뺏긴 역사찾자

세계 최고(最古) 배, 한국 또 출토

마도러스 2012. 10. 23. 12:08

세계 최고(最古) 배, 한국 또 출토

 

■ 세계 최고(最古) 배(船), 경북 울진 죽변 출토

 

지금으로부터 약 8천년 전 신석기(新石器) 시대에 낚시 도구를 싣고서 물고기 잡이에 활용한 목제(木製) 선박(船舶)과 이를 젖던 도구인 노(櫓)가 한꺼번에 경북 울진군 죽변에서 발견됐다.

 

신석기(新石器) 시대의 배(船)와 노(櫓)는 경남 창녕 비봉리 유적에 이어 국내 두 번째로 출토됐다. 더구나 그 제작 연대는 비봉리 유적과 대략 같은 8,000년 전에 제작 사용됐을 것으로 추정했다. 국내 최고(最古)이면서 전 세계를 통틀어서도 현존하는 세계 최고(最古) 배(船)에 속한다는 점에서 이번 발견은 국내외 고고학계에서 비상히 주목받을 것으로 전망된다.

 

매장 문화재 전문 조사 기관인 삼한(三韓) 문화재 연구원(원장 김구군)은 울진군 의뢰로 2010년 05월 경북 울진군 죽변면 죽변리 일원 도시 계획 도로 부지에 포함된 초기 신석기(新石器) 유적 출토 유물을 최근 정리하고 보존 처리하는 과정에서 목재 유물 중에 목제(木製) 선박(船舶) 조각과 노(櫓)를 확인했다고 2012.08.27일 말했다.

 

이 중 목제(木製) 선박(船舶) 조각은 현존 길이 64cm에 너비 50cm, 두께 2.3cm로, 편평한 판재 형태를 띠며 가장자리 쪽이 바깥으로 들려 올라간다. 조사단은 "분석 결과 수종은 조직이 치밀하고 단단한 녹나무로 밝혀졌다"고 말했다.

 

이와 함께 발견된 목재 노(櫓)는 잔존 길이 170cm×최대폭 18cm×두께 2.1cm. 물에 잠기는 갈퀴 부분은 넓은 사다리꼴이며, 손잡이 부분은 단면 직사각형이고 수종은 상수리 나무로 드러났다.

 

경남 창녕 비봉리 유적에 이은 두 번째 개가

 

김구근 원장은 "이들 목제(木製) 선박(船舶)과 노(櫓)는 조사 대상지의 현재 지표 약 180cm 아래의 제4문화층에서 출토됐다"면서 "목제(木製) 선박(船舶) 조각과 노는 수습 당시 부식이 심해 그 형태를 알아보기 어려워 흙덩이 상태로 떠서 옮겨왔다"면서 "보존 처리 과정에서 이들의 정확한 용도를 확인하게 됐다"고 말했다.

 

경북 울진군 죽변면 죽변리 유적의 신석기(新石器) 시대 목제(木製) 선박(船舶) 및 노(櫓)는 경남 창녕 비봉리 유적에 이어 국내 두 번째로 출토된 것이다.

 

김구근 원장은 "초기 신석기 시대 목선(木船)으로 국립 김해 박물관이 조사한 경남 창녕 비봉리 유적에서 2척이 확인되었고, 조사 결과 통나무 가운데를 불로 태워서 자귀 등으로 깎은 환목선(丸木船. 둥근 형태의 통나무 배)였다"면서 "경북 울진군 죽변면 죽변리 유적의 목제(木製) 선박(船舶)은 녹나무를 판자 형태로 만든 판재상 목선(板材狀木船)으로 추정되는 점이 다르다"고 덧붙였다.

 

이로 볼 때 초기 신석기(新石器) 시대 목재 가공 기술이 판자를 만들 정도로 상당히 발달했음을 알 수 있다고 조사단은 전했다. 경남 창녕 비봉리 유적을 발굴한 임학종 국립 김해 박물관 학예 실장은 "신석기 시대 사회 생활과 경제의 단면을 보여주는 획기적인 발견"이라고 평가했다.

