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사 (한국)

■ 위안부 길원옥 할머니의 눈물젖은 편지

마도러스 2020. 6. 17. 03:00

 

■ 위안부 길원옥 할머니의 눈물젖은 편지

 

‘2017 김포 매향 문화제20170603일 경기도 김포시 월곶면 조강리 휴전선 앞에서 열렸다. ‘생명. 평화. 통일이라는 주제로 열린 문화제에는 평양이 고향인 일본군 위안부피해자 길원옥 할머니가 함께 했다. 길원옥 할머니는 이날 75년 전 헤어진 어머니에게 보내는 편지를 읽었다. (2차 대전 중에 일본군에게 끌려간 한국 소녀 위안부는 20만명 정도로 추산된다)

 

엄마에게 보내는 편지 : “엄마, 나 집으로 돌아가고 싶어요눈을 감으면, 어느새 나는 내 고향, 평양 집 마루에 앉아 있습니다. ! 달콤한 냄새, 기분 좋은 바람, 해가 산꼭대기로 넘어가려는데, 머리 위에 잔뜩 물건을 이고 장사하러 나간 엄마는 아직 돌아오지 않습니다. 어느덧, 어둠이 우리 집 마당을 덮기 시작합니다. 그 어둠 앞에 엄마 모습 희미하게 보입니다. “원옥아~” ! 정말 내 엄마입니다. “엄마~!” 엄마 품에 안겨본 지 언제인지, 그 품속으로 달려가 봅니다. 그런데, 엄마는 금방 어둠 속으로 안개처럼 흩어져 버리고 열세 살 어렸던 원옥이는 어디론가 가버렸습니다. 손등에 주름이 서려 있는 90세 할머니가 홀로 어둠 앞에 서 있습니다. “엄마, , 집으로 돌아가고 싶어요.” 13세 살 그 때, 일본 군인들이 하루에도 수십 명씩 내게 달려들어도 엄마 생각하며 이겨냈어요. 집으로 돌아가면, 엄마를 만날 수 있다는 희망이 있었기에 나는 살고 싶어 버둥거렸어요. 내가 얼마나 아팠는지, 얼마나 힘들었는지, 일본 군인들에게 내 몸 수십 번, 수백 번 빼앗기며, 울고 또 울었던 그 날들을 엄마에게 토해내며 실컷 울고 싶었어요. 엄마 품에 안겨 울기만 해도 내 아픔 다 나을 것 같았어요. 그러나, 엄마 나는 지금 길을 잃어버렸어요. 집으로 가는 길이 막혀버렸어요. “집을 떠난 지 어느덧 75년이 지났습니다.” 그 무섭고 끔찍했던 전쟁이 끝난 지 70년이 되었다네요. 그런데, 집으로 가는 길이 이다지도 멀까요? 아직도, 나는 해방을 기다려야 하나요? 그래도 엄마, 나는 포기하지 않았어요. 집으로 돌아갈 날을 꿈꾸며, 일본 정부에게 해결을 바라며, 70년 동안 하루하루를 쉼 없이 달려왔어요. “나 올해는 꼭 집으로 돌아갈 겁니다.” 나 올해는 꼭 일본 정부에게 사죄를 받을 것입니다. 나 지금 비록 꼬부랑 할머니가 되었지만 절대 포기하지 않을 것입니다. 엄마! 우리 곧 만나요.

 

■ 길원옥 할머니가 2007년 캐나다 역사 교사들에게 한 강연

 

저는 길원옥입니다. 나이는 84살인데, 지금 살아있는 위안부피해자들 중에 젊은 축에 속합니다. 지금 정대협 (정신대 문제 대책 협의회)에서 운영하고 있는 서울 서대문에 있는 나눔 쉼터 우리집에서 다른 피해자들과 함께 살고 있습니다. 저는 13살에 공장에 취직도 시켜주고, 기술도 가르쳐준다고 해서 어린 나이에 무서움도 모르고 따라 나섰습니다. 그런데, 가보니까 공장은커녕 민간인은 전혀 없고, 군인만 많은 그런 곳이었어요. 딱 들어서니까, 하는 말이 "떠들면 혼나!", "큰 소리 하면, 죽을 줄 알아!" 하는 말 뿐이었습니다. 그러지 않아도 무서워서 떨고 있는데, 그런 말 하니까, 저절로 눈물이 나올 수밖에요. 그런데, 우니까 울지 말라면서 때리는데, 손바닥으로 이렇게 때리는 것이 아니라, 무조건 주먹으로 치고, 그 어린 아이들을 발길로 걷어차는 거예요. 그렇게 우는 애한테, 군인들을 들여보냈는데, 13살 어린애한테 욕구를 채우려고 하는데, 가만있겠습니까? 소리도 지르고 울기도 하고, 몸을 비틀기도 하죠. 그러니까, 또 결국 폭행과 욕밖에 안돌아 와요. 결국은 당하고 말았죠. 그런데, 그 군인들은 그걸로 끝내는 게 아니라, 관리하는 사람한테 가서 말을 안 듣고 반항한다며 일러바쳤어요. 그러면, 관리인이 와서는 덮어놓고 제 머리카락을 잡고 끌고 나가 또 매질을 해요.

