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칼럼

뉴튼. 아인슈타인의 열정 끈기

마도러스 2011. 7. 20. 11:04

뉴튼. 아인슈타인의 열정 끈기


뉴튼(Newton)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이 앞서 얘기한 ‘만유인력(萬有引力)과 사과’일 것이다. 이 사과(apple) 일화(逸話)는 유럽에 흑사병(黑死病)이 창궐하던 시기인 1665-1666년 사이의 일이다. 이 시기에 뉴튼(Newton)은 대학생이었으며, 흑사병(pest)을 피해 잠시 고향으로 내려가 있었다.


어느 날 사과(apple) 나무 아래에서 ‘달(moon)의 운동’과 관련하여 ‘실에 매달려 회전하는 돌은 실 때문에 궤도를 벗어나지 못한다지만, 달(moon)은 지구와 연결된 실이 없는데도 지구 주위를 돌 수 있을까?’ 하는 생각에 잠겨 있었다.


이때 떨어지는 사과(apple)를 보며 ‘사과(apple)를 떨어뜨리는 중력(重力)이 또한 달(moon)을 지구 궤도에서 벗어나지 못하게 묶어 두는 것은 아닐까?’라는 아이디어를 얻은 것이다. 하지만, 뉴튼(Newton)은 이 아이디어를 얻고도 20년이 지난 1687년에 저서인 프린키피아(Principia)를 발표하며 만유인력(萬有引力)의 개념을 완성하였다.


그리고 만유인력(萬有引力)의 탄생까지는 데카르트, 후크, 핼리, 갈릴레오, 보일 같은 인물들의 지적 자극이 도움 되었다고 한다. 혼자만의 노력이 아닌 유무형의 네트워크(network)를 만들었고, 이를 효과적으로 활용한 결과로 만유인력(萬有引力)이 탄생한 것이다. 그것도 20년이라는 오랜 세월에 걸쳐서 말이다.


또한, 18세기 계몽사조(啓蒙思潮) 시대에는 천재를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영감과 상상력을 발휘해서 독창적인 아이디어를 만드는 사람으로 인식했기에, 뉴튼(Newton)의 후계자들은 뉴튼(Newton)의 근면성과 노력보다는 상상력, 직관, 추측을 강조했다고 한다. 끈질기게 학문을 파고드는 과학자 뉴튼(Newton)이 아닌 정상을 벗어난 천재성만을 강조한 것이다. 이러한 시대적인 배경이 ‘사과(apple) 일화’를 더욱 크게 부각하게 만들었다.


뉴튼(Newton)이 천재적인 과학자인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책을 읽다가 막히면 처음으로 돌아가 다시 읽는 끈질긴 근성, 기존 지식에 대한 비판적인 이해, 다양한 지식에 대한 흡수력그것에 질서를 부여하는 능력, 이러한 모든 것을 추구하는 끈기와 지칠 줄 모른 열정은 간과 되고 있다.

 

아인슈타인(Einstein)이 학창 시절에 성적이 좋지 않았고 고등학교 중퇴, 대학입시 실패, 졸업 후 구직난까지 처했었다는 내용은 널리 알려진 상식처럼 취급되고 있다. 깊은 사고와 오랜 학습 이 있어야 하는 이론 물리학 분야에서 역사상 유례를 찾기 어려운 업적을 이룬 사람이 학창 시절의 성적이 낙제에 가까웠다면 그 자체로도 충분히 관심을 둘 만하다.


아인슈타인(Einstein)이 천재적인 과학자로서의 명성에 비해 성적이 뛰어나지 못했다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그가 어떤 이유로 성적이 좋지 못했는지에 대한 내용이 간과되어 있기에 이 또한 잘못된 상식이 아닐까? 그가 입학한 9년제 ‘김나지움(Gymnasium)’이라는 학교는 인문적 성향이 강해 라틴어나 후기 그리스어 같은 고전 언어 수업에 치중하고, 수학과 자연과학은 상대적으로 덜 중시하던 곳이었다.


이 학교에서 아인슈타인(Einstein)은 선생님의 질문에 반사적으로 대답하지 못하는 학생이었다. 그리스어 과목에서 숙제를 부실하게 해 갔을 때 해당 담임 교사가 아인슈타인(Einstein)에게 “장차 쓸모 있는 인물이 결코 될 수 없다”라고 말할 정도였다. 그리고 이런 평가를 한 교사가 7학년의 담임 선생님이었던 것이 아인슈타인(Einstein)이 학교를 견디지 못하고 중퇴하게 되는 데에도 큰 영향을 주었을 것이다.


이런 학교의 특징 때문에 아인슈타인(Einstein)은 전체적으로 성적이 뛰어나지는 못했으나 수학에서는 줄곧 높은 성적을 받았다. 그리고 학교를 중퇴했음에도 불구하고 대학 입학과 관련한 시험에서는 응시자 가운데 최고 성적을 받았다.


이런 점을 고려해 보면 김나지움(Gymnasium)의 교사들은 탐색하고 반추하는 능력보다는 이미 정해진 해답을 재생하는 데에만 관심을 기울였기에 아인슈타인(Einstein)의 재능을 발견하지 못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발견조차 못 했으니 북돋우며 성장시킬 수도 없었던 것이다. (김시훈 자유 기고가)(ScienceTimes, 입력: 2011.07.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