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칼럼

3D 스마트폰, 극적 개발 스토리

마도러스 2011. 7. 19. 19:23

 

3D 스마트폰, 극적 개발 스토리


■ 스마트폰 낙오 충격 ‘천덕 꾸러기’ 전락


2010년 3월. 심란한 하루가 이어졌다. 언론에서는 온통 애플의 아이폰 얘기였다. 그나마 삼성전자는 자체 스마트폰 운영체제(OS) 바다(Bada)를 만들고 아이폰에 맞설 비장의 무기 ‘갤럭시S’를 준비하고 있었다. 하지만, LG전자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전략적 판단 착오로 일반 휴대전화에만 매달렸기 때문이다. 2010년 2월에 열린 세계 최대 이동통신 전시회 모바일 월드 콩그레스(MWC)에는 참석도 못했다. 보여줄 게 없었기 때문이다. 참담했다. LG전자 휴대전화(MC)사업부 직원들은 갑자기 변한 세상에 적응이 안 됐다.


급하게 LG전자 내부에 스마트폰 프로젝트가 생겨났다. 아이폰4 이후를 대비해야 했다. 2010년 장사는 이미 망했다고 봐야 했다. 결국 남용 부회장이 물러나고 2010년 10월 최고경영자(CEO) 구본준 부회장이 ‘독한 LG’를 외치며 구원 투수로 나서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졌다.


■ 새로운 무기로 승부하라!


2010년 3월. 노현우 기술 전략팀 선임 연구원의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2010년에는 그렇다 쳐도 2011년에는 존재감을 드러낼 뭔가가 필요했다. 기술 전략팀과 상품 기획팀은 연일 회의였다. 그때 누군가가 말했다. TV 사업부는 온통 3D 얘기던데….” “아, 맞다. 3D! 왜 아직 휴대전화에서는 3D 생각을 왜 아무도 안 했지? 뜰 때까지 언제 기다려요? 우리가 먼저 합시다.”


이때부터 안경 없이 입체 화면을 보는 3D 스마트폰을 만들기 위한 450일간의 여정이 시작됐다. 본격적인 프로젝트팀을 만들려면 실제로 실현할 수 있는 아이디어인지 검증해야 했다. 내부의 회의적인 시각과도 싸워야 했다. ‘3D로 볼 만한 콘텐츠가 있을까? 너무 빠른 것 아닌가?’라는 온갖 걱정이 쏟아졌던 것이다. 사업이 잘되고 있을 때야 ‘이런 말쯤’ 하고 넘기겠지만 회사가 휘청거리는 상황에서 비판적인 시각은 팀원들의 마음도 흔들어댔다.


그때마다 고참 개발자들이 나섰다. 휴대전화의 멀티미디어를 연구해 온 이남수 수석 연구원은 “3D 스마트폰이야말로 멀티미디어와 궁합이 잘 맞는 특별한 모델이 될 거란 예감이 온다”며 “우리가 일반 휴대전화에서도 카메라가 강했는데 3D 카메라로 한번 나서 보자”고 나섰다.


■ 그게 될까? 비관 속, 끝내 극적인 개발


2010년 8월 말, 서울 금천구 가산동 LG전자 연구 개발(R&D) 센터 사무실에는 ‘코스모폴리탄(cosmopolitan) 프로젝트’ 팻말이 걸렸다. 사무실에 170여 명이 한데 모였다. 드디어 3D 스마트폰 프로젝트가 본격적으로 꾸려진 것이다. 이름이 왜 ‘코스모폴리탄(cosmopolitan)’일까? “코스모폴리탄(cosmopolitan)이 뉴욕과 주요 도시에서 팔리는 여성 잡지 이름인데, 우리도 트렌드를 앞서나가는 폰을 만들자는 얘기죠.” 이남수 수석 연구원이 멋쩍게 웃으며 말했다. 세계주의(internationalism)를 지향하자는 것이었다.


우선 가장 역량을 쏟았던 것은 3D 카메라였다. 사람이 사물을 입체적으로 볼 수 있는 이유는 왼쪽과 오른쪽 눈이 서로 다른 영상을 포착하기 때문이다. 노현우 선임 연구원은 우리 눈처럼 카메라 렌즈 두 개의 거리를 띄우기로 했다. 의학 논문부터 뒤졌다. “사람의 양쪽 눈 사이 거리가 6.5cm라고? 오케이.” 카메라 렌즈 두 개 사이를 6.5cm로 띄어놓고 3D 영상을 찍어봤다. 하지만, 처음엔 엉망이었다. 사람의 눈동자는 고정돼 있지 않으니 최적의 거리는 다를 수밖에 없었다. 밤잠을 설치다 기구(소재 및 재료)를 담당하는 강재혁 책임 연구원에게 전화를 걸었다. “레일 하나 만들어줘요.”


