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 (정신과)

스트레스 받으면, 발열이 발생하는 이유

마도러스 2020. 5. 5. 21:47



스트레스 받으면, 발열이 발생하는 이유

 

일본 큐슈대학 의대 심신의학과 오카 타카카주 교수에게 어느 날 한 소녀 환자가 왔다. 중학교에 다니는 15세 소녀는 특이한 증상에 시달리고 있었다. 집에 있을 때는 멀쩡한데 학교에만 가면, 가슴이 답답해지면서 발열(fever)이 생기고, 극도의 피로감에 조퇴하기가 일쑤였다. 소아과에서는 해열제를 처방했지만, 소용이 없었다. 얼핏 보면 이해하기 어려웠다. 소녀는 온순하고 차분한 모범생 스타일로 등교를 거부하는 불량 소녀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심리 상담을 한 결과 뜻밖의 사실이 밝혀졌다. 소녀는 학교 생활을 좋아했지만, 신체 장애가 있는 친구가 같은 반 아이들에게 괴롭힘을 당하는 모습을 무력하게 지켜볼 수밖에 없는 게 너무 괴로웠던 것이다. 오카 교수는 부모에게 아이의 전학을 권유했고 학교를 옮긴 뒤에는 등교 발열 증세가 사라졌다. 심인성 발열(psychogenic fever)이었다.

 

감염(infection)과 스트레스(stress)가 발열을 일으키는 메커니즘이 다른 것으로 밝혀졌다. 감염(infection) 염증 반응으로 인한 발열을 내리는 해열제가 심인성 발열에는 안 듣는 이유가 밝혀진 것이다. 전자의 메커니즘은 잘 알려져 있지만, 후자는 아직 잘 모르는 상태였다. 학술지 사이언스’ 20200306일자에는 스트레스가 발열로 이어지게 하는 뇌의 회로를 밝힌 연구 결과가 실렸다. 일본 나고야 대학 의대 통합생리학과 나카무라 카주히로 교수팀은 무려 20년 가까운 연구 끝에 ‘DP/DTT DMH rMR 갈색 지방 회로라고 명명한 심인성 발열 경로를 규명했다. 2004rMR 갈색 지방 경로가 발견되었고, 2014DMH rMR 경로가 발견되었으며, 2020DP/DTT DMH 경로가 발견된 것이다.

 

동물은 살아가며 주위에서 다양한 물리적 심리적 스트레스 요인과 맞부딪치는데, 뇌의 시상(thalamus)에 있는 실방핵(PVT)스트레스 센서라는 사실이 2015년 밝혀졌다. 한편 중앙 내측 시상핵(MD)이라고 불리는 영역은 규칙 학습과 추상화, 평가, 상상력 같은 복합적인 인지 기능에 관여한다는 사실이 알려져 있다. 생각이 많아 자초한 고차원적 스트레스의 출처인 셈이다. 나고야 대학 연구자들은 실방핵(PVT)과 중앙 내측 시상핵의 뉴런이 뇌의 전두엽(Frontal lobe)에 있는 배측 각피질(DP)배측 덮개띠(DTT)로 연결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심인성 발열 회로를 완성한 뒤, DP/DTT로 들어가는 신경을 역추적해 밝혔다. DP/DTT 영역은 지금까지 거의 연구된 적이 없었는데, 이번에 PVTMD 등 모든 스트레스 센서가 감지한 정보가 모이는 허브로 밝혀진 것이다.

 

DP/DTT는 스트레스 정보를 배내측 뇌하수체(DMH)로 보내고, 배내측 뇌하수체(DMH)는 이를 뇌간에 있는 문측 수질 솔기(rMR)로 중계한다. 문측 수질 솔기(rMR)의 뉴런은 몸에 있는 갈색 지방 조직에 연결되어 있어서 신호를 받으면, 발열 반응을 일으킨다. 아울러 심박수도 늘리고 혈압도 올린다. 스트레스 반응을 준비하는 것이다. 여기에는 자율 신경계의 교감 신경이 관여한다. 지금까지 주목하지 않았고 역할도 몰랐던 전두엽의 배측 각피질(DP)배측 덮개띠(DTT)가 알고 보니 스트레스 회로의 허브였다는 사실은 뜻밖의 성과이다.

