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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물동이로 물을 퍼붓는 여인 조각상

마도러스 2019. 11. 27. 01:03



■ 물동이로 물을 퍼붓는 여인 조각상

 

목포(木浦) 유달산(儒達山) 조각 공원에 가면, 아름다운 여인(女人)이 물동이로 물을 퍼붓고 있는 모습이 있다. 여인(女人)들의 삶이란 모든 것이 다 아름다운 것 같다.

 

목포의 구경거리 중에 최고 명물인 목포 해상 케이블카와 천사대교(千四大橋)2019년 개통되었다. 목포 해상 케이블카는 낭만 항구 목포의 아름다운 유달산과 다도해의 비경을 한눈에 선사해 주는 국내 최장 해상 케이블카이고, 총 연장 3.23km (해상 0.82, 육상 2.41)이며, 20190906일 개통했다. 목포 북항 스테이션에서 출발해서 유달산 정상 유달산 스테이션을 지난 후, 고하도 스테이션까지 왕복 40분간의 멋진 파노라마와 함께 목포 시내 전경과 유달산 기암귀석, 다도해, 목포항 등을 동시에 감상할 수 있다. 수많은 볼거리 때문에 베트남 빈펄 케이블카를 능가하는 아시아 최고 노선으로 평가되고 있다. 목포 해상 케이블카의 5번 타워는 유달산 상부에서 고하도로 향하는 지주 타워로 그 높이가 155m에 이르며, 케이블카 주탑 중 세계 2번째 높이를 자랑한다. 천사대교(千四大橋)는 목포와 신안군 9개 큰섬을 연결하고, 총연장은 10.8거리이며, 국내에서 4번째로 긴 다리이다. 국내 최초 사장교와 현수교를 동시에 배치한 교량이며, 20190404일 개통했다. 천사대교(千四大橋) 명칭은 우리나라 섬의 1/3을 차지하고 있는 섬들의 고향인 신안군이 1004개 섬을 가졌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

 

'목포의 눈물' 노래와 조선인의 한() : 일제(日帝) 강점기 시절에 일본은 목포(木浦)를 통해서 한국의 목화(木花)를 착취했고, 군산(群山)을 통해서 일본은 한국의 쌀()을 착취해 갔다. 그것을 기반으로 일본은 산업을 발달시키고 세계적인 강국으로 성장했다. 목포(木浦)는 이 같은 목적을 위해 일본이 전략적으로 육성한 도시였다. 1910년대 목포의 모습을 담은 사진을 보면, 일본이 누구를 위해 목포(木浦)를 개발했는지 확연히 드러난다. 목포 유달산(儒達山) 노적봉(露積峯)을 경계로 한쪽의 조선인 거주 지역에는 무질서한 흙길에 초라한 초가집이 늘어섰고, 다른 한쪽의 일본인 거주 지역에는 반듯한 도로에 깔끔한 기와집이 즐비했다. 일제(日帝) 시대에 한국인들은 일본 밑에서 수많은 속박과 고통을 당했다. 설움과 원한을 가슴에 안고 살았다. 그래서, ‘목포의 눈물이라는 노래가 나왔다. 아직도 그 시절의 고통이 목포의 눈물노래 속에서 지워지지 않고 전해진다. ‘목포의 눈물은 김대중 대통령의 애창곡이다.

 

유달산(儒達山)은 예로부터 영혼이 거쳐 가는 곳이라 하여 영달산(靈達山)이라 불렸다. 동쪽에서 해가 떠오를 때, 그 햇빛을 받아 봉우리가 마치 쇠가 녹아내리는 듯한 색으로 변하기 때문에 유달산(鍮達山)이라 하였다. 이후, 구한말 대학자인 정만조(鄭萬朝)가 유배되었다가 돌아오는 길에 유달산에서 시회(詩會)를 열자, 자극을 받은 지방 선비들이 유달정(儒達亭) 건립을 논의하게 되었고, 그 때부터 산 이름도 유달산(儒達山)이 되었다. 노령(蘆嶺) 산맥의 맨 마지막 봉우리이자 남해 다도해(多島海)로 이어지는 서남단의 땅 끝에 자리한 유달산의 일등봉(一等峰)의 높이가 230m이며, 유달산 전체가 화강암이며 경사가 급하지만, 일주도로를 따라 일부 완만한 지형이 형성되어 있다. 삼학도(三鶴島)는 목포의 상징이기도하다. 3마리의 학이 내려앉아 섬을 이뤘다는 전설을 지니고 있는 삼학도는 유달산과 함께 목포의 상징적 공간이다.

 

전설에 의하면, 유달산(儒達山)에서는 무술을 연마하던 청년과 그 청년을 사모하던 세 여인이 있었다. 세 처녀는 날이면 날마다 지성으로 청년을 섬기며 도왔다. 젊은이에게 마음을 빼앗겼던 세 여인은 짝사랑에 사무친 가슴을 밤낮으로 달랬다. 세 여인은 속절없는 세월 속에 시름시름 앓다가 결국에는 숨을 거두고 말았다. 그리고, 세 연인은 죽어서 우여곡절 끝에 학으로 환생했고, 그 청년 주위를 항상 맴돌았다. 하지만, 그 사실을 알 수 없는 청년은 자신을 맴도는 학을 향해 활을 쏘았다. 화살에 명중된 세 마리 학들은 유달산 앞바다에 떨어졌다. 그리고, 얼마 뒤, 세 마리 학들이 떨어진 그 자리에 작은 섬 3개가 솟아났다. 바다위에 세 개의 섬이 불쑥 솟아 오르자 사람들은 삼학도(三鶴島)라고 불렀다.

 

임진왜란(壬辰倭亂) 당시 군사적 열세를 만회하기 위해서 이순신 장군은 목포(木浦) 노적봉(露積峯) 지형을 이용해서 고도의 심리전을 펼쳤다. 임진왜란(壬辰倭亂) 때에 이순신(李舜臣)은 노적봉(露積峯)에 진을 치고 산꼭대기와 큰 바위를 짚과 섶으로 빙빙 둘러싸서 식량 무더기처럼 위장했다. 마치 군량미를 덮어놓은 노적(露積)처럼 꾸며서 군량미가 대량으로 비축되어 있는 것처럼 보이게 했다. 왜적으로 하여금 싸움을 포기하고 후퇴할 마음을 일으키게 하였던 것이다. 또한, 주민들에게 군복을 입혀서 노적봉 주위를 계속 돌게 해서 마치 많은 대군(大軍)이 있는 것처럼 위장하게 했다. 노적봉(露積峯)은 목포 유달산 기슭에 있는 거석(巨石) 봉오리이다.

 

목포의 눈물 (이난영) : (1) 사공의 뱃 노래 가물거리며, 삼학도 파도 깊이 숨어드는데, 부두의 새악씨 아롱 젖은 옷자락, 이별의 눈물이냐? 목포의 설움. (2) 깊은 밤 조각달은 흘러가는데, 어찌타 옛 상처가 새로워진가? 못 오는 님이면 이 마음도 보낼 것을, 항구에 맺은 절개! 목포의 사랑. (3) 삼백년 원한 품은 노적봉 밑에, 님 자취 완연하다 애달픈 정조, 유달산 바람도 영산강을 안으니, 님 그려 우는 마음. 목포의 노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