뺏긴 역사찾자

배달(倍達民族) 혈통이 중국 건국 시조

마도러스 2012. 11. 26. 11:17


배달(倍達民族) 혈통이 중국 건국 시조

 

우리나라 배달(倍達 BCE 3,897-2,333) 혈통이 중국(中國) 건국의 창업 시조(始祖)이다.  중국의 건국(建國) 시조(始祖)인 삼황오제(三皇五帝)는 전부 동이족(東夷族)이었다. 삼황(三皇)은 태호복희(太昊伏羲). 염제신농(炎帝神農). 황제헌원(黃帝軒轅)을 말하고, 오제(五帝)는 소호금천(少昊金天). 전욱고양(顓頊高陽). 제곡고신(帝嚳高辛). 요(堯)임금. 순(舜)임금을 말한다. 중국의 건국 시조의 8명 중에 우리민족이 8명으로 전부를 차지한다.

 

중국의 삼황오제(三皇五帝) 시대와 하(夏)나라은(殷)나라주(周)나라 때까지는 한족(漢族)의 존재가 중국에서는 없었음으로, 중국의 상고사(上古史)는 동이족(東夷族)의 역사였고, 남쪽 변방의 남만(南蠻)족이 북상하면서 춘추(春秋) 전국(全國) 시대가 시작되었으며, 진(秦)나라 진시황의 통일로 중국(中國)의 역사가 시작되었다. 중국의 역사서(歷史書)인 사기(史記)의 저자(著者), 사마천(司馬遷)은 황제헌원(黃帝軒轅) 이전의 유명한 인물이 모두 동이족(東夷族)인 줄을 알고 있었고, 그래서 사기(史記)라는 책에서는 황제헌원(黃帝軒轅) 이전의 역사에 대해서는 자세한 설명을 회피하였다.

 

황제헌원(黃帝軒轅)은 배달국(倍達國)의 8대 안부연(安夫連) 환웅 때, 강수(姜水,중국 섬서성)에서 소전(少典,벼슬이름)으로 있던 신농(神農) 아버지의 후손이 공손인데, 바로 공손의 후손이 황제헌원(黃帝軒轅)이다. 소호금천(少昊金天)은 배달국 시대에 산동 반도 지역에서 고도의 문명 국가를 통치했던 사람인데, 동이족(東夷族)이었다. 전욱고양(顓頊高陽)은 황제헌원(黃帝軒轅)의 손자이며, 제곡고신(帝嚳高辛)은 황제헌원(黃帝軒轅)의 증손자이다.

 

또한, 요(堯)임금은 황제헌원(黃帝軒轅) 및 제곡고신(帝嚳高辛)의 후손이다. 순(舜)임금은 고조선 단군 1세때, 고시(高矢)의 친형인 고수의 아들이다.

 

중국의 금(金)나라는 신라(新羅) 말 경순왕의 후손인 아골타(阿骨打)가 건국한 나라이며 김(金)씨가 세운 나라여서 나라 이름을 금(金)이라고 했다. 중국의 원(元)나라는 단군 4세 오사구의 아우 오사달의 후손인 홀필열(忽必烈)이 건국하였으며, 중국의 청(淸)나라는 신라 경순왕의 후손이 금(金)나라를 세운 후, 그 후손이 다시 청나라를 건국한 것이다.

 

또한, 중국에서 나라를 창업한 사람들 중에서, 우임금(하夏나라의 시조). 탕임금(은殷나라의 시조). 문왕(주周나라의 시조). 무왕(주周왕조 개창). 강태공(병법의 시조, 제齊나라)도 역시 동이족(東夷族)이었다고 한다. 중국의 역사 서적인 서경(書經), 예기(禮記), 사기(史記)에 보면, 이들은 일상생활이나 대사(大事)를 집행할 때 언제나 상제(上帝)님께 천제(天祭)를 지내며 생활하였다고 기록되어 있다. 우(禹)임금은 황제헌원(黃帝軒轅)의 후손이며, 전욱고양(顓頊高陽)의 아들인 곤의 아들이다.