 

미국 심리학의 아버지로 불리는 19세기 심리학자이자 철학자인 윌리엄 제임스는 감정에 관한 놀라운 통찰을 제시했다. 감정이 몸의 생리적 반응을 촉발한다는 기존 이론에 맞서 제임스는 몸의 생리적 반응에 대한 해석이 감정이라고 주장했다. 우리가 곰을 보고 겁이 나 도망치는 게 아니라, 곰을 보고 도망치기 때문에 두려움을 느낀다는 것이다. 얼핏 말이 안 되는 것 같지만, 곰곰이 생각해보면 수긍이 간다. ‘호랑이 굴에 들어가도 정신만 차리면 산다는 속담도 있듯이 위기 상황에 마주쳤을 때, 몸의 본능적인 생리적 반응을 통제할 수 있다면, 공포 감정에 압도되어 혼비백산하는 대신 침착하게 해결책을 모색할 수 있기 때문이다. 연구자들은 이번에 발견한 스트레스 회로로 제임스의 이론을 검증해보기로 했다. 스트레스 정보의 허브인 DP/DTT에서 중계지인 배내측 뇌하수체(DMH)로 가는 신경을 억제해서 발열과 심박수 증가 같은 생리적 반응이 제대로 일어나지 않게 하면 정말 스트레스 관련 감정이 유발되지 않는가를 본 것이다.

 

연구자들은 실험 대상인 쥐에게 사회적 실패 스트레스를 경험하게 했다. 쥐의 우리에 덩치가 훨씬 큰 다른 품종의 수컷 쥐를 넣고, 한 시간을 같이 두면, 쥐는 침입자에게 쫓기며, 어쩔 줄을 모른다. 그 뒤, 우리 가운데 철망으로 칸막이를 친 뒤, 그 안에 큰 쥐를 넣고, 밖에 작은 쥐를 두면, 앞서 패배감을 맛본 작은 쥐는 최대한 멀리 머무르며, 잘 움직이지도 않는다. 그리고, 꼬리의 체온이 꽤 떨어진다. 스트레스를 받으면, 심부 체온을 올라가지만, 말단은 정맥이 수축해 체온이 내려간다.

 

그런데, 유전적 처리를 해서 일시적으로 DP/DTT DMH 경로를 차단하자, 작은 쥐가 겁이 없어져서 큰 쥐가 안에 있는 칸막이 근처까지 주저하지 않고, 기웃거리며 돌아다녔다. 꼬리 온도도 칸막이에 큰 쥐가 없을 때와 비교해 차이가 없었다. 스트레스 센서(PVT/MD)가 스트레스 요인(큰 쥐의 존재)를 감지해서 DP/DTT로 정보를 보내도 이게 DMH로 중계가 되지 않으면서 교감 신경이 관여하는 몸의 생리 반응(발열, 심박수 증가, 혈압 상승)이 뒤따르지 않자, 별 게 아니라고 판단해서 두려움이 촉발되지 않은 것이다. 감정은 생리 반응의 해석이라는 제임스의 주장을 뒷받침하는 결과이다.

 

인류가 문명 사회를 이루면서 스트레스 대다수가 투쟁 도피 반응이 필요 없는 심리적 영역에서 벌어지고 있음에도 우리 몸은 여전히 투쟁 도피 반응을 대비해 생리적 변화를 일으킨다는 게 문제다. 물론 인류는 이에 대처하는 방법도 모색했다. 예를 들면, 사람들 앞에서 발표를 하거나 면접을 하기 전에 우리는 긴장을 낮추기 위해 심호흡을 한다. 만성 스트레스에 시달리는 사람들을 위한 마음 챙김 명상에 기반한 스트레스 감소라는 프로그램도 있다. 지금 생각해보면, 부교감 신경을 활성화해서 ‘DP/DTT DMH rMR 갈색 지방 회로를 약화시켜서 스트레스로 인해 발생하는 부정적 감정의 세기를 줄이는 방법이 아닌가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