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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물은 청춘이고, 여든은 달관이다.

마도러스 2020. 1. 23. 03:56






■ 스물은 청춘이고, 여든은 달관이다.

 

노자(老子)는 '상선약수'(上善若水)라고 했다. 가장 좋은 것은 물과 같다. 세상 이치도 물과 같아야 한다. 물은 만물을 길러주고 키워 준다. 하지만, 자신의 공을 남에게 내세우느라 남과 다투지 않는다. 물은 생명을 창조하고, 성장시켜준다. 철학의 창시자라는 탈레스(Thales)도 ‘만물의 근원은 물이다’ 라고 했다. 물은 우주 만물을 생성하는 원천이 된다. 물의 창조적이고 희생적인 삶을 본받아야 한다. 세월은 흐르는 물과 같다. 모든 날은 어제에 이어 오늘이고, 내일로 이어진다. 그렇다고 그날이 그날은 아니다. 뻔한 것 같으면서도 뻔하지 않은 것이 세상이 주는 매력이다. 스물은 청춘(靑春)이고, 여든은 달관(達觀)이다. 스물은 청춘(靑春)이라서 좋고, 여든은 세상 달관(達觀)해서 좋다.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 라고 말한다. 실제로, 창업하기에 너무 늦은 나이는 없다.


세상을 달관(達觀)해야 한다. 세상을 이롭게 해야 내가 성공한다. 그것이 홍익인간(弘益人間)의 사명이다. 널리 세상을  이롭게 하는 것이 나의 사명이고 삶의 목적이다. 누구나 그 사명을 받고서 태어난다. 하루 아침에 이뤄지는 일은 없다. 로마는 하루 아침에 이뤄지지 않았기 때문에 천년을 갔다. 산다는 것은 좋은 일을 하기 위해 사는 것이다. 남이 가져다 주는 행복(幸福)은 짧고, 내가 만들어 낸 행복(幸福)은 길다. 고난과 역경을 천명으로 생각하고 기쁘게 받아들이면 그것이 바로 행복이다. 젊어서 고생은 성공의 밑천이다. 어렵고 힘든 일도 실제로 해 보면 쉬운 것이다. 미리 불가능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충분히 할 수 있는 일을 놓치는 것이다.


강한 사람은 모두가 청춘(靑春)이다. 강한 사람은 어렵고 힘든 상황에서 절대로 굴복하지 않는다. 위기 상황을 슬기롭게 잘 극복해 내는 용기와 지혜가 넘쳐나는 사람이 강한 사람이다. 희망의 길이 보이지 않는 다고 생각하는 것은 삶에 대한 모독(冒瀆) 행위이다. 기회(機會)는 항상 있다. 그래서, 때를 놓치지 말아야 한다. 길은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 가까이에 있다. 일단, 절대로 실패를 두려워하지말고, 할 수 있는 일부터 시작하면 된다. 반드시 문제 속에 답이 있다. 실패와 실수에 집착할 필요가 없다. 넘어졌을 때에 다시 일어나는 사람은 모두가 청춘(靑春)이다.


● 맥도널드(McDonald) 창업자 레이 크록(Ray Kroc)은 52세에 패스트푸드(Fast food) 프랜차이즈(Franchise) 사업을 구상하고, 곧바로 창업을 시작했다. 종이컵 판매 사원이었던 그는 밀크 셰이크(milk shake)용 믹서(mixer) 판매 회사를 차려서 미국 전역을 다니며 세일즈 했다. 크록은 로스앤젤레스 동부 샌버너디노에서 맥도널드 형제의 햄버거 레스토랑을 발견했다. 그는 단순한 메뉴와 표준화된 조리법, 서비스에 매료되어 체인점 사업을 결심했다. 그는 맥도널드(McDonald)를 창업한 1955년부터 20년간 8,000개 가까운 매장을 열었다. 2020년, 전 세계 119개국, 3만 4,000여개 매장으로 증가했다. 크록(Ray Kroc)은 그의 자서전에서 '한 개 매장의 질 보다는 시스템 자체의 명성을 기반으로 사업을 계속 복제해 내는 것이 우리의 목표'였다고 회고했다. 그것이 바로 그가 생각해 낸 사업의 요체였다. 크록은 우리가 알고 있는 프랜차이즈(Franchise) 시스템의 원형을 만들었다. 이 방식은 곧 전 세계로 퍼졌다. 프랜차이즈 시스템이 지금은 전통 사업 범주에 있지만, 당시에는 벤처였다. 그는 요식업 전문가는 아니었지만, 외부 관찰자의 눈으로 사업의 핵심을 꿰뚫어봤다.


