엽서 편지

■ 초년(初年)출세(出世) 결국(結局)불행(不幸)

마도러스 2021. 12. 20. 00:20

■ 초년(初年)출세(出世) 결국(結局)불행(不幸)

 

■ 역학(易學)에서 초년(初年) 성공은 늘 불안하다.

 

 사람이 살면서 꼭 피해야 할 것이 있다면, 무엇일까? 옛날부터 인생에서 만나지 말아야 할 3가지로 초년 등과(登科), 중년 상처(喪妻), 노년 궁핍(窮乏)을 꼽는다. 중년의 나이에 처()를 잃는 것이나 노년의 가난(家難)은 자연스럽게 고개가 끄덕여진다. 그런데, 초년(初年) 등과(登科)는 고개를 갸웃거리기 쉽다. 등과(登科)라는 것은 과거(科擧)에 급제하는 것이니 어린 나이에 성공하고, 출세(出世)하는 것을 말한다. 어린 나이 소년(少年)에 성공하는 것을 왜 피해야 한다는 것일까? 무조건 빨리 그리고 성공을 외치는 현대사회의 기준으로 본다면, 성공을 빨리하면 좋은 것 아닐까? 초년(初年) 성공을 피해야 하는 이유는 그런 성공이 가져오는 후유증(後遺症)이 오히려 더 안 좋기 때문이다. 세상 물정을 잘 모르는 때에 성공하면, 교만한 마음이 생기게 되고, 그 이후의 일을 더 그르칠 가능성이 크다고 본 것이다. 교만함과 오만함은 성공한 어린 시절로 그치는 것이 아니고, 전체 인생의 중반이나 후반까지 영향을 미쳐서 결국 인생 전체를 흔들어 놓을 수 있다는 말이다. 그래서, 인생에서 피해야 할 3가지 중에서도 초년(初年) 성공 가장 안 좋은 것으로 여겨진다.

 

 역학(易學)에서도 마찬가지여서 초년(初年) 성공을 반기지 않는다. 운세의 흐름에는 공식 같은 것이 있다. 인생의 초창기에 좋은 운세가 이어지면, 나중에 중년이 되고, 노년이 됐을 때는 그런 운을 만나기가 쉽지 않다. 게다가 초년(初年) 성공으로 자신의 능력과 운세를 지나치게 과신(過信)하는 바람에 갈수록 일이 풀리지 않는 경우를 많이 본다. 초년(初年)에 고생을 한 경우는 오히려 그 고생(苦生)을 바탕 삼아서 나이가 들어갈수록 자신의 삶을 개선하려고 노력하므로 운세가 피어난다. 인생 사주(四柱)에서 초년 운세가 좋다는 소리를 들었다면, 경계하고 또 경계해야 한다. 보이는 듯 안 보이는 듯 천천히 뜨거워지고, 찬찬히 자리를 다지는 운세가 인생을 살찌게 한다. 주역(周易)에서 물극즉반’(物極則反)이라는 말이 있다. 사물이 극점에 이르면, 다시 바닥 상태로 되돌아 온다. 만물이 극에 차면 기울고, 달도 차면 기우는 것이다. 역학(易學)에서 초년(初年) 성공은 그 운세가 늘 불안하다. 그런 사람은 오만함과 자만심에 빠져들기 쉽고, 여기저기 싸돌며, 자신의 능력과 수완을 자랑하고 다닐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 운세는 금방 추락하기 쉽다.

 

 미국 배우 제임스 딘(James Dean) 1955년 영화 에덴의 동쪽에 출연하며, 세계적인 스타가 됐다. 그리고, 1955, 이유 없는 반항(Rebel Without a Cause)에서 제대로 자리잡지 못하고 방황하는 청년을 연기하여 젊은이들 우상으로 떠올랐다. 불안하고 혼란에 빠져 있는 젊은이의 상징으로 영화 팬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하지만, 1955 09 30, 고급 자동차를 너무 거칠게 운전하다가 자동차 사고로 요절했다. 향년(享年) 24였다. 제임스 딘(James Dean) 초년(初年) 성공의 운이었다. 그런데, 그것이 가장 큰 문제였다. 초년(初年)의 너무 좋은 운세가 젊은 나이에 큰 에너지를 쏟아 붓게 했고, 그 에너지는 금방 새어나갔다. 차라리 운세가 조금씩 피어났다면, 더 좋은 결과를 가져왔을 것이다.

 

 

■ 초년(初年)출세(出世) 결국(結局)불행(不幸)

 

초년(初年)출세(出世) 결국(結局)불행(不幸) 이라는 말이 있다. 너무 일찍 피는 꽃은 아주 일찍 떨어지기 마련이다. 그래서, 초년(初年)에 조기(早期) 출세(出世)하여 일찍 성공한 사람을 절대로 부러워할 필요가 없다.

