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양 역사.문화

잔인한 콜롬버스가 매독 전파

마도러스 2011. 12. 30. 09:46

 

잔인한 콜롬버스가 매독 전파


  스크랩: http://blog.daum.net/dosu92


콜롬버스가 신대륙을 처음 발견한 것도 아니다.


콜롬버스(Columbus)가 신대륙을 처음 발견했다고 하지만, 사실은 처음 발견한 것도 아니다. “아메리카 대륙을 가장 처음 발견한 사람은 콜럼버스가 아니라 중국인이다.” 라는 사실을 입증하는 중국 고(古)지도가 발견되어 2006년 1월 베이징과 런던에서 공개되었다. 이 지도에는 “1418년에 제작된 지도의 복사본”이라고 씌여 있으며, 이 지도는 1763년에 제작되었다.


이는 콜롬버스(Columbus)가 아메리카를 발견한 1492년보다 74년 빠른 것이이며, 지도에는 아메리카(America)와 호주 대륙이 그려져 있다. 중국 명(明)나라 황제였던 영락제의 명령으로 인도와 동남 아시아를 원정한 정화 탐험대세계 일주 중 아메리카 대륙을 발견했다고 한다.


한편, 김장근 박사는 "3천년전 과거 코리안(Korean)들이 한반도에서 연해주, 다시 쿠릴 열도를 거쳐 러시아 캄차카 반도, 이어서 알류샨 열도를 지나 미국 북부의 알래스카로 갔다." 라고 말했다. 2007년 미국의 고고 학회지에 미국 알래스카의 알류샨 열도 아막낙 섬에서 3천년 전의 한국 전통 온돌이 발견됐고, 또한 신라(新羅)의 미소와 병산탈과 유사한 모양의 ‘고래탈뼈’가 발견된 것이 제시되었다.


과거, 고조선(古朝鮮 B.C 2,333-238)의 숙신족(肅愼族)은 만주 북동 방면에 거주하였는데, 나중에 말갈족(靺鞨族)으로 호칭되었다. 이들 말갈족(靺鞨族)베링 해협(Bering strait)을 건너 아메리카(America)로 건너가 인디언(Indian) 부족을 형성하였다. 중앙 아시아와 아메리카에 피라미드(pyramid) 문명을 건설한 민족은 배달(倍達)(BC3,898-2,333), 고조선(古朝鮮)(B.C2,333-238)의 후예들이다.


■ 원주민 95% 이상 학살하고, 1억명을 죽였다.


1492년 콜롬버스(Columbus) 일행의 원래 목적지는 아시아였지만, 그들은 지상 낙원 아메리카 카리브(carib) 해의 섬에 닻을 내리게 되었다. 아메리카 카리브(carib) 섬에 도착한 탐험가 일행은 원주민들에게 잔인한 유럽의 문화와 가톨릭을 선물하면서 각종 전염병을 카리브 원주민에게 퍼뜨린 것이다.


청정 지역에서 살아온 원주민들은 면역이 약할 수밖에 없었고, 결국 홍역. 파상풍. 발진티푸스. 폐렴. 이질. 천연두(天然痘)(smallpox) 등의 질병에 감염되고 말았다. 그러나, 원주민들에게 더 무섭고 잔인했던 것은 바로 정복자의 잔혹한 대량 학살과 비인간적인 행위였다. 총칼을 앞세운 무서운 정복자 콜럼버스 일행은 전체 원주민의 95%이상을 대량 학살했으며, 죽은 사람은 1억 명에 달했다고 전한다.


스페인 여성 역사학자 콘수엘로 바렐라에 따르면, 콜럼버스를 비난한 여성에 대해 콜럼버스는 그녀의 혀를 자른 뒤 발가 벗겨서 당나귀에 태워 길거리에 내돌리는 잔혹한 고문을 가했다. 식민지 개척자들에게 물자를 공급하지도 않았으며, 원주민들을 노예로 팔아 넘기는 잔인한 인간이었다는 증언이 고문서에 남아 있다.


스페인 북부 발라돌리드 지역의 시만카스 국립 문서 보관소에서 발견된 문서는 콜럼버스가 현재의 중미 도미니카공화국 일대를 정복한 뒤 이 지역을 잔학하게 통치했음을 보여주는 23건의 증언을 담고 있다. 또한 콜럼버스 이후 스페인과 포르투갈의 정복자들은 마야 문명. 잉카 문명. 아즈텍 문명토착 문명을 파괴하고, 천연 자원을 약탈. 남미 빈곤의 씨를 뿌렸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 군견(軍犬)을 앞세워 살육과 약탈, 강간을 감행했다.


1493년 스페인에 도착한 콜롬버스(Columbus) 일행은 금과 노예, 담배 등을 싣고 귀환하면서 동시에 매독 균을 유럽인들에게 전파한 것이다. 약탈해온 콜럼버스의 선물, 매독(Syphilis)은 유럽에서만 약 1천 만 명의 사망자를 냈고, 세계적으로도 엄청난 사망자가 발생했다.