● 축구 감독 박항서(朴恒緖)는 나이 60세에 베트남 축구 국가 대표팀 감독을 맡아 베트남의 국민적 영웅으로 떠올랐다. 차범근 선수가 졸업한 당시, 축구 명문 고교 출신인 그는 유명 선수 출신은 아니었다. 하지만, 작은 체구에 비해 열심히 전력을 다해 뛰는 그는 악바리로 불렸다. 44세이던 2002년 월드컵 대표팀 수석 코치로 우리에게 알려졌고, 이후 지도자 생활은 탄탄대로를 달리는 듯 했다. 이후 국가 대표팀 감독을 맡았지만, 3달 만에 물러났다. 그리고, 프로팀 감독 생활도 오래 가지 못했다. 프로 2부팀, 실업팀을 거치며, 환갑(60세)을 앞두고 있었다. 하지만, 낯선 베트남행을 택했다. 먼저, 베트남 선수들의 체력 보강 훈련에 돌입했고, 단백질이 풍부한 식단을 요청했다. 패싱 게임에 직접 참여하여 축구 기술과 전술을 잘 이해하도록 지도했다. 2018년 아시안 게임 축구에서 베트남을 56년만에 아시안 게임 축구 4강에 올려놓으며, 베트남 축구의 영웅으로 떠올랐다. 그것도 모자라 2018년 AFF 스즈키컵에서도 베트남을 2008년 대회 이후 무려 10년만에 우승으로 이끌며, 2018년을 최고의 한해로 만들었다. 2019년 AFC 아시안컵에서 베트남을 12년만에 아시안컵 8강으로 이끌었으며, 2019년 킹스컵에서도 준우승을 이끌어내면서 베트남을 동남아시아 축구 최강국으로 만들었다. 한국에서 2002년 한일 축구 올림픽 국가 대표팀을 이끈 거스 히딩크(Guus Hiddink) 축구 감독이 전설이듯이 베트남에서 박항서는 2020년 거의 전설에 가깝다. 앞으로도 보여줄 전설이 그에게는 매우 많다. 박항서 감독은 인터뷰에서 “처음 베트남 국가 대표 감독 제의가 들어왔을 때, 쉽게 결정을 내리지 못했다. 그 당시 베트남 축구 국가 대표팀 감독직은 외국 감독들의 무덤이었고, 평균 임기가 8개월이었다. 하지만, 아내가 내게 해보라고 권유했고, 내 결정에 힘이 되어 주었다. 지도자로서 마지막이라는 생각으로 베트남에 와서 최선을 다했다.” 라고 전했다. 2017년, 베트남 국가 대표 축구 감독으로 부임한 이후 ‘박항서 매직’ 덕에 베트남은 동남아시아 축구의 강호로 부상하고 있다. 베트남 국민은 그를 ‘타이(Thay·스승)’라는 극존칭으로 부른다. 선수들은 따뜻한 카리스마의 박 감독을 ‘짜(Cha·아빠)’라며, 아버지처럼 따른다고 한다. 베트남의 영웅 ‘바캉서’, 박항서 감독 1명이 베트남을 들썩이게 하고 있다.


● 1969년생 가수 양준일은 2020년 신드롬(syndrome)급 인기를 끌고 있다. 오랜 시간 대중의 기억 속에서 사라졌던 그가 그동안 어떤 삶을 살았는지 알 수 없다. 그리고, '탑골 GD'(1990년대 지드래곤)로 불리며 받는 대중의 주목이 얼마나 오래 갈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는 다시 대중 앞에 등장했다. 타고난 외모와 체형 탓도 있겠지만, 50대의 그는 준비된 엔터테이너(Entertainer)의 모습이었다. 양준일은 '뉴트로(neutro) 열풍'을 탄 '문화적 신드롬'을 넘어 '사회적 현상'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최근 뉴트로(neutro) 열풍과 함께 1990년대 음악 방송 무대 영상이 재조명 받으면서 인생 2막을 시작했다.1991년 데뷔한 양준일은 당시 비자 문제, 한국적 정서와 맞지 않는다는 등의 이유로 인기를 끌지 못했다. 2002년 'V2'로 다시 컴백했지만, 이 또한 실패로 돌아갔다. 그 후, 한국 연예계에서는 더 이상 양준일을 만나볼 수 없었다. 대중들의 눈에는 장발을 늘어트린 외모와 튀는 의상, 이국적인 음악이 다소 이질적으로 느껴졌을까? 재미 교포 출신의 그가 선보인 자작곡들은 댄스 팝 등 당시 미국에서 유행하는 장르였고, 영어로 된 가사 역시 대중들에게는 낯선 음악이었다. 그가 한국을 떠나게 된 가장 결정적인 이유는 '비자 문제'였다. 당시 미국 국적을 갖고 있었던 양준일은 “한국 활동을 하기 위해서는 6개월마다 허가를 맡아야 했는데, 출입국 관리소 담당자가 '너 같은 인물이 한국에 있는 것이 싫다'고 하며, 비자 연장을 거부했다”고 밝혔다. 이에 양준일은 어쩔 수 없이 미국으로 떠났다. 그동안, 영어 강사, 식당 서빙 등을 하며, 다른 삶을 살아가고 있었다. 하지만, 온라인 동영상 플랫폼인 유튜브를 통해 공개된 1990년대 음악 방송 다시보기 채널, 이른바 '온라인 탑골 공원'이 화제를 모으면서 상황은 달라졌다. 양준일은 세련된 외모와 패션 감각, 지금 들어도 어색하거나 촌스럽지 않은 세련된 음악으로 '탑골 GD (1990년대 지드래곤)'라는 별명을 얻으며, 젊은 세대들의 시선을 단숨에 사로잡았다. 그에게 방송가에서도 러브콜이 쏟아졌다. 무대로 복귀한 그는 ‘온라인 탑골 공원’에서 보던 모습 그대로 나타나tj 보는 이들을 놀라게 만들었다. 특히, 방송에서 양준일의 따스한 성품과 인간미는 많은 이들을 매료시켰고, 그에게 열광하는 팬들의 마음을 알아주듯 양준일은 2019년 12월 팬미팅을 시작으로 광고 및 음악 방송에도 출연하며, 본격적인 한국 연예계 활동을 예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