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三國).고려

여자를 존중해 온 우리들의 전통문화

마도러스 2006. 7. 1. 17:02

여자를 존중해 온 우리들의 전통문화

 

중국의 역사는 대부분 이민족이 들어와서 중국 대륙에 나라를 세웠고, 하(夏).은(殷)나라 이후 한 왕조가 300년 이상 지탱한 나라가 없었으며, 기껏해야 명나라 276년, 청나라 268년 유지했었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역사신라만 해도 1000(992)년 왕국이고, 고려 500(457)년, 조선 500(519)년 유지했었다. 중국의 문화는 매우 호전적이고 침략적 기질이 강해서, 중국의 가족 문화는 부계중심의 가부장적 차별적 가족문화였다. 그러나, 한국의 문화는 천지인(天地人) 삼재(三材)를 잘 받들고 사람을 존중하는 기질이 강해서, 한국의 전통 문화는 아들. 딸. 친가. 외가를 차별하지 않는 평등의 가족문화로서 특히 여자를 존중하는 문화를 지켜왔다. 그러한 전통은 배달국(倍達國), 고조선(古朝鮮), 삼국시대, 고려시대, 조선 전기까지로 이어져 왔다.

 

그러나, 임진왜란(1592-1598)과 병자호란(1636-1637)의 커다란 국란과 무수한 수탈을 겪으면서, 여자들의 사회적 입지와 지위는 더욱 약화되었고, 더군다나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으로 사회민심이 흐트러지자, 국가적으로 민심 회복 차원에서 유교적 성리학 이념을 민중에까지 퍼트리려고 노력했기 때문에 여자들은 유교적 틀 속에 속박 당할 수 밖에 없었다. 임진왜란병자호란 이후인 17세기 사림세력에 의해 성리학적 중국 문화가 사회 전반을 지배하면서 부계줌심(친가중심, 외가.처가 차별), 장자.아들(자녀간 차별) 가족 문화로 변화해 갔다.

 

우리나라 전통적인 결혼문화는 일단 모계사회의 전통이 이어져 왔었고, 결혼을 하게 되면 남자는 일정기간 처가살이를 해야 했고, 애를 낳고 애가 성장하면 따로 분가 하는게 전통적인 결혼 문화였다. 조선 초에도 성리학을 도입하여 여자가 남자 집에서 살게 하자는 주자가례의 친영론이란게 있었는데, 그다지 보급되지 못했다. 중종(1488-1544)도 이 시책을 추구했지만, 그다지 빛을 바라지 못했다. 율곡 이이(1536-1584)선생도 퇴계 이황(1501-1570)선생도 모두 처가살이를 했었다. 그런데, 왜 우리 전통 문화인 처가살이가 없어졌는가 하면, 선조 때의 임진왜란(1592-1598)과 인조 때의 병자호란(1636-1637)으로 사회민심 회복 차원에서 유교 이념을 민중에까지 퍼트리려 노력했기 때문이다.

 

조선 전기에는 유교적 가치관의 남녀관이 정립되지 않았고, 그런 덕분에, 여성의 사회, 경제적 지위가 남성과 큰 차이가 나지 않았다. 재산의 상속도 남녀의 차별 없이 균등했었다. 그러나, 조선 중기, 즉 17세기를 기점으로 그 이전과 그 이후의 여성의 역할과 삶의 모습은 질적으로 크게 변화했다. 특히, 임진왜란(1592-1598)과 병자호란(1636-1637)을 겪으면서 여성들의 삶은 한 획을 그을 만큼 큰 변화를 가져왔다. 유교 문화의 토착화가 그것의 원인을 제공했다. 유교문화는 조선이 건국되면서부터 도입되어 생활에 접합시키려는 노력이 계속되어 왔고 그 결과 17세기에 이르러서 비로소 생활세계의 규범으로 자리 잡히게 되었다. 그러나, 경제적 역할 면에서 여성의 삶은 17세기 이전과 이후 큰 변화는 없었다. 다만 문화적 사회적 측면에서의 여성의 삶은 크게 변화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