뺏긴 역사찾자

■ 중국(中國) 한족(漢族)의 기원과 뿌리

마도러스 2011. 9. 21. 15:02

 

■ 중국(中國) 한족(漢族)의 기원과 뿌리

 

중국(中國)을 영어로 표기하면 China(支那)이다. ‘가지 지(支) + 나라 이름 나(那)’ 즉 ‘곁가지 나라’라는 뜻이다. 과거에는 중국을 지나(支那)라고 불렀고, China는 '변방의 나라' 라는 뜻이다. 원래 중국(中國)이란 말은 ‘가운데(中) 나라(國)’ 라는 뜻인데, 동양의 과거 중국. 한국. 일본 등의 어느 지도(地圖)에도 중국해(中國海)란 표기는 없다. 단지 동지나해(東支那海), 남지나해(南支那海)라고 표기되어 사용했었다. 지나(支那)란 뜻은 ‘따로 세운 나라’ 라는 뜻이며, 지점(支店) 혹은 지사(支社)과 같은 말이다.

 

세종대왕(1397-1450)의 훈민정음 언해본(諺解本)을 보면, ‘중국은 황제 계신 나라로 우리가 늘 이야기하던 강남(江南)이니라.’ 라고 되어 있다.  그러니까 중국이란 이름이 생기기 전에는 그곳은 우리에게 늘 곁가지인 강남(江南)이었을 뿐이다. 그러면 중심이 되는 본국은 어디인가? 예전에는 동이족(東夷族)본국(本國)이고, 한족(漢族)이 지나(支那)였다.

 

현재 중국(中國)측의 사전(辭典)을 찾아보면, “중국(中國)이란 나라 이름이 아니라 중원(中原. 황하강 중부) 즉 나라의 한 가운데, 천하(天下)의 중심지(中心地)이며, 중국(中國)이란 이름으로 다른 나라에서 나라 이름으로 사용치 못하도록 신해 혁명(1911-1912) 이후에 나라 이름으로 처음 사용했다” 라고 설명하고 있다.

 

중국(中國)은 신해혁명(辛亥革命) 당시 쑨원(孫文손문)이 중화인민공화국(中華人民共和國)으로 나라 이름을 제정한 것을 줄여서 중국(中國)이라 불렀다. 즉 중국(中國)이란 국호(國號)는 신해 혁명(1911-1912) 이후에 최초로 사용했다는 것이다.

 

물론, 중국(中國)이란 호칭은 과거 중국 기록에 여러 번 언급되었다. 맹자(孟子)의 진양북학우중국(陳良北學于中國) 혹은 목천자전(穆天子傳)의 수우중국(樹于中國) 등에 기록된 중국(中國)이라는 글자는 그 나라 내에서 임금이 있는 가운데 장소를 가리키는 것이었고, 중원(中原)황하(黃河)강 중부 일대를 가리키는 것이었다. 결국, 오늘날 쓰이는 중국(中國)이라고 호칭은 중화 인민 공화국을 의미하는 것이다.

 

그러면, 과거에는 왜 중국(中國)을 한자로 ‘지나(支那)’, 영어로 ‘China’ 라고 호칭했을까? 중국 민족은 한족(漢族)이 근간을 이룬다. 한족(漢族)의 기원과 뿌리는 화하족(華夏族)인데, 화하족(華夏族)은 남방(南方) 타이족(傣族태족.다이족)의 방계(傍系)이다. 그들은 닥치는 대로 잡아 먹고 주로 육식을 하였으며 행동이 문란(紊亂)하고 자유스러웠다. 또한 어린 아이가 칭얼거리는 듯한 발음의 언어를 구사했다.

 

화하족(華夏族)이라는 명칭은 춘추전국시대(春秋時代)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화하(華夏)가 민족(民族)의 명칭으로 처음으로 기재되었다. 진(秦. BC 221-206)진시황(秦始皇)이 춘추전국시대(春秋時代)를 마감하고 만리장성 이남의 중국을 불완전 통일하면서 화하족(華夏族)은 부단히 사위(四圍)의 여러 족속과 혼혈(混血) 융합하는 과정을 밟아 성장 발전을 하였다.