 

청(淸)나라의 전신인 후금(後金)을 세운 왕의 이름을 우리는 누루하치로 기억하고 있다. 그런데, 누루하치의 성(性)은 애신각라(愛新覺羅)이다. 애신각라(愛新覺羅)라는 성(性)은 원래 김(金)씨에게서 분가(分家)해 나간 것이다. 우리가 익히 아는 청나라의 마지막 황제 푸이(府儀)의 성도 당연히 애신각라이다. 애신각라(愛新覺羅)라는 성(性)에는 무슨 뜻이 숨어 있는가? 애신(愛新)각라(覺羅), 즉 신라를 사랑하고 생각한다는 뜻이다. 청(淸)나라는 신라 경순왕의 후손이 금(金)나라를 세운 후, 그 후손이 다시 청나라를 건국했는데, 누루하치의 성(性)인 애신각라(愛新覺羅)가 그것을 증명해 주고 있는 것이다.

 

중국인(中國人)들은 자기들인 세계의 중심이라고 생각하여 가운데 중(中)자를 쓰고 있으나, 거기에 동의하지 않는 사람들은 서양에 알려진 china 즉 지나(支那)라고 부른다. 역사적으로 볼 때 원래 지나인(支那人)들은 우리 동이족(東夷族) 보다 몇 천년 늦게 중원(中原) 땅에 자리잡은 민족이다. 원래 동이족(東夷族) 우리나라 사람들이 중국 본토의 주인이다.

 

이러한 사실은 사마천(司馬遷)의 사기(史記)에도 기록되어 있다. 중국인(中國人)들은 이런 자신들의 뿌리 역사의 콤플렉스(complex)를 감추기 위해 사기(史記) 이래 그들은 전형적인 중화사관(中華史觀)의 역사 기록법을 동원했다. 첫째 위중국휘치(爲中國 諱恥. 중국의 수치스런 사실은 숨김), 둘째 존화양이적(尊華攘夷狄. 중국을 높임) 금초이누이적(矜鞘而陋夷狄. 외국은 깎아 내림), 셋째 상내약외(詳內略外. 국내사는 상세히 국외사는 간략함). 그들은 이 3가지 원칙을 기본으로 역사를 기록했다.

 

일찍이 북방 바이칼호 부근과 중아 아시아 일대에 세계 최초의 나라, 환국(桓國,BC 7,199-3,897)이 있었고, 그 후, 배달(倍達 BCE 3,898-2,333) 환웅(桓雄)께서 문명 개척단을 이끌고 요동(遼東), 요서(遼西), 만주(滿洲)로 내려와서 토착민인 곰족(熊族). 호족(虎族)들을 회유하였고, 배달(倍達)이란 나라를 세웠다.

 

배달(倍達 BCE 3,898-2,333) 문명에 의해 인류 4대 문명이 잉태된 것이다. 그 후, 배달(倍達 BCE 3,898-2,333) 의 마지막에 이르러 장자(長子)이신 단군(檀君)께서 다시 고조선(古朝鮮,BC 2,333-238)을 세웠고 오늘날에 이르렀다.

 

중국(中國)은 예로부터 우리나라를 청구(靑丘)라고 했는데, 청구 배달(靑丘,14대-18대 환웅)을 일컫는 말이며, 청구 배달의 문화가 '홍산 문화 (紅山文化)'이다. 그 다음 나라에 이르러, 고조선(古朝鮮)의 '단군(檀君) 신화' 중에는 호랑이와 곰이 나오는데, 실제는 호족(虎.호랑이)과 웅족(熊.곰)을 배달(倍達) 동이족(東夷族)이 교화해서 건국한 것을 신화(神話) 형태로 기록한 것이다. 고대 사회의 사람들은 '신화(神話)의 형태'로 이야기해야 알아듣는 그런 시대였다.

 

삼국유사(三國遺事)의 단군 신화 기록은 배달민족(倍達民族)의 역사 시간대(時間帶)를 싹둑 잘라서 난도질해 놓았다. 원래 배달민족(倍達民族)의 삼성조(三聖祖)는 환국(桓國)의 제1세 안파견(安巴堅) 환인(桓仁)에서 제7세 지위리(智爲利) 환인(桓仁), 배달(倍達)의 제1대 거발환 환웅(居發桓. B.C3,898-3,804년 재위)에서 제18대 거불단 환웅(居弗檀, B.C2,380-2,333년 재위),고조선(古朝鮮)의 제1대 단군 왕검(王儉, B.C2,333년 즉위)에서 제47대 고열가 단군(高列加, B.C295년 즉위)까지를 말한다.

 

그런데, 환국(桓國, B.C7,199-3,898), 배달국(倍達國, B.C3,898-2,333), 고조선(古朝鮮, B.C2,333-238)의 장구한 고대의 역사가 단군 신화에서는 몇 마디 구절에 의해 짧게 축소되어 버렸다. 아무리 설화적 구성을 통해 표현해 냈다 하더라도, 환인(桓仁)의 아들이 3,301년 후의환웅(桓雄)이 되고, 환웅(桓雄)의 아들이 1,565년 후의 단군(檀君)이 될 수 는 없는 것이다.

