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천재 박광우, 회초리로 컴백
영화 ‘회초리’ (박광우 감독)가 개봉한다. 8년만의 컴백이다. 홍대 롯데 시네마에서 ‘회초리’의 마지막 시사회를 마친 박광우 감독을 만났다. 촘촘한 일정, 늦은 시간임에도 그는 지친 기색이 없었다. 작은 키에 야구 모자, 청바지에 배낭을 걸친 그의 모습은 50세의 나이가 무색했다.
영화 ‘회초리’는 그가 8년 동안 심혈을 기울여 만들어낸 작품이다. 처음부터 긴 시간을 의도한 건 아니었다. “이렇게 오래 걸릴 줄 알았으면 시작도 안했을 거예요” 준비하는 동안 5번이나 영화사가 바뀌었다. 처음 캐스팅된 아역 배우는 그동안 어른이 됐다. 영화를 거쳐 간 주인공도 많았다. 유명포털 사이트에서 그를 검색하면 뜨는 영화 ‘징검 다리’는 개봉되지 않은 ‘회초리’의 이전 버전이라고 했다. 주인공은 유오성 배우로 내정돼 있었다.
그의 삶도 영화 ‘회초리’만큼이나 우여곡절이 많다. 1989년에 28세의 나이에 데뷔했다. 22년이 지난 지금까지 흥행작은 없다. “20대 때 제 별명이 ‘영화 천재’였습니다. 저와 대학 선후배 사이인 강우석, 강제규, 박찬욱 감독 보다도 더 주목받던 시절이었죠” 동국대 연극 영화과(1981)에 차석으로 입학해 국내외 독립 영화제에 수차례 입상하면서 그는 사람들의 기대를 한 몸에 받았다.
당시 그에겐 한국이 비좁아 보였고 헐리우드(Hollywood)로의 비상을 꿈꿨다. 마침 고모도 미국에 있던 터라 가기만 하면 된다고 마음의 굳히던 차. 뜻밖의 운명이 그의 삶에 개입했다. 아버지의 부도와 동생의 백혈병. 그는 차마 동생을 두고 떠날 수 없어 국내에 남아 돈을 벌기로 했다.
돈에 쫓기는 삶은 꿈을 그려낼 여유를 주지 않았다. 그 시절 그는 가라오케(karaoke)의 배경 영상을 200편 찍으면서 생활을 이어갔다. 데뷔도 돈 때문이었다. 데뷔 초기엔 소문을 듣고 그를 찾는 시나리오 청탁이 많았다. 하지만 시간에 쫓겨 만들어낸 시나리오가 늘어가자 사람들의 발길도 뜸해졌다. ‘사랑의 종합병원’(1993), ‘배꼽버스’(1995), ‘강아지 죽는다’(2003) 등 그의 영화들은 작품성을 인정받았음에도 흥행 실적은 신통치 않았다.
“회초리를 준비하는 8년 동안 사람이 죽는 건 희망이 사라졌을 때라는 생각까지 들었습니다” 한동안 그에게 ‘회초리’는 뱉지도 삼키지도 못하는 계륵 같았다. 될 것 같은데 엎어지는 상황이 반복됐다. 하지만, 박광우 감독은 힘든 과정 속에서 자신에겐 영화뿐이라는 사실을 오히려 절실히 느꼈다고 한다.
그는 영화를 통해 화합과 조화, 치유의 메시지를 전하고 싶다고 했다. “사람은 몸만 아픈 게 아닙니다. 마음이나 관계가 아픈 것은 보이지 않기에 더 크지요. 그런 것은 전혀 의도치 않게 아플 수도 있는 것들이기에 어렵습니다.” 영화 ‘회초리’에도 그런 메시지가 숨어있다.
“가족은 영화의 단골 소재입니다. 아버지. 어머니. 딸. 아들 등 가족은 구성원을 둘러싸고 어떤 조합을 해도 그림이 나옵니다. 하지만, 현실 속에선 이상처럼 가족의 위치가 적재적소에 있지 못할 때가 많지요. 저는 그런 부분을 비틀어 보고 싶었습니다.”
아버지와 딸의 이야기에서 내리 사랑을 벗어난 구성을 한 것도, 가까이 두고 싶고 버리고도 싶은 부분을 표현한 것도 그런 까닭이다. 오래 준비한 만큼 욕심도 나지 않냐고 물었다. 그러자 도인(道人)같은 답변이 돌아왔다. “예전에는 사욕(私慾)이 앞섰습니다. 내가 이만큼 할 수 있다는 걸 보여주고 그걸로 내 한(恨)풀이를 하고 싶다는 생각도 많이 했지요. 그런데, 나이를 드니 사사로운 사(私)가 아니라 생각 사(思)로 바뀌는 것 같습니다. 욕심을 부리는 게 아니라 정말 풀어내고 싶은 이야기를 보여주고 싶은 마음이 더 큽니다.”
그는 공자(孔子)의 말씀과 자신의 나이는 무관하다고 생각했는데 지천명(知天命. 50세)이 되니 현실을 벗어나 초연해지는 자신을 느낄 수 있다고 말했다. 서른(30세), 마흔(40세)을 지날 땐 그렇게 초조했는데 이제 와서 보니 지나온 세월이 다 소득으로 느껴진다는 것이다. 박광우 감독은 지나온 세월만큼 풀어낼 꿈 보따리가 쌓여 좋다며 웃었다.
영화만을 바라보며 살아온 사람으로서 영화인을 꿈꾸는 학생들에게 이런 말을 해주고 싶다고 했다. 그는 자기에 대한 이야기를 세밀하게 말하고 만들 줄 아는 것을 영화인의 요건으로 꼽았다. “영화는 불특정 다수와의 대화입니다. 자기 자신을 잘 이해하는 사람만이 타인과 소통하고 이야기를 만들어갈 수 있습니다”
회초리의 출항은 순조롭다. “대전에서 첫 시사회를 마치고 나오는데 영화를 보고 난 아주머니들이 저와 사진을 찍겠다고 길게 줄을 섰습니다. 연예인 시사회에서도 잘 모르는 사람들이 영화가 좋다며 인사를 건넸죠” 그에겐 낯선 경험이었다. 아직 개봉 전임에도 몇몇 극장은 매진됐다. 영화 홍보는 입 선전이 가장 크다는데 시사회장을 나선 사람 70%의 반응이 좋다고 했다. 영화가 흥행하면 뭘하고 싶냐고 하니 감독 버전을 상영하고 싶다고 한다. 제작비를 맞추기 위해 영화에서 그가 그의 손으로 잘라내야 했던 조각들을 마저 보여주고 싶어서이다.
박광우 감독은 이 영화를 통해 큰 것을 바라진 않는다고 했다. “일단 영화가 개봉하면 판단은 결국 보는 이의 몫입니다. 이 영화를 보고 난 사람들이 각자의 자리에서 한번쯤 생각해 볼만한 여지를 찾는다면 저는 그걸로 족합니다” (아름다운 교육 신문 신유리 기자, 입력: 2011.05.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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