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낌 & 음악

충북 제천 박달재 고개에 얽힌 사연

마도러스 2014. 5. 14. 10:04


충북 제천 박달재 고개에 얽힌 사연


조선(朝鮮) 중엽 경상도의 젊은 선비 '박달'은 과거를 보기 위해 한양으로 가던 중, 충북 제천시 백운면 평동리에 이르렀다. 마침 해가 저물자, 박달은 어떤 농가에 찾아 들어가 하룻밤을 묵게 되었는데, 이 집에는 '금봉'이라는 딸이 있었다. 사립문을 들어서는 박달과 눈길이 마주쳤다. 박달은 금봉의 청초하고 아름다운 모습에 넋을 잃을 정도로 놀랐고, 금봉 역시 선비 박달의 의젓함에 마음이 크게 움직였다. 그날 밤 12시가 넘도록 잠을 이루지 못해 밖으로 나와 서성이던 박달은 역시 잠을 못 이뤄 밖에 나온 금봉을 보았다. 선녀와 같았다. 박달과 금봉은 어느새 가까워 졌다. 이튿날 떠나려했던 박달은 더 묵게 되었다. 밤마다 두 사람은 만났다. 그러면서 박달이 과거에 급제한 후에 함께 살기로 굳게 약속했다. 그리고, 박달은 고갯길을 오르며 한양으로 떠났다. 금봉은 박달의 뒷모습이 사라질 때까지 사립문 앞을 떠나지 않았다. 서울에 도착한 박달은 자나 깨나 금봉의 생각으로 다른 일을 할 겨를이 없었다. 그래서 금봉을 만나고 싶은 시(詩)만 지었다. 결국, 박달은 낙방을 하고 말았다. 박달은 금봉을 볼 낯이 없어서 백운면 평동리에 가지 않았다. 한편, 금봉은 박달을 떠나보내고는 날마다 마을 성황당에서 박달의 장원 급제를 기도했으나, 박달은 돌아오지 않았다. 금봉은 그래도 성황당에게 기도하는 것을 그치지 않았다. 그 후, 박달이 떠나간 고갯길을 오르내리던 금봉은 상사병으로 한(恨)을 품은 채 결국 숨을 거두고 말았다. 금봉의 장례를 치르고 나서 3일 후에 박달이 돌아왔다. 박달은 고개 아래에서 금봉이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땅을 치며 목 놓아 울었다. 한참 울다가 얼핏 고갯길을 쳐다본 박달은 금봉이 고갯마루를 향해 너울너울 춤을 추며 달려가는 모습을 보았다. 박달은 벌떡 일어나 금봉의 뒤를 쫓아 달려갔다. 고갯마루에서 겨우 금봉을 잡을 수 있었다. 와락 금봉을 끌어안는 순간, 박달은 천 길 낭떠러지로 떨어져 죽고 말았다. 이런 일이 있는 뒤부터 사람들은 박달이 죽은 고개를 박달재라고 부르게 되었다.


★ “천둥산 박달재를 울고 넘는 우리 님아. 물 항라 저고리가 궂은 비에 젖는구려. 왕거미 집을 짓는 고개마다 구비마다 울었오. 소리쳤오.” 박재홍이 부릅니다. → http://www.youtube.com/watch?v=PCMRxKEXxcs [울고 넘는 박달재 (박재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