 

그렇게 그런 생활을 하면서 얼마를 지났는지 모르는데, 너무 어린애한테 가혹한 짓을 시켜서 그런지, ‘요꼬네라는 성병이 생겼어요. 성기 주변으로 물집 같은 것이 쭉 생기게 되니까, 군인을 상대하지 못하게 되었어요. 그러자, 그런 병에 걸렸다고 밥도 제대로 안 주고, 또 구박을 해요. 시간이 가도 병이 낫지 않으니까, 병원에서 수술을 시켜준다고 하더라구요. 그런데, 수술을 그냥 그 요꼬네만 한 게 아니라, 여자는 나팔관이 있어서 아이를 낳게 되어 있는데, 그 나팔관을 다 절단을 낸 거예요. 그렇게 해도 얼른 병이 낫지 않거든요. 그러니까, 사람 하나를 딸려서 집으로 돌려보내 주더라구요. 병은 안 나았지만, 우선 집으로 가니까 좋았죠. 진짜 뛸 듯이 기뻐할 만큼 좋았어요. 집에 돌아와서 병이 나으려고 그랬는지, 606호라는 일본 주사가 있는데, 6063호라는 주사를 맞으니까, 병이 나았어요. 진짜로 얼마나 좋은지 몰랐어요. 병도 나아서 나도 뭔가 우리집 살림에 도움을 줘야겠다고 생각을 해서 우리집에서 멀지 않은 곳에 일본 부대가 있었는데, 아침이면 사람들을 뽑았어요. 쭉 줄을 서면 부대가 필요한대로 30명이면 30, 50명이면 50명을 뽑아요. 뽑힌 사람들한테는 허리에다 차는 허리띠를 줘요. 그것이 없으면, 한 발자국도 그 부대 안에서 못 움직여요. 그래 뽑혀 들어가면, 부대 안에서 쓰레기도 줍고, 이런 저런 시키는 잡일을 해요. 얼마를 줬는지는 정확히 기억이 안 니지만 나올 적에 돈을 몇 푼씩 줬던 것 같아요. 그렇게 일도 하면서 그런대로 잘 지내고 있었어요.

 

그런데, 하루는 그 일을 끝내고, 우리 집으로 가고 있는데, 별안간 하나꼬!” 하고, 어떤 사람이 불러요. 하나꼬라는 이름은 우리 집에서는 전혀 모르는 이름이거든요. 그러니 그 소리를 듣는 순간, 얼마나 겁이 나는지, 벌뻘 떨고 있을 수 밖에요. 그 사람은 나를 처음에 데리고 갔던 그 사람이에요. 떨고 있는 나를 그 사람이 다시 끌고 가서 기차에 태우더라구요. 무서워서 반항도 못했어요. 그때서야 나를 집으로 완전히 돌려보낸 것이 아니었다는 것을 알았어요. 계속, 나를 감시하고 있었던가 봐요. ‘하나꼬라고 부른 사람은 기차만 태워줬다 뿐이지, 기차에서는 모르는 사람이 내 옆에 착 앉더니, 내가 자꾸 울고 떨고 있으니까, 지금 가는 데는 참 좋은 데니까, 걱정도 근심도 하지 말라고 해요. 그래도, 그 말을 믿을 수 있나요. 처음이면 모르겠지만, 이미 나는 어떤 곳인지 짐작하고도 남는데 말이지요.

 

밤을 새서 간 곳이 북경이었어요. 북경에 내려서 트럭에 태워서 또 갔어요. 지난번에 갔던 데는 여자들이 많지가 않았는데, 이번에는 가서 내리니까, 여자들이 많이 있더라고요. 기차에서도 뭔가 줬지만, 무서워 떠느라고 아무것도 안 먹었는데, 도착하니까, 밥을 주는데, 먹히겠어요? 안 먹히죠. 그러니, 그저 혼내는 소리로 겁박을 했어요. “안 먹으면 죽어! 집에도 못가고, 여기서 죽지 않으려면, 밥 잘 먹고 말 잘 들어야 해!” 그래도, 그 날은 아무 것도 먹혀지지가 않았어요. 조금 후 조끄만 방에 데려다가 확 디밀어 넣고는 들어오는 것이 이제부터 군인이 들어오더라고요. 내 방에서 악쓰는 소리, 우는 소리 외에는 들리지 않으니까, 관리하는 사람이 들어와서는 야단을 치고 나갔어요.

 

하도 반항하니까, 군인이 칼집 끝으로 내 머리를 쳤는데, 지금도 흉터가 남아있어요. 피가 얼마나 흘렀는지 몰라요. 피가 흘러서 옷이 벗겨지지가 않아 찢어서 벗었을 정도로 피가 많이 흘렀어요. 피를 닦아 주는 사람도 없었어요. 군인들도 인정사정 볼 것도 없이 자기볼일 다 보고 나갔어요. 아무리 버텨 보지만, 결국은 당하고 마는 거죠. 그렇게 보낸 세월이 얼마나 갔는지 모르지만, 여자는 한 달에 한 번씩 생리라는 것을 하죠. 그런데, 아래에서 벌겋게 피가 나오니까, 속에 상처가 나서 곪아터져서 피가 나오는지 알았지, 생리라는 것을 몰랐어요. 그러니, 아무에게 무서워서 말도 못하고, 피가 나오면 옷가지도 찢어서 갖다대보고 걸레도 갖다대보고 했어요. 그런데, 생리 중에도 군인을 들여보내요. 이불 담요가 벌겋게 되었고, 그 담요를 어찌할 수 없으니까, 이쪽을 접고, 또 저쪽을 접고 임시 방편으로 살았어요. 그동안, 얼마나 서러운 세월을 보냈는지 몰라요.

