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사 (한국)

김대중, 한국 세계 1위 발판 마련

마도러스 2012. 11. 15. 14:15

 

대중, 한국 세계 1위 발판 마련

 

■ 김대중 정부, 정보 뉴딜 정책으로 성장 발판 마련

 

[서울 경제 신문] 뉴딜(New deal)은 우리 경제가 고비를 맞을 때마다 성장의 발판을 만드는 역할을 했다. 우리나라에서 뉴딜(New deal) 정책의 역사는 경부 고속도로로 거슬러 올라간다. 경부 고속도로는 박정희 대통령 시절 제2차 경제 개발 5개년 계획에 따라 1968년 2월 착공돼 2년 5개월 만인 1970년 7월에 완공됐다. 추진 단계부터 여론의 거센 비판을 받았지만, 현재는 국내외 사례를 비교해도 국내 경제 성장에 중추적 역할을 한 성공적인 뉴딜 정책이었다는 평가를 받는다.

 

김대중 대통령이 1997년 외환 위기 이후에 추진한 ‘정보 뉴딜 정책’ 역시 경제 위기를 정부 주도의 정보 통신 분야 육성을 통해 정면 돌파한 사례로 꼽힌다. 1999년 김대중 정부가 발표한 '사이버 코리아 21'은 향후 4년간 118조원의 생산 유발 효과를 일으키고 2002년까지 100만개의 일자리를 창출하겠다는 청사진을 제시했다. 결과는 괄목할 만하다. 유엔(UN)이 발표하는 전자 정부 지수는 2002년 15위에서 2011년 1위로 껑충 뛰어올랐고, 세계 경제 포럼(WEF)의 네트워크 준비 지수는 2002년 20위에서 2011년 12위로 상승했다.

 

■ 노무현 정부, 사업 관리상의 도덕적 해이로 실패

 

이후 노무현 대통령이명박 대통령 역시 전임자들처럼 뉴딜 정책을 통해 경제 성장률을 높이고 일자리를 창출하려고 시도했다. 다만 효과는 당초의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

 

노무현 대통령 시절에 2004년 말 당시 이헌재 부총리는 '2005년 종합 투자 계획', 이른바 한국형 뉴딜 정책을 발표한다. 정부 예산은 물론 연기금, 공기업, 민간 자본을 총동원해 사회 간접 자본(SOC)에 쏟아 붓겠다는 내용이었다. 민간 자본까지 합치면 총 10조원 규모의 사업이었다. 하지만 정작 사업 내용은 당초 취지와 달리 작은 것들로 채워져 태산명동서일필(泰山鳴動鼠一匹)이라는 비판이 뒤따랐다. 처음엔 태산이 울릴 정도로 요란을 떨더니 고작 쥐 한 마리 잡은 결과였다.

 

IT 부문 투자를 대폭 늘리는 디지털 뉴딜(New deal)도 병행하여 민간 자본을 끌어들이겠다는 발상은 혁신적이었지만, 엄격한 사업 평가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 등 사업 관리상의 도덕적 해이를 막지 못한 것이 성과 부진의 원인으로 꼽힌다.

 

■ 이명박 정부의 녹색 뉴딜은 성과 부진으로 실패했다.

 

이명박 대통령 정부는 '4대강 살리기'를 중심으로 녹색 뉴딜(New deal)이 2009년부터 대대적으로 추진됐다. 2012년까지 50조원을 투입해 95만 6,000개의 일자리를 만들겠다는 정책 목표가 제시됐다. 하지만, 이를 놓고 비판도 적지 않다. 영국 파이낸셜 타임즈는 '한국 녹색 뉴딜 중심에는 콘크리트가 있다!' 라고 했고, 정운찬 전 총리는 '녹색 뉴딜은 토목 공사에 녹색 이미지를 입힌 것이다!'라고 혹평했다. 이명박 정부의 녹색 뉴딜(New deal)은 성과 부진으로 실패했다는 비평이다.

