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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며느리의 낮은 자세 이야기

마도러스 2015. 7. 3. 08:46


어느 며느리의 낮은 자세 이야기

 

지방 도시에서 이름 석자만 대면 알 수 있는 유명한 할머니 한 분이 있었다. 특히 '말'이라면 청산유수(靑山流水)라 누구에게도 져 본 적이 없는 할머니였다. 이를테면, 말발이 아주 센 초로의 할머니였다. 그런데, 그 집에 똑똑한 며느리가 들어가게 됐다. 그 며느리 역시 서울의 일류 명문 학교를 졸업한 그야말로 '똑 소리'나는 규수였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저 며느리는 이제 죽었다!"라며 걱정했다. 그런데, 어쩐 일인지 시어머니가 조용했다. 그럴 분이 아닌데 이상했다. 그러나 이유가 있었다. 사실, 며느리가 들어올 때 시어머니는 벼르고 벼르었다. 며느리를 처음에 "꽉 잡아 놓지 않으면, 나중에 큰일 난다!"라는 것이었다. 그래서, 처음부터 혹독한 시집살이를 시켰다. 생으로 트집을 잡고 일부러 모욕도 주었다. 그러나, 며느리는 천만 뜻 밖에도 의연했고 전혀 잡히지 않았다. 왜냐하면, 며느리는 그때마다 시어머니의 발밑으로 내려갔기 때문이다.

 

한 번은 시어머니가 느닷없이 "친정에서 그런 것도 안 배워 왔느냐?" 하고 생트집을 잡았지만, 며느리는 공손하게 대답했다. "저는 친정에서 배워 온다고 했어도 시집와서 어머니께 배우는 것이 더 많아요. 모르는 것은 자꾸 나무라시고 가르쳐 주세요." 다소곳하게 머리를 조아리니, 시어머니는 더 이상 할 말이 없었다.

 

또 한 번은 "그런 것도 모르면서 대학 나왔다고 하느냐?"며 공연히 며느리에게 모욕을 주었다. 그렇지만, 며느리는 도리어 웃으며 공손하게 말했다. "요즘 대학 나왔다고 해봐야 옛날 초등학교 나온

것만도 못해요, 어머니!" 매사에 이런 식이니 시어머니가 아무리 찔러도 소리가 나지 않았다. 무슨 말대꾸라도 해야 큰소리를 치며 나무라겠는데, 이건 어떻게 된 것인지 뭐라고 한마디 하면 그저 시어머니 발밑으로 기어들어 가니 불안하고 피곤한 것은 오히려 시어머니 쪽이었다.

 

원래, 사람들은 그렇다. 저쪽에서 낮은 자세로 내려가면, 이쪽에서 불안하게 된다. 그리고 이쪽에서 낮은 자세로 내려가면 반대로 저쪽에서 불안하게 된다. 그러니까 먼저 내려가는 사람이 결국은 이기게 된다. 사람들은 먼저 올라가려고 하니까 서로 피곤하게 된다.

 

나중에 시어머니가 그랬다고 한다. "너에게 졌으니, 집안 모든 일은 네가 알아서 해라." 시어머니는 권위와 힘으로 며느리를 잡으려고 했지만, 며느리가 겸손으로 내려가니 아무리 어른이라 해도 겸손에는 이길 수 없었던 것이다. 내려간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어떤 때는 죽는 것만큼이나 어려울 때도 있다. 그러나 세상에 겸손보다 더 큰 덕목은 없다. 내려갈 수 있다면 그것은 이미 올라간 것이다.

 

시간이 지나면 부패되는 음식이 있고, 시간이 지나면 발효되는 음식이 있듯이 시간이 지나면 부패되는 인간이 있고, 시간이 지나면 발효되는 인간이 있다. 시간이 지나면서 썩지 않고 맛있게 발효되는 인간은 끊임없이 내려가는 사람이다. 겸양과 비우기를 위해 애쓰는 사람이다. 그러니 명심할 일이다. 부단히 비우고 내려 놓으면서 자신을 포기하지 않는 사람은 이미 행복을 차지한 현자(賢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