 

더불어 유적 내에서 비록 파손된 형태이기는 하지만 결합식 낚시의 부품을 비롯한 각종 어로 관련 도구가 출토된다는 점에서 이들 목선(木船)은 어로 행위에 사용한 것으로 짐작된다. 한편 이번 경북 울진군 죽변면 죽변리 유적에서는 신석기 시대 5개 문화층이 확인되고 각종 토기류 580점과 돌도끼와 낚시 도구, 절구 등의 석기류 407점, 뼈로 만든 낚싯 바늘 등이 대량으로 나왔다. (중앙일보, 입력: 2012.08.28)

 

 

세계 최고(最古) 목선, 한국에서 출토

 

■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8천년 전 목선(木船) 발견

 

국내는 물론 세계에서 가장 최고(最古)의 것으로 추정되는 목선(木船)이 국내에서 발견됐다. 국립 김해 박물관은 경남 창녕군 부곡면 비봉리 신석기 유적에서 통나무를 이용해 만든 목제(木製) 선박(船舶)을 발견했다고 2005.09.05일 밝혔다.

 

김해 박물관은 목선(木船) 발견 지점이 경남 창녕군 부곡면 비봉리 유적 아래 신석기(新石器) 초창기 층위인 점을 감안할 때, 이 선박이 8,000년 전에 제작 사용됐을 것으로 추정했다. 과학적 연대 측정 등을 통해 이 같은 추정이 사실로 확인될 경우, 국내 발굴 선박 가운데 지금까지 가장 오래된 경주 안압지 배 (8세기) 보다 6,800년 앞서게 된다.

 

또한, 이집트 쿠푸왕 피라미드 유적의 고(古) 선박 보다 3,400년, 일본에서 가장 오래된 선박으로 알려진 도리하마(鳥浜) 1호나 이키리키(伊木力) 유적 출토품 보다 2,000년 이상 앞서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것이 된다.

 

■ 목선(木船)은 불로 나무를 그슬린 뒤, 석기(石器)로 제작

 

실물 기준으로 볼 때 , 경남 창녕군 부곡면 비봉리 목선(木船)은 최대 길이 310㎝, 최대 폭 60㎝, 깊이 약 20㎝ 정도의 규모이고, 원래는 길이 4미터 이상으로 추정되며, 소나무로 만들어졌다.

 

목선(木船)은 불로 나무를 그슬린 뒤 날카로운 석기(石器)검게 탄 부분을 파내어 제작했으며, 어로용, 이동용 등 다목적으로 사용했던 것으로 추정된다.

 

김해 박물관측은 “어로 활동 등 신석기(新石器)인들의 생활 방식과, 목선(木船)을 만들 정도로 뛰어났던 당시 사람들의 기술력 등을 보여주는 매우 소중한 자료”라고 평가했다. (한국일보 박광희 기자, 입력: 2005.09.05)  

 

 

★ 우리 배달(倍達) 민족의 역사는 9,200년이다.

 

우리 배달 민족의 환국(桓國,BC 7,199-3,897), 배달국(倍達國,BC 3,897-2,333). 고조선(古朝鮮,BC 2,333-238) 문화는 중국의 (堯.재위BC 2,357-2,258), (舜.재위BC 2,255-2,208), (夏,BC 2,205-1,766), (殷,BC 1,600-1,046), (周,BC 1,046-771) 문화의 뿌리이다. 우리 배달(倍達) 민족 문화가 중국 문화의 뿌리이다. 우리 민족의 역사가 환국(桓國,BC 7,199-3,897), 배달국(倍達,BC 3,897-2,333), 고조선(古朝鮮,BC 2,333-238). 부여.옥저.동예.낙랑국. 마한.변한.진한. 고구려.백제.신라로 이어져서 무려 9,200년이나 된다. 