 

최근에는 국책 연구소인 한국 개발 연구원(KDI)까지 "이명박 정부는 2009-2010년 SOC 분야에 불필요하게 무리한 투자가 이뤄졌다"고 진단했다. 이는 뉴딜 정책을 펼 때 합리적이고 정확한 재정 수요 예측이 수반돼야 한다는 교훈을 남긴다. 아울러 뉴딜의 테마를 정할 때는 국민적 합의가 전제돼야 역풍을 사지 않는다는 것을 시사한다. [서울 경제 신문] (입력: 2012.11.08)

 

■ 김대중, ‘부품 소재 개발 정부 지원법’ 특별법 제정

 

2001년 김대중 대통령 당시 ‘부품 소재 개발 정부 지원법’이라는 특별법 제정을 계기로 완제품 중심의 생산 체제에서 부품과 소재 개발에 역점하고, 정부가 이의 산업화를 위한 다각적인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그 후, 한국의 수출 상품 내용이 완제품 중심에서 부품 소재 중심으로 무역 구조가 건실화 되고 있다.

 

2005년을 정점으로 부품 소재 산업이 전체 산업의 무역 수지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계속 커지고 있으며, 2007년에는 364억 달러 흑자를 기록했고, 전체 산업 흑자 143억 달러의 2.5배 수준에 달해 수출 산업의 주력으로 부상하고 있다. 2008년에도 부품 소재는 360억달러 이상의 무역 흑자가 예상돼 어려운 내외 여건에도 반가운 소식이 되고 있다.

 

최근에는 부품 강국인 일본(日本) 회사가 한국 전자 부품 기술을 배우러 오고 있다. 지금까지 전자 부품에 관한 한 일본(日本)은 자타 공인 세계 넘버(number) 원(one)이었다. 이런 일본 회사들이 한국(韓國)핵심 부품 기술을 라이선싱하거나 현장을 직접 방문하기도 한다. 한국 부품 업체의 기술 경쟁력이 과거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몰라보게 강해졌기 때문이다. 한국 기업들은 이미 세계 정상의 기술력을 자랑한다. 글로벌 완성차 업체도 한국산 부품이 없으면, 고급형 전기차 제조에 어려움을 겪을 정도이다.

 

■ 김대중, 경제 운영을 매우 잘 하여 최고 무역 흑자 기록

 

역대 대통령 재임 기간의 무역 수지를 살펴보면, 박정희 233억 달러 적자, 전두환 8억 달러 흑자, 노태우 132억 달러 적자, 김영삼 366억 달러 적자, 김대중 846억 달러 흑자 등이다.

 

전두환(1980.09-1988.02) 대통령이 지금도 큰소리 치는 것이 있는데, 바로 그것이 바로 자신의 집권 기간 중에 대한민국 유사 이래 최초로 무역 흑자를 기록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1980년대 특히 1986년부터 1988년 사이에 3저 호황(저금리. 저달러. 저유가)이라는 천혜의 외부 환경 때문에 가능했던 것이다.

 

김대중(1998~2003) 대통령은 김영삼(1993-1998) 정부로부터 1997년 IMF 경제 파탄 상황을 물려받았음에도 불구하고 불과 5년 동안에 846억 달러라는 최고의 무역 흑자를 기록했으니, 경제 운영을 매우 잘 한 것으로 평가된다.

 

 

★ 우리 배달(倍達) 민족의 역사는 9,200년이다.

 

우리 배달 민족의 환국(桓國,BC 7,199-3,897), 배달국(倍達國,BC 3,897-2,333). 고조선(古朝鮮,BC 2,333-238) 문화는 중국의 (堯.재위BC 2,357-2,258), (舜.재위BC 2,255-2,208), (夏,BC 2,205-1,766), (殷,BC 1,600-1,046), (周,BC 1,046-771) 문화의 뿌리이다. 우리 배달(倍達) 민족 문화가 중국 문화의 뿌리이다. 우리 민족의 역사가 환국(桓國,BC 7,199-3,897), 배달국(倍達,BC 3,897-2,333), 고조선(古朝鮮,BC 2,333-238). 부여.옥저.동예.낙랑국. 마한.변한.진한. 고구려.백제.신라로 이어져서 무려 9,200년이나 된다. 