 

그 이후, 한(漢. BC202-AD220) 유방(劉邦)이 중국 대륙을 최초로 완전 통일하면서 드디어 한족(漢族)이 형성되었다. 이 말은 거꾸로 뒤집어 말한다면 한(漢)의 유방(劉邦) 이전에는 한족(漢族)이 없었다는 것이 된다. 황하(黃河)강 유역 일대를 터전으로 한족(漢族)은 유사 이후에도 끊임없이 사이(四夷) 즉 동이(東夷). 남만(南蠻). 북적(北狄). 서융(西戎)과 충돌 교섭하는 사이에 그들을 흡수하고 동화시켜 민족적으로 발전 팽창의 과정을 밟았다.

 

한족(漢族)의 뿌리인 화하족(華夏族)은 동남 아시아 지역에서 북상하여 황하(黃河)강 중류 지역을 중심으로 독특한 문화를 이루고 살았기 때문에 북방 동이족(東夷族)과 문화 양식이 다르다. 예컨대 동이족(東夷族)온돌 문화라면 화하족(華夏族)침대 문화이다. 중국 사람들 중에 온돌(구들장)을 사용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바로 조선족(朝鮮族)일 가능성이 크다.

 

화하족(華夏族)은 그들이  동남 아시아 지역에서 기원했기 때문에 말과 언어를 알타이어족(Altay language)이 아닌 남방 계통의 티벳어(Tibet language) 계통의 한장어(漢藏語)를 사용한다. 그들은 동일한 황인종들임에도 불구하고 북방 알타이어족들과 다른 유럽 언어 구조와 동일한 남방계 언어를 사용하는 것이다.

 

화하족(華夏族)의 활동 무대는 주로 중국 중부남부 지역이었고, 동이족(東夷族)의 활동 무대는 중국 북부 지역이었다. 동이(東夷)는 말을 타고 활을 잘 쏘기 때문에 붙여진 명칭인데, 동쪽(東)에서 큰 활(大弓)을 메고 다니는 민족이라는 뜻이다. 동이족(東夷族)은 황하(黃河)강 이남 유역은 절대 들어가지 않았다. 특히 양자강(揚子江) 지역은 쌀을 수경 재배 2모작 하는 지역으로 수전(水戰)에 익숙지 못한 기마병(騎馬兵)들이 쳐들어 왔다가 진흙탕에 빠져 엄청 고생을 겪곤 했다. 그래서, 몽골 원(元)나라 이전의 이민족 정복 왕조들은 중국 북부 지역만을 차지하고 만족했다.

 

중국 최초의 청동기(靑銅器) 문명하(夏. BC 2,205-1,766) 나라부터 시작됐다고 말한다. 하지만, 청구(靑丘) 배달(倍達)의 치우 천황(蚩尤, BC 2,707년 즉위)이 개척한 청동기(靑銅器) 문화가 중국으로 전해져 하(夏. BC 2,205-1,766)의 청동기 유적을 낳았고, 하(夏) 다음으로 은(殷. BC 1,600-1,046). 주(周. BC 1,046-771)로 전해졌다. 중국의 하(夏). 은(殷). 주(周)의 문명은 알고 보면, 동방의 배달국(BC 3,897-2,333)과 고조선(古朝鮮. BC 2,333-238)에서 전파된 것이다. 그래서, 하(夏). 은(殷). 주(周) 시대까지만 해도 중국 지역은 동이족(東夷族)이 나라를 세웠고, 동이족(東夷族)이 지배했기 때문에 동이족(東夷族)의 전통이 그대로 남아 있었다.

 

춘추전국시대(春秋時代)에 공자(孔子)는 논어(論語)에서 항상 이상적인 인간 즉 군자(君子)가 되어야 한다고 늘 설파하면서 구이(九夷=동이東夷. 고대 한국)에 가서 살고 싶다고 했고, 고인(古人. 동이족)에게서 배운다고 했다. 고대 중국의 전통은 동이족(東夷族)의 전통과 대부분 같았다. 하지만, 진(秦. BC 221-206). 한(漢. BC202-AD220)을 거치면서 미개한 화하족(華夏族)이 대거 유입되면서 고대한국에서 건너간 고유 전통이 대부분 무너져 버렸다.