 

그렇게 지내는 중에 세월이 얼마나 갔는지 모르지만, 나이가 18살이 되었는데, 어느 날, 아침 군인들이 모두 사라지고, 관리인도 없어졌어요. 그래도, 왜 그런지 어디로 갔는지 거기 있는 여자들은 알 수가 없었어요. 모든 것을 관리인이 갖고 가버렸으니, 먹을 것도 없는 거예요. 언니들이 양식을 구해서 밥을 해 주면 먹곤 했어요. 그러다가 하루는 문밖을 내다보고 있으니까, 사람들이 뭉게뭉게 지나가면서, “이 배 안타면, 고향에 못 가!” 하는 소리가 들려요. 그래서, 저도 서있던 그대로 그 곳을 빠져 나왔고, 그 사람들 뒤를 따라 붙어서 배에 탔어요. 도착한 곳이 인천이었는데, 제 몰골은 완전 거지꼴이었어요. 옷 한 벌을 입고, 씻지도 못하고, 그렇게 꼬박 왔으니, 냄새도 지독했어요. 고향인 평양으로 갈 돈도 없었어요. 그래서, 이남에서 돈을 조금이라도 벌어서 여비라도 마련해야겠다고 남았는데, 삼팔선이 막혀버렸어요. 그 길로 67년 세월을 이남에서 부모동지간 아무 소식도 모르고 지냈어요. 참으로 고생을 엄청 했죠. 술집에서 일도 해 보고, 길거리에서 번데기 장사도 해 보고, 안 해본 일 없이 다 해봤으니까요.

 

저도 여자네요. 이렇게 80이 넘었어도 여자는 여자입니다. 그러니, 이렇게 말하는 것이 괴롭고 민망하지 않겠어요? 정말로 얼굴 내놓기 부끄럽지만, 듣는 분들한테도 민망하고, 듣기 괴로운 이야기지만, 이렇게 마주 앉아서 왜 이렇게 힘든 말을 하냐하면, 알면 적게 당하고, 모르면 많이 당하니까, 우리같이 당하지 말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 아픈 이야기를 하고 싶어서 하는 게 아니라, 고통스럽지만, 다시는 우리같이 당하지 않고, 후손에게는 전쟁이 없는 나라, 평화로운 세상이 될 수 있게 노력해달라고 여러분들에게 호소하고 다니는 겁니다.

 

제가 일본 정부에 바라고 있는 것은 아주 큰 일이 아닙니다. 역사의 진실을 낱낱이 밝혀서 잘못했음을 인정하고, 진심을 담은 사죄를 해 주길 바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일본 정부에게 배고파서 밥 달라는 것이 아닙니다. 옷 달라고 하는 것이 아니거든요. 진실을 밝혀서 공식적으로 사죄하고, 법적으로 배상하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달라는 것이 돈, 위로금이 아니에요. 그래서, 일본 정부가 법적 책임을 부인하며, 그 대신에 민간 모금을 통해 지급했던 일본측의 민간 기금을 받을 수 없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일본 정부는 지금도 우리를 업신여기고, 진실 한마디 안 밝혀주고, 사죄 한마디 없습니다. 오히려 우리가 돈 벌기 위해 자원했다는 거짓 선동, 일본 장교들 보다 월급이 많았다는 망언을 해대고 있습니다. 우리들이 한국의 일본 대사관 앞에서 해 온 수요 시위가 이제 벌써 20년이 넘었습니다. 1,000회가 넘게 수요 데모를 해 왔고, 21년간 운동을 계속 해 왔습니다만, 우리들은 아직 힘이 부족합니다. 아무리 해도 여전히 해결을 못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여전히 진실이 밝혀지지 않았습니다. 아무리 사죄한다든가, 배상해도, 우리들의 상처가 완전히 치유되는 일은 없을 것입니다. 그래도, “위안부라는 일본 정부의 폭력은 거짓이 아니다. 진실은 이러이러하다라는 것을 밝힘으로써, 모든 상처는 치유되지 못해도, 조금이라도 마음의 응어리가 풀릴 것입니다. 반드시 그렇게 되기를 바라며, 정말로 많은 나이에 힘들지만, 이렇게 해서 여러분들 앞에서 이야기 하고 있는 것입니다.

 

제 몸이 너무 많이 아픕니다. 그런데도 이렇게 살려주시는 것은 이런 일을 여러분들한테 알리라고 살려 주시나 봐요. 다시 한번 부탁합니다. 앞으로 전쟁나면, 또 이런 일 생기지 말란 법 없으니까, 그렇게 되면, 여기 계신 여러분 모두의 일이니까, 여러분들이 내 일이라 생각하고, 일본 정부가 거짓말 못하고, 이 문제를 해결하도록 여러분들이 힘 모아 주세요. 그렇게 되면, 모든 것이 잘 되리라 믿습니다. 우리가 살아있을 때에 반드시 해결하리라고 봅니다. 여러분들 긴 시간 감사합니다.

 

■ 위안부 문제 활동가, 여건 어렵지만, 부단히 노력

 

한국정신대문제 대책협의회 (정대협. 정의기억연대 전신)와 정의 기억 연대 등에서 대표와 이사장 등을 역임하며, 후원금과 보조금을 유용한 혐의를 받는 무소속 윤미향 국회의원 3번째 재판이 열렸다. 2021 10 29일 재판에 출석한 정의연 회계 담당자는 회계 처리와 관련하여 주무부처와 보조금 지원 부처, 국세청에 따라 기준이 매우 달라서 그동안 어려움을 많이 겪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부단히 노력해 왔다는 점을 강조했다.

 

2021 10 29일 서울서부지법 형사합의11 (부장판사 문병찬) 심리로 열린 윤미향 국회의원 등의 재판에 증인으로 출석한 원모 정의연 운영 관리국장은 윤미향 국회의원 측 변호인이 '미래 세대에게 역사적 기록을 남기기 위해 적은 임금과 회계 처리의 어려움 속에서도 열심히 노력한 것이냐?'는 취지의 질문에 "부단히 노력했다"고 대답했다. 이어 '일본군 위안부 문제 관련 활동가들이 많은 임금을 받지 못한 것으로 안다' 라고 변호인이 묻자 "최저 임금에 가깝다" '과거에는 최저임 금도 못주는 경우도 있었지만, 현재는 그것을 위반하지 않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라고 대답했다. 원씨는 2016년 정의연의 전신인 정의기억재단에 2016년 입사했다. 2018 07월 통합 이후에도 별도 법인이 유지된 정대협으로 자리를 옮겨 2019년 초까지 회계 업무를 맡았다. 현재는 정의연에서 근무 중이다.

