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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차, 모계(母系) 평등 사회가 대세가 된다.

마도러스 2008. 12. 5. 18:16

 

장차 모계(母系) 평등 사회가 대세가 된다.         

  

1. 모계(母系) 평등 사회가 미래의 대세이다.  


조선시대 율곡 이이 선생. 퇴계 이황 선생. 이순신 장군 등등 모두 ‘처가(妻家)살이’를 했다. 우리나라 전통적인 결혼문화는 일단 모계사회였다. 결혼을 하게 되면 먼저 처가살이를 하고 애를 낳고 애가 성장하면 따로 분가하는 것이 전통적인 문화였다. 물론 조선 초기에 ‘주자가례(朱子家禮)’의 ‘친영론’에 따라 여자가 결혼하면 먼저 남자 집에서 살게 하자는 주장이 있었는데 그다지 보급되지는 못하였다. 중종도 이런 시책을 추진했지만 그다지 빛을 바라지 못하였다.

   

그런데, ‘처가(妻家)살이’ 풍습이 왜 없어졌을까? 임진왜란과 병자호란 이후 사회민심 회복 차원에서 유교 이념을 민중에까지 퍼트리고, 상류층 위주로 퍼져있던 중국 풍습‘주자가례(朱子家禮)’를 하층 민중에 보급하면서 우리 전통 가족문화도 많이 사라지게 되었다. ‘주자가례(朱子家禮)’는 주자(朱子)가 직접 쓴 것이 아니라, 주자(朱子)의 제자들이 주자의 이름을 빙자하여 중국식 풍습에 근거하여 가례(家禮)를 마구 적어 놓은 책이다. 주자(朱子)는 원래 흠 잡을데 없는 인물이었으나, 그 제자들이 그의 명예를 훼손한 대목이다. 


중국의 문화는 매우 호전적이고 침략적 기질이 강해서, 중국의 가족 문화는 부계중심의 가부장적 차별적 가족문화였다. 그러나, 한국의 전통 문화는 일단 모계 사회의 전통이 이어져 왔었고, 결혼을 하게 되면 남자는 일정기간 처가살이를 해야 했고, 애를 낳고 애가 성장하면 따로 분가 하는게 전통적인 결혼 문화였다. 한국인은 천지인(天地人) 삼재(三材)를 잘 받들고 사람을 존중하는 기질이 강해서, 한국의 전통 문화는 아들. 딸. 친가. 외가를 차별하지 않는 평등의 가족문화로서 특히 여자를 존중하는 문화를 지켜왔다. 그러한 전통은 배달국(倍達國), 고조선(古朝鮮), 삼국시대, 고려시대, 조선 전기까지로 이어져 왔다.


하지만, 임진왜란(1592-1598)과 병자호란(1636-1637)의 커다란 국란과 무수한 수탈을 겪으면서, 사회민심이 흐트러지자, 국가적으로 민심 회복 차원에서 유교적 성리학 이념을 민중에까지 퍼트리려고 노력했기 때문에 유교적 규범과 중국식 풍습이 일반 민초들까지 파고들면서 우리 전통 가족문화도 많이 사라지게 되었다.


여성부의 ‘2003 전국가족조사’에 따르면, 아내의 부모(18.1%)가 남편의 부모(11.1%)보다 경제적 지원을 많이 해주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 어려운 일이 생겼을 때 의논 상대가 되어주는 등 정서적 의존도 역시 남편의 형제가 4.2%인데 비해 아내의 형제는 22.6%로 월등히 높았다.


경제적으로 어려울 때 가장 가깝게 도움을 받을 수 있는 곳도, 힘든 일이 있을 때 제일 의지가 되는 곳도 친가보다는 ‘처가’라는 것이다. 이처럼 가정의 처가에 의존도 증가는 처가 중심, 모계 중심 유형의 등장을 알리고 있다. 시댁에 들어가 사는 가정 중 상당수가 아이 문제나 생활비 문제 등 고부간의 갈등이 끊이지 않는다. 반면, ‘처가(妻家)살이’를 택할 경우에는 갈등 요소를 상당 부분 피할 수 있다.


