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회輪廻 환생幻生

내가 선택한 조상祖上. 윤회輪回

마도러스 2011. 4. 15. 11:42

 

내가 선택한 조상祖上. 윤회輪回

 

■ 노벨 문학상 수상자 오에 겐자부로의 체험과 깨달음

 

1994년 노벨(Nobel) 문학상을 받은 일본 작가 오에 겐자부로(おおえ けんざぶろう)는 선천적인 정신적 신체적 장애아(障碍兒)를 아들로 두었다. 그는 처음에는 자신이 불구자(不具者) 아들을 낳은 현실을 수용하기 어려웠다. 그런데 그는 그런 아들을 두고 살아오며 겪었던 고통 극복의 과정을 개인적 체험이란 자전적 소설(小說)로 형상화하여 책으로 써 냈다.

 

지금의 그는 자신에게 주어진 불구자(不具者) 아들을 포함한 삶의 환경 전체를 겸허하게 받아들인다. 그런 선천적인 장애자(障碍者) 아들을 둔 것이 어찌 보면 악연(惡緣)으로 보일지도 모르지만, 오히려 장애자(障碍者) 아들 때문에 그는 세상 사람들에게 감동적인 삶의 교훈을 전해줄 수 있는 훌륭한 작가가 되었는지도 모른다.

 

■ 조상(祖上)의 음덕(蔭德)과 자손의 삶은 어떤 관계일까?

 

주역(周易) 곤괘(坤卦)편 및 명심보감(明心寶鑑)에 “적덕지가(積德之家) 필유여경(必有餘慶)적악지가(積惡之家) 필유여앙(必有餘殃)”이라는 말이 있다. 즉 덕(德)을 많이 쌓은 집안의 자손에게는 그 선영(先靈)의 은덕(恩德)을 입은 신명들이 은혜를 갚아주므로 경사(慶事)스런 일이 있고, 적악가(積惡家)의 자손에게는 선영(先靈)의 악업(惡業)으로 인해 원한을 품은 신명들이 보복을 하려들기 때문에 반드시 재앙(災殃)이 따른다는 말이다.

 

자손(子孫)에게는 아버지(father)를 통한 직선조(直先祖), 어머니(mother)를 통한 외선조(外先祖)의 유전 인자(Gene)가 1/2씩 전해지고 있다. 이 몸을 이 세상에 태어나게 하기 위해 이 세상에 왔다 간 조상(祖上)의 숫자를 10대 조상(약 300년)까지 합산해 보면 2046명(=2+4+8+…+1024)에 달한다. 또한 15대 조상(약 450년)까지 합산해 보면 자그마치 65,534명(=2+4+8+…+32768)이나 된다.

 

이들 수많은 조상(祖上)들이 행한 선업(善業)과 악업(惡業)이 총 결산되어 자손의 안위(安危)에 영향을 미치는 것이다. 물론, 본인의 전생(前生)과 그 이전의 전생(轉生)으로부터 쌓아 온 본인(本人)의 선업(善業)과 악업(惡業)이 더 크게 작용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악인악과(惡因惡果) 선인선과(善因善果)

 

선인선과(善因善果) 악인악과(惡因惡果). 이것이 우주의 근본 원리이다. 콩 심은 데 콩 나고, 팥 심은 데 팥 난다. 선(善)한 일을 하면 좋은 결과가 오고, 악(惡)한 일을 하면 나쁜 과보(果報)가 온다.

 

옛날에 어느 시골에 어머니가 계셨는데 가난하고 어려운 사람을 보면 가진 것을 기꺼이 나누어주었다. 그런데, 그 어머니가 어느 날, 벼락에 맞아 세상을 떠나셨다. 법 없이 착하게만 살았던 어머니인데, 하늘에서 벼락이 떨어져 돌아가신 것에 대해 아들은 몹시 억울해 했다. 그런데, 그 어머니에게는 남 모르는 비밀이 있었다. 아주 오래 전, 구렁이가 허물을 벗기 위해 장독대에 갔다가 그만 간장독에 빠져 죽었었다. 그 어머니는 정성껏 숙성시켜 놓았던 간장을 버리기 아까워했다. 그래서, 구렁이는 건저내고 그 많은 간장을 동네 사람들에게 원하는 만큼 나누어 주었다. 동네 사람들은 후한 어머니의 인심을 다들 칭찬했지만, 사실 어머니는 악업(惡業)을 짓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 악업(惡業)대로 하늘의 벌(罰)을 받은 것이다. 세상에는 우연히 발생하는 일은 없다. 모두가 자신과의 인연(因緣)으로 생기는 필연(必然)인 것이다. 좋은 인연을 많이 쌓았다면 행운이 생기는 것이고, 나쁜 인연을 많이 쌓았으면 좋지 않은 일이 생기는 것이다.