 

원씨는 2021 10 29일 검찰이 계좌 이체 '적요란' 사업 명목을 허위로 기재하고, 비용을 보전받는 경우, 어떻게 적발할 수 있는지 묻자, "그런 경우는 없다" 라며 한마디로 일축했다. 정대협의 다른 회계 담당자는 앞선 재판에서 사업 담당자가 개인 돈으로 먼저 지출하거나 필요한 부분을 이야기한 뒤, 추후 보전해주는 '()지불 후()보전' 방식으로 공금을 사용하는 경우가 많았다고 증언한 바 있다.

 

정의연이 운영했던 위안부 할머니들의 쉼터인 '안성 쉼터'에 대한 검찰의 심문도 이어졌다. 검찰이 "2014 01월부터 A당 수원시 당원 협의회, 수원 소재 B신문사 등이 안성 쉼터를 이용했다" "정의연 등과 관련 없는 단체들에서도 쉼터를 사용했다" 라고 지적했다. 이에 원씨는 "연대 단체라고 알고 있다. 신문사 등도 연대한다" 라고 대답했다.

 

변호인 측은 윤미향 국회의원이 이사장 재직 당시 의사 결정 과정에서 공정한 견제가 형성되어 있었고, 투명하게 관리됐다는 점을 강조했다. 윤미향 국회의원 측 변호인은 "정의연과 정대협 등은 각기 운영 위원회나 기획 위원회 등을 두고, 다수의 위원들을 위촉해 안건을 올리고, 이사회가 최종 결정하는 의사 결정 구조를 가졌냐?" 라고 질의하자, 원씨는 "그렇다"고 대답했다. 이어 "윤미향 당시 이사장 등이 포함된 운영위에서 올린 안건이 예외 없이 이사회를 통과했냐?" 라고 묻자, 원씨는 "운영위에서 올린 안건이라도 반려되기도 하고, 수정 보완 요구를 받기도 했다" 라고 말했다.

 

2021 10 29일 재판은 약 4시간 30분가량 이어졌다. 검찰과 변호인단은 사적 유용 혐의 등 주요 쟁점에서 날을 세우며, 언성을 높히기도 했다. 윤미향 국회의원 2020 09월 사기. 보조금 관리에 관한 법률. 지방 재정법. 기부 금품의 모집 및 사용에 관한 법률 위반. 업무상 횡령 등 8개 혐의로 기소됐다. 다음 공판은 2021 11 19일 열린다.

 

■ 거짓 선동. 이권 다툼. 저질 추태, 중단하라!

 

★ 정의연(정의 기억 연대)에서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께 돈을 주지 않았다아니다이용수 할머니의 거짓말이었다모금액에서 1억원을 할머님께 지급했다그 외에도 여러가지 후원을 하고 있다맛있는 것을 먹자고 했는데돈이 없다고 했다수요 집회 후에 가깝거나 때로는 멀리 가서 할머님들에게 식사 대접을 했다. 30여년 집회 과정에서 이용수 할머님이 서운한 부분도 있을 수 있겠으나정의연에서 할머님들을 굶기거나 홀대한 것으로 지나치게 왜곡 보도하여 국민 분노를 일으키게 하면 안 된다정의연과 윤미향 의원측에서 할머니의 거짓된 말씀에 일일이 대응하지 않은 것은 이용수 할머니가 노인이시며 위안부 피해자이기 때문에 배려하는 것이다.

 

★ 정의연(정의 기억 연대)이 주도하여 위안부 지원법에 따라 중앙 정부와 지자체에서 매월 300만원을 지급 받고 계신다노인께 300만원은 매우 큰 돈이다그래서다른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이 이용수 할머니 주장에 대해 동조하지 않는 것이다그 외에도 의료 지원돌봄 지원 등등 여러가지 지원을 하고 있다정의연은 일본 위안부 피해자에 대한 지원만을 위한 단체가 아니며, 11가지 사업을 진행하고 있는데할머님들의 지원은 그 중 한가지 사업이다정의연은 일본의 성범죄를 세계에 알리고일본의 사과와 배상이 주된 목적으로 설립된 단체이다말씀마다 돈돈돈 이야기를 하시는데수요 집회에 참가하신 목적이 돈을 위한 참가는 아니었잖아요?

 

★ 이용수 할머니는 2012년 84세에 총선 비례 대표를 신청하셨다김복동 할머니 등 모든 할머님께서 반대를 하였다윤미향이 다수의 의견을 대변하여 반대 의사를 전했다. 84세 연세에 국회의원을 하려했고지나친 과욕이었다그때부터 윤미향과 이용수 환자는 감정이 생겼을 것으로 보인다. 2020년 윤미향이 국회의원이 되자그간의 감정이 폭발해서 할머니들을 버렸다고 울분의 회견을 하셨다윤미향이 이용수 할머니를 달래드리려고 용서해 달라고 한 것이지국회의원이 된 것에 대해 용서를 빌어야 하고이용수 할머니가 용서해야 하는 사안도 아니었다.

 

★ 일본이 지구상에서 제일 싫어하는 단체가 정의연과 윤미향이다정의연이 없었다면인류 역사상 최악의 성범죄가 세상에 알려졌을까이용수 할머니가 이렇게 개인적인 감정을 앞세워서 큰 분란을 일으킨 것은 매우 경솔하며정미향에 대한 개인적 화풀이 성격이 짙었다그로 인해서 보수 언론미래통합당친일 세력들을 준동시켰다이용수 할머니는 침략국 일본에 희생된 수많은 위안부 피해 영혼을 배반하였다.

