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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나무의 왕자 금강송, 하늘을 찌른다.

마도러스 2009. 3. 3. 10:41

 

소나무의 왕자 금강송, 하늘을 찌른다.

 

삼척 준경묘 금강송림


 
솔숲에 비바람이 분다. 송뢰(松?). 솔숲을 스치는 바람소리를 일컫는 말이다. 예로부터 솔바람 소리는 청아하고 기품이 있다고 하여 우리 조상들은 이를 들으며 즐겼다.
 
그 중에서도 눈 내리는 날 밤에 듣는 ‘설야송뢰’를 으뜸으로 쳤지만, 비 오는 날에 듣는 ‘우중송뢰’의 운치도 참으로 좋다. 하물며 ‘소나무의 왕자’라는 금강송, 그 중에서도 최고의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삼척의 준경묘(濬慶墓) 금강송림에서라면 둘도 없는 호사다.
 

활기리 농수산물센터 앞에 주차를 하고 금강송이 군락을 이루고 있는 준경묘로 향한다. 널찍하지만 제법 가파른 콘크리트 길을 10분쯤 걸었을까? 소나무들이 여기저기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한다. 대부분 몸통이 붉고 곧게 솟은 금강송이다. 그러나 아직 감탄하긴 이르다.

 

 

▲ 쭉쭉 뻗어 올라간 매끈한 소나무 사이 사이를 거니는 기분이란. 삼척 준경묘(오른쪽 사진) 주변 금강송림은 우리나라 최고의 소나무 숲 중 한 곳.

 

고갯마루를 지나 평탄한 흙 길을 20분쯤 걷자 서서히 모습을 드러내는 아름드리 소나무들. 한 그루도 빠짐 없이 쭉쭉 뻗었고, 우듬지까지 잔가지 하나 없이 매끈하다. “이 소나무들 좀 봐요! 세상에…” 동행한 지인은 잠시 말문을 잃는다.

 

길 오른쪽의 돌계단을 오르면 특이한 사연을 간직한 소나무 한 그루가 기다린다. 수령 100년, 높이 30m쯤 되는 이 소나무는 지난 2001년 5월 8일 보은의 정이품송과 혼례를 올렸다.

 

 당시 산림청 임업연구원은 점차 노쇠해 가는 정이품송의 혈통을 보존하기 위해 수형·체격·생식력·우수형질유전여부 등을 따져 최고의 신부감을 물색, 준경묘에서 두 그루, 울진 소광천에서 두 그루, 평창에서 한 그루 이렇게 모두 다섯 그루를 찾아냈다. 이 나무는 그 중에서 최후에 간택된 우리나라 최고의 미인송이다.

 

백두대간 분수령 동쪽 기슭에 터를 잡은 준경묘는 조선 태조 이성계의 5대조인 양무장군의 묘. ‘용비어천가’ 첫 장에 등장하는 육룡 중 첫 번째 용인 목조(穆祖) 이안사(李安社)는 전주에서 살 때 산성별감과 기생을 사이에 두고 다투다 사이가 나빠지자 처가인 강원도 삼척으로 피해왔다.

 

이곳에서 부친상을 당한 목조는 ‘4대 안에 왕이 날 자리’라는 도인의 말을 엿듣고 현재의 위치에 장사 지냈다. 그 후 산성별감이 삼척으로 부임한다는 소문이 떠돌자 그는 추종자 170여 명과 함께 다시 함경도 방면으로 이주했다. 세월은 흘렀고, 목조의 뒤를 이어 익조·도조·환조·태조(이성계)가 태어나며 양무장군의 묘는 점차 잊혀졌다.

 

이성계는 고려를 무너뜨리고 왕위에 오른 뒤 음덕에 보답하기 위해 양무장군의 묘를 찾으려 했으나 실패했다. 그러다 세종 때 겨우 무덤을 찾아낸 뒤 성종 때 봉분을 보완하다가 여러 논란으로 공사를 중지했다. 그리고 1899년에야 겨우 지금의 규모로 수축할 수 있었다. 당시의 성역화 작업 덕분에 이곳의 금강송 군락지가 원시림 형태로 유지될 수 있었던 것이다.

 

준경묘의 진정한 보물은 누가 뭐래도 100년 이상 된 금강송들이 20~30m 높이로 장대하게 뻗어있는 원시림이다. 그래서 환경단체인 ‘생명의 숲’은 지난 해 아름다운 숲 전국대회에서 준경묘 금강송림을 ‘가장 아름다운 숲’으로 선정하기도 했다.

 

금강송림 사이로 나있는 외줄기 길로 준경묘를 벗어날 무렵, 옅은 안개가 숲으로 내려앉는다. 걸음을 멈추고 뒤를 돌아본다. 백두대간에서 뻗어 내린 첩첩 산줄기로 둘러싸인 준경묘는 참 아늑했다.

 

바깥 세상과 이어주는 유일한 통로인 이 흙 길마저 없었다면 그 누구라도 이곳을 찾지 못하고, 설령 우연히 들어섰다 해도 영영 벗어나지 못할 것만 같았다. 하얀 안개에 휘감긴 금강송림, 그곳은 속세가 아니라 신선이 노니는 선계(仙界)였다.

 

준경묘 답사 길잡이=준경묘 답사 길잡이 활기리 농산물집하장 앞에 주차를 하고 1.8km 정도 걸어가야 한다. 차단기를 지나 가파른 콘크리트길을 10~20분 정도 걸으면 고갯마루에 올라선다. 여기서부터 평탄한 흙길을 20여분 걸으면 금강송림으로 둘러싸인 준경묘가 나온다. 걷는 데만 왕복 1시간30분쯤 걸린다. 초입의 콘크리트길이 좀 가파르긴 해도 유치원생도 가능하다.

 

가는 길=영동고속도로→동해고속도로→동해 나들목→7번 국도(삼척 방면)→단봉삼거리(우회전)→38번 국도(태백 방면)→미로면→영경묘→준경묘. 수도권 기준 4시간 소요.

 

대중교통=서울 동서울터미널(02-446-8000)에서 삼척행 노선버스가 매일 10여 회, 부산 종합터미널(051-508-9966)에서 4회, 대구 동부터미널(053-756-0017~19)에서 8회 운행. 삼척종합버스터미널 전화 572-2085

 

현지교통=삼척시내에서 활기리까지 3회(06:50, 13:20, 17:50) 운행하는 시내버스(31-1번)를 이용해 준경묘 입구에서 내린다. 또는 수시로 운행하는 환선굴이나 도계행 시내버스를 타고 가다 활기리 입구에서 하차해 1.5km 정도 걸으면 활기리 마을회관 앞이다. 20분 소요, 요금 950원. 삼척 시내버스 전화 574-2686

 

숙박=준경묘와 주변엔 숙박시설이 없다. 준경묘에서 승용차로 10여 분 거리의 환선굴 입구에 민박집이 많다. 그중 굴피로 지붕을 얹은 민박집인 대이리굴피집(541-7288)에서 묵으면 좋은 추억이 된다. 작은방 2만원, 큰방 3만원. 식당은 대부분 산채비빔밥(5000원)을 주메뉴로 한다.

 

조선일보. 글·사진 민병준 여행작가  2006.05.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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