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서하라!

청년도 울었고, 그리고 나도 울었다.

마도러스 2015. 10. 5. 10:23


청년도 울었고, 그리고 나도 울었다.

 

그는 우리 집에 침입을 했고, 나는 소리칠 겨를도 없었다. 그는 도둑이었다. 그는 재빠른 동작으로 나를 묶었다. 내 집에 도둑이 들것이라곤 상상도 못했다. 전날 밤, 딸네 집에 간 아내에게 딸의 집에서 푹 자고 오라 말한 것은 천만 다행이었다.

 

“가진 돈! 있는 돈을 모두 다 내놔! 안 그러면.. 죽여 버리겠어.” 20대 젊은이로 보이는 사내는 내게 칼을 들이댔다. 소름이 돋았다. 나는 환갑이 넘었다. 그러니 죽음을 한 번쯤 생각해보긴 했지만, 이런 식은 아니었다.

 

나는 되물었다. “내가 돈을 주면 날 죽이지 않을 거요?” 어디서 그런 용기가 났는지 모른다. 순간 도둑의 눈빛이 흔들리더니 고개를 끄덕이었다.

 

그런데, 이상하게 푸른색 마스크 위로 보이는 그의 눈빛이 왜 그리 선량해 보였다. 어디가서 이렇게 말하면 미쳤다고 하겠지만, 내가 보기에 그는 도둑질 할 사람처럼 보이지 않았다. “젊은이, 언제부터 이랬나?”

 

그는 칼을 내 얼굴에 거의 닿을 정도로 들이댔다. “늙은이가 말이 많아. 이상한 소리 말고 돈이나 꺼내!” 눈앞에 보이는 칼 뒤쪽으로 그의 손이 바들바들 떨리고 있었다. “나는 죽음이 안 무서워. 자식들도 다 키워놨고!”

 

그의 목소리는 더 격양돼 있었다. “빨리 돈 내놔!”

 

그런데, 그는 왠지 모르게 금방이라도 울음을 터뜨릴 것 같았다. “돈 줄게 그리고 자네가 원하는 것을 다 줄테니 우리 타협하세. 도둑질이 아니라 내가 빌려주는 것이면 어떻겠나?”

 

그의 동공이 커지는 것으로 보아 내 말에 적잖이 놀란 모양이었다. “내가 잔머리 굴리는 것으로 보이나? 환갑이 넘은 내가 젊은 자네만큼 똑똑하겠나?”

 

나는 침을 꼴깍 삼키며 말을 다시 이었다. “자네 인생에 오점을 남기면 안 되잖아. 잡혀가지 않아도 나중에 후회하지 않을까? 나는 살 만큼 살았으니 지금 죽어도 별 후회가 없지만 자네는 너무 아까워! 내가 양보할 테니 빌려주는 것으로 하세.”

 

순간 내가 잘못 본 것 인줄 알았다. 그의 눈에서 눈물 한 방울이 주르륵 흘러 내렸다. 마스크가 움씰움씰 움직이는 것이 그는 분명히 울먹이고 있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나도 간땡이가 부었었다. 칼을 쥔 그의 손을 나는 덥석 잡았다. 순전히 내 마음에서 우러나온 반사적인 행동이었다. 내 생각처럼 그는 선량한 사람임에 틀림없었다.

 

그는 마스크를 벗더니 내 앞에 털썩 주저앉아 어린애처럼 울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에이 씨 못해먹겠네. 죄송합니다.”

 

나도 목이 메여 그의 등을 다독거렸다. “도둑 체면이 말이 아니구만. 이런 마음으로 어떻게 도둑질을 하려고?” 그는 나를 묶었던 끈을 풀어주었다.

“무슨 사연이 있는 거야. 그렇지?”

 

“병원비가 너무 밀려 있어서요. 제 어머니가 혈액 투석 중이신데....” “한 달 후에는 저도 결혼을 해야 하는데, 돈이 너무 쪼들려서 그만, 죄송합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나는 장롱 문을 열어 깊은 곳에서 금반지와 목걸이를 꺼냈다. 찾아 두었던 돈을 그의 무릎 앞에 내밀었다.

 

“이러시면, 제가...?”

“내가 약속하지 않았나? 빌려주겠다고”

“됐습니다. 그냥 나가겠습니다.”


나는 그의 손을 붙들었다. “그냥 나가면 도둑이 되는 거야. 나는 도둑에게 이 돈을 빼앗긴 것이 아니라, 앞길 창창한 청년에게 빌려주는 것이라네. 나중에 갚으면 되는 거야!” 그날 밤, 청년도 울었고, 그리고 나도 울었다. [출처: 월간  "낮은 울타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