 

 남이(南怡 1441-1468) 장군은 조선 전기 문신(文臣)인 의산군(宜山君) 남휘(南暉)의 손자이다. 1457(세조 3), 그는 16세의 어린 나이로 무과(武科)에 급제하였다. 조선 전기에 문무과를 불문하고 과거(科擧) 급제의 평균 나이가 30세 전후라는 점을 감안하면, 실로 대단히 빠른 등과(登科)였다. 남이 장군은 귀신조차 무서워할 정도로 용력(勇力)과 기상이 대단한 인물이었다. 16세 어린 나이에 무과(武科) 급제하여 초년(初年) 출세(出世)하였으니, 얼마나 그 기세(氣勢)가 등등했을까? 결국, 주위 사람들의 시샘을 받을 수 밖에 없었다. 그 후, 남이의 이름이 더욱 널리 알려지게 된 계기는 그가 27세 때인 1467년에 일어난 함길도(함경도) 이시애 반란이었다. 남이(南怡) 장군은 이시애(李施愛) ()을 토벌한 공()으로 공신(功臣) 1등에 책록되었다. 남이(南怡)는 말을 타고 적진을 휩쓸면서 반란군을 짚단처럼 베어냈다. 전투 도중 4-5발의 화살을 맞았지만, 개의치 않고, 칼을 휘둘러 댔다. 이시애의 난을 토벌한 공으로 공신(功臣) 1등에 책록되고, 의산군(宜山君)에 봉해졌다. 이어서 여진족(女眞族) 정벌에 참여하여 추장 이만주 부자를 사살함으로써 일약 조선의 영웅으로 부각되었다.

 

 승세(勝勢)에 도취한 남이(南怡)는 전장에서 회군하면서 북정가(北征歌)를 지어서 자신의 존재감을 한껏 과시했다. 하지만, 그런 자만심(自慢心)이 훗날 자신을 찌르는 칼로 되돌아올 줄은 꿈에도 생각지 못했을 것이다. 훗날 병조참지(兵曹參知) 유자광(柳子光)이 그의 역모를 고변할 때 이 한시의 3 남아 이십 미평국(男兒 二十 未平國)’의 평정할 ()자를 얻을 ()자로 고쳐서 모함했다. 세조(世祖) 말년에 남이(南怡)는 임금의 총애를 받아 26세에 병조(兵曹)판서에 임명되었다. 세조는 남이(南怡)에게 이미 공신에 책봉되었고, 큰 전공을 세웠으니, 자만하는 마음을 갖지 말라 라고 말했다. 하지만, 남이(南怡) 세조(世祖)가 베푼 연회에서 술에 취한 채, “요즘 주상(主上)께서 구성군 이준을 지나치게 총애하는 것은 잘못되었다.” 라고 말하는 등 자만심. 교만함. 오만함이 가득했다. 결국, 신진세력의 약진을 고까워하던 한명회와 신숙주 등 훈구대신들의 견제를 받게 되었다.

 

 1468, 세조(世祖)가 승하(昇遐)했다. 예종(睿宗)은 즉위하자마자 남이(南怡)를 병조 판서에서 겸사복장으로 좌천시켰다. 이는 신진세력을 견제하려는 훈구세력의 의견을 받아들인 결과였다. 그런 어처구니없는 상황에서 혈기방창(血氣方暢)했던 남이가 분노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 무렵, 하늘에 혜성이 나타나서 군신(君臣) 모두가 근심에 잠겨있었다.

 

 남이(南怡) 장군은 예종(睿宗) 즉위 후 대궐에서 숙직하다가 혜성(彗星)이 나타난 것을 보고, “묵은 것을 없애고, 새 것이 깔릴 징조이다 라고 말하였다. 그런데, 평소 그의 승진을 시기하던 병조참지(兵曹參知) 유자광(柳子光)이 이 말을 엿듣고, 음모를 꾀하였다. 유자광(柳子光)은 남이(南怡) 장군이 지은 () 北征歌(북정가)의 글 한자를 바꾼 후, 역적으로 몰아 남이(南怡)를 처형하게 하였다. ‘남아 이십 미(男兒 二十 未)’을 노래했던 장군의 () 남아 이십 미(男兒 二十 未)’이라고 바꾸었다. “사나이 20세에 나라를 도둑질() 못한다면 구절로 바꾼 것이다. 장군이 호기롭게 지었던 북정가(北征歌)를 한탄가(恨歎歌)로 바꾼 것이다. 유자광은 글자 하나를 바꿔서 남이 장군을 역적으로 모함한 것이다.

 

 예종(睿宗)은 즉시 대궐의 경계를 강화한 다음, 거평군 이복에게 남이(南怡)를 잡아오게 했다. 이복이 무사(武士) 1백여 명을 이끌고, 남이의 집으로 달려가 남이를 체포했다. 그날 한밤중에 수강궁 후원 별전에서 여러 종친과 신료들이 입시한 가운데, 예종이 직접 남이를 심문했다. 그때 남이는 혜성과 관련된 내용은 인정했지만, 역모는 절대 획책하지 않았다고 버텼다. 남이(南怡)의 역모의 정황은 드러나지 않았다. 상황이 미궁에 빠져들자, 한명회가 남이의 노비들을 잡아들여 심문하였다. 과연, 효과가 있었다. 이윽고, 혹독한 고문을 더 이상 버틸 힘을 잃은 남이 역시 드디어 역모를 시인했다. 결국, 남이(南怡)는 유자광(柳子光)의 무고(誣告)로 어이없는 역적의 누명을 쓰고 능지처참(陵遲處斬) 당하였다. 남이 장군은 초년(初年)에 빠르게 출세(出世)하여 일찍 성공하였지만, 결국(結局) 불행(不幸)하게 일생을 망친 장군이 되었다.

 

 북정가(北征歌) [남이 장군]

 

백두산석(白頭山石) 마도진(磨刀盡)

백두산 돌은 칼로 갈아 다하고

두만강수(豆滿江水) 음마무(飮馬無)

두만강 물은 말을 먹여서 없애고

 

남아(男兒) 이십(二十) (未平國)

사나이 스물에 나라를 평정치 못한다면

후세(後世) 수칭(誰稱) 대장부(大丈夫)

훗날 누가 대장부라 이르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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