엽서 편지

■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이름(name), 어머니!

마도러스 2021. 5. 17. 20:07

 

 

■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이름(name), 어머니!

 

★ 감동 주의! 눈물 주의! 손수건 하나 준비한 후, 읽으세요!

 

 어느 무덤에 얽힌 어머니의 사랑 이야기 : 어느 추운 겨울날, 눈이 수북이 쌓였다. 강원도(江原道) 깊은 산골짜기를 찾는 두 사람의 발걸음이 있었다. 나이가 지긋한 백발(白髮) 노인 미국인은 1950년 한국전쟁 참전 군인이었고, 젊은 청년(靑年)은 한국 사람이었다. 한참 골짜기를 더듬어 들어간 두 사람은 마침내 한 무덤 앞에 섰다. 나이 많은 미국인은 청년에게 말했다. "이곳이 네 어머니가 묻힌 곳이란다." 1950, 한국전쟁 6.25사변을 맞아 치열한 전투 속에서 한 미군(美軍) 병사가 강원도 깊은 골짜기로 후퇴를 하고 있었는데, 무슨 이상한 소리가 들려왔다. 가만히 들어보니, 아이 울음소리였다. 울음소리를 따라가 봤더니, 눈구덩이 속에서 울음소리가 들려 나오고 있었다. 깜짝 놀랐다. 그리고, 허겁지겁 아이를 눈에서 꺼내기 위해 눈을 치우던 미국 병사는 또 한 번 소스라치게 놀라고 말았다. 흰눈 속에 파묻혀 있는 어머니가 옷을 하나도 걸치고 있지 않은 알몸이었기 때문이다. 피난을 가던 어머니가 깊은 골짜기에 갇히게 되자, 아이를 살리기 위해 자기가 입고 있던 옷을 모두 벗어서 아이를 감싼 후, 허리를 꾸부려 아이를 끌어안은 채, 얼어 죽고만 것이었다. 그 모습에 감동한 미군 병사는 언 땅을 파서 그 자리에 어머니를 묻었다.  얼마 후, 미군(美軍) 병사는 어머니 품에서 울어대던 갓난아이를 데리고 가서 자기의 아들로 키웠다. 세월이 흘러서 아이가 청년(靑年)이 되었다. 그러자, 미국인 참전 군인은 지난날에 있었던 일들을 모두 이야기해 주었다. 그리고, 그때 언 땅에 묻었던 청년의 어머니 산소 무덤을 찾아온 것이었다. 젊은 청년은 눈이 수북이 쌓인 무덤 앞에 무릎을 꿇었다. 뜨거운 눈물이 볼을 타고 흘러내렸다. 눈물은 무릎 아래로 흘러서 눈을 녹이기 시작했다. 청년은 무덤 위에 쌓인 눈을 두 손으로 정성스레 모두 치워냈다. 그런 뒤, 청년(靑年) 자기가 벗은 옷으로 무덤을 덮어 가기 시작했다. 마치, 어머니께 옷을 입혀 드리듯 청년은 어머니의 무덤을 모두 자기 옷으로 덮어 드렸다. 그리고, 무덤 위에 엎어져서 통곡을 했다. “어머니, 그날 얼마나 추우셨어요. 은혜로우신 어머니! 그립습니다. 자랑스럽습니다. 보고 싶은 어머니! 엄마! 꿈속에서라도 한번 만날 수만 있다면 참 좋겠어요.” 그 청년은 어머니의 사랑을 확인하고, 어머니의 명복(冥福)을 빌었다. 그리고, 계속 한없는 눈물이 흘러내렸다. 이 이야기는 실화(實話)이다.