 

'신시(神市) 개천경(開天經)' 기록에 의하면, 환국(桓國)의 말엽에 환웅(桓雄)이 있었다. 그는 홍익인간(弘益人間), 재세이화(在世理化), 광명이세(光明理世)의 뜻을 간직하고 있었다. 환웅(桓雄)은 동방 땅 백두산(白頭山)에 문명 개척단 3,000명과 함께 배달국(倍達,BC 3,897-2,333)을 건설하였다. 배달국(倍達,BC 3,897-2,333년)은 신시 배달(神市 백두산, 1-13대 환웅)과 청구 배달(靑丘 산동성.태산(泰山), 14대-18대 환웅)로 나누어진다. 배달국(倍達)의 환웅(桓雄)이 북만주와 대진국(발해) 연안의 땅에 뛰어난 석공예와 질공예를 남겼는데, 이것을 배달(倍達) 환웅(桓雄)의 '홍산(紅山) 문화'라고 한다.

 

배달국(倍達國,BC 3,897-2,333)의 홍산(紅山) 문화는 1920년대 프랑스 에밀 리쌍이 처음 발굴을 시작하였고, 1930년대 중국 철학자 양계초의 아들 양사영이 홍산(紅山) 유적지를 조사한 이래 많은 학자들이 연구에 뛰어 들었다. 그 후, 중국 정부에서 대대적으로 발굴하였는데, 1980년대에 홍산(紅山) 문화의 대표적인 유적지인 우하량 유적이 발굴되어 전세계가 깜짝 놀랐다. 이 곳에서 나오는 유물들은 중국의 황하 문명 보다 2-3천년 앞 서 있었고, 유적과 유물들을 자세히 살펴 보면 그 지역의 문명은 이미 국가 단계의 구비 조건을 모두 갖춘 문명이었기 때문이다.

 

또한, 이들 배달국(倍達國,BC 3,897-2,333)의 홍산(紅山) 문화의 유적과 유물들은 세계 문명의 발상지라고 꼽히는 이집트. 메소포타미아. 인더스. 황하 문명 보다 훨씬 앞 선 문명 형태였기 때문이다. 예를들면, 홍산 문화의 소하서 지역 유적들은 무려 8,500년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결론적으로 배달국(倍達國,BC 3,897-2,333) 홍산(紅山) 유적지 발굴은 세계 문명사를 다시 쓰게 하는 엄청난 사건이다. 최근에도 중국은 동북(東北) 공정의 일환으로 이 곳을 계속 발굴하고 있다.

 

현재, 중국은 홍산(紅山) 문화를 ‘요하(遼河) 문명’이라고 하여 자기네 역사 유적이라고 우기고 있지만 그 유적지의 위치와 문명 양식 등을 보면 동이족(東夷族) 배달(倍達)의 문화 양식임에는 어쩔 수가 없다. 중국이 만주의 홍산(紅山) 유적지 문화를 자기네 것이라고 우기는 것은 마치 송곳을 주머니 속에 넣고 감추는 것과 같다. 결국 밖으로 드러나게 마련이다.

 

배달국(倍達國,BC 3,897-2,333년)은 신시 배달(神市백두산,1-13대 환웅)과 청구 배달(靑丘산동성.태산(泰山),14대-18대 환웅)로 나누어진다. 배달국(倍達國)의 환웅(桓雄)이 북만주와 대진국(발해) 연안의 땅에 뛰어난 석공예와 질공예를 남겼는데, 이것을 배달(倍達) 환웅(桓雄)의 '홍산(紅山) 문화'라고 한다.

 

환국(桓國)의 신교(神敎) 문화는 고대 문화의 원형이고, 배달국(倍達國)으로 이어졌으며, 환국과 배달국의 문화는 세계 4대 문명의 뿌리가 되었다. 환국(桓國)의 12개 나라 가운데, 수밀이국우루국은 그동안 서양에서 최초의 문명족으로 알려져 있던 나라 이름이고, B.C 3,500년 전의 고대 메소포타미아(수메르) 문명을 일으킨 나라이다.