 

대만(Taiwan) 대학의 서량지(徐亮之) 교수는 ‘중국사전사화(中國史前史話)’에서 "BC 2,000년경 한족(漢族)의 뿌리인 화하족(華夏族)이 중국에 들어오기 전에 황하(黃河)강 및 중원(中原)의 북부 및 남부를 이미 동이족(東夷族)이 경영하고 있었다. 화하족(華夏族)이 중국에 들어온 뒤에 점점 서로 더불어 접촉하였다." 라고 하였다. 지금 중국인들의 다수를 차지하는 한족(漢族)의 뿌리 조상들은 동이족(東夷族)이 지배한 이후에야 겨우 중국 땅으로 들어온 것이며, 그들이 중국으로 들어올 무렵에는 이미 배달(倍達. BC 3,898-2,333), 고조선(古朝鮮 B.C 2,333-238) 문명이 만주(滿洲) 일대에 찬란하게 꽃을 치우고 있을 때이다.

 

러시아(Rusia)의 인류학자인 시로코고르프(Shirokogoroff)는 중국사(中國史)에서 "BC 3,000년경 동이족(東夷族)은 이미 황하(黃河)강의 중류와 하류에 살았으며, 지나(支那)족은 이보다 1,500-2,000년 후에 동방 천자 배달(倍達) 치우(蚩尤)가 다스리는 동이족(東夷族)의 나라인 강회(江淮) 지방에 진출하였다" 고 주장했다.

 

중국(中國) 란저우(蘭州) 대학 생명 과학원의 셰샤오둥(謝小東) 교수는 “한족(漢族)과 소수 민족의 유전자(DNA)를 몇 년에 걸쳐 조사했는데, 13억 중국인 가운데 92%를 차지하고 있다는 한족(漢族)은 실제 조사 결과 유전학적으로 현존하지 않는다.” 라고 2007년 02월 13일 발표했다. 한족(漢族)이라고 부를 만한 순수한 혈통이 존재하지도 않았다.

 

서양(西洋)의 개념으로서 민족(民族)이란 언어, 생활 양식, 심리적 습관, 문화, 역사 등을 같이 하는 인간 집단을 가리킨다. 그러나, 한족(漢族)이라고 불리는 사람들은 지역에 따라 그 심리적 습관이나 문화, 생활 양식 뿐만 아니라 언어 자체도 다양하고 서로 틀리기 때문에 민족이라는 범주에 넣을 수가 없는 것이다. 하지만, 중국의 일부 학자들은 한족(漢族)이 국가의 형성과 더불어 민족으로서 성장 발전해 왔다면 그 또한 민족이라 할 수가 있다고 규정한다. 그래서, 한족(漢族)은 이미 혈통 개념이 아니라 문화적인 개념이다.

      

     

■ 우리 배달(倍達) 민족의 역사는 9,200년이다.

    

 우리 배달 민족의 환국(桓國, BC 7,199-3,897), 배달국(倍達國, BC 3,897-2,333). 고조선(古朝鮮, BC 2,333-238) 문화는 중국의 (. 재위BC 2,357-2,258), (. 재위BC 2,255-2,208), (, BC 2,205-1,766), (, BC 1,600-1,046), (, BC 1,046-771) 문화의 뿌리이다. 우리 배달(倍達민족 문화가 중국 문화의 뿌리이다우리 민족의 역사가 환국(桓國, BC 7,199-3,897), 배달국(倍達, BC 3,897-2,333), 고조선(古朝鮮, BC 2,333-238). 부여.옥저.동예.낙랑국. 마한.변한.진한고구려.백제.신라로 이어져서 무려 9,200이나 된다환국(桓國, BC 7,199-3,897)의 장자국(長子國) 배달국(倍達國)이었고배달국(倍達國, BC 3,897-2,333)의 장자국(長子國) 고조선(古朝鮮, BC 2,333-238)이었음을 비추어 볼 때, 우리 배달(倍達)민족과 한국이 세계 4대 문명의 정통성을 이어 받은 민족이며 나라임을 알 수 있다.