 

'신시(神市) 개천경(開天經)' 기록에 의하면, 환국(桓國)의 말엽에 환웅(桓雄)이 있었다. 그는 홍익인간(弘益人間), 재세이화(在世理化), 광명이세(光明理世)의 뜻을 간직하고 있었다. 환웅(桓雄)은 동방 땅 백두산(白頭山)에 문명 개척단 3,000명과 함께 배달국(倍達,BC 3,897-2,333)을 건설하였다. 배달국(倍達,BC 3,897-2,333년)은 신시 배달(神市 백두산, 1-13대 환웅)과 청구 배달(靑丘 산동성.태산(泰山), 14대-18대 환웅)로 나누어진다. 배달국(倍達)의 환웅(桓雄)이 북만주와 대진국(발해) 연안의 땅에 뛰어난 석공예와 질공예를 남겼는데, 이것을 배달(倍達) 환웅(桓雄)의 '홍산(紅山) 문화'라고 한다.

 

배달국(倍達國,BC 3,897-2,333)의 홍산(紅山) 문화는 1920년대 프랑스 에밀 리쌍이 처음 발굴을 시작하였고, 1930년대 중국 철학자 양계초의 아들 양사영이 홍산(紅山) 유적지를 조사한 이래 많은 학자들이 연구에 뛰어 들었다. 그 후, 중국 정부에서 대대적으로 발굴하였는데, 1980년대에 홍산(紅山) 문화의 대표적인 유적지인 우하량 유적이 발굴되어 전세계가 깜짝 놀랐다. 이 곳에서 나오는 유물들은 중국의 황하 문명 보다 2-3천년 앞 서 있었고, 유적과 유물들을 자세히 살펴 보면 그 지역의 문명은 이미 국가 단계의 구비 조건을 모두 갖춘 문명이었기 때문이다.

 

또한, 이들 배달국(倍達國,BC 3,897-2,333)의 홍산(紅山) 문화의 유적과 유물들은 세계 문명의 발상지라고 꼽히는 이집트. 메소포타미아. 인더스. 황하 문명 보다 훨씬 앞 선 문명 형태였기 때문이다. 예를들면, 홍산 문화의 소하서 지역 유적들은 무려 8,500년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결론적으로 배달국(倍達國,BC 3,897-2,333) 홍산(紅山) 유적지 발굴은 세계 문명사를 다시 쓰게 하는 엄청난 사건이다. 최근에도 중국은 동북(東北) 공정의 일환으로 이 곳을 계속 발굴하고 있다.

 

현재, 중국은 홍산(紅山) 문화를 ‘요하(遼河) 문명’이라고 하여 자기네 역사 유적이라고 우기고 있지만 그 유적지의 위치와 문명 양식 등을 보면 동이족(東夷族) 배달(倍達)의 문화 양식임에는 어쩔 수가 없다. 중국이 만주의 홍산(紅山) 유적지 문화를 자기네 것이라고 우기는 것은 마치 송곳을 주머니 속에 넣고 감추는 것과 같다. 결국 밖으로 드러나게 마련이다.

 

배달국(倍達國,BC 3,897-2,333년)은 신시 배달(神市백두산,1-13대 환웅)과 청구 배달(靑丘산동성.태산(泰山),14대-18대 환웅)로 나누어진다. 배달국(倍達國)의 환웅(桓雄)이 북만주와 대진국(발해) 연안의 땅에 뛰어난 석공예와 질공예를 남겼는데, 이것을 배달(倍達) 환웅(桓雄)의 '홍산(紅山) 문화'라고 한다.

 

환국(桓國)의 신교(神敎) 문화는 고대 문화의 원형이고, 배달국(倍達國)으로 이어졌으며, 환국과 배달국의 문화는 세계 4대 문명의 뿌리가 되었다. 환국(桓國)의 12개 나라 가운데, 수밀이국우루국은 그동안 서양에서 최초의 문명족으로 알려져 있던 나라 이름이고, B.C 3,500년 전의 고대 메소포타미아(수메르) 문명을 일으킨 나라이다.