2. 처가살이 증가로 모계 사회가 움튼다.  


요즘, 처가살이 가정 및 여성 세대주 가정이 늘고 있다. ‘친권’과 ‘양육’의 주체가 남성이 아닌 여성으로 옮겨가고 있는 것이다. 적지 않은 여성 가장들이 가장의 역할을 다하고 있다는 점에 주목하면서 다가오는 미래를 ‘신(新) 모계 사회’로 규정하기도 한다. 일부 전문가들은 늘어나는 처가살이와 여성 가장의 가정에서 원시시대 모계 사회의 모습을 떠올린다. 혼인 제도의 모순과 부조리가 결국에는 사실혼 관계의 증가로 나타나고 더 이상 전통적인 가족의 개념에 얽매이지 않는다.


남성은 하숙생처럼 밥먹고 자고 머물며, 여성이 아이들과 가정의 중심이 되는 사회, 성별에 따른 차별과 편견이 사라지는 사회가 되고 있다. 가족은 가문 승계가 아닌 ‘양육’을 위한 최소한의 단위로 기능하는 사회가 되고 있다. 과연 모계사회가 21세기 신인류를 통해 재현될 것인가? 아직 모성 보호법 강화, 직장내 여성 차별 등 아직도 여성의 인권과 모성을 보호하기 위한 문제들이 산적해 있는 것이 현실이다.


3. 모계(母系) 평등 사회가 미래 전통이 된다.  


전통적인 부계(父系) 가정이 붕괴된 후, 여성이 가정을 책임지는 경우가 늘고 있다. 경제적 이유가 이혼의 주 요인이라고 전제했을 때, 양육권을 어머니가 갖게 되는 경우가 훨씬 많다. 가정의 생계를 책임지고 있는 여성 가구주의 비율은 1980년 14.7%에서 2000년 18.5%, 2003년 19.1%로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과거에는 여자가 이혼하거나 남편과 사별한 경우, 재혼을 하지 않고 아이들을 키우며 편모 가정으로 사는 경우가 많았지만 요즘은 사정이 다르다. 아이가 딸린 채 재혼하는 사례도 적지 않다. 이혼과 재혼 등의 과정에서 여성이 아이를 맡는 경우가 많아지면서 여성이 가정이 중심에 서게 되는 것이다.


4. 모계(母系) 평등사회 부활은 이미 시작되고 있다.  


지금 전세계는 모계사회로 진행 중이다. 여성을 중심으로 가족제도의 판이 새롭게 짜이고 있다. 여성을 중심으로 가정이 변화되고 있고, 남성에게 가정은 하숙생처럼 왔다가 밥먹고 자고 머무는 곳이다. 이미 북유럽과 서유럽에서는 사실혼제도가 보편화되고 있다.


한국 여성들의 포용력과 모성애에 기반한 ‘수평적 리더쉽’ , 여자들의 ‘수다’에서 나타나는 왕성한 정보 교환 욕구 등이 디지털 정보 사회를 발전시켜 나갈 것이다. 인류가 다시 모계사회로 돌아가고 있다는 것은 인류가 다시 ‘자연’으로 돌아가고 있다는 증거이다. 남성 가부장 사회는 자연의 이치에 합당하지 않다. 경직된 사회에서 유연한 사회로 변화되고 움직이고 있는 것이다.


5. ‘도처(到處)여풍(女風)’이 거세게 일고 있다. 


‘도처(到處)여풍(女風)’이 거세게 일고 있다. ‘도처(到處)여풍(女風)’의 시대가 도래했다는 것은 도처에 여성들의 기세가 등등해진다는 게 아니라, 이제서야 여성들이 본래의 유연성과 감성적 능력을 제대로 평가받게 되었다는 의미이다. 2005년 12월 통계청 발표에 따르면 20대 중ㆍ후반 경제활동인구에서 남성은 줄었으나, 여성은 오히려 늘어났다. 혹독한 취업난 속에서도 여성의 사회 진출은 더욱 두드러졌다. 2005년 행정고시가 44%, 사법시험은 32.37%를 기록했고, 서울시 행정직 임용시험에선 여성이 66.2%를 차지했다.