 

 '신시(神市) 개천경(開天經)' 기록에 의하면환국(桓國)의 말엽에 환웅(桓雄)이 있었다그는 홍익인간(弘益人間), 재세이화(在世理化), 광명이세(光明理世)의 뜻을 간직하고 있었다환웅(桓雄)은 동방 땅 백두산(白頭山)에 문명 개척단 3,000명과 함께 배달국(倍達, BC 3,897-2,333)을 건설하였다배달국(倍達, BC 3,897-2,333) 신시 배달[神市 백두산, 1-13대 환웅] 청구 배달[靑丘 산동성.태산(泰山), 14-18대 환웅] 시대로 나누어진다. 배달국(倍達)의 환웅(桓雄)이 북만주와 대진국(발해) 연안의 땅에 뛰어난 석공예와 질공예를 남겼는데, 이것을 배달(倍達, BC 3,897-2,333) 환웅(桓雄) '홍산(紅山) 문화'라고 한다.

 

 배달국(倍達國, BC 3,897-2,333) 홍산(紅山) 문화는 1920년대 프랑스 에밀 리쌍(Emile Licent)이 요서 지방 츠펑 (적봉赤峰) 지역에서 처음 발굴 시작하여 1922년부터 1924년 사이에 신석기 유적지 22곳을 발견하였고, 요서 지방 홍산(紅山) 문화의 소하서 지역 유적에서 발견된 가장 오래된 신석기 문화는 최고 8,500년 전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이들 유적은 '인류 최고(最古) 신석기 문화'로 규정되고 있다. 1930년대 중국 철학자 양계초의 아들 양사영이 홍산(紅山) 유적지를 조사한 이래, 많은 학자들이 연구에 뛰어 들었다. 그 후, 중국 정부에서 대대적으로 발굴하였는데, 1980년대에 홍산(紅山) 문화의 대표적인 유적지인 우하량 유적이 발굴되어 전세계가 깜짝 놀랐다. 이 곳에서 나오는 유물들은 중국의 황하 문명(BC 3,000-2,500) 보다 2-3천년 앞 서 있었고, 유적과 유물들을 자세히 살펴보면, 그 지역의 문명은 이미 국가 단계의 구비 조건을 모두 갖춘 5의 문명이었기 때문이다.

 

 배달국(倍達國, BC 3,897-2,333) 홍산(紅山) 문화의 유적과 유물들은 세계 문명의 발상지라고 꼽히는 이집트. 메소포타미아. 인더스. 황하 문명 보다 훨씬 앞 선 문명 형태였기 때문이다. 예를들면, 홍산 문화의 소하서 지역 유적들은 무려 8,500년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결론적으로 배달국(倍達國, BC 3,897-2,333) 홍산(紅山) 유적지 발굴은 세계 문명사를 다시 쓰게 하는 엄청난 사건이다. 최근에도 중국은 동북(東北공정의 일환으로 이 곳을 계속 발굴하고 있다. 지중해 문명 (이집트 문명, 에게 문명, 그리스 로마 문명)이 서양 문명에 자양분을 공급했듯이, 동이족(東夷族)이 발해 연안에서 창조한 배달국(倍達國, BC 3,897-2,333) 홍산(紅山) 문화는 중국은 물론 만주. 한반도. 일본의 고대 문명을 일궈주었다.

 

 현재, 중국은 배달국(倍達國, BC 3,897-2,333) 홍산(紅山) 문화 요하(遼河문명이라고 하여 자기네 역사 유적이라고 우기고 있지만, 그 유적지의 위치와 문명 양식 등을 보면동이족(東夷族배달(倍達)의 문화 양식임에는 어쩔 수가 없다. 중국이 만주의 홍산(紅山) 유적지 문화를 자기네 것이라고 우기는 것은 마치 송곳을 주머니 속에 넣고 감추는 것과 같다. 결국 밖으로 드러나게 마련이다. 배달국(倍達國, BC 3,897-2,333) 신시 배달(神市 백두산, 1-13대 환웅) 청구 배달(靑丘 산동성.태산(泰山), 14-18대 환웅)로 나누어진다. 배달국(倍達國)의 환웅(桓雄)이 북만주와 대진국(발해) 연안의 땅에 뛰어난 석공예와 질공예를 남겼는데, 이것을 배달(倍達) 환웅(桓雄) '홍산(紅山문화'라고 하는 것이다.