강재혁 책임 연구원이 정성껏 만들어 준 레일 위에서 실험을 시작했다. 원점에 카메라를 두고 사진을 찍고, 원점에서 5cm 떨어진 지점으로 이동시켜 또 한 장 찍고. mm 단위로 거리를 바꿔가며 사진 두 장을 합성해 봤다. 그렇게 해서 찾은 수치가 2.4cm이다. 시중에 나온 3D 카메라를 모조리 해부하는 것도 그의 몫이었다.


안경 없이 보는 3D 화면은 LG 디스플레이와 같이 조율했다. 액정 표시 장치(LCD)에 얇은 판막이를 붙여 화면의 점(픽셀)에 미세한 경계선을 나눴다. 이 나눠진 점이 양쪽 눈에 각각 들어오도록 했다. 주말도 없이 이어지는 야근으로 지친 사람도 늘어갔다. 그러자 리더인 이현준 상무까지 팔을 걷어붙이고 개발 전선에 뛰어들었다. 개발팀은 절박했다. 스마트폰 때문에 회사 전체가 적자로 돌아섰고, CEO와 휴대전화 사업부 본부장도 바뀐 상황에서 반드시 성공을 이끌어내야만 했다.


■ 스페인 모바일 월드 콩그레스(MWC)의 반전 드라마


1차 소비자인 이동 통신사들의 반응은 신통치 않았다. 2010년 12월, 한국 시장을 총괄하는 김영희 책임 연구원이 이동 통신사들과 처음 만난 자리에서 그들은 대뜸 한 첫 질문은 이랬다. “이런 거 왜 만드세요?” 힘이 쫙 빠졌다. 김영희 책임연구원은 할 말을 잃었다. 


2011년 2월 14일에 열리는 모바일 월드 콩그레스(MWC)까지 3D 기능을 제대로 완성할 수 있을까란 생각에 잠이 오질 않았다. 이번이 세계에 대놓고 ‘나 죽지 않았다!’ 라고 외칠 기회인데, 놓칠 수 없었다. 팀원들이 힘들어하는 걸 지켜보던 정동수 수석 연구원의 마음도 무거웠다.


스페인으로 출국을 하루 앞둔 2011.02.11일 밤, 가까스로 시제품 개발에 성공했다. 거짓말 같은 반전 드라마가 펼쳐졌다. 170명 전원이 일제히 환호했다. 드디어, 손떨림 방지고화질(HD) 재현 등 제대로 된 3D 카메라 기능이 완성된 것이다. 스페인으로 날아갈 용사들은 가산동 R&D센터에서 곧바로 공항으로 향했다.


노현우 선임 연구원은 10시간 동안 전시장에 서 있었다. 눈앞의 광경이 꿈인지 생시인지 구분이 안 갔다. 화장실 갈 시간도 없이 몰려드는 관람객들에게 제품 설명만 했는데, 전혀 피곤하질 않았다. 그동안의 고생이 파노라마처럼 스쳤다. 한국시장 담당 김영희 책임 연구원은 통신사의 말 한마디에 전율을 느꼈다. “정말 재미있네요.” 각국 통신사들의 질문이 폭주하기 시작했다.


■ 세계 최초의 3D 스마트폰을 만들었다는 자부심


코스모폴리탄(cosmopolitan) 프로젝트 팀이 만든 스마트폰은 ‘옵티머스(Optimus) 3D’라는 이름을 달고 2011.06월 말 스페인 영국 등 유럽 일부 지역과 2011.07월 한국 시장에서 판매를 시작했다. 2011.07월 말부터는 미국에도 들어가 모두 60여 개국, 100여 개 사업자에게 팔기로 했다. 몇일 사이에 약 20만 대가 팔려 나갔다.


하지만 대만 스마트폰업체 HTC도 이보(EVO) 3D 스마트폰을 북미 시장에 내놓았다. 찍고 보고 유튜브, TV 등과 공유하는 3D 스마트폰은 LG전자가 세계 최초지만 벌써 이 시장의 경쟁도 시작됐다.


그래도 개발자들은 자신 있다는 반응이다. 세계 최초의 3D 스마트폰을 만들었다는 자부심 때문이다. 국내에서 정식으로 팔리기 시작한 날인 2011.07.15일, 인터뷰를 위해 프로젝트의 핵심 멤버 10명이 한자리에 모였을 때 일부는 눈가가 촉촉해지기도 했다. (동아일보 김현수 기자, 입력: 2011.07.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