뺏긴 역사찾자

동이(東夷)족 제갈공명과 만두 탄생

마도러스 2011. 11. 30. 16:25

 

동이(東夷)족 제갈공명과 만두 탄생

 

■ 만두(饅頭)의 기원과 제갈공명(諸葛孔明) 이야기

 

(wheat)의 발상지인 서아시아 지방의 우즈베키스탄과 터키 등에서 만두(饅頭)를 부르는 단어가 만트’(манты, manti)이다밀을 키우는 국가라면어디서든 만두를 개발할 수 있는 방식이다그래서만두의 기원은 아주 오래된 옛날부터 이루어졌을 것이다만두는 세계 곳곳에 퍼져 있어 국가별로 다양한 요리가 등장한다딤섬(중국), 사모사(인도), 차죠(베트남), 라비올리(이탈리아), 뽀삐아 사보이(태국등이 대표적인 만두(饅頭요리이다좋은 음식은 하늘과 조상께 먼저 바치고 먹는 것이 기본이다만두는 귀한 음식이었기 때문에 새해 제사에 올리는 음식이었다음양이 교차하는 계절은 바로 겨울이 끝나고봄이 시작되는 때로 새해가 시작되는 음력 정월 초하루를 뜻하니바로 설날이다설날에 만두를 빚어 하늘에 바치고 조상님께 차례를 올리며 한 해 동안 풍요롭고 건강하게 지내기를 소원했던 것이다한반도에서 만두로 가장 유명했던 지역은 황해도 개성이다개성에서는 설날에 만두를 먹었고서울에서는 떡국을 먹었다서울 이북 지방에서는 만두가 명절 음식 취급을 받는 경우가 많았다.

           

만두의 기원에 관한 역사 기록은 중국 서진(西秦)의 진수가 280년에 지은 삼국지’(三國志)에 적혀있다. "225년 가을촉한(蜀漢)의 제갈공명(諸葛孔明)은 남만(南蠻)의 왕(맹획(孟獲)을 7번을 사로잡고 다시 7번을 풀어줘 마음으로 복종시켜서 남만(南蠻정벌에 성공했다남만(南蠻)은 '남쪽 오랑캐'라는 뜻이며, 중국의 남녘 운남성(雲南省) 일대를 말한다. 남만(南蠻정벌에 성공한 후()나라로 돌아오는 길에 남만(南蠻) 북부에 있는 려수(瀘水)라는 강가에서 심한 파도와 바람으로 인해 발이 묶이고 말았다

            

갑자기 일진광풍(一陣狂風)이 일더니, 군사와 말 그리고 수레까지 날아갔다. 려수(瀘水)에 갑자기 홍수가 나면서 물이 불어나 수많은 군마(軍馬)가 떠내려갔다제갈량은 도저히 군사를 이끌고 노수를 건너 회군할 수 없었다법사(法師)를 불러 방법을 알아보았다. 그곳 현지인이 말하기를 "려(瀘水)에는 황신()이라는 신()이 사는데그 신()이 노한 것이다. 그리고, 남만(南蠻)에는 하늘의 노여움을 풀기위해서 49명 사람을 죽여 그 머리를 제물로 제사를 지내는 풍속이 있다.'라고 했다.

           

그런데, 억울한 생명 49명의 사람 목을 베어 강에 바쳐서 제사(祭祀)를 지낼 수는 없었다. 그래서, 제갈량은 밀가루로 사람의 머리 모양을 만들고그 안에 소돼지 고기 등을 다져 넣어 황신()에게 제물로 바쳤다얼마 후, 려(瀘水)는 잠잠해졌다남만(南蠻)인들은 제갈량이 바친 음식 때문에 잠잠해진 것으로 생각했다. 그 후, 기만하기 위한 머리라는 뜻으로 만두(饅頭)’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 그런데, 만두를 진짜 제갈 공명이 만들었을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사실이 아니다. ‘삼국지 책이 나오기 200년 전, ()나라 때 사물기원’(事物紀原)이라는 책에 만두는 남쪽 오랑캐의 머리를 대신해 만들었다고 한 이야기를 각색해서 소설 속에 슬쩍 끼워 넣었다.

 

■ 제갈공명은 동이족(東夷族) 즉 한(韓)민족이다.

 

삼국지에 나오는 촉(蜀)나라 제갈공명(諸葛孔明)은 원래 산동성(山東省) 사람으로 동이족(東夷族)이다. 즉 한(韓)민족이다. 제갈(諸葛)은 우리 민족이 중국의 하남, 산동, 중국 북부지방, 요서 지역, 하북, 양자강 이남 등에 살던 동이족(東夷族)의 성(性)씨이다. 공명(孔明)은 공자(孔子)의 사상을 존경한 뜻이다.

