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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는 지금 ‘에너지 패권 전쟁’

마도러스 2009. 3. 4. 19:22

 

세계는 지금 ‘에너지 패권 전쟁’ 

 

 

 


유라시아의 '에너지 트라이앵글'인 러시아, 이란, 카자흐스탄 3개국 탐방에 나섰다.  "21세기 전반부 인류의 역사는 에너지 패권 경쟁의 기록으로 채워질 것이다."이라는 평소의 확신을 하나하나 짚어 보기로 마음을 정했다. "미래를 보는 전략적 혜안 없이는 장기적 계획마저도 세울 수가 없다. 대부분의 자원 강국들은 치밀한 전략을 세우고 지도자의 강력한 카리스마로 밀어붙이고 있다."

 

러시아의 최근 세계사를 보면 21세기 에너지 패권 경쟁의 핵심 요소들이 그대로 드러난다. 경제력 부족으로 미국과의 군비 경쟁에서 뒤쳐진 소련은 개혁 개방을 시도했지만, 결국 국가 해체의 길로 접어든다. 1986년 들이닥친 유가 폭락이 결정적 원인이었다.

 

20년 후인 2005년 제2차 세계 대전 승전 60 주년 행사에 53개 국 정상을 모아 놓곤 강한 국가 비전과 첨단 기술 잠재력을 과시할 수 있었던 것도 '석유 에너지'를 빼 놓고는 설명하기 어렵다. 중-러 전략 연대도 '에너지 공급과 무기 판매'가 두 축이다. 최근 러시아가 알제리와 90억 달러 상당의 계약을 성사시킴으로써 무기 시장 중국의 가치는 한풀 꺾일 조짐이다. 그러나 에너지 동맹의 결속 고리는 앞으로도 상당 기간 견고할 전망이다.

 

아프가니스탄 전쟁과 이라크 전쟁을 치르면서 미국과 러시아가 동맹 재편을 둘러싸고 벌인 시소 게임의 중심축 역시 에너지였다. 선수를 친 것은 미국이었다. 강한 군사력과 테러와의 전쟁을 내세워 전통적으로 러시아의 앞 마당이었던 북카프카즈와 중앙 아시아를 군사 기지 벨트로 묶어 나갔다. 루마니아와 불가리아는 북대서양 조약기구 (NATO)에 가입했고, 그루지야를 시작으로 우즈베키스탄과 키르기스스탄에까지 미군 기지가 들어섰다. 그 이면에는 바쿠-트빌리시-제이한(BTC) 라인을 포함한 송유관과 군사 협력을 교환하는 이해 관계가 자리했다.

 

미국의 유라시아 행진은 이라크에서의 고전으로 제동이 걸렸다. 그 사이 중국은 폭증하는 외환 보유고를 무기로 동남아와 중동, 아프리카를 상대로 무차별적 자원 사냥에 나섰다. "중국이 입찰에 참여했다는 소식만으로도 경쟁국들은 의욕을 잃을 정도였다." 

 

유라시아 남단의 미얀마, 파키스탄, 방글라데시는 중국과 손잡고 해군 기지를 공동 건설하는 파격적인 조치를 단행했다. 중국의 지원으로 방글라데시의 치타공 항구가 건설 중이고, 파키스탄의 과다르 항, 미얀마의 코코아일랜드 일대에 기지가 들어섰다. 미얀마 내륙에 건설된 철로와 도로는 중국 위난(云南) 성으로 이어져 중국의 오랜 염원 중의 하나인 태평양과 인도양을 아우르는 '이양(二洋) 전략' 실현도 이제 가시권에 들어왔다.

 

미국으로선 남방 수송로를 지배하는 제7함대의 위상 추락을 관망할 뿐이고, 중국으로서는 말라카 해협에 죄고 있던 목줄을 풀기 시작한 셈이다. 중앙아시아와 북카프카즈에서도 변화의 조짐은 나타나고 있다. '색깔혁명'으로 불리는 시민 봉기의 도미노현상으로 친미 색채가 뒤덮는 듯했던 이 지역에서 러시아의 입김이 새삼 커지기 시작했다. 에너지 강국으로서의 힘 때문이었다.

 

2006년 새해 벽두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상대로 도발한 가스 전쟁은 에너지 패권 행진의 전주곡에 불과하다. 알마티에서 만난 카자흐스탄국립대학의 김상철 교수는 "러시아는 머잖아 친미 성향의 그루지야에 대해서도 가스 공급 중단 압박을 시도할 것"이라 전망했다. 현재 그루지야에는 러시아 해군기지와 미국 군사기지가 공존하고 있다. 양국의 영향력이 직접 충돌하는 접점이다. 그루지야가 어떤 선택을 하든 의미심장할 수밖에 없다. 국제 질서는 '총소리 없는 자원 전쟁'의 에너지 패권 경쟁 시대로 접어들었다. 

 

사우디아라비아와 중-러 간의 밀착만큼 패권 경쟁 구도의 변화를 극명하게 보여주는 사건도 없을 것이다. 9·11 이전까지 사우디는 미국의 중동 교두보였다. 미국의 이라크 전쟁은 중동을 중심으로 한 에너지 질서 재편의 서막일 뿐이었다. 이스라엘 베사 전략연구소장 에프라임 인바 박사는 2002년 말 "사우디는 이미 중동의 변방국가로 전락하기 시작했다"고 진단한 바 있다.

 

그 후 불과 3~4년 사이 사우디아라비아의 대외 정책은 미국에서 중국-러시아 양국으로 축을 옮겨가고 있다. 사우디의 압둘라 국왕은 지난해 러시아와 무기 공급협정을 체결한 데 이어 올 1월 중국과 에너지협력 의정서에 서명했다. 자원 공급과 군사 협력을 양대 축으로 한 사우디의 기조 조정은 국제 동맹 질서의 미묘한 변화를 투영하고 있다.

 

사우디와 러시아가 에너지 우산을 받쳐줌으로써 중국이 유라시아 동쪽과 서쪽으로 관통하면서 형성하고 있는 준(準)동맹 관계는 미국의 초강국 지위를 위협하는 양상으로 발전하는 듯하다. 더욱이 이란과 베네수엘라는 반미 연대 조성을 공식화했다. 한국을 포함한 에너지 수입국들의 고민은 더욱 복잡해질 수밖에 없다.

 

이철희 동아일보 국제부 기자 ,2006.05.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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