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이익 고집하면 큰 이익 잃는다.
춘추 전국 시대의 복자천(宓子賤)은 공자의 제자였다. 공자(孔子)와 같은 노(魯)나라 사람이기도 했다. 한번은 제(齊)나라가 노나라를 공격한 적이 있었다. 전화는 의외로 크게 번져 노나라의 선보 일대까지 이르게 됐다. 이때 복자천(宓子賤)은 묘하게도 선보의 현령으로 있었다. 게다가 계절이 보리를 수확할 즈음이었다. 그러나, 노(魯)나라의 창고에 들어가야 할 보리들은 전쟁이 한 번 휩쓸고 갈 경우, 그대로 제나라에 의해 약탈될 가능성이 높았다.
그러자, 현지의 노인들이 앞다퉈 복자천에게 건의했다. “보리가 곧 익을 겁니다. 제(齊)나라 군대가 와서 약탈하기 전에 빨리 수확해야 합니다. 수확하는 보리는 누가 파종을 했든 간에 먼저 거두는 사람의 소유로 합시다. 그게 차라리 다 뺏기는 것보다 낫습니다.”
다른 백성들 역시 “그렇습니다. 이렇게 하면 우리 노(魯)나라의 식량도 늘어납니다. 반면, 제(齊)나라 군대는 식량을 약탈하지 못하면 군량미가 모자라 오래 버티지 못할 것입니다”라면서 노인들의 말에 호응했다. 그러나 복자천은 백성들이 거듭 간청하는데도 이런 방법에 동의하지 않았다.
얼마 후, 과연 제(齊)나라 병사들이 들이닥쳤고, 결국 선보의 보리들은 모조리 약탈당하고 말았다. 대다수의 백성들은 당연히 복자천(宓子賤)을 원망했다. 노(魯)나라의 귀족인 계손(季孫)씨는 분노한 나머지 사신을 보내 복자천의 죄를 물었다. 복자천은 기다렸다는 듯 자신의 생각을 설명했다.
“금년에 보리를 수확하지 못했다면 내년에 다시 파종하면 됩니다. 그러나, 정부에서 백성들에게 보리를 아무나 막 거둬가라는 명령을 내린다고 합시다. 이렇게 하면 파종을 하지 않은 백성들도 불로소득(不勞所得)을 올리는 것이 가능합니다. 분명 좋은 점이 있습니다. 선보의 백성들 역시 그렇게 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 기회를 이용해 생각지도 않던 소득을 올린 백성들은 나중에 어떻게 생각하겠습니까? 해마다 적군이 침략해 오기를 은연 중에 기대할 것입니다. 그러면 갈수록 사회의 기풍이 흔들리게 될 것입니다. 사실 선보의 1년 보리 생산량은 노나라의 국력에 큰 영향을 미치지 않습니다. 선보의 보리가 설사 멀쩡하게 있었더라고 국력이 강대해진다고 할 수 없습니다. 마찬가지로 없어졌다 해도 국력이 쇠약해지지 않습니다. 그러나, 선보의 백성들이나 노나라 전체 백성들에게 적이 침략할 경우 불로소득을 얻을 수 있다는 생각을 갖게 만들면, 그것이야말로 큰 문제입니다. 이것은 우리 노나라의 근본을 흔드는 큰 적입니다. 요행으로 이익을 취하겠다는 생각을 제대로 다스리지 않으면 훗날 큰 손해를 보는 것은 자명합니다!”
복자천(宓子賤)은 자신의 분명한 득실관이 있었다. 그는 자신이 다스리는 지방 노인들의 건의를 단호하게 거절했다. 이로 인해 결과적으로 노나라를 침략한 제나라 병사들은 보리를 약탈해갔다. 분명 유형의 손해를 입었다. 식량을 잃는 유한한 손해도 입었다. 그러나 그는 백성들이 요행을 바라는 마음을 갖게 하지는 않았다. 이는 무형의 손실이자 무한하고 장기적인 손실일 수 있었다. 복자천은 한마디로 득과 실을 어떻게 취해야 하는지에 대한 모범 사례를 정확하게 보여주었다. 순간의 손실을 참으면, 장기적인 이익을 얻을 뿐만 아니라 큰 수확도 생긴다.
눈앞의 작은 이익과 장기적인 큰 이익은 종종 충돌을 일으킨다. 이때 눈앞의 작은 이익을 고집하면, 나중 큰 이익을 잃을 수 있다. 자칫하다가는 평생의 한으로 남을 수도 있다. 목숨은 두 번 가질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반드시 분명하게 행동해야 한다. 득실의 배후에 있는 진정한 득실을 꿰뚫어볼 줄 알아야 한다. 절대로 자신에게 유감이 남게 해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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