콜롬버스(Columbus) 일행이 저지른 약탈과 대량 학살에 대해 알아보면 첫 향해 때 아메리카가 도착하여 그곳의 원주민을 만났다. 남아메리카(south america)의 원주민들은 착한 사람들로 이웃을 사랑하고 세상에서 가장 부드러운 언어를 구사하면서 콜럼버스 일행을 대접하기 위해 음식을 내왔다. 그러나, 잔인한 탐험가들은 무서운 군견(軍犬)을 앞세워 살육과 약탈, 강간을 감행했다. 그들은 위대한 탐험가가 아니라 잔인한 정복자였다.


잔인한 정복자들은 원주민의 귀나 코가 떨어져 나갈 때까지 채찍을 휘둘렀고 여성들을 성적으로 강탈하고 죽였던 것이다. 정복자들은 원주민들의 손을 자르고 살점이 너덜너덜 한 채로 내버려 두거나 생포한 원주민을 상대로 새 칼을 실험하고, 단칼에 목을 베거나 몸을 두 동강내는 잔인한 내기를 했으며, 어린 아기들은 군견(軍犬)의 먹이로 던져진 것이다.


■ 콜럼버스가 이끈 부하 30% 이상이 매독에 걸렸다.


콜롬버스(Columbus)가 유럽에서 신세계를 발견한 위대한 개척자일지는 몰라도 남아메리카 원주민들에겐 잔혹한 정복자였던 것이다. 살육과 잔인함에 대한 신(神)의 벌(罰)일까? 콜럼버스는 두 번째 항해부터 건강이 약화되어 고열에 시달리다가 의식을 잃기도 했다. 그렇게 5달을 앓다가 다시 눈을 뜨고 회복하게 된 콜럼버스는 1495년 완전 무장한 2백 명의 군사와 20명의 기사, 훈련된 군견을 데리고 다시 아메리카 카리브(carib) 해에 도착한다.


콜럼버스 일행은 “신(神)의 가호(加護)와 함께”를 외치면서 다시 원주민을 무차별 학살한다. 그러나, 정복자들의 신(神)께서 그들에게 무서운 벌(罰)을 내리셨다. 콜럼버스가 이끈 부하의 30% 이상이 매독(Syphilis)에 걸렸고 나머지 병사들도 사기를 잃고 말았다.


생포한 40여명의 원주민을 싣고 고국으로 귀환한 콜롬버스(Columbus)는 겨우 배에서 내려 5개월 동안 꼼짝없이 누워 지냈다. 그리고는 다시 1498년 세 번째 항해에 오른다. 여섯 척의 군함을 이끌고 아메리카 카리브(carib) 해로 떠나는 배안에서 그는 고열. 불면증. 통풍에 시달렸다. 또한 그의 눈에서는 피가 흐르고 있었는데 콜럼버스는 눈에서 흐르는 피를 멈추게 해달라고 하느님에 기도를 올렸다. 결국 이렇게 하여 네 번의 탐험을 마친 후 콜럼버스도 죽고 말았다.


■ 콜럼부스가 유럽에 매독을 가져왔다.  


1492년 신대륙(America)을 발견한 콜롬버스(Columbus) 일행이 그 곳에서 매독(Syphilis)을 가져왔다는 내용은 그동안 많은 논란을 일으켰지만 최근 유골 분석 결과, 사실로 확인됐다고 라이브 사이언스 닷컴이 2011.12.27일 보도했다.


유럽에서 매독(Syphilis)의 전염 사례가 처음 나타난 것은 1495년 나폴리를 침공한 프랑스샤를 8세의 군대에서였다. 성(sex) 행위로 전파되는 매독(Syphilis)은 이어 전 유럽을 휩쓸었고 많은 나라들이 서로 상대방을 비난했다.


연구진은 여러 문헌 연구와 유전자 분석 등을 통해 콜롬버스(Columbus) 일행이 매독(Syphilis) 전파의 주범임을 입증해 왔다. 유골들에 관한 자료들을 더욱 면밀히 분석했는데, 1492년 콜롬버스 신대륙 발견 이전의 매독(Syphilis) 사례는 없었다.


연구진은 "1492년엔 유럽에서 새로 들어 온 천연두(天然痘)(smallpox) 질병 때문에 아메리카(America) 원주민이 절멸 상태가 됐고, 반대로 아메리카의 토착 질병인 매독(Syphilis)은 유럽으로 건너갔다. 이는 질병의 세계화를 의미한 것이다" 라고 말했다.


이들은 "매독(Syphilis)과 함께 유럽 전역에서 전쟁이 일어났고, 모든 환경적인 격변은 질병의 터전이 되었다. 오늘날은 환경의 격변으로 수많은 질병이 그것의 경계마저 뛰어넘고 있다"고 지적했다. [글: 진단검사의학과 전문의 최병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