 

 한때 웃음 박사로 한국에서 꽤나 유명했던 황수관(黃樹寬) 박사는 텔레비전 프로그램에서 그의 어머니를 회고(回顧)했다. 그는 일제(日帝) 강점기에 일본 히로시마 근처에서 태어났다. 2차대전이 한창이었는데, 전쟁은 어느덧 막바지로 치달았다. 1945년 일본은 패망의 기로에 섰다. 1945 03 10일 밤, 279대의 B-29 미군 폭격기가 도쿄 상공을 폭격했고, 10만명 이상이 사망했다. 1945 04, 미군은 일본 오키나와에 상륙했다. 일본 히로시마 역시 불안한 상황이었다. 가족은 피난길에 올랐다. 어느 순간, 폭탄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그러자, 아버지는 만삭인 어머니와 4, 2살 어린아이를 뒤에 남긴 채, 짐 보따리를 잡고 홀로 도망가기에 바빴다. 하지만, 어머니는 아이들을 모두 끌어안고 방패막이가 되어주었다. 그 후, 아버지는 통렬히 반성했다. 다시는 가족을 버리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드디어, 2차대전이 끝났다. 그의 가족들은 모두 한국으로 귀국을 했다. 그리고, 1950년 한국전쟁이 벌어지자 다시 피난길에 올랐다. 포탄이 떨어지자, 엄마는 몸을 던져 아이들을 품었다. 하지만, 아버지는 혼자 도랑 속에 몸을 숨겼다. 한편, 황수관 박사는 그가 어렸을 때, 몸이 무척 약했다. 홍역으로 거의 죽음 직전에 이르게 되자, 아버지는 아이를 묻을 구덩이를 파고 있었다. 하지만, 어머니는 아이를 안은 채, 자신의 입으로 아이 얼굴의 고름을 닦아냈다. 기적처럼 호전되었다. 이야기를 하던 황수관 박사도, 함께 나온 객석들도 모두 눈시울이 붉어졌다.

 

 미국 어느 초등학교 과학(science) 시간에 선생님이 아이들에게 시험 문제를 냈다. 시험 문제는 "첫 글자가 M으로 시작하는 단어 중에서, 상대방을 끌어들이는 성질과 힘을 가진 단어를 쓰시오!" 였다. 정답은 magnetic(자석)이었다. 그런데, 85% 이상의 학생들은 답을 mother(엄마)라고 썼다. 고민하던 선생님이 마침내 mother를 정답으로 처리했다. 실화(實話)이다. 학생들이 M으로 시작하는 말로 상대를 끌어들이는 성질을 가진 단어를 mother(엄마)로 기억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다.

 

 어느 시골 집에서 밤늦게 화재가 났다. 그리고, 화재는 화재는 진압되었다. 불이 꺼지고 난 다음 날 아침, 닭장에 들어가 보니, 수탉들은 다들 밖으로 뛰쳐나왔는데, 어미 암탉은 병아리들을 품은 채, 새까맣게 타 죽어 있었다. 그리고, 병아리들은 모두 무사히 살아있었다. 실화(實話)이다. 자식을 사랑하는 어머니의 마음은 동물 세계에서도 마찬가지이다.

 

 단장(斷腸)의 슬픔이라는 말이 있다. 옛날 중국 ()나라의 환공(桓公)이 촉()나라를 정벌하기 위해 양자강(陽子江)을 통과할 때, 환공의 부하가 새끼 원숭이 한 마리를 붙잡아서 배에 실었는데, 그 원숭이의 엄마 원숭이 역시 뒤따라 왔다. 그러나, 물 때문에 배에는 오르지 못하고, 강가에서 슬피 울부짖으며 육지를 거슬러 따라왔다. 배가 약 100리쯤 지나간 뒤, 강기슭에 닿았을 때, 육지를 거슬러 미친듯이 따라왔던 어미 원숭이가 서슴없이 배에 뛰어 올랐다. 그러나, 이윽고 죽고 말았다. 어미 원숭이의 배를 갈라 보니, 너무나 애통한 나머지 어미 창자()가 토막토막 끊어져() 있었다. 그래서, 가족(家族)을 잃은 슬픔을 단장(斷腸)의 슬픔이라고 한다.  국내 최대 규모의 여객선 세월호(歲月號) 2014 04 16 오전 침몰됐다. 수학 여행 중인 경기 안산 단원고 2학년 학생 325. 교사 15명을 포함한 승객. 승무원 모두 476명을 태우고 인천에서 제주도로 가다가 전남 진도 앞바다에서 사고를 당했는데, 172명만 구조되고 나머지는 304명은 실종 사망됐다. 타이타닉호 침몰 사고(1912.04.14)와 이틀밖에 차이 나지 않는다. 그 가족(家族)을 잃은 슬픔은 단장(斷腸)의 슬픔이다.