 

★ 이용수 할머니는 1998년에 홍콩에서 2차대전 때에 죽은 일본군 장교와 영혼 결혼식을 올렸다. 16세에 일본군의 성노예로 납치되어 처절하게 유린 당하실 때이용수 할머님을 도와주었다는 일본인 장교를 못 잊어서 1998년에 전범국 일본 정치인의 도움으로 행사를 하였다위령제라는 명분으로 진행하였지만매우 잘못된 행사였다일본군 장교는 일제 침략국 장교로서 위안소에서 만난 일본국 군인이었다그 역시 수많은 여성을 성노예로 짓밣은 범죄자 중 한 사람일 것이다만약영혼을 위로하려면처참하게 살상을 감행한 침략국 일본 장교가 아닌 구천을 떠도는 20만명 위안부수많은 조선 독립군 및 민간인 희생자 영혼을 위한 위령제를 해 드렸어야 옳았다도대체이용수 할머님의 진심은 무엇입니까? 17명의 또 다른 할머니들은 이용수 할머니 행동에 전혀 동참을 하고 있지 않습니다정의연에서 지급한 1억원과 정부 지자체에서 매월 지급하는 300여만원이 부족해서 아직도 돈 타령하십니까?

 

★ 미래통합당 곽상도 국회의원이 누군지 아십니까그는 2017년 국회에서 위안부 피해 자에 대한 생활안정 지원 기념사업’ (간병비 지원장례 비용 국가 부담등에 관한 법률 통과에 기권했던 사람이다기권한 의원 7명 (곽상도김진태여상규김재원이종구이현재추경호모두 자유 한국당 국회의원이었다위안부 피해 할머니 간병비와 장례 비용도 반대했던 곽상도를 미래통합당은 위안부 피해 할머니 진상규명 TF위원장으로 임명했다국민 기만 행위이다더구나곽상도는 박근혜 대통령이 아베와 밀실 야합으로 10억엔의 위로금을 받는 조건으로 협약할 때민정수석으로 재직했던 책임자이다위안부에 대한 사과도 없고보상이 아닌 위로금이란 명분으로 10억엔에 합의하여 국민적 공분과 김복동 할머님 등 피해자 할머님들이 매우 분개하셨으며박근혜 정부와 아베를 비난하며보상금 수령을 거부했었다그 당시국민이 알면 반대할 것을 의식하여비밀리에 진행된 밀담이었다.

 

★ 조선일보는 일본 요미우리 신문의 기사를 인용해서 일본이 경계하는 윤미향 후보라는 기사를 냈다가 삭제하는 촌극까지 있었다윤미향 후보의 당선 가능성이 높아지던 2020년 04월 15일 총선 투표 하루 전날의 일이었다대표적인 친일 적폐로 손꼽히는 조선일보에게 정의연(정의 기억 연대출신 윤미향 국회의원은 말 그대로 눈엣가시였다요미우리 신문의 지시를 받은 조선일보는 총선 결과가 나오기 전부터 윤미향 죽이기를 철저히 준비하고 있었다그리고 엄마 부대는 2020년 04월 13일 일본 대사관 앞 수요 집회장에서 윤미향 사퇴를 주장했다엄마 부대는 친일 매국노 단체로서 조선일보와 한 핏줄이다친일파를 청산하지 못한 이 나라에는 이런 친일 적폐들이 부화뇌동하고 있다씁쓸하다친일 적폐 언론 조선일보를 이번 기회에 반드시 폐간시켜야 한다.

 

★ 이용수 할머니는 위안부 피해 생존자로서 고통 배인 절박한 말과 파편화된 목소리로 애통하게 말을 쏟아냈다. “돈은 왜 마음대로 할머니들한테 안 쓰고 저거 마음대로 써그렇게 당하고 있었다” 라고 말했다보수 언론들은 거기에 동조했다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운동의 활동가(윤미향)와 정의연(정의 기억 연대)에게 제기된 각종 의혹들은 마치 기정 사실인양 보도되었다. 2020년 05월 25일 이용수님의 두 번째 기자 회견은 그런 보도들이 자기 확증하는 근거가 되었다대다수 보수 언론들은 할머니들을 팔아먹었습니다” 라는 말도 서슴없이 보도했다요샛말로 흑화된 폭로 저널리즘의 민낯이 아닐까윤미향정의연(정의 기억 연대)에 대한 혐오증오발화의 폭발로 이어졌다위안부 피해 생존자를 앵벌이시킨 파렴치범으로 프레임을 낙인시켰다일본군 위안부’ 문제의 역사와 30년 운동의 진실은 결코 매끈하지도 납작하지도 않다울퉁불퉁하고 다층적이고 복합적이다이 사태를 계기로 삼아 30년이라는 시간을 깊이 있게 들여다보고 성찰해야만 한다.

 

★ 정의연(정의 기억 연대)의 회계 장부는 부정한 것이 아니라국세청 프로그램의 한계이다회계가 부실하게 다뤄졌을 수는 있지만 부정하게 다뤄지지는 않았다는 것이다정의연이나 조선일보나 모두 기부금 사용 내역은 똑같은 양식으로 국세청에 신고한다그러므로모든 국세청 신고 단체는 모두 회계 부실이라는 한계를 안고 있었다보수 언론특히 조선일보의 정의연 의혹 보도는 크게 잘못되었다. "1억이 지급되었다그런데자세한 내용이 없다그러니까부정 사용한 것 아닐까?" 이런 것이었는데이를 헤드라인 기사에서는 '1억 부정 사용'으로 도배해리니까사람들은 그 내용을 읽어보지도 않았고, "부정 사용했구나!" 라고 인식했다결국 내용은 정의연에 문의하여 확인해야하는데국세청 페이지만 보고추측성 소설을 썼고흑색 프레임을 만든 것이다웃긴 것은 이를 바로 잡아야할 의무가 있는 다른 언론들이다언론사가 언론사를 검증하거나 감시하지 못했고더 노골적인 언어를 쓰면서 인터넷 클릭 장사에 매몰되었다그럼왜 지금까지 국세청은 특별한 회계 장부 기록 개선 조치도 없었고프로그램 개선이 없었을까이번 기회에 국세청은 시민 단체 및 개인의 기부금 사용 신고를 위한 프로그램을 따로 만들어 서비스해야 한다.