 

최근 120여 년 동안의 고고학 발굴 결과, 중동의 메소포타미아 지역에서는 B.C 3,500년 경에 오늘의 서양 문명의 뿌리인 수메르(Sumer) 문명이 있었고, 이 문명을 건설한 수메르 민족은 동방에서 왔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수메르 문명은 다시 이집트 문명에게 영향을 주었고, 또한 고대 희랍 문화에 영향을 미쳤으며 로마제국을 거쳐 오늘날 서양 문명이 나온 것이다. 인더스 문명 또한 북방문명에서 기원했다고 하며, 배달국(倍達國)의 문화가 유입되어 인더스강 유역에 자리를 잡은 것이다.

 

중국의 황하 문명은 B.C3,000-2,500년경에 황하강 유역에서 발생했는데, 이것은 북만주와 산동반도 유역의 배달국(倍達國, B.C3,898-2,333) 문명의 영향을 받아 생겨난 것이다. 근래에 만주에서 동북 공정의 일환으로 ‘요하(遼河) 문명’ 유적을 발굴하고 있는데, 요하(遼河) 문명배달(倍達) 문명의 일부이다. '황하 문명' 보다 앞선 유적들이 무수히 쏟아져 나왔다. 중국 당국이 발칵 뒤집혔다.

 

배달(倍達 BCE 3,898-2,333)의 홍산 문화메소포타미아 문명(BCE 3,500-2,600년). 황하 문명(BCE 3,000-2,500년). 인더스 문명(BCE 2,500년경). 이집트 문명(BCE 3,100년경) 보다 앞선 것이며, 세계 4대 문명에게 영향을 준 것이라는 증거와 유적들이 최근 속속 발굴되고 있다.

 

'한민족의 배달(倍達) 문명이 중국 민족의 황하 문명보다 빨랐고, 중국의 황하 문명은 한민족 배달(倍達) 문명을 받아서 생긴 것이다.' 라는 역사적 사실들이 속속 드러나고 있다. 우리 민족의 역사가 환국(桓國,BC 7,199-3,897), 배달국(倍達國,BC 3,897-2,333), 고조선(古朝鮮,BC 2,333-238). 부여.옥저.동예.낙랑국.마한.변한.진한. 고구려.백제.신라로 이어져서 무려 9,200년이나 된다.

 

환국(桓國)의 장자국(長子國)이 배달국(倍達國)이었고, 배달국(倍達國)의 장자국(長子國)이 고조선(古朝鮮)이었음을 비추어 볼 때, 우리 배달(倍達)민족과 한국이 세계 4대 문명의 정통성을 이어 받은 민족이며 나라임을 알 수 있다.

 

우리 배달(倍達)민족이 천제(天祭) 및 제사(祭祀) 풍습을 중국 한(漢) 민족에게 전해줬다. 배달국(倍達國) 말엽 및 고조선(古朝鮮) 초기에 중국에서 나라를 창업한 사람들 중에서, 임금(하夏나라의 시조). 임금(은殷나라의 시조). 문왕(주周나라의 시조). 무왕(주周왕조 개창). 강태공(병법의 시조, 제齊나라)도 역시 우리 동이족(東夷族)이었다. 또한, 중국의 건국(建國) 시조(始祖)인 삼황오제(三皇五帝)는 전부 우리 동이족(東夷族)이었다. 삼황(三皇)태호복희(太昊伏羲). 염제신농(炎帝神農). 황제헌원(黃帝軒轅)을 말하고, 오제(五帝)소호금천. 전욱고양. 제곡고신. 요(堯)임금. (舜)임금을 말한다. 그들 모두 배달(倍達)민족이었다. 중국의 건국 시조의 8명 중에 우리 민족이 8명으로 전부를 차지한다.

 

중국은 예로부터 우리나라를 청구(靑丘)라고 했는데, 청구 배달(靑丘,14대-18대 환웅)을 일컫는 말이며, 청구 배달의 문화가 '홍산 문화 (紅山文化)'이다. 그 다음 나라에 이르러, 고조선의 '단군(檀君) 신화' 중에는 호랑이와 곰이 나오는데, 실제는 호족(虎.호랑이)과 웅족(熊.곰)을 배달(倍達) 동이족(東夷族)이 교화해서 건국한 것을 신화 형태로 기록한 것이다. 고대 사회의 사람들은 '신화의 형태'로 이야기해야 알아듣는 그런 시대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