 

 인도(India)의 어느 고아원(孤兒院)에 사는 어린 소녀는 얼마 전에 엄마를 잃었다. 그래서, 지금 엄마가 없다. 하지만, 엄마가 보고 싶었다. 엄마가 무척 그리웠다. 그래서, 엄마의 그림을 땅위에 그려놓고, 엄마 가슴 부위 속에 웅크리고 잠들었다. 얼마나 엄마가 그립고 간절했으면, 그랬을까? 바로 그 애절한 사진 한 장이 전 세계인의 가슴을 울렸다. 그 아이에게 지금 필요한 것은 따뜻한 엄마의 사랑뿐이다. 그 무엇으로도 채울 수 없는 그것이 바로 엄마의 사랑이다.

 

 2004년 영국문화원은 설립 70주년을 기념하여 102개국 4만명을 대상으로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다고 생각하는 단어'를 쓰도록 했다. 그리고, 1위부터 70까지 순위를 매겼다. 1위가 바로 어머니였다. 두번째 아름다운 영어 단어가 'Father(아버지)' 였으면 얼마나 좋겠는가? 하지만, Father가 아니고 'Passion(정열)' 이었다. 세번째는 'Smile(웃음)', 네 번째는 'Love(사랑)'이 뽑혔다. Father 10번째도 70번째도 없었다. Father(아버지)는 아예 순위에도 들지 못하는 수모를 당했다. '여자는 연약하나 어머니는 위대하다!' 라는 말이 실감난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이름(name)은 바로 어머니이다.

 

 어머니의 따뜻한 말 한마디의 힘 : 한 어머니가 그의 아들이 다니고 있는 어린이집 유치원을 방문했다. 어린이집 선생님이 그 어머니에게 말했다. "아드님은 산만해서  3분도 앉아 있지를 못합니다." 어머니는 아들과 집에 돌아오는 길에 아들에게 말했다. "선생님께서 너를 무척 칭찬하셨어! 의자에 앉아 있기를 단 1분도 못 견디던 네가 이제는 3분이나 앉아 있다고 칭찬하셨어. 다른 엄마들이 모두 엄마를 부러워하더구나!" 그 날, 아들은 평소와 달리 밥 투정을 하지 않고, 밥을 두 공기나 뚝닥 비웠다. 시간이 흘러 아들이 초등학교에 들어갔다. 그리고, 어머니가 학부모회에 참석했을 때, 선생님이 말했다. "아드님 성적이 몹시 안 좋아요. 검사를 받아보세요!" 그 말을 들은 어머니는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하지만, 집에 돌아가 아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선생님께서 너를 잘 믿고 계시더구나! 넌 결코 머리가 나쁜 학생이 아니라고 하더라! 조금만 더 노력하면, 이번에 21등 했던 네 짝도 제칠 수 있을 거라고 하셨어.” 어머니 말이 끝나자, 어두웠던 아들의 표정이 환하게 밝아졌다. 훨씬 착하고 의젓해진 듯 했다. 그런 후, 아들은 중학교에 들어갔다. 그리고, 중학교 졸업할 즈음에 담임 선생님이 말했다. "아드님 성적으로는 명문고에 들어가는 것은 좀 어렵겠습니다." 어머니는 교문 앞에 기다리던 아들과 함께 집으로 돌아가며, 이렇게 말했다. "담임 선생님께서 너를 무척 자랑스럽게 생각하시더라. 네가 조금만 더 노력하면, 명문고에 들어갈 수 있다고 하셨어." 아들은 끝내 명문고에 들어갔다. 그리고, 아들은 뛰어난 성적으로 고등학교를 졸업을 하게 되었다. 그리고, 아들은 명문대학 합격 통지서를 받았다. 아들은 대학 입학 허가 도장이 찍힌 우편물을 어머니의 손에 쥐여 드리고는 엉엉 울며 다음과 같이 말했다. "어머니! 제가 똑똑한 아이가 아니라는 것은 저도 잘 알고 있었어요. 어머니의 격려와 사랑이 오늘의 저를 만들었다는 것도 알아요. 감사합니다! 어머니!" 어머니의 따뜻한 말 한마디가 아이의 앞날을 바꾸어 놓았다. 이 내용은 대한민국 최초의 범죄 심리 분석관인 표창원 경찰대학교 교수의 실화(實話)이다. 표창원 교수는 그 후에 범죄과학연구소 소장 및 국회의원이 되었다.