 

★ 정의연(정의 기억 연대) 30여년 한결같이 단일 집회 세계 최고 기록을 계속 갱신해 왔다단 한 요일도 빠지지 않았고수요일마다 일본 대사관 앞에서 집회를 열었다묵묵히 어르신들을 수발하며온갖 어려움들을 이겨내었다정의연의 뜨거운 눈물들을 얼마나 알까정의연이 없었으면일본이 우리에게 끔찍하게 저지른 만행들을 세계인들이 어찌 알았겠는가그 30여년의 정성과 열정이 사회적으로 매장당하자나눔 쉼터 소장은 2020년 06월 07일 극단적 선택으로 자살하고 말았다도대체이용수 할머니당신이 무엇인데이 30여년의 역사를 통째로 부정하는 짓을 저지르는가정의연이 없었으면당신이 받은 1억 보상금과 매달 받는 300만원 가까운 돈도 없었다정의연이 없었으면어린 소녀들을 성노예로 만들었던 침략자 일본의 그 잔인했던 과거 행적들이 묻혔을 것이다. “정의연의 수요 집회를 없애자!” 라는 이용수 할머니당신의 망발에 더없이 화가 나는 이유이다.

 

★ 정의연’(정의 기억 연대)은 일제(日帝)가 우리나라를 식민지 지배한 기간 36년과 거의 맞먹는 30여 년의 세월 동안 많은 일들을 하며 버텨 왔다할머니들에 대한 지원여성 인권에 대한 홍보수요 집회 등 정의연이 해온 일은 할머니들이 치른 정신적육체적 고통 못지않게 힘든 일이다할머니들이 상처를 딛고 새로운 생명을 얻게 된 것은 정의연’(정의 기억 연대)의 전신인 정대협’(정신대 문제 대책 협의회)의 헌신적인 노력과 활동 덕분이었다활동가들은 이렇다 할 보수도 없이 여태까지 험한 가시밭길을 걸어왔다할머니들 치료까지 맡았다뿐만이 아니었다후원회를 꾸리면서 할머니들을 위한 행사를 자주 기획했다할머니들과 함께 하는 나들이할머니 집 도배해 드리기함께 목욕가기 등의 행사를 정기적으로 개최했다한 분 한 분 돌아가실 때마다 장례식을 주관하는 것도 주로 도맡았다할머니들을 위한 자서전도 여러 권 만들었다역사 기념관도 건립 운영했다작은 사무실에서 최저 임금에도 못 미치는 활동비를 받으며 일했던 분들이었다물론그동안 활동가들은 여러 번 바뀌었을 것이다그들의 근무 환경이나 근무 조건도 많은 변화가 있었을 것이다그럼에도 팍팍한 세상모두가 제 잇속만을 챙기는 사회에서 시민 단체는 아스팔트 위에 핀 꽃만큼이나 빛나는 값어치를 지닌다시민 단체는 사회를 지탱하는 기둥이고 쉼터이다그들이 있기에 사회의 어두운 곳아무도 돌아보지 않는 누추한 곳생명이 스러져가는 곳에 다시 따스한 숨결이 되살아난다.

 

★ 2020년 이용수 할머니 민폐 사태로 시민 단체의 신뢰도가 떨어져서 후원금이 줄어드는 타격을 입었다회계 부정이 있다면법에 따라 처벌하면 된다미숙한 회계 처리 탓에 생긴 실수일 수도 있다. '나눔의 집운영이 부실했다면운영 주체를 바꾸는 등 부실한 운영에 대한 책임을 물으면 된다. 2020년 이용수 할머니의 기자 회견 후에 일부 편향적인 언론과 단체들이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달려들어 정의연’ 존재 자체를 부정하고 말살하려 들었다일제(日帝)의 식민지 지배를 겪은 같은 한국민으로서 부끄럽고 치욕스러운 일이다일제가 우리의 독립 운동을 탄압한 방식과 똑같기 때문이다. 1907년 국채 보상 운동이 전국으로 확산되어 국민들의 참여가 뜨거울 때일제(日帝)는 운동에 앞장선 사람들을 기금 유용 혐의로 구속했다그 뒤운동의 열기는 급격히 식었고결국은 실패로 끝났다일제가 패망하고식민지 지배가 끝났는데도이 땅에서 식민지 지배의 잔상은 여전히 끝나지 않은 것 같다일제 식민 지배를 미화하는 일본 극우파들의 꼭두각시 놀음을 이 땅에서 더는 보고 싶지 않다.

 

★ 태평양 전쟁 피해자 유족회” 회장 양순임은 기자 회견에서 자신들이 실제로 할머니들을 처음 발굴해서 시작했고할머님들의 생계비를 법적으로 추진했는데다 해 놓은 그 공적을 정의연 윤미향이 가로챘다고 했다윤미향의 업적은 위안부 할머님들의 법적 생계 지원과 미국 의회 증언과 세계적인 이슈로 만들어 낸 것이었는데실제로 그 장면에서 윤미향 역할은 빠져 있었고, “태평양 전쟁 피해자 유족회에서 발굴했다는 것이 이번 논란의 핵심일 수도 있다돈을 횡령 당한 것을 떠나서 정신적인 심정을 횡령 당했다는 것이다태평양 전쟁 피해자 유족회 양순임 회장은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은 윤미향을 무서워했다!” 라고 증언했는데, “태평양 전쟁 피해자 유족회와 정의연 (일본군 성노예문제해결 정의 기억 연대사이의 알력과 권력 다툼이 알게 모르게 보이는 대목이다.

