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속. 부품

소재. 부품 국산화 현장의 단절된 생태계

마도러스 2019. 8. 29. 06:46


■ 소재. 부품 국산화 현장의 단절된 생태계

 

● 갈길 먼 소재부품 국산화양산 문턱못 넘은 종이필름

 

소재부품 국산화가 어려운 이유로 현장에서는 대학·출연연중소·중견기업대기업이 모두 단절된 생태계를 꼽고 있다. 2002년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은 '전자종이(e-paper)' 구현에 필요한 소재인 '종이 필름개발을 시작했다전자 종이는 자체 광원이 필요 없으면서 액정 표시 장치(LCD)와 비교했을 때시야각 및 해상도가 우수한 소재이다. 2000년대 후반 'e북 리더'에 적용되기 시작해 최근에는 대형 마트 가격 표시기버스 정류장 노선도 등으로 활용 범위를 대폭 넓혀가고 있다현재 전 세계 종이 필름 시장의 99% 이상을 대만 기업 '이잉크(E-Ink) 홀딩스'가 공급하고 있다대만 기업이 글로벌 독점을 하고 있는 셈이다이잉크 홀딩스의 2018년 매출은 140억달러 (약 16조 7400억원)에 달했다.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에서 전자 종이 연구를 이끌다 회사를 차린 김철암 엔스펙트라(Nspectra) 대표는 "1990년대 이잉크 홀딩스가 특허를 등록했는데이잉크홀딩스의 원천 기술 특허가 만료되는 시점이 2018년이었다전자 종이를 만들기 위한 소재 개발에 빨리 나서야 확대되는 전자 종이 시장 진입이 가능할 것으로 보고 개발에 들어갔다"고 말했다특허가 만료된 2018년 김철암 대표는 ETRI의 집중적인 연구 개발(R&D)을 통해 개발한 전자 종이 생산 기술을 토대로 종이 필름 양산화를 위해 중소기업을 찾았다하지만상황은 녹록지 않았다생산 기술은 마련했지만양산을 위한 또 한 차례의 R&D를 진행할 만한 능력을 갖춘 중소기업을 찾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엔스펙트라(Nspectra) 김철암 대표는 "부품 소재 기초 원천 기술을 양산 단계로 가져가려면기업이 R&D 인력과 함께 수년간 투자할 수 있는 여력을 갖추고 있어야 한다하지만대다수 국내 중소기업은 이 같은 역량을 갖추고 있지 못한 게 현실"이라고 지적했다결국김철암 대표는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를 휴직하고 전자 종이를 생산하는 벤처 기업인 엔스펙트라를 설립했다하지만이번엔 자금 조달이 문제였다그는 "투자하는 쪽에서는 우리 기업이 대기업에 납품한 실적을 요구하는 등 자금을 조달하는 데 어려움을 겪어야 했다"고 고충을 토로했다결국전자 종이 생산 기술을 확보했지만아직 양산까지는 도달하지 못한 채 여전히 자금 조달을 위해 이리저리 뛰어다니는 상황이다.

 

● 연구소가 기술 개발 성공해도 대기업 납품 실적 요구 장벽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 실감 소자 원천 연구본부장은 "정부 출연 연구원에서 개발한 기술을 중소 중견기업이 상용화하고이를 수요 기업에 납품하는 연결 고리가 끊어져 있다"며 "출연연중소기업대기업이 유기적으로 연결돼 있지 않은 상황에서 아무리 좋은 논문과 특허가 나와도 상용화까지 가져가는 게 쉽지 않다"고 말했다.

 

과학기술계는 종이 필름이 한국의 부품 소재 국산화율이 낮을 수밖에 없는 이유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라고 말한다대학 출연연에서 개발한 기초 원천 기술이 상용화로 이어지지 못하기 때문에 R&D에 아무리 많은 투자를 하더라도 눈에 띄는 가시적인 성과를 얻기 힘들다는 지적이다일각에서는 밑 빠진 독에 물 붓기라는 패배주의가 만연한다특히부품 소재 분야는 중소 중견기업 역할이 중요하다대기업이 부품·소재를 모두 만들 수 없기 때문이다하지만국내 중소 중견기업 중 R&D에 투자할 인력이나 재정적 여력이 가능한 곳은 극소수에 불과하다.

 

● 일본정부가 컨트롤타워 역할대기업도 中企와 활발한 협업

 

반면일본은 기초 원천기술을 양산까지 연결짓는 생태계가 조성되어 있다포스코 경영연구원이 2013년 발간한 '일본은 어떻게 소재 강국이 되었나?' 보고서에 따르면일본에서는 개발된 소재가 판매로 이어지기까지 사전에 부품완제품 조립 업체와의 의사 소통이 활발하게 진행된다일부 소재 업체들은 고객의 제품 개발 초기부터 참여하는 전략을 구사하고 있고완제품 업체들은 암묵적 구매 약속과 함께 기술 및 자금 지원으로 협업을 하는 게 일반적이다.

 

한국생산기술연구원 이성일 원장은 "중소기업들이 부품 소재 공급 사슬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전통이 일본 소재 부품 경쟁력 배경"이라고 말했다이처럼 부품 소재 분야 경쟁력이 일본에 비해 절대적으로 열악한 상태지만사실 한국은 부품 소재 기술 원천이 되는 기초 재료 분야에서는 우수한 성과를 내고 있다.

 

● 재료 분야 국제 학술지 인용도에서 한국이 세계 4

 

기초과학 연구원(IBS)의 분석에 따르면최근 10년간 재료 분야 국제 학술지의 인용도에서 한국이 세계 4위를 차지해 일본(5)을 앞질렀다인용도가 높다는 것은 좋은 논문을 많이 발표한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논문에 발표된 기초 원천기술이 상용화되기까지 대략 10년이 걸린다고 한다면미래에는 한국이 일본을 앞지를 수 있을 만큼의 충분한 기초 원천 기술을 확보하고 있는 셈이다하지만지금처럼 기초 원천 연구와 상용화 등이 따로 노는 상황이 지속되면한국은 과거처럼 논문과 특허만 양산하고 상용화에는 실패할 확률이 크다.

 

동의대 무역학과 이홍배 교수는 "일본은 정부가 컨트롤 타워가 있어서 기업들의 기술 수준소재 부품 수요를 조사하고 이를 대학 및 연구소와 매칭시키는 등 산학연 연계가 긴밀하다그런데우리는 기업과 연구소와 학계가 따로 놀면서 잠재력이 제대로 발휘되지 않고 있는 상황"이라고 지적했다부품·소재 생태계를 위해 대학과 출연연중소기업대기업 간 신뢰를 쌓는 일이 중요한데한국은 이 축적의 시간이 부족했다한국이 소재 부품 강국으로 거듭나기 위해서는 부품 소재 생태계 조성이 무엇보다 시급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