 

인류의 문명은 북방에 위치해 있던 배달국(倍達 BCE 3,898-2,333)의 문명이 인류 4대 문명을 낳아 생겨났다. 배달(倍達 BCE 3,898-2,333)의 홍산 문화는 메소포타미아 문명(BCE 3,500-2,600년). 황하 문명(BCE 3,000-2,500년). 인더스 문명(BCE 2,500년경). 이집트 문명(BCE 3,100년경) 보다 앞선 것이며, 세계 4대 문명에게 영향을 준 것이라는 증거와 유적들이 최근 속속 발굴되고 있다.

 

신시(神市) 개천경(開天經) 기록에 의하면, 환국(桓國,BC 7,199-3,897)의 말엽에 환웅(桓雄)이 있었다. 그는 홍익인간(弘益人間), 재세이화(在世理化), 광명이세(光明理世)의 뜻을 간직하고 있었다. 환웅(桓雄)은 동방 땅 백두산(白頭山)에 문명 개척단 3,000명과 함께 배달(倍達 BCE 3,898-2,333)을 건설하였다.

 

배달국(倍達國,BC 3,897-2,333년)은 신시 배달(神市백두산,1-13대 환웅)과 청구 배달(靑丘산동성.태산(泰山),14대-18대 환웅)로 나누어진다. 배달국(倍達國)의 환웅(桓雄)이 북만주와 대진국(발해) 연안의 땅에 뛰어난 석공예와 질공예를 남겼는데, 이것을 배달(倍達) 환웅(桓雄)의 '홍산(紅山) 문화'라고 한다. 배달국(倍達國,BC 3,897-2,333)은 다시 고조선(古朝鮮,BC 2,333-238)으로 이어졌다.

 

우리 민족의 역사는 환국(桓國,BC 7,199-3,897)배달국(倍達國,BC 3,897-2,333)고조선(古朝鮮,BC 2,333-238)부여.옥저.동예.낙랑국마한.변한.진한고구려.백제.신라로 이어져서 무려 9,200년이나 된다.

 

한편, 강태공(姜太公)은 진주(晋州) 강(姜)씨의 후손으로 한족(漢族)에게 신교(神敎)를 전수해 준 사람이다. 강태공은 위수(渭水)에서 낚시를 하다가 문왕을 만나 넓은 식견과 지혜로 문왕의 스승이 되어 문왕이 죽은 뒤에 무왕을 도와 은(殷)나라를 멸망시키고 주(周)나라를 일으킨 인물이다.

 

태호(太昊) 복희(伏羲)는 5,500년 전, 주역(周易) 팔괘(八卦)를 처음으로 그려서 주역(周易)의 역철학을 체계화한 분이다. 복희(伏羲, ?~B.C3,413)씨는 풍산(風山)에서 출생하여 풍(風)씨라고 하였다. 복희(伏羲)씨는 배달국의 5대 태우의 환웅(太虞儀, B.C3,512년 즉위)의 12번째 아들이며, 우사(雨師)직책을 수행했다. 음양오행과 태극기의 팔괘를 처음 그려냈으며, 혼인제도를 처음 만들었고, 배달국의 녹도문자를 개량하여 새로운 문자인 용서(龍書)를 제정했으며, 침구를 처음 시작해 침을 만들었고 양잠을 처음 시작했다고 한다. 태호(太昊) 복희(伏羲)가 인류 문화의 첫 출발을 창시했고 신교(神敎)를 체계화 하였다. 하지만, 중국인들은 배달민족인 동이족(東夷族)을 비하하여 그의 모습을  사신인수(蛇身人首)의 형상으로 그려 놓았다. 풍(風)씨의 후손들은 15대 만에 자손이 끊어지는 바람에 결국 풍(風)씨는 사라지고 말았다. 그래서 이를 안타까워한 후세의 사람들은 "풍채 좋다. 풍신 좋다. 풍골 좋다"라는 표현을 남김으로써, 풍(風)씨를 기리고자 했다.