 

"김제시(金堤市) 금구(金溝) 용화동(龍簧)에 사는 부안(扶安)댁이 연일 계속되는 남편의 매질로 괴로워하다가 하루는 상제님께 찾아와 “선생님, 제가 살아야 옳을까요, 죽어야 옳을까요? 어찌하면 남편이 그리 안 하겠습니까? 제가 집을 나가야 할까요?” 하며 눈물로 하소연하니, 그  모습이 참으로 애절하더라. 상제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에이, 별 시원찮은 것을 가지고 그러는구나. 그것도 네 복(福)이다. 네가 전생(前生)에 손찌검을 많이 해서 그런 것이니, 다 방법이 있느니라.” 하시고, 이어 말씀하시기를 “집에 돌아가면 방안에 있는 것을 싹 치워 버리고, 왕골 자리(왕골 벼 줄기로 만든 돗 자리) 하나만 도르르 말아서 세워 놓아라. 네 남편이 화(火)가 나서 그놈으로 너를 두서너 번 때리면 막음이 될 것이다. 자리의 줄기 수(數)가 오죽이나 많으냐? 그 수(數) 만큼 화(火)를 막아서 평생 맞을 것을 한번에 다 때워 나가니, 이제 앞으로는 안 맞을 것이니라.” 하시니라. 부안(扶安)댁이 그 말씀을 굳게 믿고 집으로 돌아가 방안을 비우고 왕골 자리 하나만 말아둔 채 남편을 기다리거늘, 저녁이 되어 돌아온 남편이 “살림을 다 어디다 뒀느냐?” 하며 세워져 있는 왕골 자리로 두 번을 때리고 밖으로 나가더니, 과연 그 날 이후로 다시는 손을 대지 아니하더라."

 

■ 인간은 왜 윤회(輪回)하는가?

 

인간의 수명(壽命)과 일생(一生)은 기껏해야 100년 정도이다. 그 짧은 기간 동안 인간이 쌓을 수 있는 지식, 지혜에는 한계(限界)가 있기 마련이다. 그래서 인간은 거듭되는 새로운 삶과 윤회(輪回) 속에서 다양한 경험을 쌓아가며 생명의 성숙, 인간 완성의 길을 걸어가는 것이다. 즉 윤회(輪回)의 목적은 생명과 영혼의 성숙을 위해서라는 것이다.

 

그런데, 인간이 윤회(輪回)를 거듭하며 이 세상에 다시 태어날 때는 대개 자신의 소망을 가장 잘 충족시켜 줄 수 있는 부모에게 자석(磁石)처럼 이끌리게 된다고 한다. 특정인으로 부터 큰 은혜를 입은 경우는 그의 자식으로 태어나 그 부모에게 극진한 효도(孝道)를 다하기도 하고, 반대로 자신에게 큰 원한(怨恨)을 품게 한 사람이 있는 경우에는 그를 부모로 선택하여 그 부모에게 극심한 고통(苦痛)을 안겨주는 삶을 살기도 하는 것이다.

 

대부분의 인간은 태어나면서 자신의 과거 전생(前生)의 기억을 다 잃어버린다. 때문에 부모 형제들과 자신이 전생(前生)에 어떤 인연으로 얽혀 있는지 쉽게 알 수는 없다. 하지만, 전생을 통해 겪어온 다양한 삶의 기록은 무의식(無意識) 속 깊숙이 기록되어 보이지 않는 힘으로 작용한다. 그래서 스스로 의식하지는 못하지만, 태어나기 전 자신이 다음 생애(生涯)에 하고자 했던 그 소망을 실현하는 방향으로 나아가는 것이다. 

 

■ 원수(怨讐)를 아버지로 선택한 사람들

 

KBS 2 TV ‘전설(傳說)의 고향(故鄕)’이란 프로에서는 원한(怨恨)과 윤회(輪回)에 얽힌 아주 특이한 내용의 전설을 방영한 적 있다.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조선(朝鮮)시대 양반 집안의 남자 주인공이 청년 시절 여행 중에 한 처녀가 홀로 살고 있는 산 속의 외딴집을 방문하게 된다. 적막한 산 속에서 색욕(色慾)이 발동한 그는 그녀를 겁탈(劫奪)하려다 그만 그 여인을 살인(殺人)하게 된다.

 

그러던 중, 서울 한양(漢陽)으로 과거 시험을 보러가던 한 남자가 그 집을 들르게 되는데 처녀를 죽인 주인공은 자신의 범행을 알게 될까 두려운 나머지 과거 시험을 보러가던 남자를 죽인다.