 

 사랑을 다음으로 미루지 마세요! : 러시아 톨스토이(Tolstoy)의 우화집(寓話集)에 이런 이야기가 있다. 톨스토이는 어느 날 여행을 하게 되었다. 여행 중에 한 주막집에 하루 머물게 되었는데, 그 주막집에는 몸이 아픈 딸 아이가 있었다. 딸 아이는 톨스토이가 가지고 있던 빨간 가방이 너무도 좋아 보였다. 그 딸 아이는 톨스토이의 빨간 가방을 달라고 졸라댔다. 톨스토이는 그 빨간 가방에는 짐이 있고, 여행중이라서 지금은 줄 수 없고, 여행을 마치고 돌아가는 길에 다시 들러서 빨간 가방을 주겠다고 약속했다. 톨스토이는 여행을 마치고 난 후, 딸 아이에게 가방을 주기 위해 주막집에 들렀다. 그러나, 톨스토이가 떠나고 난 후, 곧바로 딸 아이는 죽었다고 주막집 어머니는 말했다. 톨스토이는 그 딸 아이의 무덤에 찾아가 비석에 이런 글을 새겨놓았다. "사랑을 다음으로 미루지 마세요!" 우리는 좀 더 형편이 나아지면, 나중에 돈을 벌면, 성공하고 난 후, 여유가 생기면, 그 일을 하겠다고 말한다. 하지만, 세월은 기다려 주지 않는다. "사랑을 다음으로 미루지 마세요!"

 