 

★ 정의연(정의 기억 연대)은 11개 사업들을 핵심적으로 추진했다. 그러는 과정에서 할머니들에게 후원해야 할 돈이 충분하지 않은 것은 사실이다. 바로 그것이 문제였다정의연은 2018년 위안부 피해자의 인권 및 명예 회복 활동에 사용하겠다며 모금한 6억 3560만원 중 2,240만원(3.5%)만 피해자 지원 사업에 사용했다피해자 지원 사업에는 유가족 장학금도 포함되어 실제 피해자 할머니의 생활과 정서적 안정 사업에 쓰인 후원금은 극히 일부에 불과한 것으로 추정된다정의연은 일본군 성노예제 피해자들의 명예 회복 사업을 명목으로 계좌이체후원행사홈페이지 모금 등을 통해 후원금을 받았다. 2018년 후원금 중 가장 많이 지출된 항목은 대외 협력 (국제 및 남북국내 연대 사업)으로 2억 660만원(32.5%)에 달했다그 다음이 수요 시위와 위안부 피해자 기림의 날 등에 쓰인 기림 사업비로 1억 6587만원이 지출됐다.

 

 

■ 쓰레기 언론과 검찰의 저질스런 폐륜 행위

 

★ 윤미향 정의연(정의 기억 연대이사장이 집을 현금으로 다섯채 샀다!’ 라길래 깜짝 놀라서 봤더니, 27년 동안 이사를 다섯번 했다는 내용이란다★ 나눔 쉼터 관리했던 부친의 월급이 7,500만원이다!’ 라길래 깜짝 놀라서 봤더니, 6년간 임금이란다한달에 80만원 최저 임금도 안 되는 박봉의 월급이다★ 하룻밤 회식비가 3,300만원이다!’ 라길래 깜짝 놀라서 봤더니해당년도의 모금 사업 행사 비용을 모두 합친 금액이란다★ "호화술판 MT" 라길래 진짜인가 싶어서 살펴봤더니과자 몇 봉지 놓고 술을 먹었단다.

 

★ 노무현 대통령의 평범한 봉하 마을 자택조차도 '초호화 아방궁이라 보도했던 쓰레기 언론들이다실제로는 국가 소유의 경호동을 포함해도 2천평에 불과했지만조선일보는 재주도 좋아서 다섯배나 늘려 1만평이라 보도했었다.

 

쓰레기 언론들은 진실과 팩트 따위는 관심이 없다오직 국민들을 선동하여 자신들의 기득권을 지킬 수 있으면 그만이다이래도 조중동(조선일보중앙일보동아일보), 채널A, TV조선극우 유튜브 방송보수 언론들의 내용을 아직도 믿을 수 있을까가짜 뉴스 언론 채널들을 어찌 신뢰할 수 있을까노무현 대통령이 진짜 논두렁 시계를 받고 버렸는가결국가짜 뉴스였다한명숙 장관이 9억 뇌물을 진짜로 직접 받았는가?

 

★ 친일 매국 행위에 앞장서는 쓰레기 언론들과 검찰은 끼리끼리 합작해서전혀 있지도 않은 죄도 만들고 조작하여 덮어 씌우는 자들이라는 것을 벌써 잊었는가검찰이 발빠르게 움직인다는 것 자체가 벌써 수상한 증거이다한사람이 이유 없이 집단 폭행을 당하고 있으면일단은 말려야 한다말려놓고시시비비를 가려야 한다윤미향 정의연(정의 기억 연대이사장의 비리라는 것들이 현재로선 온통 조중동의 근거 없는 혹은 악의적이고 무책임한 선동성 보도일 뿐이었다찌라시 언론이 제공하는 악의적이고 계획적인 무책임한 정보들에 선동되어 장단을 맞추는 것은 윤미향 이사장을 두 번 세번 죽이는 일이다당신이 진정 의식 있는 민주 시민이라면더 이상 쓰레기 찌라시 언론 플레이에 놀아나지 말아야 한다보수 언론의 선동적인 살인 행위에 더 이상 동조하지 말아야 한다단지 의혹만으로 윤미향 이사장을 비난한다면당신도 간접 살인자이다.

 

★ 곽상도 미래통합당 국회의원 10년간 30억 재산 증가했다탈북 태영호 미래통합당 국회의원 4년간 18억 증가했다★ 윤미향 정의연(정의 기억 연대이사장은 30년간 2억 집 한 채 얻은 것이 전부이다.

 

● 윤미향 정의연(정의 기억 연대이사장이 정대협(한국 정신대 문제 대책협의회간사를 지내던 시절수요 시위를 보고뭔가 도울 것이 없을까 하고주변을 얼쩡대던 한 청년이 있었다그렇게 얼쩡대던 청년이 어느날 할머니들과 정대협 활동가들의 눈에 서서히 들어왔다그들은 그렇게 하루하루 친분을 쌓아갔다할머니들은 이것도 인연인데그만 니들 둘이 결혼하면 되겠다고 짖궂은 소리를 했다그렇게 얼굴을 붉히던 두 청년은 결국 결혼을 했고가정을 꾸려 아이를 낳았다하지만그 사이 아이 아빠는 억울하게 간첩으로 몰려 구속이 되었다한국 정부와 일본 정부 모두의 눈 밖에 나있던 그야말로 가시같은 존재들이었다그들에게 간첩이란 올가미가 조여 올 것은 너무나 뻔한 일이었지만이들 부부는 멈추지 않았다아빠가 없던 사이 아이는 무럭무럭 자라나 쉼터에 있던 할머니들 모두의 손녀가 되었다아이는 그렇게 대학생이 된 후할머니들을 돕는 평화 나비’ 활동가가 되었다.

