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 (소아청년)

유당 불내증 그리고 베지밀(vegemil) 탄생

마도러스 2020. 4. 21. 03:20


■ 유당 불내증 그리고 베지밀(vegemil) 탄생

 

1960년대까지만 해도 한국에서는 원인을 알 수 없는 병으로 아기들이 생명을 잃는 경우가 빈번했다. 1937년 서울 모 병원 소아과 에서 견습 근무를 시작한지 일주일이 된 의사가 있었다. 그는 그곳에서 극심한 '소화 불량'을 앓고 있는 갓난아기 환자를 만나게 되었다. 그리고, 이 만남이 그가 평생 외길을 걷게 만드는 계기가 되었다. 앙상하게 마른 팔다리에 배만 볼록 튀어나와 있던 갓난 아기는 먹는 즉시 설사와 구토를 했다. 아기의 병명은 '소화 불량'이었지만, 그 어떤 처방을 해도 설사와 구토가 멈추지 않았다. 아이를 꼭 살려달라고 아기 엄마의 애원에 약에서부터 주사까지 온갖 방법을 다 동원했지만, 어찌 된 일인지 증상은 전혀 나아지지 않았다. 장기간 이어진 설사. 구토. 복통으로 힘들어 하던 아기는 결국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그렇게 그 의사 인생에 찾아온 첫 시련이 그가 이 병을 치료하기 위해 평생을 바치는 계기가 되었다. 본격적으로 이 병에 대해 연구하다 보니, 이렇게 원인을 알 수 없는 소화 불량으로 목숨을 잃는 아기들이 한 둘이 아니었다. 분명, 보통의 소화 불량은 아니었지만, 국내 의사 중 누구도 정확한 원인을 알 수 없었다. 수 십 년간 병의 원인을 찾기 위해 연구를 했지만, 한국에서는 이 병에 대한 단서를 찾을 수 없었다. 그래서, 그는 1961년 44세의 나이로 유학길에 오르게 되었다. 처음에는 영국 런던 대학원에 갔지만, 그 곳에도 자신이 찾는 것이 없었다. 다음으로 떠난 미국 샌프란 시스코 UC메디컬 센터에서 처음 보는 병명이 적힌 논문을 발견했다. 그런데, 그 논문 속에는 그동안 자신이 봐왔던 이 원인을 알 수 없는 소화 불량에 대한 증상과 원인이 적혀있었다. 마침내, 그곳에서 수십 년간 찾아 헤매이던 아기들의 사망 원인을 발견한 것이다. 이 원인 불명 소화 불량의 정체는 바로 유당 불내증(Lactose intolerance)이었다.

 

유당 불내증(Lactose intolerance) 우유에 들어있는 유당(Lactose)을 분해하는 효소가 부족해서 나타나는 것이었다. 유당 불내증(Lactose intolerance)은 한국인의 75%, 전 세계적으로는 70% 인구가 앓고 있는 너무나 흔하디흔한 질병이다. 성인의 경우에도 우유와 같은 유제품을 먹었을 때, 설사나 소화 불량. 가스. 복통 등의 증상으로 나타난다. 하지만, 유당이 함유된 제품만 피한다면, 이 증상은 금세 가라앉았다. 그리고, 성인들은 우유 대신 영양을 섭취할 수 있는 대체 음식들이 많기 때문에 영양 실조에 걸린다거나 하는 큰 문제들이 일어나지 않았다. 하지만, 갓난아기들의 경우에는 달랐다. 그 시절, 갓난아기들이 먹을 수 있는 것은 모유나 우유 분유밖에 없었다. 그런데, 이 식품들에는 모두 유당이 함유되어 있었다. 원래 유당은 아기들에게 아주 중요한 영양 공급원으로 보통 아기들은 유당을 흡수해서 건강하게 자라지만, 유당을 분해하지 못하는 아기들에게는 설사. 구토. 복통 등의 증상이 나타나게 되었다.

 

이 의사가 미국에서 유당 불내증(Lactose intolerance)이라는 것을 발견하기 전까지 한국에서는 이 병의 원인이 우유와 모유 속 유당(Lactose)이라는 사실을 알지 못했다. 그것을 몰랐기 때문에 아기들에게 우유나 모유를 계속 먹였고, 먹고 설사하고 토하는 악순환이 반복되었다. 하지만, 그것을 알았다고 하더라도 그 시절에는 갓난아기들에게는 모유나 우유 대신 다른 대체 식품 또한 없었다. 그렇게 유당 불내증을 앓는 아기들은 영양 실조가 오거나 심한 경우, 사망에 이르기도 했던 것이다. 이 병의 원인을 알게 된 의사는 유당이 없으면서도 아기들에게 충분한 영양을 공급할 수 있는 '우유와 모유 대용식'을 만들기로 마음 먹었다. 4년만에 한국으로 돌아온 그는 평일에는 병원에서 아이들을 치료하고, 휴일이면 우유 대용식 개발에 몰두했다. 우유를 대신할 영양 식품이 뭐가 있을까 생각하던 그에게 번뜩 떠오른 것이 있었다. 바로, 자신이 어렸을 때 어머니가 만들어줬던 콩국이었다. 콩에는 유당이 없지만, 하늘에서 내린 완전 식품이라고 불릴 정도로 영양이 가득했다. 그는 콩국을 만들어 성분을 분석했고, 그를 토대로 두유를 만들었다. 두유를 이용해서 유당 불내증 치료 실험을 거듭한 결과, 매우 성공적이었다.

