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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관우 삼보조선(三保朝鮮)의 핵심정리

마도러스 2006. 7. 1. 17:10

관우 삼보조선(三保朝鮮)의 핵심정리

 

                              출처: http://cafe.daum.net/do92 , dosu8888@daum.net

 

삼국지에 나오는 관우는 다음과 같이 조선을 3 번 돕는 역사를 가지게 되었다.

 

1. 임진왜란 때, 평양성 전투(1593.01)   


2. 정유재란 때, 울산의 도산(島山)성 전투(1597.12)에서 각각 관운장(관우)이 하늘에서 수천의 신병을 이끌고 나타나, 왜병을 물리치는데 음조(陰助)했다.


3. 서양 대전쟁 공사 (도전 5:166) : 상제님께서는 이이제이(以夷制夷)의 원리, 즉 제국주의(帝國主義)로서 제국주의를 다스리는 법방(法方)을 쓰셨는데, 그것은 서양에서 전란(戰亂)을 일으켜, 서양 제국주의들끼리 서로 싸우게 만드는 것이었다. 그럼으로써, 동양에 대한 제국주의 침략을 최소화하고, 조선을 비롯한 약소국가들을 보호하는 방편으로 삼았는데, 관운장이 이 공사에 협조함으로써 세 번째로 조선을 돕게 되었다.



임진왜란 때, 유비는 명나라 신종(1563-1620)으로 태어나 조선을 돕고,

장비는 조선의 선조(1552-1608)로 태어나 조선을 돕고,

관우는 천상에서 하느님의 나라인 조선을 도왔다.




<연려실기술>에는 다음과 같은 구절이 적혀 있다.


일찍이 임진년과 정유년의 왜란 때에 관우의 신령이 나타나 신병(神兵)으로써 싸움을 도와 주어 명나라 장수와 군사들이 모두 말하기를, "임진왜란 때, 평양성 전투(1593.01)에서 이긴 것과 정유재란 때, 울산의 도산(島山)성 전투(1597.12)에서 왜병을 물리칠 때, 관우의 신령이 늘 나타나 음조(陰助)하였다."


<임진록>에는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적혀 있다.


임진왜란과 정유재란 때, 조선을 도우러 온 명나라 장병들이 말하기를 평양성 전투와 울산의 도산(島山)성 전투에 관우의 영혼이 나타나서 왜병들과 싸우는 데 큰 도움을 주었다고 말하였다.


임진왜란 때 왜군이 평양까지 차지하니 선조는 의주로 피난하고 곧이어 명나라 여송의 구원병이 들어 닥쳤다. 조명연합군은 먼저 평양성을 되찾으려 성을 공격하였다. 그러나 왜군도 만만치 않게 버티니 싸움은 밤까지 계속되었다. 그런데 갑자기 하늘로부터 수천의 신병이 나타나 왜병을 치는지라 마침내 빼앗겼던 성을 되찾을 수 있었다. 이 날 칠흙같이 어두운 밤 신병을 거느리고 나타난 것은 다름 아닌 관운장!


선조대왕 25년 어는 봄 날이었다. 선조대왕께서는 춘곤을 못 이겨 깊은 잠이 들었는데 비몽사몽간에 위풍이 당당한 한 장군이 적토마를 타고 청룡도를 들고 삼각수를 날리며 늠름하게 대궐 안으로 들어와서 선조대왕의 손을 잡고 말하기를,


"아우님 그간 별고 없으신지? 나는 삼국시대 관우인데, 우리들의 의리와 인정을 잊지는 않았겠지? 유비.관우.장비의 도원결의 말일세. 우리 3형제는 살아서는 합심협력하고 서로를 도왔고 특히 형님(유비)이 촉한의 왕이 되자, 나(관우) 와 동생(장비)는 촉한에 충성을 바치고 마침내 순국하지 않았는가?


우리 삼형제는 한 세대가 끝나고 영혼의 세계에서도 그 의를 지켜왔는데, 오랜 세월이 지난 후 형님은 명나라의 신종(1563-1620) 황제가 되고, 나는 전쟁에서 인명을 너무 많이 해쳐서 인간 환생이 안 되었고 아우는 현재 조선의 선조(1552-1608) 왕이 되었지.


머지않아 동생의 나라에는 큰 병란이 일어날 텐데, 아무 방비도 없이 나날이 보내는 동생이 딱해서 지금 내가 일깨워 주러 왔네. 이 난리는 표독한 왜적이 쳐들어오는 난리인데, 7 ~ 8년이나 걸릴테니, 명나라 신종황제(유비)에게 구원을 청해서 수습하도록 하게. 내가 신종황제에게 도원의 고사를 들어 간곡히 부탁할테니, 주저 말고 시행하게." 하고 선연히 사라졌다. 깨고 보니 이상한 꿈이었다. 그러나 정신이 아찔하고 머리가 핑돌았다. 대왕은 조정의 백관과 더불어 방책을 논의 했으나, 때는 이미 늦었다. 힘없는 조정은 별 도리가 없었다. 그러나 마침내 임진왜란 때 관운장이 현몽한데로 선조 25년 4월 왜군 15만이 부산에 상륙하여 쳐들어오니 이것이 임진왜란인 것이다. 막아낼 재주가 없는 선조대왕은 서울을 비우고 의주로 피난을 가니 삼천리 강산은 초토화가 되고 피가 흘러 강이 되었다.


선조대왕께서는 의주에서 사신을 명나라 신종황제에게 보내어 원병을 청하였다. 그 요청이 간곡해서인지 관우의 신종 황제에 대한 현몽에 감동해서인지 신종 황제는 이여송(李如松)을 총수로하여 5만의 군사를 파병하였는데 마침 전국에서 일어난 의병과 이순신 장군의 활약으로 전쟁은 가짜스로 끝이 났다. 전쟁은 끝이 났지만 그간에 겪은 말할 수 없는 오욕과 회한과 비통과 수모를 어찌 다말로 표현할 수 있으랴마는 그중에서도 잊지 못할 것이었다.


그것은 관우의 현몽이요, 명나라에 대한 고마움이다. 그래서 조정에서는 관우의 관왕묘를 건립하였는데, 명나라 신종황제는 사신을 보내어 많은 지원을 해주었다.

 

 글 작성: 최병문 (010-4607-3746)

 

 

출처 : 세상을 여는 인간 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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