그리고 또 잠시 후 무예(武藝)를 닦은 한 남자가 들르게 되는데 그 역시 자신의 범행이 탈로 날까 겁이 나서 또 죽이게 된다. 그리고는 그 사람들을 모두 그 집에다 아무도 모르게 묻어 버린다.

 

세월(歲月)이 흘러 그는 결혼을 하여 딸 하나, 아들 둘을 낳아 잘 키우며 자식 기르는 재미로 행복하게 지내고 있는데 그 자식들 3명이 갑자기 사망한다. 딸은 결혼식 며칠 후 친정으로 오던 중에 죽고, 두 아들은 각각 문과(文科) 무과(武科)에 급제하여 집으로 오던 중 갑자기 죽게 된다.

 

가장 경사스럽고 행복한 날 자식들이 별 이유도 없이 모두 요절해 버린 것이다. 주인공은 자식들을 한꺼번에 잃고 자손 줄 마저 끊기는 아픔을 겪은 것이다. 그런데 나중에 알고 보니, 그 자식들은 모두 예전에 자신이 죽였던 그 세 사람의 후신(後身)이었다는 것이다.

 

자신들의 원통함을 보복하고자 그 사람의 자식으로 태어나 마침내는 주인공에게 엄청난 삶의 고통을 주며 보복(報復)을 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여기서 한 가지 더 재미있는 것은 이들 세 명은 단순히 원한을 갚은 것으로만 그친 것이 아니라, 그들의 소망도 성취했다는 것이다.

 

처녀로 시집도 못 가보고 살해당한 여인은 다시 환생(還生)하여 결혼식을 무사히 마친 후 죽었으며, 두 남자 역시 환생(還生)하여 삶의 목표 중 하나였던 과거 시험에 급제를 한 후 죽었다는 것이다. 즉 이들은 원수를 아버지로 선택함으로서 그 억울한 원한을 해소함과 동시에 전생에 못 다 이룬 소망을 이루고 죽은 것이다.

 

그리고 한적한 집에서 비명횡사(非命橫死)하여 신명(神明)으로 만난 세 사람은 한 사람에 의해 만들어진 그 불운(不運)한 원한(怨恨)과 고독을 서로 위로하고 달래줄 수 있는 형제간의 인연 또한 선택하게 된 것이다.

 

■ 쓸 자손 하나 얻기 위해 60년 공(功)을 들이는 조상신(祖上神)

 

“모든 선영신(先靈神)이 쓸 자손(子孫) 하나씩 타내려고 60년 동안 공(功)을 들여도 못 타내는 자도 많으니라. 이렇듯 어렵게 받아 난 몸으로 꿈결같이 쉬운 일생을 헛되이 보낼 수 있으랴. 너희는 선영신(先靈神)의 음덕(蔭德)을 중히 여기라.”

 

조상 선영신(先靈神)들이 쓸만한 자손(子孫)을 얻기 위해 3년 10년 60년 온갖 정성을 기울인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인간은 본래 욕구(慾求) 충족을 위해 노력하는 존재이다. 그래서, 자식(子孫)은 자식대로 자신의 소망을 성취할 수 있는 부모를 선택하고 싶어 한다. 그리고, 조상(祖上)은 조상대로 그들의 뜻을 이루어 줄 수 있는 자손을 선택하고 싶어 하는 것이다.

 

■ 윤회(輪回)는 영원히 계속되는 것인가?

 

요즈음은 정신 분석학자(psychoanalyst) 혹은 정신과 의사(psychiatrist)를 통해 윤회(輪回)에 대한 다양한 정보가 대중에게 많이 알려지고 있다. 그러면 윤회(輪回)는 영원히 계속되는 것일까? 아니면 어떤 제한(制限)이 있는 것일까?

 

도(道)를 잘 닦는 자는 그 정혼(精魂)이 굳게 뭉쳐서 죽어서 천상(天上)에 올라가 영원히 흩어지지 아니하나 도(道)를 닦지 않는 자는 정혼(精魂)이 흩어져서 연기와 같이 사라지느니라.” 


결국 영혼(靈魂)도 죽는다고 말씀하신 것이다. 그 이유는 인간이 윤회(輪回)를 통해 진화(進化)할 수 있는 시간대가 제한(制限)되어 있기 때문이다.  마치 들판의 초목(草木)들이 봄. 여름 동안에만 성장(成長)할 수 있듯, 영혼의 윤회(輪回) 역시 우주(宇宙) 1년이라는 큰 주기에 제한(制限)을 받고, 우주(宇宙) 1년의 봄. 여름에만 인간의 윤회(輪回)가 용이하다는 것이다.