 

최근 120여 년 동안의 고고학 발굴 결과, 중동의 메소포타미아 지역에서는 B.C 3,500년 경에 오늘의 서양 문명의 뿌리인 수메르(Sumer) 문명이 있었고, 이 문명을 건설한 수메르 민족은 동방에서 왔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수메르 문명은 다시 이집트 문명에게 영향을 주었고, 또한 고대 희랍 문화에 영향을 미쳤으며 로마제국을 거쳐 오늘날 서양 문명이 나온 것이다. 인더스 문명 또한 북방문명에서 기원했다고 하며, 배달국(倍達國)의 문화가 유입되어 인더스강 유역에 자리를 잡은 것이다.

 

중국의 황하 문명은 B.C3,000-2,500년경에 황하강 유역에서 발생했는데, 이것은 북만주와 산동반도 유역의 배달국(倍達國, B.C3,898-2,333) 문명의 영향을 받아 생겨난 것이다. 근래에 만주에서 동북 공정의 일환으로 ‘요하(遼河) 문명’ 유적을 발굴하고 있는데, 요하(遼河) 문명배달(倍達) 문명의 일부이다. '황하 문명' 보다 앞선 유적들이 무수히 쏟아져 나왔다. 중국 당국이 발칵 뒤집혔다.

 

배달(倍達 BCE 3,898-2,333)의 홍산 문화메소포타미아 문명(BCE 3,500-2,600년). 황하 문명(BCE 3,000-2,500년). 인더스 문명(BCE 2,500년경). 이집트 문명(BCE 3,100년경) 보다 앞선 것이며, 세계 4대 문명에게 영향을 준 것이라는 증거와 유적들이 최근 속속 발굴되고 있다.

 

'한민족의 배달(倍達) 문명이 중국 민족의 황하 문명보다 빨랐고, 중국의 황하 문명은 한민족 배달(倍達) 문명을 받아서 생긴 것이다.' 라는 역사적 사실들이 속속 드러나고 있다. 우리 민족의 역사가 환국(桓國,BC 7,199-3,897), 배달국(倍達國,BC 3,897-2,333), 고조선(古朝鮮,BC 2,333-238). 부여.옥저.동예.낙랑국.마한.변한.진한. 고구려.백제.신라로 이어져서 무려 9,200년이나 된다.

 

환국(桓國)의 장자국(長子國)이 배달국(倍達國)이었고, 배달국(倍達國)의 장자국(長子國)이 고조선(古朝鮮)이었음을 비추어 볼 때, 우리 배달(倍達)민족과 한국이 세계 4대 문명의 정통성을 이어 받은 민족이며 나라임을 알 수 있다.

 

우리 배달(倍達)민족이 천제(天祭) 및 제사(祭祀) 풍습을 중국 한(漢) 민족에게 전해줬다. 배달국(倍達國) 말엽 및 고조선(古朝鮮) 초기에 중국에서 나라를 창업한 사람들 중에서, 임금(하夏나라의 시조). 임금(은殷나라의 시조). 문왕(주周나라의 시조). 무왕(주周왕조 개창). 강태공(병법의 시조, 제齊나라)도 역시 우리 동이족(東夷族)이었다. 또한, 중국의 건국(建國) 시조(始祖)인 삼황오제(三皇五帝)는 전부 우리 동이족(東夷族)이었다. 삼황(三皇)태호복희(太昊伏羲). 염제신농(炎帝神農). 황제헌원(黃帝軒轅)을 말하고, 오제(五帝)소호금천. 전욱고양. 제곡고신. 요(堯)임금. (舜)임금을 말한다. 그들 모두 배달(倍達)민족이었다. 중국의 건국 시조의 8명 중에 우리 민족이 8명으로 전부를 차지한다.

 

중국은 예로부터 우리나라를 청구(靑丘)라고 했는데, 청구 배달(靑丘,14대-18대 환웅)을 일컫는 말이며, 청구 배달의 문화가 '홍산 문화 (紅山文化)'이다. 그 다음 나라에 이르러, 고조선의 '단군(檀君) 신화' 중에는 호랑이와 곰이 나오는데, 실제는 호족(虎.호랑이)과 웅족(熊.곰)을 배달(倍達) 동이족(東夷族)이 교화해서 건국한 것을 신화 형태로 기록한 것이다. 고대 사회의 사람들은 '신화의 형태'로 이야기해야 알아듣는 그런 시대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