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 (내과)

대부분의 약, 왜 식후 30분 복용하나?

마도러스 2012. 11. 29. 09:03

대부분의 약, 왜 식후 30분 복용하나?

 

해열 진통제로 유명한 아세트아미노펜(acetaminophen)은 물질 자체만으로는 pH(산성도)가 9 정도로 약한 알칼리성이다. 그러나 우리가 실제 먹는 약(Drug)은 물에 녹았을 때 pH(산성도)가 4-6정도 되도록 만들어진다. 약산성 상태에서 흡수가 가장 잘되기 때문이다.

 

이같이 약의 산성도를 높이는 이유는 위(胃)에서 잘 녹도록 하기 위한 것이다. 어떠한 약도 일단 물에 잘 녹아야 소장(小腸)에서 흡수가 된다. 고체 덩어리 상태로는 점막을 통과할 수 없는 것이다.

 

대부분의 약은 소장(小腸)에서 흡수된다. 여기서 소장(小腸) 상부의 환경이 약산성 상태이기 때문에 이곳에서 녹아 흡수되는 약물도 약산성으로 pH(산성도)를 맞춰야 흡수가 잘 된다는 것이다.

 

위(胃)에서 잘 녹을 수 있고 소장에서 흡수가 잘되는 화학적 성질이 약산성이기 때문에 대부분의 약은 약산성을 띤 물질로 만들어지게 된다.

 

반면, 알칼리성 약물은 산성 조건에선 산-염기 반응이 일어나 이온화되기 때문에 소장(小腸) 점막 세포막을 통과하기 어려워 흡수가 안 된다.

 

산도를 맞추는 것 외에 염(Salt) 상태로 만드는 방법도 약의 흡수를 높이기 위한 것이다. 약의 성분을 잘 보면 주석산 염(tartrate)이나 염산염(hydrochloride), 말레인산염(maleate) 같이 대부분 염(Salt) 상태로 조성되어 있다. 염(Salt)이란 두 물질이 약한 이온 결합을 하고 있어 극성 용매에 해당하는 물에 잘 녹아 중성 물질로 돌아가기 쉽기 때문이다.

 

이러한 약의 속성을 종합해서 우리 몸에 적용해 보면 약은 원래 식사와 식사의 중간에 먹는 것이 원칙이다. 이때가 몸 안의 산도가 정상 상태를 유지해 소장(小腸)의 산도도 약산성 상태을 나타내기 때문이다.

 

보통 '식사 후 30분'에 약을 먹는 것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이는 식사 도중에는 위(胃)에서 염산(Hydrochloric acid)이나 펩신(pepsin)같은 강산성 물질이 분비돼 산도가 매우 높아지기 때문에 이 때에는 약을 복용하지 말고, 음식이 위장을 벗어날 수 있도록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난 다음 '식사 후 30분'에 먹어야 한다는 의미이다.

 

그러나 식간에 먹기 위해서는 식사 후 2-3 시간을 기다려야 하는데 그때가 되면 약 먹는 걸 망각하기 때문에 그나마 약 흡수가 잘 될 수 있는 '식사 후 30분 복용'이라는 고육책이 나온 것일 뿐이다. 결론은 보통 약은 식사와 식사의 중간에 먹되 복용을 잊었을 때는 생각났을 때 바로 그때 먹는 것이 원칙이다.

 

그러나, 여기에 몇 가지 예외가 있다. 당뇨약 같은 경우 인슐린 제제는 '식전 30분'에 투여해야 한다. 왜냐하면 식후에는 혈당이 매우 높게 치솟기 때문에 흡수에 걸리는 시간을 감안해 미리 약을 주사해 혈당을 떨어뜨려야 하기 때문이다.

 

혈당이 치솟은 뒤 인슐린을 맞아봐야 이미 늦은 처방이다. 당뇨병 환자가 인슐린을 맞지 않고 밥을 먹게 되면 혈당이 높아져 체온이 올라가거나 숨이 가빠지고, 끈적거리는 혈액으로 인해 고혈압이나 뇌경색 같은 위험에 처하게 된다.

 

만약, 당뇨병 환자가 식사후 한참이 지난 뒤에야 부랴부랴 인슐린을 맞게 되면 이미 어느 정도 당이 떨어진 상태에서 약을 먹게 되어 혈당은 더욱 낮아져서 저혈당 상태에 빠지게 된다. 저혈당이 오면 몸 안에 대사가 중지되는 것과 같은 현상이 일어나 쇼크가 오게 된다. 따라서 당뇨병 환자에게 있어 가장 중요한 건 약 먹는 시간을 엄수해야 한다는 것이다. 메토클로프라마이드(metoclopramid)같은 위장 운동 촉진제도 약의 기능상 식사 전에 먹어야 효과를 제대로 볼 수 있다.

 

당뇨약 중에는 경구용 혈당 강하제 메트포르민(metformin)처럼 식사를 하는 도중에 먹어야 하는 약도 있다. 이 약은 음식 중에서 탄수화물과 함께 흡수되고, 식사 후에 오르는 혈당을 재빨리 세포내로 흡수시켜야 혈액의 당 농도를 낮출 수 있기 때문이다.

 

한편, 살아있는 유산균 제제일부 항생제는 반드시 식사 중간에 먹어야 한다. 식후에 먹는 경우 위(胃)의 강한 산성 조건에서 살아남을 수 없어 소장(小腸)까지 살아서 갈 수 없거나 흡수율이 낮아 아무런 약효를 기대할 수 없기 때문이다.

 

요즘에 나온 항생제들은 다행히 외부 코팅을 하거나 서방 캡슐에 싸기 때문에 식후에 먹어도 괜찮은 약들이 많이 나와 있다. 하지만, 항생제는 반드시 언제 먹을 것인지를 복용 전에 약사에게 물어 보아야 하고 복용 간격도 잘 지켜야 내성으로 인한 부작용을 감소시킬 수 있다.

 

스테로이드(부신피질호르몬계) 제제나 아스피린 같은 진통 소염제는 위 점막을 손상시키기 때문에 위장약과 함께 복용하거나 식후 바로 먹는 것이 좋다. 위염이나 궤양을 예방하기 위해서이다. 이들 약들은 위(胃)의 산성도가 비교적 높을 때 먹어야 흡수가 가장 커진다. 반드시 식사 직후에 복용하는 것이 식간이나 식전에 먹는 것에 비해 최소한 10배에서 많게는 수백배까지 흡수량을 증가시킬 수 있다. 약을 가장 적게 먹으면서도 효과는 최대로 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이다. [조길호의 藥이야기 세상](머니투데이 조길호 기자, 입력: 2012.08.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