 

■ 기독교 교회와 이슬람교 사원에서는 제사(祭祀)를 지내고 조상(祖上)을 섬기는 것을 우상 숭배 및 마귀 숭배로 여긴다. 정말로 조상(祖上)을 섬기는 것이 마귀 숭배일까? 하지만, 우리 민족의 민간(民間) 신앙에서는 자기 조상(祖上)을 ‘하느님’으로 여겨왔다. 과연, 어떤 것이 맞을까?

 

■ 제사(祭祀)를 올리면, 99%의 복(福)을 받는다! 지장경(地藏經) 제7품에 “죽은 자를 위해 제사(祭祀)를 베풀면, 죽은 자는 그 은공의 7분의 1을 갖는다!”는 말이 있다. 산 자가 7분의 6을 갖는다는 말이나, 엄밀히 따지면 죽은 자는 100% 중 1%만 가져가고 나머지 99%는 산 자의 차지이다. 천도식(薦度式)은 죽은 자를 위한 천도(薦度) 의식이 아니라, 살아 있는 나를 위한 천도(薦度) 의식으로 봐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효도(孝道)가 중요합니다. 조상에게 잘하면 내게도 복(福)이 오기 때문이다.

 

조선(朝鮮) 초기에는 우리나라의 문명과 문화가 최고로 발달했던 시기이다. 조선(朝鮮) 초기 적어도 성종(成宗 1457-1494) 때까지만 해도 제사(祭祀)를 딸, 아들 구별 없이 돌아가며 윤회봉사(輪回奉祀)를 했으며, 제사(祭祀)에 드는 경비도 분담하는 분할제를 택하는 합리적인 방법으로 제사를 지냈다. 조상(祖上)을 받드는 정신은 딸, 아들이 다를 수 없으며, 맏이나 그 외의 자녀들도 다르지 않다는 것을 제례(祭禮)를 통해 그대로 보여준 것이다.

 

여자들도 자신을 낳고 길러준 부모(父母)와 조부모(祖父母)에게 형식에 구애없이 음식을 차려 놓고 감사(感謝)의 제사(祭祀)를 지낼 수 있어야 한다. 하지만, 맞벌이 부부에게 큰 짐이 되는 지나친 허례허식(虛禮虛飾)은 없어져야 한다. 제사(祭祀)를 지내면 자신의 부모(父母)와 조부모(祖父母)만 오는 것이 아니다. 부모(父母) 및 조부모(祖父母)의 친한 친구 및 친척들도 함께 와서 음식의 향기와 기운을 음복(飮福)하기도 한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 예수(Jesus)가 강조한 윤회(輪回) 및 환생(還生)

 

예수(Jesus)는 윤회(輪回)를 여러차례 강조하곤 하였다. 기독교 초창기 성경(聖經)에서는 예수(Jesus) 탄생 당시의 유대인들 사이에 윤회(輪回)와 환생(還生)에 대해 공공연하게 언급되고 있다. 요한(Johannes)과 예수(Jesus)는 영혼(靈魂) 세계와 윤회(輪回)의 법칙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했다.

 

“너희가 인자(人子. the Son of Man)의 이전 있던 곳(前生)으로 올라가는 것을 볼 것 같으면 어찌 하려느냐!” (요한 6:62).

 

“이 사람을 보라. 그는 한때 전생(前生)에 잔인한 사람이어서 한 동료의 눈을 잔혹한 방법으로 멀게 했느니라. 드디어, 사람들은 이 사나이의 부모를 데리고 와, 바리새인(Pharisee人) 앞에서 증명을 시키기로 했습니다.”

 

예수(Jesus) 당시는 물론, 예수 사후 약 500년간의 초기 기독교 사이에는 많은 기독교인들(특히 Gnosis파)이 윤회설(輪回說)을 자유로이 신봉하고 있었다.

 

그러나, 325년 니케아(Nicaea) 공의회(콘스탄티누스 황제 소집)에서 Gnosis파(靈知주의)의 문헌들은 당시 카톨릭 세력에 의해 모조리 배척되고 제외되었으며, 553년 바티칸 공의회(유스티니아누스 황제 소집)에서 윤회설(輪回說)을 일방적으로 이단으로 규정하고 윤회설(輪回說)을 믿는 기독교인들을 화형(火刑)에 처하는 박해가 시작되었던 것이다. 결국, 지금의 기독교(Christianity)는 영혼의 윤회(輪回)를 인정하지 않고, 죽은 자에 대한 제사(祭祀) 문화도 용인하지 않게 되었다. 기독교(Christianity) 원래의 본질이 왜곡되어 버린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