염제(炎帝) 신농(神農)은 배달국(倍達國) 때의 사람이다. 신농(神農)씨는 온갖 풀맛을 보아 의약(醫藥)을 확립시켜 놓았으며, 백곡(百穀)을 정함으로써 천하만세에 농사법의 혜택을 많이 입혔다고 한다. 경농(耕農)과 의학의 창시자이며, 시장(市場) 제도를 최초로 만든 사람이다. 시장이란 사람들이 물물생산해서 교역을 하는 장소를 말한다. 염제 신농(神農)은 진주(晋州) (姜)씨의 시조가 되는데, 신농(神農)의 아버지는 배달국(倍達國)의 8대 안부연(安夫連) 환웅 때, 소전(少典,벼슬이름)으로 있었으며, 강수(姜水)의 감병관으로 임명받고 강수(姜水,중국 섬서성)에 정착했다고 한다. 호남성 영현에 그의 묘지가 있다. 중국인들은 동이족(東夷族)을 비하(卑下)하여 동이족인 신농(神農)의 형상을 인신우수(人身牛首)의 형상으로 그려 놓았다고 한다. [글: 진단검사의학과 전문의. 최병문]

 

★ 우리 배달(倍達) 민족의 과거 역사와 미래 문명의 비젼

 

★ 우리 배달 민족의 환국(桓國,BC 7,199-3,897), 배달국(倍達國,BC 3,897-2,333). 고조선(古朝鮮,BC 2,333-238) 문화는 중국의 (堯.재위BC 2357-2258), (舜.재위BC 2255-2208), (夏,BC 2,205-1,766), (殷,BC 1,600-1,046), (周,BC 1,046-771) 문화의 뿌리이다. 우리 민족의 역사가 환국(桓國,BC 7,199-3,897), 배달국(倍達國,BC 3,897-2,333), 고조선(古朝鮮,BC 2,333-238). 부여.옥저.동예.낙랑국.마한.변한.진한.고구려.백제.신라로 이어져서 무려9,200년이나 된다. 

 

 '신시(神市)개천경(開天經)'기록에 의하면, 환국(桓國)의 말엽에 환웅(桓雄)이 있었다. 그는 홍익인간(弘益人間), 재세이화(在世理化), 광명이세(光明理世)의 뜻을 간직하고 있었다. 환웅(桓雄)은 동방 땅 백두산(白頭山)에 문명 개척단 3,000명과 함께 배달국(倍達國,BC 3,897-2,333)을 건설하였다. 배달국(倍達國,BC 3,897-2,333년)은 신시배달(神市백두산,1-13대 환웅)과 청구배달(靑丘산동성.태산(泰山),14대-18대 환웅)로 나누어진다. 배달국(倍達國)의 환웅(桓雄)이 북만주와 대진국(발해) 연안의 땅에 뛰어난 석공예와 질공예를 남겼는데, 이것을 배달(倍達) 환웅(桓雄)의 '홍산(紅山)문화'라고 한다.

  

 우리 배달(倍達)민족이 천제(天祭) 및 제사(祭祀) 풍습을 중국 한(漢) 민족에게 전해줬다. 배달국(倍達國) 말엽 및 고조선(古朝鮮) 초기에 중국에서 나라를 창업한 사람들 중에서, 임금(하夏나라의 시조). 임금(은殷나라의 시조). 문왕(주周나라의 시조). 무왕(주周왕조 개창). 강태공(병법의 시조, 제齊나라)도 역시 우리 동이족(東夷族)이었다. 또한, 중국의 건국(建國) 시조(始祖)인 삼황오제(三皇五帝)는 전부 우리 동이족(東夷族)이었다. 삼황(三皇)은 태호복희(太昊伏羲). 염제신농(炎帝神農). 황제헌원(黃帝軒轅)을 말하고, 오제(五帝)는 소호금천전욱고양제곡고신. (堯)임금(舜)임금을 말한다. 그들 모두 배달(倍達)민족이었다. 중국의 건국 시조의 8명 중에 우리 민족이 8명으로 전부를 차지한다.

 

★ 중국은 예로부터 우리나라를 청구(靑丘)라고 했는데, 청구 배달(靑丘,14대-18대 환웅)을 일컫는 말이며, 청구 배달의 문화가 '홍산 문화 (紅山文化)'이다. 그 다음 나라에 이르러, 고조선의 '단군(檀君) 신화' 중에는 호랑이와 곰이 나오는데, 실제는 호족(虎.호랑이)과 웅족(熊.곰)을 배달(倍達) 동이족(東夷族)이 교화해서 건국한 것을 신화 형태로 기록한 것이다. 고대 사회의 사람들은 '신화의 형태'로 이야기해야 알아듣는 그런 시대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