 

그는 곧바로 자신의 환자들 중에 유당 불내증(Lactose intolerance)을 겪는 신생아들에게 두유를 처방했다. 효과는 생각 보다 더 놀라웠다. 어떠한 약을 써도 효과가 없던 아이들의 설사와 구토가 멈추었고, 더는 복통을 호소하지 않았다. 그리고, 앙상하게 마른 몸에 살이 붙으며, 아기들은 점차 기력을 차리기 시작했다. 당시 원인 불명의 소화 불량이 치료된다는 소식이 전국 각지로 퍼져나가며, 고통 받던 환자들이 밀려들었다. 너무나 많은 환자가 몰려오기 시작하자, 가내 수공업식으로 감당하기에는 한계가 있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아픈 아이들을 빈손으로 돌려보낼 수 없었던 그는 놀라운 행보를 보여주었다. 의사를 그만두고 오로지 두유를 모든 아이들에게 충분히 공급하겠다는 집념으로 회사를 만든 것이다. 그렇게 1973년 (주)정식품이 설립되었다. 그리고, 이 집념의 의사가 바로 정재원 명예 회장님이다. 정재원 회장님은 자신이 만든 두유를 채소(vegetable)와 우유(milk)를 합성해서 베지밀(vegemil)이라고 지었다. 우리가 흔히 마트에서 볼 수 있었던 베지밀(vegemil)은 수많은 아이들의 목숨을 구한 기적의 음료였던 것이다. 정재원 회장님은 두유를 더 많이 생산하기 위해서 1984년 청주에 당시 세계 최대 규모의 공장을 세웠다.

 

1985년부터는 연구소를 만들어 경영에서 물러나 또다시 두유 연구에 몰두했다. 맛과 영양 성분을 향상하는데, 투자와 노력을 아끼지 않았다. 베지밀(vegemil)이 지금까지 남녀노소에게 사랑받으며, 두유 시장 1위를 차지할 수 있었던 것은 이런 노력이 있어서 가능했던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그런데, 정재원 회장님의 놀라운 행보는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이런 노력을 하고도 여전히 국민에게 공급되는 두유가 부족하다고 느낀 정재원 회장님은 품질 좋은 두유를 더 많이 공급시키기 위해 업계 1위 기업으로서는 이례적으로 OEM 전문 기업 자회사 '자연과 사람들'을 설립해서 경쟁 기업들에 원료를 제공했다. 당시 두유에 관해서는 정식품은 독보적인 기술력을 갖추고 있었다. 이 기술을 이용해서 회사가 엄청난 이윤만 추구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몸에 좋은 두유를 더 많은 사람들에게 공급하겠다는 일념으로 이런 충격적인 행보를 보인 것이다.

 

이런 결정 때문에 국내에서는 10개가 넘는 회사가 두유 제품을 만들게 되었다. 이렇게 회사 규모를 키우기 보다는 국민 건강과 내실에만 더 신경을 쓰다보니, (주)정식품은 오랫동안 업계 1위를 차지해온 것에 비해 다른 식품 업체와 비교하면 규모가 작은 편이라고 한다. 정재원 회장님은 2017년 10월 09일 100세의 나이로 별세하셨지만, 그의 정신을 이어받은 정식품의 노력은 계속되고 있다. 이제는 두유 말고도 유당 불내증을 치료하는 식품들이 많이 출시되고 있다. 하지만, 그 시작은 아이들을 살리고자 수 십년간 연구에만 몰두했던 한 의사의 집념으로 탄생한 베지밀(vegemil)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주)정식품은 특수 분유 제조 역시 하고 있다. 특수 질환을 앓고 있는 수많은 아이들을 영양적으로 치료하기 위해서이다. 이런 따뜻한 마음을 가진 회사였기에 (주)정식품은 베지밀이 출시된 이후, 47년 동안 부동의 1위를 지키고 있다. 최근에는 중국. 미국. 호주. 중동 등에 수출하며, 시장을 넓혀가고 있다. 아기들을 살리기 위해 탄생한 베지밀이 이제는 전 국민을 넘어 전 세계인의 건강을 지키는 음료로 자리매김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