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宗敎) 개혁

좋은 삶을 위한 일상에서의 수행과 참선

마도러스 2018. 2. 4. 22:20


■ 좋은 삶을 위한 일상에서의 수행과 참선 

우리는 그 무엇을 소유하면, 정신적으로 완벽하게 만족될 것이라는 그럴싸한 착각을 매우 종종 하며 살아간다. 하지만, 그 착각은 결코 완벽하게 충족될 수 없다. 이것이 깨달음의 최종 결론이며 본질인데, 거기까지 도달하기가 도통 어려운 것이 아니다.

과연, 진정한 깨달음이란 무엇이며, 도대체 무엇을 위한 것일까? 참선과 수행의 목적지는 어디이고, 왜 하는 것일까? 그것이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어떤 도움을 줄 수 있을까? 깨달음은 하루하루 힘들게 살아가는 세속인들에게 어떤 의미가 있을까?

수행자나 수도자들에게는 종교적 깨달음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들에게 그 깨달음의 결론이 무엇인지 물어보면, 영성 체험 혹은 영지주의 같은 심오한 언어를 구사한다. 그리하여, 일반인들에게 크나큰 거리감 혹은 좌절감을 느끼게 한다.

물론, 언어나 문자의 한계 때문일 것이다. 언어로 감정이나 영적 상태를 완전히 표현하기에는 분명 한계가 있다.

종교에서 말하는 깨달음의 세계를 이해하면, 그 언어의 한계에 직면하게 되고, 언어 그 너머의 무엇을 더욱 선명히 느끼게 된다.

"사랑해!" 라는 언어로 내 맘을 상대에게 전한다고 해도 그 사랑해 라는 언어 하나에 내 맘을 절대 100% 전부 담아낼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우리는 일반적으로 ''수행'' ''참선''을 얘기하면, 교회. 성당. 사찰. 사원 등의 종교적인 관점이나 세속을 떠난 한적한 곳에서의 수행 모습을 떠올리기 쉽다.

그러나, 그와같은 수행. 참선. 깨달음은 일상 속에서 언제 어디서나 자기 내면과의 대화나 성찰로 인해 가능한 일이다. 그리고, 지금도 많은 분들이 하루하루의 일상들에서 각자의 방식으로 깨달음을 얻고 참선을 실천하고 있을 것이다.

퇴근 후의 명상, 아침 저녁의 산책, 주말 산행 중에시 혹은 잠들기 전에 잡념의 정리 등을 통해서 신묘한 영적 성취감을 얻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깨달음이라는 것은 항상 일상 생활을 하면서 하나하나의 계기를 통해서 이삭줍기 하듯이 얻을 수 있는 일이다.

일상 삶에서 발생하는 질투. 시기. 성냄. 갈등. 번뇌. 욕심. 욕망. 소유욕. 갈망. 갈애 등의 원인을 다른 곳이 아닌 나의 내면에서 찿고자 하고, 그것을 없애거나 줄이고자 하는 것이  수행과 참선의 핵심이며, 진정한 깨달음을 실천하는 길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