 

 환국(桓國, BC 7,199-3,897)의 신교(神敎) 문화는 고대 문화의 원형이고그 후, 배달국(倍達國)으로 이어졌으며, 환국과 배달국의 문화는 세계 4대 문명의 뿌리가 되었다환국(桓國) 12개 나라 가운데수밀이국 우루국은 그동안 서양에서 최초의 문명족으로 알려져 있던 나라 이름이고, BC 3,500년 전의 고대 메소포타미아(수메르) 문명을 일으킨 나라이다. 최근, 120여 년 동안의 고고학 발굴 결과, 중동의 메소포타미아 지역에서는 BC 3,500년 경에 오늘의 서양 문명의 뿌리인 수메르(Sumer) 문명이 있었고, 이 문명을 건설한 수메르 민족은 동방에서 왔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수메르 문명은 다시 이집트 문명에게 영향을 주었고, 또한 고대 희랍 문화에 영향을 미쳤으며로마 제국을 거쳐 오늘날 서양 문명이 나온 것이다인더스 문명 또한 북방 문명에서 기원했다고 하며배달국(倍達國)의 문화가 유입되어 인더스강 유역에 자리를 잡은 것이다.

 

 근래에 만주에서 동북 공정의 일환으로 요하(遼河) 문명 유적을 발굴하고 있는데요하(遼河문명은 배달(倍達) 문명의 일부이다. '황하 문명' 보다 앞선 유적들이 무수히 쏟아져 나왔다. 중국 당국이 발칵 뒤집혔다. 중국의 황하 문명(BC 3,000-2,500)은 황하강 유역에서 발생했는데, 이것은 북만주와 산동 반도 유역의 배달국(倍達國, BC 3,898-2,333) 문명의 영향을 받아 생겨난 것이다. 배달(倍達 BC 3,898-2,333)의 홍산 문화는 메소포타미아 문명(BC 3,500-2,600). 황하 문명(BC 3,000-2,500). 인더스 문명(BC 2,500년경). 이집트 문명(BC 3,100년경) 보다 앞선 것이며세계 4대 문명에게 영향을 준 것이라는 증거와 유적들이 최근 속속 발굴되고 있다. 한민족의 배달(倍達문명이 중국 민족의 황하 문명 보다 빨랐고, 중국의 황하 문명은 한민족 배달(倍達) 문명을 받아서 생긴 것이라는 역사적 사실들이 속속 드러나고 있다.

 

 우리나라 배달(倍達) 민족이 천제(天祭)  제사(祭祀) 풍습을 중국 한족(漢族)에게 전해줬다배달국(倍達國) 말엽 및 고조선(古朝鮮) 초기에 중국에서 나라를 창업한 사람들 중에서() 임금(나라의 시조). () 임금(나라의 시조). 문왕(나라의 시조). 무왕(왕조 개창). 강태공(병법의 시조, 나라)도 역시 우리 동이족(東夷族)이었다또한, 중국의 건국(建國) 시조(始祖) 삼황오제(三皇五帝)는 전부 우리 동이족(東夷族)이었다삼황(三皇) 태호 복희(太昊伏羲). 염제 신농(炎帝神農). 황제 헌원(黃帝軒轅)을 말하고오제(五帝) 소호 금천전욱 고양제곡 고신. () 임금() 임금을 말한다그들 모두 배달(倍達)민족이었다. 중국의 건국 시조의 8명 중에 우리 민족이 8명으로 전부를 차지한다.

 

 중국은 예로부터 우리나라를 청구(靑丘)라고 했는데, 배달국(倍達國, BC 3,898-2,333) 청구 배달(靑丘, 14-18대 환웅)을 일컫는 말이며, 청구 배달의 문화가 '홍산(紅山) 문화'이다. 그 다음 나라에 이르러고조선(古朝鮮, BC 2,333-238) '단군(檀君) 신화중에는 호랑이와 곰이 나오는데, 실제는 호족(.호랑이) 웅족(.)을 배달(倍達) 동이족(東夷族)이 교화해서 건국한 것을 신화 형태로 기록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