일본 시장으로의 종속 예편이 시작된 것이다.

 

당시 한국의 차관 규모는 500억 달러까지 달했으므로 무상 3차관 2억은 경제 개발의 종자돈은 커녕 한국 경제의 일본 시장 종속 정책의 출발과 단계적 강화가 시작되었을 뿐이다.

 

1910년 구한말 일제(日帝)가 조선을 병합할 때에도 일제(日帝)는 거액의 정치 자금을 구한말 조선 정계에 뿌렸다결국, 1910년 08월 조선 강점에 성공하자그 공로자에게 작위를 주고, 1910년과 1912년 두 차례 거액의 은사금을 뿌렸다.

 

또한 일제(日帝)는 1910-1918년 토지 조사 사업을 실시하여 식민지 강점으로 빼앗은 토지를 은사금을 받은 친일 매국노들에게 염가로 불하해서 친일 매국노들을 토지 부호로 만들어 주고뿌린 은사금들은 회수해 갔다.

 

오늘날 남.북 분단을 비롯하여 일제(日帝)가 남긴 상처는 치유되지 않았다징용징병정신대 할머니들이 울고 있다재일 동포들이 허덕이고 있다그들의 눈물을 닦아주어야 할 민주 정부를 총칼로 찬탈하고일본 뇌물을 받아 국익을 팔아먹은 매국 외교의 진상도 이번에 반드시 밝혀야 한다다시는 일본 뇌물을 정치 자금으로 받아 친일 매국 외교를 자행하는 악폐를 한국 민족사에서 영원히 철폐 청산해야 한다. (글 작성 백범 김구 학술원 원장한양대학교 신용하 석좌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