 

제갈(諸葛)씨의 유래는 제(諸)씨와 갈(葛)씨가 합쳐져서 됐다하는데. 갈(葛)씨의 조상은 갈천씨(葛天氏)라고 불리는 중국에서 동이족(東夷族) 추장의 후손이며, 동이족의 성씨인 풍(風)씨의 한 갈래이다. (보삼황본기補三皇本記 참조). 풍(風)씨의 조상은 태호(太昊) 복희(伏羲)이다.

 

제갈공명(諸葛孔明)이 태어난 곳은 산동성(山東省) 낭야군 양도현으로 동이족(東夷族)들이 사는 땅이며, 옛 고조선(古朝鮮. B.C2,333-238) 시대에는 단군 왕검의 아들인 부루 태자가 이 곳에 와서 동이족들의 추장들을 만나서 중원(中原)의 일에 관해서 의논하기도 했던 곳이다. 제갈공명은 기문둔갑(奇門遁甲)이란 점법(占法)에 능하고 천문(天文)을 보는데 능했으며, 목우류마(木牛流馬)나 연노(連弩) 등 기계를 발명하는데도 능하여 천하에 그 이름을 떨쳤다.

 

제갈공명(181-234년)이 죽은 후 촉(蜀)나라가 망하자 제갈(諸葛) 부족(部族)고 제갈공명의 제자인 강유(姜維. 202-264년)의 후손들은 만주(滿洲). 한반도로 피신하였다. 강유의 후손인 강이식(姜以式)은 고구려(高句麗)에서 수(隋) 나라 대군을 무찌르며 이름을 떨쳤다.

 

■ 인류 최초 성(性)씨 시조(始祖)인 태호(太昊) 복희(伏羲)

 

원래, 인류 역사상 가장 처음으로 생겨난 성(性)씨는 풍(風)씨이다. 풍(風)씨의 처음 시작은 5,500년 전, “주역”의 팔괘(八卦)를 처음으로 그려서 주역(周易)의 역철학을 체계화한 태호(太昊) 복희(伏羲)씨이다. 복희(伏羲. B.C3,413)는 풍산(風山)에서 출생하여 풍(風)씨라고 하였다. 복희(伏羲)는 배달국(倍達, B.C3,897-2,333) 사람으로 동이(東夷)족 사람이다.

 

복희(伏羲)는 배달(倍達, B.C3,897-2,333)의 5대 태우의(太虞儀. B.C3,512년 즉위) 환웅의 12번째 아들이며, 우사(雨師) 직책을 수행했다. 음양오행(陰陽五行)과 태극기의 팔괘(八卦)를 처음 그려내어 주역(周易)을 창시했으며, 혼인(婚姻) 제도를 처음 만들었고, 배달국의 녹도(鹿圖) 문자(文字)를 개량하여 새로운 문자(文字)인 용서(龍書)를 제정했으며, 침구를 처음 시작해 침을 만들었고, 양잠을 처음 시작했다고 한다.

 

태호(太昊) 복희(伏羲)는 결혼을 할 때 부채를 사용했다고 하는데, 부채 역시 바람을 일으키는 도구로 무당들이 굿을 할 때에도 부채를 사용한다. 풍(風)씨의 후손들은 15대 만에 자손이 끊어지는 바람에 결국 풍(風)씨는 사라지고 말았다. 그래서 이를 안타까워한 후세의 사람들은 "풍채 좋다. 풍신 좋다. 풍골 좋다"라는 표현을 남김으로써, 풍(風)씨를 기리고자 했다.

 

■ 공자. 맹자. 묵자. 강태공도 동이족(東夷族)이었다.

 

공자. 맹자. 묵자. 강태공 등이 우리의 조상인 동이(東夷)족이라면 황당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겠지만 분명한 역사적 진실이다. 중국에서도 그것을 인정하는 기록이 나오고 있다.

 

공자(孔子)는 스스로 동이족(東夷族) 계열의 은(殷) 나라 후손이라 말하곤 했다. 예기(禮記) ‘단궁(檀弓)’ 상(上)을 보면, "나(공자)는 은(殷)나라 사람이다." 라는 내용이 나온다. 은(殷)나라는 동이족(東夷族)이 세운 나라이다. 공자가 태어난 산동성(山東省) 곡부(曲阜) 지역에서 살던 흰옷을 입고 백색을 숭상했던 은족(殷族)은 전형적인 동방 조선족 계열의 동이족(東夷族)이라는 사실은 대만 대학의 서량지(徐亮之)나 홍콩 대학의 임혜상 교수가 인정하고 있다.