 나는 빈민가의 외톨이 소년이었다! : 나는 빈민가에서 태어났다. 어릴 적부터 가난이 너무나 싫었지만, 도망치고 또 도망쳐도 결국 가난은 계속 나를 달라붙었다. 나의 아버지 알코올 중독자였다. 아버지가 술은 마시면, 나는 너무 두려웠다. () 마약 중독자였다. 형은 약에 취해 삶에 의욕도 없었다. 가난한 우리 가족을 먹여 살리는 것은 청소부 일을 하는 우리 어머니였다. 청소부 일을 하는 어머니가 난 너무 부끄러웠다. 어느 날, 빈민가 놀이터에서 혼자 흙장난을 치던 나에게 보인 것은 저 멀리서 축구를 하는 동네 친구들이었다. 내가 가난하다는 이유로 나를 축구에 껴주지는 않았지만, 원망하지는 않았다. 우연히 날아온 축구공을 찼을 때, 난 처음으로 희열(喜悅)이라는 것을 느꼈다. "어머니 저도 축구가 하고 싶어요. 축구팀에 보내 주세요" 철없는 아들의 부탁에 어머니는 당황했다. 자신들의 형편으로는 비싼 축구 비용을 감당하는 것은 불가능한 것이었다. 그렇지만, 어머니는 아들의 꿈을 무시할 수 없었다. 그래서, 아들과 함께 이곳저곳 축구팀을 알아봐 주셨다. 겨우 저렴한 가격 축구팀에 들어올 수 있었던 나는 가난하다는 이유로 패스 한번 받지 못하고, 조명이 모두 꺼지고 모두가 돌아간 뒤에는 혼자 남아 축구공을 닦아야 했다. 낡은 축구화를 수선하며 축구를 하던 나는 하늘이 무너지는 소리를 듣게 되었다. 난 어릴 적부터 정상인 보다 2배 빠르게 심장이 뛰는 질병이 있었는데, 이것 때문에 앞으로 운동 선수를 할 수 없다는 소리를 듣게 되었다. 다행히, 수술하고 재활 치료를 하면, 정상인만큼은 아니지만, 그래도 많이 호전될 수 있다고 들었다. 하지만, 우리 집은 가난하였다. 값비싼 수술비를 지불할 수 없었다. 나의 소식을 들은 아버지와 형은 나의 수술 비용을 마련하기 위해 취직을 하였고, 마침내 1년 후, 온 가족이 모은 돈으로 수술을 할 수 있게 되었다. 수술은 성공적이었다. 재활 치료를 마친 후, 나는 더욱더 훈련에 강도를 높였다. 비록 동료들에게 패스를 받지 못하면 어떤가? 그냥 나는 행복했다. 시간이 흘러서 나는 꿈에 그리던 결국 그라운드에 데뷔하였다. 수많은 관중, 서포터스, 스포츠 기자들, 그리고 유명 축구팀 스카우터들. 내가 바라고 꿈꾸었던 축구장이다. 나는 축구 무대에서 죽을 각오로 뛰고, 또 뛰었다. "심장이 터져도 좋다." 그렇게 나의 데뷔 전이 끝났다. 그리고,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어느 날, 전화 한 통화를 받았다. 자신은 다른 쪽 리그 축구팀 감독이라고 했다. 그는 나를 채용하고 싶다고 했다. 그의 말을 듣고 나는 몸에 소름이 돋았다. 아니 전율이었다. 그곳은 세계 최고 구단 중의 하나인 영국 맨체스터 유나이티드(Manchester United)였기 때문이다. 나에게 직접 전화를 건 사람은 최고의 축구 감독이라 평가받는 퍼거슨(Ferguson) 감독이었다. 전화가 끝난 후, 나는 바로 어머니에게 전화를 걸었다. 눈물이 나오고, 말도 잘 나오지 않았다. 나는 흐느끼며 어머니에게 이렇게 말했다. "어머니! 이제 더 이상 청소부 일을 하지 않으셔도 돼요!" 어머니는 아무 말씀 없이 수화기를 잡고 울고 있으셨다. 구멍 난 축구화에 외톨이, 그리고, 심장병을 가진 소년이었던 나는 그렇게 유명 축구 선수가 되어 있었다. 나는 호날두(Ronaldo)이다. 포르투갈 호날두(Ronaldo)는 아르헨티나 메시(Messi)와 함께 세계 최고의 축구 선수이며, 한때는 한국의 박지성(朴智星) 선수와 함께 맨체스터 유나이티드(Manchester United)에 속해 있었다. 호날두(Ronaldo)는 축구 선수 중 가장 높은 몸값을 자랑하는 선수이며, 실력도 실력이지만, 호날두가 한 해 기부하는 금액은 한국인 5천만명이 한 해 기부하는 금액 보다 많다. 공익을 위한 광고는 조금의 돈도 받지 않고 촬영을 해 준다. 소말리아에 300억의 기부와 자신을 좋아하는 팬의 수술비도 전액 지원해 준다. 아동 질병 퇴치와 아동 구호 운동가로 활동하고 있다. 특히, 호날두는 문신을 하지 않는 것으로 유명하다. 문신을 하면, 그가 당분간 헌혈을 할 수 없기 때문이라고 한다. 이러한 훌륭한 사람들이 참 많았으면 좋겠다.