 

★ 자신들을 돕다가 간첩이 되어버린 사람의 자식그 눈에 밟히는 아이를 보면서 김복동 할머니가 자신이 모은 종잣돈을 학비에 쓰라고 주셨다쓰레기 보수 우리 언론들은 그것이 그리도 눈꼴시려웠나 봅니다그 아이가 스스로의 힘으로 장학금을 받아 해외 유학을 가고아빠의 억울한 옥살이에 대한 보상금을 받아 아르바이트를 하며 공부를 지속하는 것이 정말로 정말로 눈꼴사나워서 참을 수 없었나 봅니다가난하고 빈궁하게 살아야 할 빨갱이 새끼들과 그 새끼의 자식이 조금도 굴하지 않고 계속해서 자신들의 미래를 개척하며한발한발 세상의 중심으로 나아가는 것이 정말 못마땅했나 봅니다쓰레기 언론들은 그것을 빨갱이가 판치는 세상이라 불렀다여러분들은 이 가족과 이 가족의 살아가는 법을 뭐라고 부르시겠습니까?

 

 

■ 서울 마포 쉼터 '평화의 우리집소장숨진 채 발견

 

● 급여 80만원 괜찮다고할머니들과 함께 울며, 14년 동고동락

 

★ 윤미향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2020년 06월 06일 숨진 채 발견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나눔 쉼터인 '평화의 우리집소장 A(60)에 대해 적었던 회고 글을 올린 것으로 2020년 06월 07일 알려졌다윤미향 의원은 2020년 06월 06일 밤 페이스북에 소장 A씨에 대해 썼던 글을 공유했었다윤미향 의원은 소장 A씨가 쉼터 활동가로 일했던 2004년부터 정의연(일본군 성노예제 해결 정의 기억 연대)과 인연을 맺어온 것으로 알려졌다.

 

해당 글에서 윤미향 의원은 "쉼터 전담 활동가를 찾았다쉼터에서 기거도 해야 하고거의 온 삶을 다 갖고 오는 조건인 것이었다그렇게 온 삶을 다 걸 사람을 찾기는 하늘의 별 따기였다급여는 80만 원밖에 못 드린다 했다그런데도 이리도 좋은 일에 함께하는 일인데 괜찮다고 해서 만나서 인연을 맺게 됐다라고 했다또한, "밖에서 보는 것처럼 그렇게 아름다운 일은 아니었다그래서우리 쉼터 안에 들어오게 되면그때부터 괴로움의 시작이고 연속이었다할머니들과 함께 하며괴롭힘을 당하면할머니들 저녁 식사 챙겨드린 후잠시 골목 식당에 함께 앉아 소주 한잔 기울이며 같이 엉엉 울었다라고 회상했다.

 

★ 윤미향 의원은 소장 A씨가 사표를 세 번 제출했다고 적었다. "세 번째 사표를 내던 날저는 A씨 앞에서 엉엉 목 놓아 울면서 붙잡고 싶었다결국제 이야기를 듣고난 후제 지난 삶 속으로 쏙 들어와 버렸다세 번째 사표도 결국은 다시 접었고, 14년을 우리 나눔 쉼터와 함께 일해 왔다라고 했다. "덕분에 우리 나눔 쉼터 '평화의 우리집'에서 만들어내는 우리와 할머니들의 웃음이 우리 운동에 큰 에너지가 되게 했다라고 했다.

 

★ 2020년 03마포 나눔 쉼터 소장 A씨는 윤미향 의원을 지지하는 글을 페이스북에 게시한 적이 있었다. A씨는 윤미향 의원이 더불어시민당 비례 대표 후보이던 2020년 03월 "그녀는 남에게 베푸는 것을 아주 좋아해서 조금이라도 여유가 생기면 기부를 했다갑자기 더불어시민당 비례 대표로 간다는 이야기에 축하하고 힘을 줘야 하는데괜스레 남겨진 마음이 무겁다라고 했다이어 "김복동길원옥 할머니를 비롯해서 전국 할머니의 아픔에 함께 눈물 흘리며김복동 할머니 살아계실 때는 모든 것을 할머니와 머리 맞대고 의논하던 그녀 윤미향"이라며, "이제는 더 많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떠나야 하기에 기쁨으로 보내야만 하고그러는 내게 김복동 할머니의 영정 사진은 아주 활짝 웃으시며, “보내주어야지!” 라고말씀하시는 것 같다라고 썼다.

 

★ 2020년 06월 06경기 파주 경찰서에 따르면서울 마포구 연남동 '평화의 우리집나눔 쉼터 소장 A씨가 오후 10시 30분쯤 주거지인 파주의 한 아파트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경찰 관계자는 "현장에 유서는 없었으며현재로서는 타살 혐의점은 없는 것으로 보인다라고 밝혔다.

 

★ 윤미향 의원은 2020년 06월 07일 오후 페이스북에 올린 글에서 "기자들이 대문 밖에서 카메라 세워놓고생중계하며 마치 쉼터가 범죄자 소굴처럼 보도를 해대고검찰에서 쉼터로 들이닥쳐 압수 수색을 했다매일같이 압박감을 주고죄인도 아닌데 죄인 의식 갖게 하고쉴 새 없이 전화벨 소리로 괴롭힐 때마다 홀로 그것을 다 감당해 내느라 얼마나 힘들었을까?" 라고 안타까움을 나타냈다. "나는 뒤로 물러설 곳도 없고옆으로 피할 길도 없어서앞으로 갈 수밖에 없구나 생각하며 버텼는데내 피가 말라가는 것만 생각하느라 소장님 피가 말라가는 것은 살피지 못했다내 영혼이 파괴되는 것 부여잡고 씨름하느라소장님 영혼을 살피지 못 했다라고 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