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문(短文)

잘 짖는다고 명견(名犬) 되는 게 아니다.

마도러스 2019. 8. 28. 03:58




■ 잘 짖는다고 명견(名犬) 되는 게 아니다.

 

쉰 살이 되기 전까지 나는 한 마리 개였다. 앞에 있는 개가 그림자를 보고 짖어대면, 나도 따라 같이 짖었다()나라 사상가 이탁오(李卓吾)는 듣기 좋은 공자(孔子) 맹자(孟子) 말씀을 아무 생각 없이 읊어대던 자신을 개에 비유했다. 50살이 되어서야 자신을 깨부수고, 새로운 생각과 새로운 삶을 창조하는 독창적 목소리를 내는 지식인으로 거듭났다.

 

우리 속담에 "못된 송아지 엉덩이 뿔나고, 못된 강아지 들판에서 짖어댄다"고 했다. 지키라는 집은 안 지키고, 동네방네 돌아다니며 짖고 다니는 개를 가리킨다. 개는 잘 짖는다고 해서 명견(名犬)이 되는 것은 아니다. 사람은 말을 잘한다고 해서 군자(君子)가 아니다. 입을 놀려 짓는 죄를 구업(口業)이라고 한다. 말로 지은 업보(業報)의 대가는 언젠가 톡톡히 치르게 마련이다.

 

나는 개였다라는 이탁오(李卓吾)의 절절한 이 한마디는 한 사상가의 참회록이자 이 시대의 학문하는 이들에게 가하는 뼈아픈 일침이다. 공자(孔子)에 대해 자유로운 해석과 사상이 존재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오로지 주희(朱熹)의 해석만을 유일시 하는 당시 도학자들의 행태에 반기를 든 것이다. 주희(朱熹)의 절대적 해석을 부정한다는 것은 당시로서 충격적인 일이었다. 그리고, 어찌하여 꼭 공자(孔子)만을 배워야 바른 맥을 이었다고 할 수 있습니까?

 

이탁오(李卓吾)는 기존 질서를 전복하는 거침없는 발언과 저술 때문에 수많은 논쟁을 불러일으켰다. 당시 최고의 도학자(道學者)를 자처하던 경정향(耿定向)과의 10년 논쟁이 그 대표적인 예이다. 경정향(耿定向)에게 이탁오(李卓吾)는 망설이거나 거리끼는 것 없이 붓을 들자마자 써내려갔다. “세상 사람들에게 공()만 혼자 꿈속에서 대낮 얘기를 하니, ()은 항상 깨어 있다고 할 만하겠군요.” 이탁오(李卓吾) 윤리 도덕 본위의 유교(儒敎) 국가에서 부처와 노자 보다 훨씬 파괴력을 지닌 이단아(異端兒)였다.

 

이탁오(李卓吾)의 사상은 그의 동심설’(童心說)에서 잘 드러난다. 그는 어린 아이의 마음이야말로 인간의 참된 마음이며, 그 마음을 잃어버린다면 어떤 성인도 진실할 수 없다고 말한다. 동심은 참된 마음이다. 동심이란 거짓 없고 순수하며 참된 것이므로 최초 일념의 본심이다. 동심을 잃으면 참된 마음을 잃는 것이다. 참된 마음을 잃으면 참된 행동을 잃는 것이다. 사람이 참되지 않으면, 최초의 본심은 더 이상 전혀 있지 않게 된다.

 

동심이 가로막히면 말을 한다 해도 그 말이 진심에서 우러나오지 않는다. 정치에 참여한다 해도 그 사람이 펼치는 정사에 뿌리가 없고, 저술을 한다 해도 그 뜻이 제대로 전달되지 않는다. 내적인 미()가 갖추어지지 않음으로써 소박하고 진지한 가운데 빛을 발하지 못하여 단 한마디라도 진리에 부합되는 말을 찾아보려고 해도 끝내 찾을 수가 없다. 동심이 막히면, 본심을 잃어 사람으로서의 주체성을 잃게 된다.