 

 어머니 우리 모두가 태어난 고향이다. 어머니는 사랑의 여신(女神)이고, 희망(希望)의 여신이다그래서, 모든 인간의 영원한 안식처이다. 어머니의 삶은 자식에 대한 사랑과 희생의 대하(大河) 드라마이다. 어머니의 깊고 깊은 사랑을 무엇으로 측량하겠는가? 어머니는 모든 것을 다 품어 주시고, 모든 것을 내어주신다. ‘어머니 라는 이름은 영원한 향수이며, 불러도 불러도 자꾸만 그리운 이름이다. 나 보다 더 나를 사랑했던 그 분이 바로 우리의 어머니이시다어머니는 위기 상황을 오히려 더 잘 극복한다. 1997 IMF 금융외환 위기 상황에서 아버지들은 절망하고 술먹고 자빠졌었는데, 어머니들은 오히려 더 기운을 내고 들고, 불끈 일어나서, 금 모으기 운동을 벌이며, 위기 상황을 잘 극복했다이 세상에서 가장 슬픈 일은 어린 아이가 엄마(mother)를 잃는 것이고, 또한, 엄마가 어린 아이(child)를 잃는 것이다. 그래서, 2014 04 16, 세월호(歲月號) 침몰로 인해서 304명 가량의 학생들 사망으로 가족(家族)을 잃은 슬픔은 단장(斷腸)의 슬픔이다.

 

 어둑한 저녁 무렵, 하루의 고된 일을 마치집으로 돌아온 황소에게 (dog)가 다가와서 말했다. “황소야! 나는 하루 종일 낮잠을 자다가 심심하면 짖기도 한단다. 주인이 돌아오면 꼬리를 흔들어주고, 주인이 남겨준 밥을 먹고 산단다. 네가 그토록 힘들게 일하면서도 거친 여물이나 먹고 사는 것이 나는 무척 안쓰럽다. 황소야! 너는 도대체 무슨 낙으로 사니?” 커다란 눈을 굴리며, 한참을 생각하던 황소(bull)가 대답했다. “내가 주인과 함께 일을 마치고 돌아오면, 우리 주인은 내 어깨를 쓰다듬으며, 온몸에 흐르는 땀을 닦아주신다. 그리고, 정성껏 여물을 끓여주지! 나는 우리 주인의 그 따스함을 잊을 수가 없어!”

 

 말에는 힘이 있다. 한마디 말로 사람을 죽이기도 하고, 한마디 말로 사람을 살리기도 한다. 격려의 말, 칭찬의 말, 축복의 말은 하늘의 언어이다. "너는 잘될 것이다." "너를 믿는다." "너는 좋은 사람이다." 라고 하늘의 언어를 자식에게 많이 말해주는 것이 좋다. 누군가의 따뜻한 위로와 격려가 없다면, 우리는 얼마 못 가서, 지쳐 쓰러지고 말 것이다. 따뜻한 위로와 관심이야말로 우리가 살아가는 참된 이유일 것이다. 또한, 자식에 대한 진정한 사랑은 무엇이든 자기 분수에 넘치도록 무작정 잘해 주는 것이 아니다. 때로는 배고픔과 궁핍의 경험도 필요하다. 그래야 고마움과 소중함을 알게 되고, 더 단단한 사람이 될 수 있다. [: 진단검사의학과 전문의. 최병문]

 

 남이 보지 못하는 것을 보는 것이 비젼(Vision)이다.  건강 관련 자료 및 혁신적인 문화 소식을 소개하고 공유하고자 합니다.  그래서, 젊음(靑春), 생명공학의 열망(熱望)! 네이버 밴드로 초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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