여성의 경제활동 참여 인구는 비약적으로 늘고 있지만, 그 이면에는 아직도 취약한 부분들이 많다. 여성 비정규직이 60~70%에 달하고, '육아'와 '가족 부양'의 그늘이 숨겨져 있다. 우리나라가 선진국에 진입할 수 있느냐 없느냐 는 여성인력 활용에 달려있다. 여성 인력의 질을 높이는 동시에 여성이 노동 시장에 진입하는데 방해가 되는 요인을 함께 제거해야한다.

  

6. 조선 초기까지는 모계 사회였다.  


씨족 공동체 사회에서는 씨족 구성원이 모두 수렵과 채집 등 경제활동에 참여했으므로 남녀의 차별은 나타나지 않았다. 오히려 여성은 생명을 탄생시키는 기능을 하고, 이로 인해 풍요를 기원하는 제천의식의 집행자였으며 모계사회(母系社會)였다. 모계 사회는 농경이 본격화되면서 남성의 역할이 커짐에 따라, 부계사회로 넘어가게 된다.


특별히 한국은 고려(高麗) 시대. 조선(朝鮮) 초기까지도 서민들 중심으로 모계(母系)가 강했다. 실제로 여성이 사회적으로 힘을 제대로 발휘하지 못한 것은 조선에 성리학이 들어오고서부터이다. 그 이전까지는 거의 동등한 존재였고, 모계를 중심으로 하여 가정이 꾸려지기도 했다. 그렇다고 고려시대가 모계사회라는 것은 아니다. 비교적 남녀가 평등했던 사회였지 결코 여권이 남권보다 컷 던 것은 아니다.


고려(高麗) 시대. 조선(朝鮮) 초기에는 출가 여부에 관계없이 딸에게도 재산을 분배하였고, 여손의 계승권도 인정하였다. 유교가 민중에게 확대 보급되기 전인 조선 초기까지만 해도 조선 후기처럼 여자를 천대하거나 하는 풍조는 없었다. 철저한 유교 사상이 계속 보급되다 보니, 여자를 무슨 물건처럼 여기고, 남녀는 내외해야 한다는 말이 생겼다. 조선 초기만 해도 "남녀가 눈이 맞으면 불똥이 튄다."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남녀간의 내외라는 말은 없었다. 모계사회의 사회 규범은 비폭력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모계사회는 양성이 평등하고 협의를 바탕으로 한 평화적 전통을 가지고 있으며, 모든 생명체를 존중하는 사상을 가진 사회이다.


7. 조선 후기에 가부장 제도 도입됐다.  


조선 초기까지는 남자가 여자 집에 장가들어 살거나, 자녀의 균분 상속제에 따라 자녀들이 돌아가며 부모를 섬기기도 하였지만, 조선 후기중국 풍습『주자 가례』가 생활화되면서, 조상의 제사를 주관한다는 명분으로 장자 중심으로 재산이 상속되었다. 또한 남존 여비, 재가 금지, 서얼 차대 등의 윤리적 조치들이 가부장 체제의 부산물로 자리 잡게 되었다.

  

이와 같은 부계 친족 중심의 문중은 사회, 경제, 문화 전반을 지배하여, 향촌 사회의 운영도 부계 성씨를 중심으로 형성된 동족 문중이 담당하였다. 이에 따라 가족과 종족 상호간의 상장 제례(喪葬祭禮)의 의식에 관한 예학(禮學)이 발달하게 되었으며, 사림 양반들은 가족과 친족의 유대를 통해서 문벌을 형성하고 양반으로서 신분적 우위성을 유지하려고 하였다. 이러한 필요에서 그들은 족보를 만들어 종족의 내력을 기록하고 그것을 암기하는 것을 필수적인 교양으로 생각하였는데, 이것이 이른바 보학(譜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