 

사고전서(四庫全書) 경부 ‘사서석지(四書釋地)3’ 속(續) 하(下)권에는 “맹자(孟子)는 추(鄒)나라 사람인데 추(鄒)나라는 춘추(春秋)시대에 주(周)나라였고, 주(周)나라는 본래 동이족(東夷族) 국가였으니, 그렇다면 맹자 또한 동이족(東夷族) 사람이 아니겠는가?” 라는 내용도 나온다.

 

사고전서(四庫全書) 자부 ‘명현씨족언행유편(名賢氏族言行類編)’ 52권에는 “전국(戰國)시대 송(宋)나라 사람으로 ‘묵자(墨子)’의 저자인 묵적(墨翟)이 본래 고죽군(孤竹君)의 후예”라는 내용이 나온다. 고죽국(孤竹國)은 원래 동이족(東夷族) 국가였다. 묵자(墨子) 또한 동이족(東夷族)이었음을 확인할 수 있는 대목이다.

 

사고전서(四庫全書) 자부 ‘여씨춘추(呂氏春秋)’ 14권에는 ‘태공망(太公望) 여상(呂尙)이 동이지사(東夷之士)’라는 내용이 나온다. 강태공(姜太公)이 동이족(東夷族)이라는 근거이다. 지금까지 중국인으로만 알았던 공자, 맹자, 묵자. 강태공 등이 동이족(東夷族) 출신이라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별로 없다. 사대주의(事大主義) 교육을 받아 왔기 때문이다.

 

사고전서(四庫全書)는 중국 청(淸)나라 때 편찬된 책으로 진(秦. BC771-206년)에서 청(淸. 1636-1912년)에 이르는 중국의 역대 주요 서적과 문헌을 집대성해 7만 9,000여권으로 만든 총서이다. 현재, 중국에서 그들의 역사 연구와 기초 자료로 통하는 역사 총서이다. 1772년 전국에 각종 도서를 수집한다는 조서를 내리고 사고 전서관을 짓는 것을 시작으로 1787년 편찬 작업이 마무리 되기까지 15년의 시간이 걸렸다. 기록에 참가한 문신. 학자. 기록관이 무려 4,000여 명에 달했다.

 

★ 배달국(倍達 BCE 3,898-2,333) 말엽  고조선(古朝鮮) 초기에 중국에서 나라를 창업한 사람들 중에서, 우(禹) 임금 (하夏나라의 시조). 탕(湯) 임금 (은殷나라의 시조). 문왕 (주周나라의 시조). 무왕 (주周왕조 개창). 강태공 (병법의 시조, 제齊나라)도 역시 우리 동이족(東夷族)이었다. 또한, 중국(中國)의 건국(建國) 시조(始祖)인 삼황오제(三皇五帝)는 전부 우리 동이족(東夷族)이었다. 삼황(三皇)은 태호복희(太昊伏羲). 염제신농(炎帝神農). 황제헌원(黃帝軒轅)을 말하고, 오제(五帝)는 소호금천전욱고양제곡고신(堯)임금순(舜)임금을 말한다. 그들 모두 배달(倍達)민족이었다. 중국의 건국 시조의 8명 중에 우리 민족이 8명으로 전부를 차지한다.

 

★ 중국은 예로부터 우리나라를 청구(靑丘)라고 했는데, 청구 배달(靑丘,14대-18대 환웅)을 일컫는 말이며, 청구 배달의 문화가 홍산 문화 (紅山文化)이다. 그 다음 나라에 이르러, 고조선(古朝鮮. B.C2,333-238)의 단군(檀君) 신화 중에는 호랑이와 곰이 나오는데, 실제는 호족(虎.호랑이)과 웅족(熊.곰)을 배달(倍達) 동이족(東夷族)이 교화해서 건국한 것을 신화 형태로 기록한 것이다. 고대 사회의 사람들은 신화(神話)의 형태로 이야기해야 알아듣는 그런 시대였다.

 

★ 배달(倍達 BCE 3,898-2,333)의 홍산(紅山) 문화는 메소포타미아 문명(BCE 3,500-2,600년). 황하 문명(BCE 3,000-2,500년). 인더스 문명(BCE 2,500년경). 이집트 문명(BCE 3,100년경) 보다 앞선 것이며, 세계 4대 문명에게 영향을 준 것이라는 증거와 유적들이 최근 속속 발굴되고 있다. 한민족의 배달(倍達 BCE 3,898-2,333) 문명이 중국의 황하(黃河) 문명보다 빨랐고, 중국의 황하(黃河) 문명은 한민족 배달(倍達) 문명을 받아서 생겨 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